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안 하면 아들이 죽는다는 남편. 어떡해야 할까요?
너무 답답해서 글쓰기 버튼을 눌렀습니다.
어디다 말도 못 하고 속만 썩다 곪아 터지기 직전이라 욕이라도 먹을 각오로 쓰는 글이에요.
결혼 8년 차, 7살 아들 하나 키우는 평범한 맞벌이 부부입니다. 제 남편은 평범한 회사원이에요. 남들 보기엔 멀쩡해요. 꼬박 꼬박 회사 열심히 다니고, 퇴근하면 아들이랑 잘 놀아주고, 평일에야 조금 더 일찍 퇴근하는 제가 일이 더 많지만 주말엔 제법 가정적이죠.
문제는 남편이 점집에 미쳐있다는 겁니다.
처음엔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연애 때 데이트하다가 점집이나 사주카페 보이면 재미로 궁합 보고, 결혼 날짜 잡을 때 시어머니가 잘 안다는 철학관 갔던 정도? 그거야 많이들 그러니까 그러려니 했어요. 그런데 아들이 태어나고부터 이건 좀 아니다 싶었던 게, 아들이 신생아 때 황달이 심해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거든요. 병원에 있는 애를 두고 용하다는 점집에 가서 아들 명에 흉이 꼈다는 말을 듣고 온 겁니다. 웬 부적을 잔뜩 받아와 애기 침대 밑에 깔아놓고, 시뻘건 속옷을 사 와서 입혀야 한다고 난리를 쳤죠. 의사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도 했는데도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아이가 열이라도 나면 병원보다 먼저 점집에 전화를 겁니다. 차라리 전화만 하면 다행이죠. 퇴근길에 종종 거기를 들렀다 와요. 어느날에는 손에 시커먼 비닐 봉지를 들고있길래 뭐 찹쌀도넛이라도 사왔나 하고 물어보니 팥이라는 거예요. 팥을 왜 사왔냐 했더니 알 거 없다더니 밤새 집 안이며, 베란다며 구석구석에 뿌립니다. 기겁해서 뭐 하는 짓이냐고 했더니 다 우리 아들 멀쩡하게 살게 하려고 하는 거라며 자기만 믿으라네요. 아이 방에 부적까지 붙여놨어요.
뭐 여기까진 괜찮아요. 다 아이를 위해서 그런 거라고 하니까, 부모가 되는 게 처음인데 아기가 아팠어서 트라우마가 생겼나보다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했죠.
근데 얼마 전, 남편이 승진에서 누락됐어요. 본인보다 경력 짧은 후배가 먼저 진급했으니 속상할 수 있죠. 저도 위로해주고 술 한잔 따라줬습니다. 그런데 이 인간이 그날 밤부터 일주일 내내 퇴근만 하면 점집을 매일같이 드나들기 시작한 겁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원래 다니던? 곳 말고도 여러 군데 찾아가 본 것 같아요. 그러다 엊그제 얼굴이 시뻘개져서 들어오더니 저를 앉혀 놓고 말하더군요.
나랑 우리 아들 액운 때문에 자기 앞길이 막힌 거라고, 특히 우리 아들은 올해 죽을 고비가 있는데 그걸 막으려면 당장 큰 굿을 해야 한다고.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든 아들이 죽을 수도 있다고 하니까 겁은 좀 나대요. 그런 거 안 믿지만 그래도 들으면 불안하잖아요.
근데 굿 비용이 삼천만원이래요 삼천만원. 저희 작년에 겨우 대출 받아서 이사 왔거든요. 맞벌이긴 하지만 빚 갚으려면 빠듯해요. 삼천만원이 뭐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니 진짜 삼천만원으로 아들을 살릴 수 있다는 보장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점쟁이 말을 어떻게 믿어요. 게다가 아니 지 승진 못한 걸 왜 아내탓 아들탓을 해요. 삼천만원으로 아들 보험이나 더 들어주고 맛있는 거 먹이는 게 도움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말했더니 이 인간이 아주 버럭하는 거예요.
삼천만원 아끼려다가 아들 죽는 꼴 보고싶냐고, 너는 모성애도 없냐고, 너때문에 아들 죽게 생겼다고.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가 저한테 그러면 안 되죠. 지난 몇 년 간 내가 우리 아들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잘 아는 사람이 자기 앞길 막힌다고 저를 후려쳐요? 아니 물론 아이가 죽는다는 것 때문에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애가 죽는다는 얘기보다 저랑 아들이 지 앞길 막는다는 얘기부터 한 사람이잖아요.
남편을 설득시키려면 어떻게든 해야 하니까, 혹시 다른 점집은 알아봤냐, 다른 점집에서는 뭐라고 하냐 했더니 자기가 아주 용한 곳에 가서 들어온 이야기라고, 아무나 앞날을 점칠 수 없는데 지금 다녀온 곳이 막 신내림을 받은 점쟁이라 아주 용하다며 맹신에 맹신을 합니다. 어디 다른 점집이라도 데리고 가서 설득을 시켜야 하나 하고 물어본 건데 그것도 안 되겠네요.
생각 좀 해보겠다고 말하고 오늘까지 왔는데, 남편은 그 사이에도 어떻게는 삼천을 구해보겠다고 시어머니한테까지 말씀을 드린 것 같더라고요. 애가 죽게 생겼는데 제가 반대한다고, 삼천만원 빌려줄 수 있겠냐고. 시어머니가 저한테 전화를 주셔서 '아무리 그래도 애 목숨이 달린 일인데 네가 좀 마음을 더 써봐라' 하셔서 알게 됐어요. 정말 환장하겠네요.
당연히 불안하죠 저도. 제 아들이 죽는다는데. 근데 그런 미신을 믿는 게 더 이상하다는 생각은 변함없어요. 정말 삼천만원짜리 굿을 안 하면 제가 모성애가 없는 엄마가 되는 걸까요.
이러면서도 또 삼천만 원짜리 굿을 안 하면 정말 우리 아들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잠시 잠시 무서운 마음이 드는 제 자신이 더 혐오스럽습니다.
어떻게 해야 남편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