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아주 존경하던 아빠, 일하고 나서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어릴 땐 대기업의 높은 직급에,
평균보다 높은 연봉인 아빠를 자랑스러워했어요.
야근은 당연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회사가 인생이고 일에 아주 미쳐 사는 아빠가 꽤 존경스러웠습니다.
그 덕에 큰 모자람은 없이 자랐어요.
그런데 제가 회사를 다니고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점점 보이지 않던 게 보입니다.
아빠가 자기계발이라는 명목하에 몸, 건강 갈아서 한 공부들은
실무에 그다지 쓸모치도 않았어요. 사실상 회사 입장에서 능력으로 인정해주기도 애매한 것들이었고
이를테면, 일은 영어로 하는데
따로 짬내서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를 마스터해놓고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 회사에서 인정 받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격이더라고요.
그땐 제가 일을 안해서 몰랐어요. 그냥 당연히 그런 노력들은 직무 연관이 깊을 거라 생각했죠.
모두 자기만족에 그치더라고요.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투자해서 사고란 사고는 다 쳐놓은 상태에서
애도 아직 어린데 아무런 상의 없이 몇천만원의 학비가 드는 대학원을 학력 콤플렉스 하나 때문에 다니고는,
가서는 네트워킹이나 모임에 미쳐서 어릴 때 많이 보지도 못했어요.
돈은 없으니 모임은 마통 뚫어서 나갔고요.
돈 많고 여유 있는 사람들 쫓아가느라 뱁새 가랑이가 북북 찢어졌어요.
대학원 다닐 때가 그야말로 가족의 암흑기였네요.
가족은 늘상 뒤로 하고, 자식 임신했을 때도 병원 한번 안가주고
가족 기념일, 생일땐 시간 한번 못 내면서
회사 임원 골프, 상사 일에는 연차까지 쓰면서 따라갈 정도로 절실했어요.
근데 물론 돌아온 건 하나도 없었고요.
아빠의 성격은, 친화력은 있으나 대체로 문제해결력과 사회적 소통능력이 낮고, 무엇보다 조리있게 제대로 의견을 피력할 줄 모르는 편이에요.
정말 노예근성+성실함만 있어요. 물론 성실함은 여전히 존경하는 부분이지만,
일을 해보니까 그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능력도 일머리도 없는데 특별히 성실한 사람이 제일 골치 아프거든요.
회사에서도 자존감이 낮으니까 나가라면 바로 나가고,
부당한 일도 찍소리 못하고 견뎌야 했고요.
신입사원들은 다 학력이 높은데 본인만 낮은 학력이라는 사실때문에
끊임없이 괴로워하며, 열등감을 느끼고
쓸데없는 커뮤니티, 회식, 상사 꽁무니만 쫓아다니며
정작 아무 실속도 없이 돈 버리고 건강 버리고
평생 임원 못 달고 나가라는 통보 하나로 짤려버리고.
뭐랄까, 싫다기보다는 그냥 하나의 직장인으로서 존경하던 아빠를 다시 보니
인생 전체가 너무너무 불쌍해요.
일부 똑똑하거나 약삭빠른 동료는 전부 임원이 되었어요.
하지만 아빠는 회사가 안 자르고 받아주면 그저 감사할 일,
그렇게 쫓겨나듯 퇴사하고는 연봉은 높아질 대로 높아졌고
자격증은 많은데 평생 일해온 결과를 이렇다할 성과로 포장할 재주도 없어서
재취업도 소개받아서 연봉 엄청 깎아서 겨우 한 자리 가고도, 인정 받으려고
다 늙었는데 아직도 개같이 고생하면서 일해요.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제가 일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아빠의 업무 서류, 채용 서류를 많이 봐줬는데
나이나 세대를 떠나서 대체 그동안 어떻게 일을 했지? 싶을 정도로
두서없는 글, 핵심 없는 문서, 정돈되지 않은 문장들이었어요.
제 상사가 이런 서류를 제게 들고왔으면 저 사람이 연봉을 더 받는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났을 것 같아요.
이제 어릴 때의 그 눈으로 더 이상 못 보게 되었어요.
특히 아빠랑 겹쳐지는, ‘일 못하는 특징’이 있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면서
엄청 스트레스 받았어서 더더욱 점점 존경심이 사라집니다.
제가 나쁜 건 알아요. 이 마음을 어떻게 없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