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열 손가락은 언제나 아프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있다.
그 뜻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어찌 되었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소중하고 귀하단 이야기다.
하지만 리더는 자신의 구성원을 꼭 깨물어보지 않아도 그것을 안다.
같이 가야 할 운명. 같은 곳을 바라보게 해야 하는 존재. 하지만 정말로 쉽지 않은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 솔직히, 그 열 손가락은 언제나 아프다. 깨물지 않아도 그 열 손가락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저마다의 약속이 있으며, 저마다의 생각과 고집이 있다. 같은 곳을 바라봐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려운 이유다.
손가락은 저마다의 역할이 있다.
그리고 그 '손가락'은 모여 '손'이 되고 비로소 좀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엄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 저마다 고유의 모양과 길이, 쓰임새가 있다. 하지만 이 존재들이 따로 놀면 뭐 하나 집을 수 없는 부질없는 개성이 되는 것이다. 펜을 잡아 글을 쓰던, 노트북의 자판을 치던 공을 잡아 던지던. 손가락은 뜻을 같이 해야 하고, 손아귀는 이것을 한데 모아 힘을 주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게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리더는 저기 야구 방망이를 들어 나를 위협하는 존재에 맞대응하자라는 방향을 제시한다.
엄지는 이에 동의하고 자신을 구부릴 준비를 한다. 그런데 검지는 자신은 방향을 가리키는 일을 해왔는데, 정말 야구 방망이를 쥐어야 하냐고 묻는다. 중지는 손톱 아래 가시가 있어 너무 아프니 이번 일에서는 빠지겠다고 말한다. 약지는 우선 (뭘 해야 할지 잘 모르지만) 뭐든지 하겠다고 한다. 새끼손가락은 앞 네 손가락의 동태를 살피며 어정쩡하게 있는다. 결국, 야구 방망이를 쥐어 들어 올리는 일은 어렵게 되고 들어 올리더라도 힘을 주어 휘두를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우리 팀을 위협하는 이슈나 문제는 이미 벌어진 뒤다.
손과 손가락이 무언가를 집어 들어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건 아주 일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리더와 구성원의 이야기로 풀어내면 이와 같이 쉽지 않은 일이 된다. 이상과 현실의 비유랄까. 그러니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와 책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회자될 영원불멸의 콘텐츠다.
나는 언제쯤 열 손가락을 다 이해하게 될까.
나도 열 손가락 중 어느 하나였는데, 지금은 왜 다 이해를 못해서 힘들어할까. 아니, 아무리 리더라도 나 또한 누군가에겐 또 다른 손의 손가락일 텐데. 내 맘 같지 않다고 누군가를 틀리다고 하고 싶진 않다. 반대로, 누구의 맘과 같지 않다고 나를 틀리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도 일이 돌아가고, 숫자가 좋은 세상은 없는 걸까. 꼭 서로를 깨물어 보아 존재를 알고, 그 소중함을 깨달아야 할까.
내가 원하는 대로 자판을 쳐내려 가고 있는 지금 나의 열 손가락이 그저 기특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