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체 설명서 v1.0)급여는 성과보다 말에서 나온다
1. 보여주고 믿게 하라
“스토리라인이 약하네요.”
→ 말 그대로 내용이 아니라 감정선을 요구한다. 요즘은 논리보다 서사가 먹힌다. 기획안도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
“이거 예쁘게 다시 정리해줘요.”
→ 핵심은 아니다. 색깔, 정렬, 폰트 크기. 디자인이 실적이다.
“일단 보고용으로 하나 만들어보죠.”
→ 무슨 내용인지 몰라도 된다. 슬라이드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특히 앞표지에 로고가 있어야 안심한다.
“이건 사내 뉴스에 올릴만 하겠네요.”
→ 실체가 없어도 괜찮다. 기사화되면 뭔가 된 느낌이 난다. 공유되는 순간 성과가 된다.
2. 실행보다 존재감
“우리가 주도하고 있다는 메시지는 줘야죠.”
→ 진짜 주도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면 된다. 보고용 액션은 전시가 핵심이다.
“사장님 눈에 띄게 색 좀 넣어주세요.”
→ 내용보다 시선. 중요한 건 잘 만든 그래프가 아니라 잘 보이는 빨간색이다.
“실행은 나중에, 스토리는 지금입니다.”
→ 행동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말은 편하다. 지금은 그럴싸한 이야기만 있으면 된다.
“이건 방향성이 좋습니다.”
→ 아무것도 없지만, 뭔가 있는 것처럼 들린다. 방향성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3. 책임은 흐리고, 말은 뚜렷하게
“일단 제가 터치해볼게요.”
→ 당장 뭘 하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냥 옆에 있었다는 기록을 남기려는 말이다.
“누가 이거 approve 했죠?”
→ 책임 추궁 모드 진입. 사안 자체보단, 누구 사인인지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
“이건 참고만 하세요.”
→ 나중에 문제 생기면 “그때 얘기했잖아요” 쓰려고 하는 말. 말은 했다는 증거용 문장이다.
“센터에서 잡아줘야 하지 않나요?”
→ 귀찮은 일은 중앙으로 보낸다. 공은 위쪽이나 옆으로 넘기는 게 기본 방어기제다.
4. 급여체 단어장
“전사적 관점에서 접근해봅시다.”
→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아무 의미 없다. 그냥 던져놓으면 다들 고개는 끄덕인다.
“One Voice로 갑시다.”
→ 다양한 의견은 귀찮다. 말은 민주적이지만 결정은 하나여야 한다. 주로 위에서 정해진다.
“애자일하게 가야죠.”
→ 구체적 계획이 없다는 뜻이다. 유연성이라는 단어로 포장한 방임형 접근이다.
“고객 중심으로 풀어보세요.”
→ 고객은 모호하다. 그냥 그렇게 말하면 기획서가 있어 보인다.
“브랜딩이 중요하죠.”
→ 실적은 없지만 뭔가 하긴 해야 할 때 쓰는 말. 브랜딩이라는 단어는 대부분의 부족함을 덮어준다.
5. 문화적 포장술
“우린 수평적 조직입니다.”
→ 직급 대신 이름을 부른다는 의미다. 하지만 결정은 여전히 위에서 한다.
“자율적으로 해주세요.”
→ 책임은 너에게 있다. 단,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자율은 선택이 아니라 해석의 영역이다.
“교육 한번 받게 하죠.”
→ 뭔가 문제는 생겼지만, 사람은 바꾸기 어려우니 외부 교육으로 덮는다. 제도는 그대로, 교육만 돈 써서 한다.
“사내 공모전으로 풀어보죠.”
→ 예산은 없지만 뭔가는 하고 싶을 때 꺼내는 카드. 포스터 잘 만들면 분위기는 올라간다.
급여체는 실무의 언어가 아니다. 생존의 언어다. 말맛이 살아 있으면 보고가 통과되고, 말꼬리가 부드러우면 야근도 줄어든다. 모두가 눈치 채고 있지만 아무도 직접 말하지 않는 급여체의 세계. 여기에 적응하면 오래간다. 성과는 들쑥날쑥해도, 말은 꾸준히 남는다.
급여는 말에서 나온다.
그러니, 말부터 배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