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구직자와 인류애
얼마 전 면접을 보았습니다.
제가 면접관이었어요.
후보자는 회사를 다니다 갑자기 구조조정된 친구였지요.
이력서를 보다 보면, 그 사람의 경력과 앞으로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 할 일이 match 되는지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이 보이기도 합니다.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라는 말이 딱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지요.
이 친구는 쉽지 않은 환경에서 참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생활, 첫 직장에 들어가기까지 힘든 취준 생활, 그리고 회사에서의 여러 어려움들.
모든 사람들이 다 어렵겠지만,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보니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찡했습니다.
예를 들면, 가난한 집 자식이라 등록금 벌려고 대학생활
내내 일하면서 공부하고, 장학금 받으려고 더 열심히 하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집안 사정이 어려워 학원도 잘 못 다니고, 학교 도서관, 공공 도서관 등에서 밤 늦게까지
공부했던 이야기.
그래서, 학벌은 그렇게 좋지 않았지만, 수상, 인턴 등 경력을 쌓아 괜찮은 첫 직장에 들어가서, 또 다시 full steam으로 일했던 시절.
어학연수 한번 다녀온 적 없는데, 미국 대학 나온 친구 정도의 영어를 구사하는 걸 들으며, 한국에서 토익 공부하는 수준으로 될 것이 아닌데 어떻게 실력을 쌓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하루 한 시간 영어 공부한 것이 아니라, 그냥 시간될 때마다 CNN과 BBC 등을 계속 듣고 script 출력해서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쓰고 말해보길 반복했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 흔한 영어 학원 한번 돈이 없어서 못 다녀봤다는 말에 더 놀랐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해도 회사 생활은 큰 조직일수록 또 경쟁인데, 거기서 뒤쳐지지 않으려고 10년 동안 꾸준히 열심히 했고,
해외 연수와 주재원 근무 경험까지 하며 인정 받고 커리어 관리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해외 근무를 하며, 모셨던 상사가 부정을 저질렀고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면 이상한 상사 잘 모시려다 잘못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친구가 그러다 같이 회사에서 잘렸더군요.
구조조정 시기에도 딱 걸린 것이지요. HR 입장에선 머릿수 채워야 하는데 잘 걸렸다 싶었을 겁니다. 정리해야 하는 사람들 숫자가 크면 갓 들어온 사원이고 뭐고 대중 없거든요. KPI가 그렇게 무섭습니다.
혹시 거짓말을 하나 싶어서 면접 후 reference check를 몇명에게 했더니, 정말 그 친구가 불쌍하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들었어요.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안타깝다는 말.
성실하게 살아오고 가정도 꾸려서 이제 아이가 돌 지났는데 직장을 잃고 무직 상태로 저렇게 면접을 보러 다니는 걸 보며 인생이란 게 참
열심히 살아도 bad luck에 걸리면 저렇게 되는구나 하면서 예전 일이 생각났습니다.
저도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며 당연히 좋은 직장 상사만 만났다기 보다, 그렇지 못한 분을 만나기도 했었는데요.
그때마다 이 폭탄을 어떻게 잘 피해갈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성질이 너무 괴팍한 사람
직원을 자신의 성과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사람
일도 못하는데 아부로만 올라온 무능한 사람
그런 분들을 겪으며 단순히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이 직장생활 long run 하고 성공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요.
다행히, 위에 말씀 드린 단점을 모두 가진 상사도 만나보았지만 잘 살고 있고 그 분들은 모두 집에 가셨습니다. 되려 좋은 경험이 되었지요. 최악을 겪어 보아서 그런지 차악은 상대하기 쉽더군요. 그나마.
면접동안 질문에 잘 대답하려는 모습과 당황스러워도 어떻게든 자신이 아는 내용을 잘 표현해 보려는 걸 보며 세상 참 고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뭔가 꼬인 것 같다는 표정으로 나가는 그 친구의 모습을 보며, 저도 면접 보러 다닐 때 대답의 아쉬움이 있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부족함이 있지만 같이 한번 일해보고 싶고, 그 부족함을 어떻게 채워서 활용할지를 면접 평가서에 담으며, 이번 과정을 pass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라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최종까지 그 친구에게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군요. 혹여라도 저와 함께 일하지 못해도 다른 곳에서라도 열심히 산만큼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지금 어려움을 겪고 계실 모든 직장인 분들에게도 건승을 빌어 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
여유로운 설 연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