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반대하던 결혼, 결국 저희끼리 했습니다.
여자친구를 4년 전 처음 만나고, 1년쯤 되었을 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는 뭣도 없이 우선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이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떨어져 있는 시간이 너무 싫었거든요.
다행히? 프로포즈를 승낙받은 뒤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기 위해, 명절 때 우선 저희 집부터 인사하자고 했습니다. 여자친구는 처음 만나뵈는데 뭐라도 선물을 해야 하지 않겠냐면서 백화점에서 건강식품을 샀고, 저도 이에 질세라 이번 명절에 찾아뵙지는 못하더라도 간단한 선물이라도 드려야겠다 싶어,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난생처음 백화점에서 과일 바구니를 사 봤네요.
양가 부모님이 계신 지역이 비슷하여 함께 명절을 맞아 귀성길에 올랐고, 여자친구에게 과일 바구니를 손에 들려 집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예상치 못한 카톡이 날아왔네요.
부모님과 심하게 다투고 집에서 나와 근처 호텔로 왔다고요.
우선 너무 당황스러워서 저도 급하게 점심을 먹다 말고 바로 만나러 갔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혼은 부모님이 정해준 사람과 해야 한다, 직장인은 안 된다 등 무조건 반대하시면서 딸의 이야기를 들으실 생각조차 없으셨고, 여자친구는 그렇게 싸우다가 그냥 집을 나왔다고 했습니다.
당시 저도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당장 다음 날 저희 부모님과 만나야 하는데 이걸 미뤄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여자친구는 그래도 이미 약속했으니 만나 뵙겠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저희 부모님과 식사를 마친 후, 저희는 명절 귀경길에 올랐습니다.
이후 여자친구는 부모님을 설득해 보겠다고 했고,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저는 더 이상 지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너와 결혼하고 싶다, 어떻게든 지지고 볶든 우선 우리끼리 추진하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감사하게도 여자친구는 제 뜻에 따라 스드메를 진행하고 결혼식 날짜까지 잡았습니다.
이후 청첩장이 나오고, 여자친구 부모님께서 저희를 부르셔서 한 번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만나 뵙고 처음 꺼낸 말이 이랬습니다.
"우선 저희끼리 독단적으로 결혼을 준비한 점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잘살겠습니다. 부디 축복해 주세요."
하지만 반대하시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결국 양가 상견례도 없이 결혼식 날이 되었고, 여자친구 부모님께서는 결혼식장에는 참석해주셨습니다.
내키지 않는 딸의 결혼식이어서인지 두 분의 표정은 좋지 않으셨고, 저 또한 저희 부모님께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어 결혼식 내내 마음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신혼여행 이후 첫 명절에 그래도 장인 장모님을 찾아뵙고 인사드리려고 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그렇게 두어 번 찾아뵈려다 거절당한 이후에는 저희도 따로 연락을 드리지 않고, 저희 집에서만 명절을 보내네요.
사실 경제적인 독립이 없었다면 이렇게 결혼할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힘겹게 결혼했지만, 그만큼 아내와 저는 서로 신뢰하며 사랑합니다. 감사하게도 아내는 저희 부모님을 너무 좋아하고, 함께 명절을 보내며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연례행사처럼 떠나는 가족여행에서도 조카들을 이끌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내가 참으로 예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희가 안 싸우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서로의 깊은 마음속에는 믿음과 신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게, 연애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다던 아내였습니다. 저는 그런 아내의 마음을 존중해 줬었고요.
그런데 결혼 이후 제 모습을 보면서였을까요? 어느 순간 아내도 아이를 원하게 되었고, 결혼 2년여 만에 힘겹게 시험관 시술을 거쳐 어여쁜 천사가 찾아와주었고 드디어 7주 차에 접어들었네요.
그래서인지 더더욱 항상 아내가 너무 감사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우리에게 와 준 작은 천사가 너무 감사합니다.
각자 나름의 말 못 할 사정이 있겠지만, 어디서 쉽게 털어놓기 어려운 이야기들도 있겠지만, 저와 아내에게도 결혼은 너무나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서로를 믿고 끝까지 함께 나아갈 수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새 경제도 어렵고 곧 연말도 다가오니 여러 가지 생각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가족 문제로, 누군가는 경제적인 문제로, 또 누군가는 남들에게 쉽게 말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사정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잘 살아내고 계신 모든 분께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속도대로, 각자의 방식대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보다 내일은 조금 더 웃을 일이 많아지고,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따뜻한 날들을 더 많이 만들어 가셨으면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이 부디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행복합시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