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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님, 지금 회사에서 어떤 고민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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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한 명 때문에 복지가 통째로 날아갔습니다.
너무 짜증나네요. 저희 회사는 규모가 크진 않아도 매월 10만원씩 자기계발비를 지원해 주는 복지가 있었습니다. 책을 사거나 인터넷 강의, 헬스장 등록 등등... 영수증만 제출하면 비교적 자유롭게 청구할 수 있어서 직원들 만족도가 꽤 높은 제도였거든요. 그런데 다른 팀에 있는 직원이 꼼수를 부리는 바람에 이번 달을 기점으로 이 제도가 전면 폐지되었네요. 그동안 매달 자기계발비 한도를 꽉 채워서 잘 팔릴 만한 물건들(마우스, 키보드, 이어폰 등등)을 결제하고 그걸 당근에 팔아서 현금화를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런 적은 없지만 직원들 중에 알음알음 복지를 현금화 해서 쓰는 직원들은 여럿 있었을텐데 뭔가 내부에서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직원이 있었던 건지, 회사 로비에서 직거래 하는 장면을 누가 인사팀에 찔렀다 하고요. 들리는 얘기로는 구매한 물건들을 사무실에서 사진 찍어서 그대로 당근에 올리는 바람에 들통난 듯 합니다. 결국엔 해당 직원은 사내 징계를 받긴 했는데 윗선에선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했고 관리 감독이 어려우니 현금성 지원 복지는 모두 중단한다>면서 복지 자체를 없애버렸네요 ㅎㅎ 이제는 업무와 100% 직접적으로 관련된 도서만 부서장 결재 기안을 올려야 간신히 살 수 있게 돼서 직원들 불만이 상당합니다. 전 지원금 받아서 영어를 배우고 있었는데 하루 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셈입니다. 한 사람의 얄팍한 이기심 때문에 성실하게 복지를 이용하던 다수가 피해를 보게 되니 참 허탈합니다. 근데 애초에 문제의 직원에게만 페널티를 주거나 증빙 절차를 강화하면 될 일을... 회사 측 대처 방식도 솔직히 합리적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쩝 오히려 없애려고 벼르고 있었나 싶을 정도라서 그 직원도 짜증나지만 회사도 정 털립니다.
미야자키
1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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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의 피신고인이 되고 나서
저는 남자입니다. 외국계 매우 여초 보수적인 회사에 꽤 오랜 시간 재직해왔습니다. 제 몫 이상 일을 잘 하면서 이를 통해 성취감 느끼며 회사 다니다가, 지난 가을 어느 시점에 외국인 간부의 기이하고 비상식적인 지시, 보다 빠른 업무 납기를 강요하는 외부 클라이언트, 그리고 타 부서 동료의 간헐적인 업무상 공격등이 맞물려서 스트레스가 높아졌을 즈음, 회사 제 자리에서 손님과 전화통화 후 하늘을 보고 손님 욕을 했습니다. 열흘 전에도 외국인 간부를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혼잣말로 허공에 대고 욕을 했습니다. 두 번의 행동은 신고인(추정시 추가징계가 가능하다지만, 제 목소리가 들릴 정도 거리에 있는 어떤 불특정다수 중 한 명의 직원이겠죠.)의 신고로 회사는 재빠르게 외부 노무사를 불러 위의 제목대로 "직장내 괴롭힘"으로 신고되었다는 미명하에 조사를 벌였습니다. 이후 자체 징계위원회를 열었고 끝내 감봉5~60만원 정도와 연말 성과급 20% 삭감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신고 및 조사, 이후 내부 징계위원회를 벌이겠다는 소식을 듣고나서부터 저는 회사건물의 안쓰는 층의 골방으로 격리되었습니다. 누가 신고했는지를 추정도 하지 말라 들었고, 이러한 모든 일련의 과정이 끝난 지금까지 약 넉 달 반이 흘렀습니다.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악몽을 꾸고 있습니다. 거의 20여년 동안 회사에 헌신했는데 이에 비해 다른 사람의, 그리고 신고한 사람을 욕한 것도 아닌데 그 상황이 본인에게 불편했다고 신고하여 이렇게 지금까지 고통받는 상황에 답답해 글을 올립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닌 부적절한 언행 또는 분위기 저해의 이유와 제목으로 제게 뭐라고 쓴소리를 했다면 대부분 받아들였을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확언할수 있는 일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회사에서는 제가 지난 신고의 이유였던 일 외에도 지난 몇 년 간 제가 제 자리에서 씩씩거리거나, 특정 직원을 괴롭힌건 아니지만 제 감정을 드러내어 다른 직원을 불편하게 했다고 주장하면서 제가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니 전문가의 심리상담을 받아보라고 권장 했습니다. 