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욕망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흔히 행복은 돈이 많으면 따라오고, 높은 지위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된다.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사람도 마음속에는 늘 허전함과 불안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계급 욕망"이라는 보이지 않는 덫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비교하는 존재다. 절대적인 풍요보다 상대적인 위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연봉이 1억원이어도 주변 사람들이 2억원을 벌면 자신이 뒤쳐진 것처럼 느끼고, 넓은 집에 살아도 더 큰 집을 가진 사람이 보이면 만족은 금세 사라진다.
자동차, 명품, 학벌, 직장, 심지어 자녀의 성적까지도 끊임없이 비교의 대상이 된다.
문제는 "비교에는 끝이 없다"는 점이다. 계급 욕망은 현재의 삶을 감사하는 능력을 빼앗는다.
지금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가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게 만들지만, 막상 그곳에 도착하면 또 다른 위를 바라보게 된다.
계단은 끝없이 이어지고, 만족은 언제나 한 걸음 앞에만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들은 이를 "구별짓기(Distinctipn)'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단순히 좋은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자신을 구별해 주는 것을 원한다.
그래서 소비는 생활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분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고, 성공은 삶의 완성이 아니라 경쟁의 시작이 되어 버린다.
오늘날 SNS는 이러한 계급 욕망을 더욱 부추긴다. 우리는 타인의 하이라이트만 보면서 자신의 일상을 평가한다.
누군가는 해외여행 사진을 올리고, 누군가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자랑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새 아파트 입주 소식을 전한다.
그렇게 남의 행복이 나의 불행처럼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행복은 계급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역사를 돌아보면 가장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는 검소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높은 지위보다 자신의 소명에 집중했고, 타인과의 경쟁보다 자신의 성장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외적인 성공보다 내적인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반대로 계급 욕망이 사로잡힌 사람은 결국 쉬지 못한다. 승진해도 불안하고, 돈을 벌어도 부족하며, 성공해도 누군가에게 뒤질까 두렵다.
행복은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불안의 크기에 비례하여 줄어든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쾌락 적응(Hedomic Adaptation)"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새로운 환경이나 성취에 빠르게 익숙해지기 때문에, 처음의 만족은 오래 가지 않는다.
더 큰 자극과 더 높은 성취를 원하게 되고, 욕망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결국 행복을 추구할수록 행복은 멀어지는 역설이 나타난다.
물론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노력하여 자신의 삶을 발전시키고, 가족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려는 마음은 인간의 건강한 본능이다.
문제는 성장의 욕망이 계급의 욕망으로 변질되는 순간이다. 삶의 목표가 자신의 발전이 아니라, 타인보다 위에 서는 것이 될때 행복은 경쟁의 부산물로 전락한다.
행복은 높은 자리에 오르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데서 시작된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조금 더 성장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비교의 기준을 남이 아니라 자신에게 둘 때 비로소 삶은 평온해진다.
계급은 사회가 만든 기준이지만, 행복은 마음이 만드는 기준이다.
계급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평생 남의 삶을 바라보며 살아가지만,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오늘을 살아간다.
우리가 진정 경계해야 할 것은 가난이 아니라 끝없는 비교이며, 낮은 계급이 아니라 높은 계급을 향한 집착이다.
행복은 더 높은 곳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우리 곁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