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직
5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 또 한 번 이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40 넘으면 이직 힘들다”, “특히 50대는 답 없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와서, 제 경험을 한 번 남겨보려고 합니다.
10년 전쯤, 외국계(미국 주재원 1년)에서 대기업으로 옮겨 10년을 다니고 있던 40대 초반,
동기·선후배들 사이에는 이미 이런 분위기가 퍼져 있었어요.
“지금 안 움직이면, 앞으로는 갈 데 없다.”
저도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어쨌든 운이 좋게 한국에 있는 일본계 외국계 회사로 팀장급 이직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꽤 냉혹했어요.
제가 몸담았던 인더스트리도 아니고, 대기업에서 팀장 경험도 없었고,
팀원들은 일본어 능력이 훨씬 뛰어나고, 임원들은 전부 일본인.
팀을 이끈다기보다 팀원들에게 끌려다니는 제 모습이 저 스스로 봐도 못 미더웠습니다.
회사에 큰 이슈가 터지면서 팀원들이 하나둘 회사를 나갔고,
정신 차리고 보니 1인이 3인 몫을 하고 있더군요.
거기에 회사가 더 먼 곳으로 이전하면서 출퇴근만 3시간,
하루 12시간 일하고 3시간 이동… 그렇게 2년을 꾸역꾸역 버티다 결국 퇴사했습니다.
코로나가 오고, 아이는 유치원도 못 가던 시기.
6개월 정도는 아이랑 집에서 요리도 해 먹고, 책도 읽어주고, 만들기도 하면서 나름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또 이직 기회가 왔습니다.
“이 텀이 더 길어지면 그냥 경단녀 되는 거 아닌가…”
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질 않아 다시 면접을 보게 됐습니다.
이번 회사는 오너 2세가 마케팅에 관심이 많아서 ‘마케팅 전략팀’을 만들고 싶어 했고,
다른 임원들은 솔직히 별로 동참하고 싶어 하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지나고 보니 저는 그 회사에서,
오너 2세의 ‘꿈’을 잘 들어주고, 일을 “하는 척”하는 역할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또 1년을 버티고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이와 시간을 어느 정도 지키면서도, 가계에 도움이 될 만큼 버는 일’을 찾아보자고 마음먹었고,
공부방 사업, 프랜차이즈 등 이것저것 알아보던 중, 한 헤드헌터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그 포지션은 EC와 일본어가 핵심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제 커리어 중에서 그 두 가지를 “특별히 잘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일단 이력서만 한 번 전달해 달라”고 했고,
JD에 맞춰 표현 하나하나 다듬던 예전 지원과는 달리, 그냥 갖고 있던 이력서를 그대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바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일본에 있는 언니에게 얘기했더니, 앞으로 전망이 좋은 산업군이라면 꼭 가보는 게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대로 자기소개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자기소개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 내가 이 회사에 맞는 사람인지”를 설명하되,
“나는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꼭 들어가야 한다.
나중에 저를 뽑아주신 이사님이 말해주셨는데,
면접 중에 제가 말한 ‘문제 해결 에피소드’ 하나가 마음에 확 와 닿아서 저를 선택하셨다고 하더군요.
사실 그 이야기는 따로 준비해 간 스토리도 아니었고, 대화하다가 자연스럽게 나온 경험담이었습니다.
에피소드는 이렇습니다.
대기업에 다니던 시절, CEO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프리미엄한 브랜드와 콜라보 전시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팀은 ‘세계에서 가장 프리미엄한 브랜드가 어디냐’부터 막막한 상태였고,
온갖 네트워크와 검색 끝에 B 브랜드를 찾아냈습니다.
하지만 연락을 여러 번 시도해도 답이 오지 않을 정도로, B 브랜드의 벽은 높았습니다.
그러던 중, 영국 왕실 가든쇼에 한국계 가드너가 출품하면서,
우연히도 B 브랜드 가구와 우리 회사 가전을 같이 전시하게 된다는 정보를 듣게 됐습니다.
그게 사실상 유일한 실마리였고, 저는 독일 출장을 가 있던 중에
B 브랜드 수석 디자이너를 만날 기회가 생겼습니다.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당일치기로 영국에 건너갔습니다.
새벽 첫 비행기를 타고 영국에 도착해,
한국에서 미리 챙겨 간 계량 한복을 입고 가서 프레젠테이션을 했습니다.
브랜드와 제품 이야기를 짧지만 최대한 열정적으로 설명했고,
헤어지기 직전 수석 디자이너가 제 옷을 보며 “I like your dress.”라는 말을 건넸습니다.
그때 간단하게 한국 전통 의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옷이라고 설명했고, 분위기는 꽤 좋아졌습니다.
그 이후로 막혀 있던 B 브랜드와의 접점이 열렸고,
결국 그들의 CEO와 우리 팀장 미팅까지 이어지면서 비즈니스 논의 단계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이사님 말씀으로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길을 찾아서 어떻게든 연결점을 만들어내려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시더군요.
저라는 사람이 일을 풀어가는 방식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40살 초반부터 이미 “이직은 힘들다”는 말을 들으며,
실제로 저도 여러 번 ‘맞지 않는 자리’를 겪어봤지만,
그래도 50을 앞둔 지금까지도 다시 이직의 기회를 얻어, 두곳으로부터 "합격"통보를 받았습니다.
회사 선택은, 예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수능 점수 맞춰 더 좋은 대학 가듯, 더 좋은 스펙의 회사를 가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결혼 상대를 찾는 것과 더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더 좋고, 더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랑 맞는 곳인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인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맞는 곳’을 찾기 위해 계속 찾아보고, 지원하고, 부딪혀 볼수록
그런 회사를 만날 확률이 올라간다고 믿습니다.
요즘 “서울 자가사는 대기업 김부장” 얘기 보면서
“너무 현실적이라 PTSD 온다”는 반응이 많은데,
그 이야기 하나가 우리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한 가지 서사’일 뿐,
커리어의 모양과 속도, 경로는 훨씬 더 다양하다고 느낍니다.
100세 인생이라고들 합니다.
그 기준으로 보면 40대~50대는, 사실 이제 막 한창 일할 때 아닌가요?
결혼처럼, 나이가 많아질수록 찾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릴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없다”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가 맞는 것 같아서 왔는데, 아니다 싶으면 내가 내 발로 그만둘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스스로 인생의 다음 챕터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다행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40대 후반, 50대를 앞두고 계신 분들께
“이직은 끝났다”가 아니라,
“아직도 나에게 맞는 곳을 찾아가는 과정일 수 있다”는 얘기를 꼭 한번 전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