저는 제가 현재 회사로부터 괴롭힘받고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일단 전문 심리상담소를 5회 정도 방문해 상담을 받고 있고,이 일이 있은지 거의 다섯 달 정도 되었지만 여전히 불면증과 우울감이 큽니다. 그러나 주변 자리에 앉아있았을 신고인으로 추정되는 한 두 명을 제외하고 저는 지난 회사 생활간 다른 동료와는 아무 문제가 없을 뿐더러 좋은 사이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냥 이렇게 버티거나 나와야하는걸까요? 오늘도 죽임을 당하는 꿈을 꾸다가 깼습니다.
맞아요2
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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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제조에서 상장사 제조업으로 이직 많이 어렵나요?
1년 넘게 준비했는데 상장사 제조업은 다 서탈 면탈이고 비상장에서 딱 한번 붙었었습니다 처우협의가 잘 안되서 결국 못갔는데... 너무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느껴지네요ㅠㅠ 경력은 6년 정도 되는데 비제조에서 제조로 이직하는게 거의 불가능하다면 이제 포기하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떤 편인가요?ㅠㅠ
fgdgg
은 따봉
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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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구X) 중세초 한반도 최후의 승리자 태조 왕건
왕건을 두고 인생 승리자라고 하면, 단순히 “고려를 세웠으니까 성공한 사람” 정도로 말하는 것은 오히려 너무 약합니다. 왕건의 진짜 대단함은, 한 인간이 자기 인생에서 바랄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승리를 아주 높은 수준으로, 그것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얻었다는 데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과정이 피비린내 나는 극단적 파멸이나 처참한 대실패 없이, 꾸준히 위로 올라가며 완성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왕건은 한국사에서 보기 드문, 거의 교과서적인 “인생 전체를 이긴 사람”에 가깝습니다. 생각해보면 후삼국 시대는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게 살기에도 너무 거친 시대였습니다. 오늘은 어느 성주가 누구 편을 들고, 내일은 다른 군벌이 들이닥치고, 모레는 어제의 동지가 배신자가 되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런 시대에는 힘만 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머리만 좋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너무 강하게 나가면 미움을 사서 제거되고, 너무 착하면 먹히고, 너무 조급하면 먼저 무너집니다. 그런데 왕건은 그런 혼란 속에서 이상하리만큼 안정적으로 커 갔습니다. 젊은 시절 궁예 휘하에서 활약할 때도 그는 단순히 전투 잘하는 장수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전쟁터에서 공을 세우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자기 평판을 쌓아갔습니다. 난세에 필요한 것은 칼솜씨만이 아니라 “저 사람 밑에 있으면 살 수 있겠다”는 신뢰인데, 왕건에게는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궁예 말기에 민심과 신하들의 마음이 급속히 이반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왕건의 위치가 얼마나 묘하고도 강했는지가 드러납니다. 그 시기는 잘못 끼면 같이 몰락할 수 있는 위험한 국면이었습니다. 궁예 편에 끝까지 붙어 있다가 같이 망할 수도 있었고, 너무 일찍 움직였다가 역적으로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사람들은 왕건을 중심으로 새 판을 짜는 쪽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왕건이 무력이 셌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미 그가 오랫동안 쌓아둔 신뢰, 인망, 현실감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인 인생 차원에서 보면 여기서부터 이미 큰 승리가 시작됩니다. 