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과의 거래가 더 어려운 이유
대학교 때 테크노마트에서 휴대폰을 산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친구의 친구가 휴대폰 대리점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믿었습니다.
“친구의 친구니까 더 잘해주겠지.”
“일반 대리점보다 좋은 조건이겠지.”
계약서를 꼼꼼히 보기보다, 사람을 먼저 믿었습니다.
개통을 마치고 셋이서 고깃집에 갔습니다. 대리점 친구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친구 친구면 내 친구지. 내가 신경 써서 잘해줬어.”
제 친구도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나 덕분에 싸게 샀으니까 오늘 고기는 네가 사라?”
저도 기분 좋게 계산했습니다. 그날은 좋은 거래를 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조건을 확인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불리한 계약이었습니다. 요금제, 부가서비스, 약정 조건 모두 시중에서 그냥 계약했을 때보다 좋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바가지를 쓴 셈이었습니다.
문제는 돈만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어려운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손해를 손해라고 말하는 순간, 관계까지 같이 흔들렸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거래에는 가격이 있었지만, 책임의 기준은 없었습니다.
“아는 사이니까 잘해줬겠지”라는 기대는 있었지만, 어디까지가 좋은 조건이고 어디서부터가 불공정한 조건인지 서로 확인한 적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관계가 있으면 거래가 더 안전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공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비즈니스라고 해서 자동으로 공정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건 관계의 종류가 아니라, 기준이 있느냐입니다.
서로 친해도 기준이 없으면 불편해집니다.
계약 관계라도 기준이 흐리면 갈등이 생깁니다.
반대로 사적인 관계라도 조건을 명확히 하면 덜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돈, 시간, 역할, 책임의 범위가 정리되어 있으면 문제를 사람의 마음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를 무시한 건가?”
“일부러 그런 건가?”
“친한 사이에 이걸 따지는 게 맞나?”
이런 감정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기준을 보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명확함이 꼭 차가운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래 가고 싶은 관계일수록 더 분명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친구와 돈거래를 한다면 상환일을 정해야 합니다.
지인에게 일을 맡긴다면 범위와 비용을 정해야 합니다.
회사에서도 “좋게 좋게”라는 말보다 역할, 일정, 보상 기준이 먼저 정리되어야 합니다.
가족 사이에서도 생활비, 돌봄, 집안일의 기준이 없으면 결국 누군가의 희생으로 굴러갑니다.
모호함은 처음에는 따뜻해 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개 말 못 하는 사람의 비용이 됩니다.
측정되지 않은 호의는 쉽게 부채가 되고,
정리되지 않은 기대는 쉽게 서운함이 됩니다.
관계를 망치는 것은 계산 그 자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계산하지 않은 채 쌓아둔 기대, 말하지 않은 기준, 애매하게 넘긴 불편함이 관계를 더 크게 망칩니다.
좋은 관계라면 오히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 가능하세요?”
“이건 부담되지 않으세요?”
“우리 이 기준은 정하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 질문이 관계를 차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덜 오해하게 만드는 장치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가까운 사람과 거래하거나 부탁을 주고받을 때, 어디까지 기준을 세우시는 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