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과 네온사인
네온사인은 화려하다.
진공 상태의 유리관 속에 공기를 주입한 뒤 전류를 방전시켜 빛을 내는 그 불빛은, 저마다의 메시지를 전하느라 아우성이다. 좀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 알록달록한 빛을 만들어내고, 더 화려하고 거대한 모양새를 갖춘다. 요즘은 디지털 네오사인도 많이 보인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또는 그 반대방향으로 글자가 흐르며 메시지를 전한다. 어쩐지 반짝반짝하는 유리관 네온사인보다 더 신속하고 정확해 보인다. 메시지를 이리저리 바꿀 수도 있는 신박함과 함께.
나는 리더로서 매일 이러한 네온사인을 마주한다.
그 네온사인은 우리 팀 각 구성원의 이마 또는 얼굴에 장착이 되어 있다. 일을 지시하거나 요청하기도 전에 그 네온사인들은 온갖 빛을 뿜어대어 때로는 눈이 부실 정도다. 유리관으로 된 네온사인을 가진 팀원의 메시지는 점등의 속도를 조절하며 말을 건다. 요즘 친구들의 얼굴에는 여지없이 디지털 네온사인이 흘러간다.
"또 제가 해야 하나요?"
"이걸 제가 하는 게 맞나요?"
"오늘까지요? 힘들 것 같은데..."
"아까는 이렇게 하라고 하셨잖아요."
"이 정도면 되지 않았나요?"
어차피 해야 할 일이고 제대로 하지 않으면 우리 팀이 힘들어진다는 메시지를 나의 네온사인에 담아 불을 켜보지만, 내 하나의 네온사인은 여럿이 뿜어내는 빛에 희석되어 결국 희미해진다. 빛의 밝기나 네온사인의 크기로는 구성원을 설득할 수 없다. '탑다운'이라는 한국사회에서는 친숙한 오더를 받는 나지만, 나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전달할 수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랬다간 부작용이 더 크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결국, 공통의 'Goal'을 근거로 일을 해야 하는 배경과 이야기를 설명한다.
무작정 시켜서 되는 시대가 아니다. 그래서 가져온 결과물도 수준 이하일 경우가 많다. 물론, 내가 별도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아서 그것을 파악하고 스스로 고민하는 훌륭한 팀원도 있다. 솔직히, 예뻐 죽겠다. 고민의 결과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나에게 가져와 중간보고를 하는 그 팀원의 노력도 가상하거니와, 의사결정은 상대적으로 즐거운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보고서가 뭐 이따위야라는 대화는 사라지고, 함께 고민하며 협의하는 수평적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면 팀원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자신 있게 그것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묻고, 고민의 정도를 공감하고 격려해준다.
문제는, 요청한 일에 대해 아무런 고민도 없이, 영혼도 없이 껍데기로 일하고 껍데기만 가져온 경우다.
알맹이가 없는 그 보고서를 보고는 나는 그러고 싶지 않지만 '윗사람'이 된다. 날카로운 질문 몇 번이면 그 보고서의 민낯이 보인다. 시간을 충분히 줬고, 중간 보고는 없었는데 들고 온 결과물이 아무런 고민이 없는 '이거 어떻게 해야 해요?'란 수준이면 솔직히 분노가 올라온다. 물론, 그럼에도 방향을 잡아주고 다시금 작성을 해오도록 가이드를 주어야 하는 건 내 몫이다. 단, 한 두 번 이어야 한다. 내 인내심에도 바닥이 있을 뿐더러, 직장에서의 보고는 결국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놓친 뒤에 아무리 보고서가 잘 쓰인다고 한 들, 다 부질없는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내가 팀원들에게서 보는 네온사인의 메시지들은, 분명 나도 했던 말이다. '좀 더 방향을 명확하게 잡아 주지', '그렇게 쉽게 말할 거면 자기가 해보던가', '자기는 대체 하는 일이 뭐야?', '왜 자꾸 나만 시키지?'... 등.
하지만 그러한 메시지만 켜온 건 아니다. 리더의 입장이 조금씩 이해되던 때. '제가 해볼게요', '쉽진 않겠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먼저 알아볼게요'라는 네온사인도 많이 켰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분명, 나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그렇게 말해주는 구성원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나의 입장을 구성원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내 개인적인 입장이 아닌, 우리 팀의 입장. 구성원으로서, 팀으로서 달성해야 하는 목표와 성과. 리더의 입장은 곧 팀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입신양명을 원하는 사람은 리더의 자격을 의심받을 수 있겠으나, 그 입신양명이 팀 전체에 도움이 된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진정한 리더는 자신만 부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곧 팀과 팀원들 전체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게 설계하고 일을 추진하는 사람이다.
필요하다면 네온사인은 켜야 한다.
그러나, 그 안의 메시지는 무엇을 채울지는 스스로 점검해봐야 하는 항목이다.
네온사인을 보는 상대방을 고려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