세상이 무너질 때 같이 깔려 죽지 않고, 오히려 새 질서의 중심에 선 것입니다. 왕건의 진짜 무서운 점은 그 다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쿠데타나 권력 장악에는 성공해도, 그 뒤로 자멸합니다. 권력을 잡은 뒤 의심이 많아져 사방을 숙청하고, 적을 너무 많이 만들어 자기 기반을 깎아먹습니다. 그런데 왕건은 그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경쟁자를 이겨놓고도 “다 쓸어버리는” 방식보다 “내 질서 안으로 넣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왕건은 단순한 승자가 아니라 큰 승자가 됩니다.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왕건은 무조건 칼로 밀어붙이지 않았습니다. 호족들과 혼인 관계를 맺고, 지역 세력을 포섭하고, 항복해온 이들을 적절히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식으로 아주 현실적으로 말하면, 그는 적을 제거해서 빈 땅을 만드는 사람이라기보다, 적의 힘과 네트워크까지 인수합병해서 자기 몸집을 키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컨대 지방 호족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왕건은 “저항하다 다 죽을 상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붙으면 우리 집안도 살아남고 더 커질 수 있는 상대”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세력이 그에게 완전히 짓밟혀서가 아니라, “저 사람 편에 서는 게 낫다”는 판단 아래 모여들었습니다. 이건 엄청난 능력입니다. 세상에는 싸워 이기는 사람은 많지만, 이기고 나서 상대를 자기 편으로 만드는 사람은 훨씬 적습니다. 견훤과 비교하면 왕건의 인생 운영 방식이 더 잘 보입니다. 견훤은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밑바닥에서 군사적 실력으로 후백제를 세운 창업자였으니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은 끝이 너무 험했습니다. 아들 문제로 내부 분열이 일어나고, 자신이 세운 나라에서 밀려나는 장면은 개인 차원에서 보면 처절합니다. 그렇게 강했던 사람도 말년에 자기 집안 내부에서 무너진 것입니다. 반면 왕건은 달랐습니다. 그는 많은 아내와 자녀를 두었지만, 그것이 단순한 사적 향락만이 아니었습니다. 각지 유력 세력과 혼인으로 엮으면서 정치적 안전판을 만들고, 동시에 왕실의 혈통과 기반을 두텁게 했습니다. 오늘날의 감각으로 보면 다소 낯설 수 있지만, 당시에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장기 전략이었습니다. 즉 왕건은 자기 당대의 승리만이 아니라, 자기 자식들과 가문의 미래까지 설계한 것입니다. 그 장면을 조금 더 생생하게 떠올려보면 이렇습니다. 난세의 유력 호족 집안에서는 늘 불안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번에 어느 편에 서야 집안이 산다” “누구와 손잡아야 우리 아이들이 목숨을 건진다” 같은 고민이 매일 있었겠지요. 그런데 왕건과 혼인으로 이어지고, 왕건의 질서에 편입되는 순간 그 집안은 단순한 지방세력에서 미래 왕조의 외척 혹은 유력 협력 세력으로 변합니다. 왕건 개인에게도 이득이고, 상대 가문에게도 이득입니다. 얼마나 영리합니까. 혼인 하나가 단지 사적인 결합이 아니라, 생존과 권력과 미래를 묶는 계약이었던 것입니다. 왕건은 이런 식으로 자기 삶의 기반을 점점 넓혔습니다. 그래서 그의 많은 아내와 자녀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내 이후에도 내 세계가 계속 돌아가게 만드는 장치”였습니다. 그리고 왕건의 인생이 정말 압도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은, 그가 단지 왕이 된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역사에는 왕이 된 사람은 많습니다. 잠깐 천하를 잡아본 사람도 꽤 있습니다. 그러나 왕건은 “내가 왕이 되었다”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내가 세운 왕조가 오래 간다”는 단계까지 갔습니다. 이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사업으로 치면 잠깐 돈을 번 창업자가 아니라, 수백 년 가는 브랜드와 시스템을 만든 창업자에 가깝습니다. 자기 개인의 성취가 구조로 굳어졌다는 뜻입니다. 그가 남긴 훈요십조 같은 것을 보면, 왕건은 단순히 오늘의 승리에 취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후대가 어떻게 나라를 운영해야 할지까지 고민했습니다. 여기서 또 한 번 인생 승리자의 면모가 드러납니다. 