지옥같던 전직장. 자꾸 집착하게 되네요.
(요약) 지옥같던 회사 나와서, 회사 새로 만들고 안정적으로 잘 살고 있는데, 분노때문에 전직장이 망하는지 안망하는지 궁금해서 집착하게 됩니다.
더 글로리에서 "어떤 증오는 그리움을 닮아서 멈출수가 없거든" 이란 대사를 듣고나니, 제가 그 처지인 것 같네요.
(본문)
고학력의 직원만 있는 ㅈ소기업을 꽤나 오래다녔습니다.
다행히 저는 고학력자 중에서도 가장 초고학력으로 약간 스카웃 개념으로 들어갔고, 대표와는 수십년 전부터 알던 사이로, 제가 원하는 게 있으면 거침없이 요구하는 편이라 꽤 오래다닐수 있었습니다.
회사경영이 매우 이상하고 사람들이 정신병자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딱히 협업이 필요한 일도 아니고 남한테 관심도 없어서 독고다이로 일했습니다.
원래 그 회사에 능력없고 학력도 딸리는데 인맥으로만 들어온 열등감있는 직원들이 많았는데, 절 가지고 별 어이없는 뒷담화도 많이 하고 골탕 먹이려고 했지만, 저는 다니는 동안 신경 안썼습니다. 사실 그 직원들이 만들어내는 루머가 아무리 충격적인 거짓말이라고 해도, 그 직원들이 밖에서 사람을 만나야지 퍼지죠. 맨날 책상에 앉아서 쇼핑이나 하고 주식창만 들여다 보는데..ㅋㅋㅋ
여하튼 있는 동안 제가 거래처 넓혀서 매출 기여도도 혼자서 약 30%~40% 하는지라, 뒤에서 욕해도 사실 제가 요구하는 걸 거절은 못하더라구요.
그 이후 제가 쓸 직원들을 몇명 뽑았고 나름 제 팀이 완성됐습니다.
물론, 내가 이렇게 많이 벌어다주는데, 왜 회사가 항상 적자지? 라는 궁금증은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대표도 제 월급을 건드리지는 못했고 매우 사소하고 눈에도 안띄게 괴롭히지만 정작 제가 나갈까봐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러다 몇년전부터, 대표가 저를 심하게 질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분이 진짜 어이 없는데, 돈 잘 벌어다주고 거래처가 칭찬하는 직원을 질투하는 대표는 뭐랍니까? 나름 왕따시킨다고 저에게 말거는 직원들을 불러서 괴롭히고 저와는 밥도 못먹게 하고, 누구랑 불륜이라는 둥, 도박을 한다는 둥 음해도 하더라구요. 그러더니 어느날은 제가 거래처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는데 저한테 몇년동안 재수가 없을거라고 저주를 퍼붓더라구요 ㅋㅋㅋㅋ.
그래도 워낙 회사가 똥통같아서 차라리 일 못하는 애들 들러붙는 것보단 나아서 일이 더 장되더라구요.
문제는 제가 데려온 애들인데.. 이 친구들이 실력파인데, 걔네들을 괴롭히니까 걔네들이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할 지경이 오면서 다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정말 대표와 하루가 멀다하고 싸웠습니다. 제가 대체로 매우 평온한데, 내새끼 건드리면 분노를 못참는 편입니다. 그런데 제가 화내면 제 앞에서는 당장 쩔쩔 매더라구요. 참 나..
여하튼 대표가 그동안 엉뚱한데 정신이 팔려서 정작 챙겨야할 총무팀 재무사고를 못챙겼나 봅니다. 어느날부턴가는 서로 소송하네 고발하네 하면서 이사회를 소집하네 흥신소를 부르네 이러면서 아귀다툼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표내고 초소형기업이지만 제 회사를 차렸습니다.
결과는 뭐, 먹고살만한 수준으로 잘 벌고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전 회사에 대해 관심도 없고 절대 험담안하고 제 인생 잘 살았습니다.
근데 막상 이번주에 부가세 신고때문에 결산하고 나니까, 갑자기 지난 수많은 세월동안 없던 집착이 생깁니다.
'이 자식들 지금 재무상태 엉망이고, 기존 거래처들도 저 없다고 거기랑은 다 일 안한다던데 언제 망하지?'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네요.
저랑 일하던 애들은 다 나와서 도대체 그 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수가 없으니 너무 궁금합니다. 맘 같아선 벽에 붙어서 엿듣고 싶을 지경입니다. ㅋㅋㅋ
'분명히 재무상태가 엉망일텐데', '아귀다툼하던 인간들만 남아서 서로 못잡아먹어 안달일텐데..'하는 생각에 궁금해 잠이 안오네요.
참나.. 저는 제가 굉장히 평온하고 해탈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아닌가봅니다. 비공시 회사의 재무상태를 알아보는 방법은 없는지 너무 궁금하고... 내가 이렇게 속좁은 인간이었나 자괴감도 드네요.
이번 주 지나가면 원래의 평온한 성격으로 돌아갈 수 있는건지, 아니면 그동안 제가 무의식으로 억눌렀던 증오가 폭발한건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