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기) 식사 먼저들 하세요
점심시간 5분 전은 직장인에겐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다.
전쟁터와 같은 회사라지만, 점심시간은 철저히 지켜지게 마련이고 총성은 멈춘다. 총을 쏘는 사람도, 피하는 사람도, 탄창을 갈아 끼던 사람도 밥은 먹어야 하니까. 오죽하면 '워킹 런치'란 말도 있을까. 예외적인 일이 발생해도, 어쨌든 밥은 먹는다는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건지, 일하기 위해 먹는 건지에 대한 회의는 뒤로하고 시계의 두 바늘이 12라는 숫자에 다가서면 직장인은 그렇게 설레고 만다.
하지만 그 5분이 초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바로, 리더가 다른 회의에 들어가 있을 때다. 평소엔 시도 때도 없이 메시지를 보내던 사람이 아무런 연락이 없다. 팀원들은 마냥 기다린다. 점심시간 5분 전이 지나고 나면, 그다음부턴 점심시간이 깎여 나가기 시작한다. 제 살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누군가는 손톱을 물어뜯고, 또 누군가는 다리를 떤다. 이미 놓아 버린 일이 손에 잡힐 일도 없다. 인터넷 뉴스도 이미 다 봐버린 것이어서 또 보기가 지겹다.
점심시간 30~40분이 지난 후에야 리더는 저 멀리서 터벅터벅 걸어온다.
그러곤, 여지없이.
"아, 아직 점심 안 먹었어요? 기다리지 말고 가지... 왜?"라고 말한다.
그런 (리더가 아니었을 때의) 기억이 있는 나는, 동일한 상황이 발생하면 항상 미리 메시지를 보낸다.
그것도, 가능한 점심시간 10분 전에.
"식사 먼저들 하세요. 저는 늦게 끝날 것 같습니다."라고.
'아... 나 좀 멋진데?'라는 생각까진 안 해도, '그래, 이 정도면 합리적인 리더로 알아주겠지?'란 기대를 하면서.
사람이니까. 리더도 인정받고 싶으니까.
점심시간 15분 정도를 지나 회의를 마치고 자리로 갔을 때.
나는 분명 '식사 먼저들 하세요'라고 했지만, 정말로 아무도 없는 우리 팀 자리를 보며 조금은 서글퍼진다. 그리고 외롭다. 옆 팀의 리더는, 리더를 기다리던 팀원들과 우르르 내려간다. 같이 회의를 들어갔던 다른 리더와 눈이 마주치지만, 내내 회의에 같이 있었던 지라 굳이 서로 밥을 먹으러 가자곤 하지 않는다. 결국, 자리에 앉아 노트북의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일을 한다.
그렇게, 리더가 되고 나서는 점심을 거르는 일이 많아졌다.
그렇다고 내 회의가 끝날 때까지 누군가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정말 아무도 기다리지 않으면 섭섭하긴 하다. 아니, 어쩌란 말인가? 누구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그냥, 그렇단 말이다.
리더의 고백이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