많은 사람은 오늘 잘나갈 때 내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왕건은 자기 뒤를 생각했습니다. 후손들이 나라를 어떻게 붙들어야 할지,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남겼습니다. 자기 생애의 성공을 후대의 생존 매뉴얼로 바꾸어 놓은 셈입니다. 이건 개인의 삶으로 봐도 엄청난 일입니다. 내가 잘 먹고 잘사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이후 사람들까지 살 길을 만들어놓는 것이니까요. 또 하나 왕건이 무서운 것은, 적과의 관계가 비교적 극단적 파탄으로 흐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전쟁의 시대였으니 충돌과 유혈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건은 궁예처럼 광기로 치닫지도 않았고, 견훤처럼 말년에 비참한 가족 파탄으로 무너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상대를 이기면서도 가능한 한 질서 속에 편입시켰습니다. 쉽게 말해 “칼을 쥐고도 칼만 믿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개인 인생에서도 가장 강합니다. 주변을 피로 물들이며 올라가는 사람은 언젠가 피의 대가를 치르게 마련인데, 왕건은 그 비용을 상대적으로 줄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승리는 더 오래가고 더 넓어질 수 있었습니다. 명예라는 점에서도 왕건은 거의 완벽합니다. 많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화려하지만 죽고 나면 욕을 먹고, 어떤 사람은 당대에는 강했지만 후대 평가가 나쁩니다. 그런데 왕건은 죽은 뒤에도 창업 군주로 추앙받았습니다. 고려 내내 태조 왕건은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후대 왕들이 정통성을 말할 때 결국 돌아가는 이름이 왕건이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승리냐 하면, 그는 자기 생전의 부귀영화만 누린 것이 아니라 사후에도 상징적 아버지로 남은 것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이보다 더 큰 명예가 또 있을까요. 살아서는 최고 권력을 누리고, 죽어서는 왕조의 뿌리로 기억되는 것. 그야말로 현실적 성공과 상징적 영광을 함께 쥔 삶입니다. 부귀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지방 호족 출신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천하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자리를 물려받아 유지한 것도 아니고, 자기 시대의 격랑을 타고 올라가 왕조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이 점이 특히 중요합니다. 그냥 상속받은 승리가 아니라, 판을 읽고 사람을 얻고 싸움을 이기고 관계를 넓히며 만든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건의 성공은 더욱 생생합니다. 원래 있던 자리를 지킨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판을 바꿔 자기를 꼭대기에 올려놓은 사람이니까요. 결국 왕건의 삶을 한 장면으로 압축하면 이런 느낌일 것입니다. 지방 유력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혼란한 세상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위험한 권력투쟁의 한가운데를 지나, 강력한 경쟁자들을 하나씩 넘어가고, 그 과정에서 무턱대고 적을 늘리지 않고 오히려 사람과 세력을 자기 편으로 만들며, 마침내 천하를 통일하고, 많은 자녀와 혼맥으로 자기 세계를 넓히고, 죽은 뒤에도 후대가 끊임없이 떠받드는 왕조의 시조가 된 사람. 이건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놓고 봐도 거의 모든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삶입니다. 그래서 왕건을 개인 차원의 인생 승리자라고 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그는 큰 실패 없이 꾸준히 성장했고, 정적을 이기면서도 포용과 연대로 더 큰 승리를 만들었으며, 명예와 부귀와 가문의 미래를 함께 성취했습니다. 자기 한 사람만 잘된 것이 아니라, 후대가 오래 누릴 질서까지 남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뜨겁게 빛나지만 짧고, 어떤 사람은 오래 버티지만 평범합니다. 그런데 왕건은 오래 버티면서도 크게 이겼고, 크게 이기면서도 오래 남았습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왕건은 정말 드물게, “개인 인생 전체를 통째로 이긴 사람”처럼 보입니다.
