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급 축의금 먹튀썰
이 친구와는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고,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가까워졌습니다.
20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꽤 친하게 지낸 사이였죠.
이 친구는 연애를 하면 모든 걸 연애에 쏟아붓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연애를 시작한 이후로는 점점 멀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단톡방에서 가끔 안부만 주고받는 친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친구는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서,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대학 진학은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동거를 시작하게 됐죠.
아내는 활발하고 술자리를 좋아하는 ‘인싸’ 스타일이고, 제 친구는 맥주 한 잔에도 얼굴이 붉어지는, 집에서 넷플릭스 보거나 롤 하는 걸 즐기는 조용한 타입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거의 만나지 못했지만, 친구는 아내가 있는 술자리에는 늘 참석하더라고요.
처음엔 조금 아쉽기만 했는데, 시간이 흘러 5~6년쯤 지나니 솔직히 서운함도 커졌습니다.
사건은 세 달 전쯤 일어났습니다.
두 사람은 사실혼 관계였고 혼인신고도 마친 상태였지만, 형편이 어려움에도 결혼식은 꼭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결혼식 3주 전쯤에 청첩장을 주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며 미리 날짜를 잡자고 했습니다.
그때 한 친구가 “그냥 집들이랑 같이 하자”는 제안을 했고, 결국 집들이 겸 청첩장 전달 모임이 열렸습니다.
첫 번째 날은 5명이 모였고, 식탁 위엔 피자알볼로 한 판, 엽떡, 그리고 친구 한 명이 사 온 초밥이 전부였습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이때 적지 않은 서운함을 느꼈습니다.
며칠 뒤 나머지 3명이 따로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래도 다들 친구 사정이 어려우니 이해하자고 넘어갔습니다.
드디어 결혼식 당일이 되었고, 친구는 친척도 거의 없고 누나가 한 명 있는 정도라서, 저희가 축의금 접수대를 맡게 됐습니다.
베프의 결혼식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다들 흔쾌히 맡았고 축의금도 약속한 대로 30만 원씩 통일해서 냈습니다.
식과 촬영이 끝난 뒤, 신랑 신부와 양가 가족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식사하러 자리를 떴고, 저희는 10분 넘게 기다리다가 결국 직접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식장에 도착하니 가족들은 이미 친구들과 어울려 식사하며 웃고 떠들고 있더군요.
우리도 밥을 먹고 있었는데, 신랑이 각 테이블을 돌다가 우리 차례가 되니 누가 불렀는지 갑자기 가버렸습니다.
그 장면에서 친구들 모두 크게 실망했고, 결국 인사도 없이 조용히 나와버렸습니다.
몇 시간 뒤, 친구는 장문의 사과 메시지를 보냈지만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신혼여행이 끝나고 8월쯤에 다시 만나 제대로 얘기해보자는 분위기로 흘렀고, 8월 2일 날짜까지 잡고 식당도 예약했으며, 바쁜 친구들은 연차까지 냈습니다.
그런데 이틀 전, 갑자기 정말 미안하다며 아내 생일이 그 주라 여행을 가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몇몇 친구들이 크게 화를 냈고, 단톡방 분위기는 급격히 싸늘해졌습니다.
이후 단톡방은 사실상 조용해졌고, 결국 오늘, 그 친구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카톡방을 나갔습니다.
지금도 그 친구는 아무런 연락이 없고, 인스타에는 아내와 함께 일본 여행을 떠났다는 사진과 글만 올라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