프로듀서X
1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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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없는 젊은 팀장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최근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경력직입니다 팀장이 30대 초반인데 살면서 이런 사람 처음 봅니다.. 1. 아무런 업무배경에 대한 설명 1도 없이 일을 던집니다. 그것까진 내가 찾아서 하면 되니 오케이 하겠는데 진심 3분 단위로 어디까지 됐는지 물어보고, 10분 정도 지나면 한숨 쉽니다. 2. 외부 요청자료를 보지도 않고 토스합니다. 외부기관 커뮤니케이션 대응할 일이 많은데 자료를 보지도 않고 토스하고선 언제까지 되냐고 계속 물어봅니다. 그것도 그냥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외부기관 대응 자료이니 팀장과 팀원이 컨펌할 수 있는 영역이(이 내용을 외부에 공유해도 되는지 아닌지)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것에 대해선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 자료만 보채니 미칠 지경입니다. 3. 모든 일이 다 ASAP입니다. 외부기관에서 이번주까지 주라고 요청했음에도 지금 당장 달라고 난리를 칩니다. 그러다보니 ASAP만 여러개가 되는데 그러다보니 마음은 급해지고 또 옆에서 보채고 앉아있으니 조급해져 실수가 생기면 실수를 진짜 엄~청 추궁합니다. 그래서 급하게 요청하시니 제가 체크를 놓쳤다 죄송하다 말하면 자기가 그런 것까지 신경써야 하냐며 사람을 바보로 만듭니다. 4. 팀원이 개인비서인줄 압니다. 본인이 필요한 프린트 시키는 것은 물론, 본인이 확인하면 될 아주 사소한 것까지 확인해달라고 하고 인격적으로 기분이 나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물론 이것도 시키면서 빨리 달라고 난리도 아닙니다. 프린트를 빨리 달래서 빨리 하다가 손가락이 베인 적이 있는데 참 서러웠네요..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네요 적지 못한 것이 아직도 많다는 게 참.. 이 모든 단점들이 능력이 있는, 배울 점이 있는 리더면 참고 뭔가 배우려고 하겠으나, 그런 것도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저보다 고작 3살 많은 팀장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월권을 행사하는 꼴이 정말 회사 다닐 맛 안 나서 죽겠습니다..
qazwdx
1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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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말에 대한 대답
안녕하세요, 남편 말에 대해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싶어서 글 올려봅니다. 상황 1) 집에 사둔 오렌지가 떨어져서 '이제 오렌지가 없네, 또 살까?' 라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 "난 안먹었어." 상황 2) 남편이 재택근무라 저녁을 합니다. 국이 짜길래 '짜다'고 했더니 불평할 거면 밥안할거라고 합니다. 말의 뉘앙스따라 다르게 전달되겠지만 짜다고 한건 일상적 어투였습니다. 상황1은 본인은 아무 뜻없이 하는 말이라고 하고 상황 2의 저는 불평하는거라고 하니 대화가 안되네요. 이런 상황이 자주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싶습니다.
1117외대
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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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초반 퇴사 80일 (남긴) 일기
아침에 역시나 눈꺼풀이 1톤의 무게로 짓누르는 것같이 눈이 안 떠짐....하지만 이제 80일.. 다행히 일찍 일어나서 오늘은 아침밥 먹고 출근.. 배가 든든하니 스트레스는 사알짝 덜했음.. 사무실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와 여기저기서 자신의 목소리로 열을 올리는 직원들.. 에너지가 넘치는 직원들을 보니 오늘은 나도 그들과 함께!!! 하지만 이런 감정은 역시 미팅 2개정도 연달아 하니 진이 빠지는... 왜이리 자기 이야기들만 하는지?? 일단 난 그들의 주장을 끝까지 다 들어주고 내 의견은 짧게했다..어차피 부딪혀봐야 내 감정만 소모.. 오후 늦게 외근을 나와 고객사와 웃으면서 미팅하고 그 고객사 갈 때마다 내가 찾아가는 밥집에서 맛난 일본식 도시락과 생맥 한잔!! 캬!! ~~~ 인생 뭐 있나.. 이런 맛으로 사는거지.. 오늘은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의 한 구절을 써보고 싶다.. 신영복 선생은 그의 나이 28세에 통혁당 사건으로 억울하게 투옥되어 무기형을 선고받는다. 지독한 추위가 감옥을 압도했다. 감옥 안으로는 빙광이 내린다. 기온이 내려갈수록 이 빛은 더욱 날카롭게 서슬이 서는 듯하다. 그는 이 빛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 번뜩이는 빛 속에서 냉철한 예지의 날을 세우고 싶다".... 퇴사를 80일 앞두고 이것이 또 하나의 절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도 신영복 선생처럼 절망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예지의 날을 세우고 싶다!!
외국계26년차
억대연봉
쌍 따봉
10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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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먹을 때 연락 관련
저는 여자친구와 사귄지 1년 지났습니다 제가 술 약속있을때는 저는 보통 2~3시간 정도 한번씩 뭐하고 있다라거나 사진도 찍어서 보내줍니다 그런데 여자친구는 두달에 한 두번 정도? 친한친구끼리 모임으로 만난다고 4~5시간씩 연락이 안됩니다 사진도 보내주지 않고 미리 오늘 연락 잘 안된다고 이야기만 하고 아무리 여자들끼리 오랜만에 만난다고 하지만 화장실 갈 시간이나 중간 멍때리는 시간 휴대폰 볼 시간도 없이 이야기를 하나요? 여자분들 궁금합니다 사진이나 통화 하자고 하는건 뭔가 쫌생이같고 자꾸 신경쓰이네요
궁금해뭐가있
동 따봉
1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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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람들과 미팅은 영어로?
해외영업과 밀접하게 일하는 엔지니어입니다. 과거 일본어를 꽤 오래 배웠고 일본쪽 기술문서들을 상시 접하다보니 원어민까진 아니지만 유창하게 합니다. (신문, 방송 대부분 그냥 이해. 의외로 애니는 잘 못 봄.) 오랜만에 일본 안건이 들어와 입찰 막바지까지 갔는데요, 일본쪽 기술자들이 영어가 원활하지 않은 사람들이 섞여있어서 기술미팅은 엔지니어들끼리 따로 하겠다고 하니 안 된다고 하시네요. 내가 일어가 되고 저쪽이 영어가 불편하니 일을 깔끔하게 하기 위해서 맞춰주는 게 낫지않겠냐, 회의록은 영어로 남기겠다고 했는데, 영업 담당께선 원래 일본인들은 영어로 얘기하면 열심히 듣는데 외국인이 일본어로 맞춰주면 오히려 딴지걸고 달려들어서 협상에서 불리해진다고 절대 불가라고 하십니다. 아주 옛날엔 그런 경향이 있단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긴 하지만 진짜인지, 요즘도 그런지... 일본 회사들과 자주 일하시는 분들께 조언을 구합니다.
SUS316
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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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6 딸이 쌍꺼풀 수술 시켜달라고 난리인데 와이프가 흔들리네요.
안녕하세요. 저에게는 이번에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간 딸아이가 있는데 요즘 쌍꺼풀 수술을 시켜달라고 집에서 매일 떼를 써서 이 문제로 아내와 종종 언성을 높이게 되어 고민입니다. 솔직히 제 아이지만 객관적으로 예쁜 얼굴은 아닙니다. 제 얼굴에 침 뱉는 꼴이지만 저를 닮아서 무쌍에 눈이 좀 많이 작거든요. 와이프를 닮았더라면 좋았을텐데...ㅜ 어릴 때는 제가 장난으로 날 닮아서 눈이 콩만 하다고 놀린 적도 있긴 한데 애가 진심으로 싫어하는 티를 낸 이후로는 그런 장난은 아예 안 치긴 했습니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 상처가 남은 것 같더군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애가 고학년이 되고 커갈수록 부쩍 외모에 관심이 높아지더니 대놓고 쌍꺼풀 수술을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설에도 만난 친척들이나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아빠 얼굴 똑 닮았다고 한 마디씩 하는 걸 듣고는 방에 들어가서 하루 종일 우울해 하더라고요. 와이프 말로는 울기도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와이프나 저나 아직 뼈도 다 안 자랐는데 무슨 수술이냐고 반대했습니다. 정 하고 싶으면 나중에 다 커서 대학생 돼서 하라고 말하긴 했는데 문제는 애가 계속 울고불고 고집을 부리고, 밥도 안 먹겠다고 난리라 와이프는 마음이 약해지는 듯 합니다. 한창 예민할 시기에 콤플렉스가 생겨서 계속 거울을 들여다 보고, 사람들 시선에 주눅 들어 하는 것 때문에 혹시라도 이게 아이 성장 과정에서 너무 큰 영향을 미칠까봐 걱정된다는 게 와이프 생각입니다. 요새는 초등학생들도 방학 때 많이들 한다면서 그냥 살짝 찝어주는?? 정도는 미리 해주는 게 낫지 않겠냐고 오히려 와이프가 저를 설득하려는 모양새라 답답합니다. 덩달아 아이가 저렇게 집착하는 데에는 외모가지고 장난 친 제 책임도 있다면서 은근한 제 탓을 하네요. 물론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아직 초등학교 6학년밖에 안 된 애한테 미용 목적으로 얼굴에 칼을 댄다는 게 제 상식으로는 이해 불가인데 한편으로는 외모지상주의 세상에서 아이가 느낄 고통을 해소해 주지 못하는 게 부모로서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같은 고민 해보신 분들께 조언을 구하고 싶어 익명을 빌려 글 작성합니다. 제가 어찌하면 좋을까요??
오리꾁꾁
1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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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사업주 때문에 형사고소 진행예정인데 형사조정위원들 태도가 너무 기가막히네요
악덕사업주이자 사기꾼기질이 있는 회사대표가 연봉 급상승과 차량제공에 파격적인 인센티브 조항까지 제시하며 전직장을 그만두게 만들었습니다. 딱 월급 한번 주고 임금 체불한채 국민연금도 미납하고 해외도피하면서 자기는 돈 펑펑쓰는 모습 SNS에 올리면서 잠적해버려서 함께 했던 직원 3명 모두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는 차량을 맘에 드는거로 제 이름으로 일단 계약하면 다음달부터 승계해준다고 하더니 아직도 승계를 안해줘서 1년넘게 지금도 월 100만원씩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대표를 도저히 용서할 생각이 없어서 내용증명을 보냈는데 너무 성의없이 대응해서 민사소송까지 진행중입니다. 너무 화가 나서 임금체불에 대한 건을 제가 처벌불원서를 안써주고 검찰로 송치했는데 이에 대해 형사조정이라는 합의절차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 대표가 여기에 응하고 싶다고 해서 형사조정위원과 통화를 하는데 제가 지금 진행되고 있는 민사소송건 해결하고 취업 기만한죄 금액으로 변상하기 전까지는 합의할 생각이 없다고 했더니 거기있는 조정위원이 저를 아주 나쁜놈 취급하더라구요. 대지급금까지 받아놓고 왜 합의를 안해주냐는 식으로 저를 몰아붙이는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게 무슨 조정을 한다는 거냐며 따졌더니 마치 저를 아주 범죄자 몰듯이 말 대충대충 하며 끊더라구요. 얘기들어보니 여기서 합의시키는것이 자기들 실적이라서 그렇게들 몰아간다고 하던데 자기들이 당해보지도 않았으면서 그렇게 피해자를 몰아붙이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경험자분들 계시나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에리려니
1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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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명으로 회식 예약 금지시키는 회사 흔한가요?
노쇼나 시간변동, 당일취소 발생 가능하다며 개인 명의로 예약하게 시킵니다. 덕분에 몇몇 식당에선 제 이름이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것 같고요ㅎㅎ; 거기에 더해 예약금도 안 내면 안되냐고 우겨야하고, 일정이 자꾸 변경되니 미안하다는 전화도 계속 돌려야하고, 명의는 제 것이니 제 신용도 깎아먹고. 여러모로 소모적이고 솔직히 민폐라고 생각합니다. 더이상 개인 명의로 예약하고 싶지 않은데.. 다른 회사에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지 궁금합니다.
jijijili
32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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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이 너무 힘듭니다 (외국계)
지금 10군데 정도 지원하고 다 레쥬메와 리크루터 콜은 무난하게 통과하는데 1차 아니면 final 가서 떨어지네요 심지어 final가서 떨어졌다가 그 회사에서 다시 연락와서 면접 한번 더 봤는데 안 된 곳도 2곳이나 됩니다 주말도 다 바쳐서 준비하고 지금 회사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데 계속 미끄러지니 미치겠네요 첫 직장 구하는것만큼 힘든거같아요 이정도면 저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걸까요 아니면 그냥 시장이 어려운걸까요 대학때부터 면접에 크게 실패해본 경험이 없는데 너무 힘드네요..
소소소소소소
억대연봉
1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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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귀는 도중에 딩크로 생각 바꼈는데 여친에게 말하기 두렵네요
제가 34살이고 여친이 32살, 만난 지는 이제 3년 정도 됐습니다. 결혼 적령기에 만났다 보니 서로 아이 계획에 대해 꽤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고 만나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결혼하려 했는데 여친 집안에 일이 생겨서 미뤄지게 됐고 그 사이에 제 가치관이 바뀌기 시작했네요. 올해 되면서 여친이 결혼 얘기를 꺼내며 재촉하고 있는데 저는 막상 결혼이 현실로 다가오니까 솔직히 아이를 낳고 싶지가 않아졌습니다. 경제적인 부분도 그렇고 애를 키우면서 져야 할 무거운 책임감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자꾸만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딩크 쪽으로 마음이 기울더라고요. 문제는 여친은 결혼 후 출산을 전제로 저를 만났을텐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고 하면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전에 지나가듯 여친이 난소 나이를 언급하면서 '오빠랑 결혼 못하면 이제 새로운 사람 만나서 애 낳기엔 노산이다' 이런 얘길 농담처럼 했던 적이 있어요. 그 말들이 자꾸 스쳐지나가면서 마음 한 구석에 돌덩이를 얹은 느낌으로 괴롭습니다. 저처럼 만나던 도중에 딩크로 생각이 바뀌어서 결국 헤어지거나 아님 갈등을 겪어보신 분들이 있을까요? 아니면 저도 결혼하면 다시 아이에 대한 생각이 생길까요? 욕심인 거 알면서도 전 헤어지고 싶지도 않고 가능하다면 여친이랑 아이 없이도 둘이서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커서 어떻게 하면 대화로 잘 풀어나갈 수 있을지, 비슷한 경험을 가지신 분들의 조언을 구합니다.
태양이싫어서
1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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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 정규직 전환이면 이력서
이력서 쓸때 헷갈려서 여쭤봅니다 저는 한 회사에서 계약직 2년 근무하다 정규직으로 전환 되었는데요 보통 이럴때는 이력서에 입사일과 근무유형을 어떻게 기재 해야하나요? 현재는 정규직인데 입사할땐 계약직이였어서.. 그냥 면접에서 물어보면 이실직고 해야하는건지 궁금합니다
라면땅1
5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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