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구X) 중세초 한반도 최후의 승리자 태조 왕건

03월 16일 | 조회수 60
프로듀서X

왕건을 두고 인생 승리자라고 하면, 단순히 “고려를 세웠으니까 성공한 사람” 정도로 말하는 것은 오히려 너무 약합니다. 왕건의 진짜 대단함은, 한 인간이 자기 인생에서 바랄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승리를 아주 높은 수준으로, 그것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얻었다는 데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과정이 피비린내 나는 극단적 파멸이나 처참한 대실패 없이, 꾸준히 위로 올라가며 완성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왕건은 한국사에서 보기 드문, 거의 교과서적인 “인생 전체를 이긴 사람”에 가깝습니다. 생각해보면 후삼국 시대는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게 살기에도 너무 거친 시대였습니다. 오늘은 어느 성주가 누구 편을 들고, 내일은 다른 군벌이 들이닥치고, 모레는 어제의 동지가 배신자가 되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런 시대에는 힘만 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머리만 좋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너무 강하게 나가면 미움을 사서 제거되고, 너무 착하면 먹히고, 너무 조급하면 먼저 무너집니다. 그런데 왕건은 그런 혼란 속에서 이상하리만큼 안정적으로 커 갔습니다. 젊은 시절 궁예 휘하에서 활약할 때도 그는 단순히 전투 잘하는 장수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전쟁터에서 공을 세우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자기 평판을 쌓아갔습니다. 난세에 필요한 것은 칼솜씨만이 아니라 “저 사람 밑에 있으면 살 수 있겠다”는 신뢰인데, 왕건에게는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궁예 말기에 민심과 신하들의 마음이 급속히 이반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왕건의 위치가 얼마나 묘하고도 강했는지가 드러납니다. 그 시기는 잘못 끼면 같이 몰락할 수 있는 위험한 국면이었습니다. 궁예 편에 끝까지 붙어 있다가 같이 망할 수도 있었고, 너무 일찍 움직였다가 역적으로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사람들은 왕건을 중심으로 새 판을 짜는 쪽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왕건이 무력이 셌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미 그가 오랫동안 쌓아둔 신뢰, 인망, 현실감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인 인생 차원에서 보면 여기서부터 이미 큰 승리가 시작됩니다. 세상이 무너질 때 같이 깔려 죽지 않고, 오히려 새 질서의 중심에 선 것입니다. 왕건의 진짜 무서운 점은 그 다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쿠데타나 권력 장악에는 성공해도, 그 뒤로 자멸합니다. 권력을 잡은 뒤 의심이 많아져 사방을 숙청하고, 적을 너무 많이 만들어 자기 기반을 깎아먹습니다. 그런데 왕건은 그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경쟁자를 이겨놓고도 “다 쓸어버리는” 방식보다 “내 질서 안으로 넣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왕건은 단순한 승자가 아니라 큰 승자가 됩니다.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왕건은 무조건 칼로 밀어붙이지 않았습니다. 호족들과 혼인 관계를 맺고, 지역 세력을 포섭하고, 항복해온 이들을 적절히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식으로 아주 현실적으로 말하면, 그는 적을 제거해서 빈 땅을 만드는 사람이라기보다, 적의 힘과 네트워크까지 인수합병해서 자기 몸집을 키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컨대 지방 호족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왕건은 “저항하다 다 죽을 상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붙으면 우리 집안도 살아남고 더 커질 수 있는 상대”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세력이 그에게 완전히 짓밟혀서가 아니라, “저 사람 편에 서는 게 낫다”는 판단 아래 모여들었습니다. 이건 엄청난 능력입니다. 세상에는 싸워 이기는 사람은 많지만, 이기고 나서 상대를 자기 편으로 만드는 사람은 훨씬 적습니다. 견훤과 비교하면 왕건의 인생 운영 방식이 더 잘 보입니다. 견훤은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밑바닥에서 군사적 실력으로 후백제를 세운 창업자였으니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은 끝이 너무 험했습니다. 아들 문제로 내부 분열이 일어나고, 자신이 세운 나라에서 밀려나는 장면은 개인 차원에서 보면 처절합니다. 그렇게 강했던 사람도 말년에 자기 집안 내부에서 무너진 것입니다. 반면 왕건은 달랐습니다. 그는 많은 아내와 자녀를 두었지만, 그것이 단순한 사적 향락만이 아니었습니다. 각지 유력 세력과 혼인으로 엮으면서 정치적 안전판을 만들고, 동시에 왕실의 혈통과 기반을 두텁게 했습니다. 오늘날의 감각으로 보면 다소 낯설 수 있지만, 당시에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장기 전략이었습니다. 즉 왕건은 자기 당대의 승리만이 아니라, 자기 자식들과 가문의 미래까지 설계한 것입니다. 그 장면을 조금 더 생생하게 떠올려보면 이렇습니다. 난세의 유력 호족 집안에서는 늘 불안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번에 어느 편에 서야 집안이 산다” “누구와 손잡아야 우리 아이들이 목숨을 건진다” 같은 고민이 매일 있었겠지요. 그런데 왕건과 혼인으로 이어지고, 왕건의 질서에 편입되는 순간 그 집안은 단순한 지방세력에서 미래 왕조의 외척 혹은 유력 협력 세력으로 변합니다. 왕건 개인에게도 이득이고, 상대 가문에게도 이득입니다. 얼마나 영리합니까. 혼인 하나가 단지 사적인 결합이 아니라, 생존과 권력과 미래를 묶는 계약이었던 것입니다. 왕건은 이런 식으로 자기 삶의 기반을 점점 넓혔습니다. 그래서 그의 많은 아내와 자녀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내 이후에도 내 세계가 계속 돌아가게 만드는 장치”였습니다. 그리고 왕건의 인생이 정말 압도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은, 그가 단지 왕이 된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역사에는 왕이 된 사람은 많습니다. 잠깐 천하를 잡아본 사람도 꽤 있습니다. 그러나 왕건은 “내가 왕이 되었다”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내가 세운 왕조가 오래 간다”는 단계까지 갔습니다. 이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사업으로 치면 잠깐 돈을 번 창업자가 아니라, 수백 년 가는 브랜드와 시스템을 만든 창업자에 가깝습니다. 자기 개인의 성취가 구조로 굳어졌다는 뜻입니다. 그가 남긴 훈요십조 같은 것을 보면, 왕건은 단순히 오늘의 승리에 취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후대가 어떻게 나라를 운영해야 할지까지 고민했습니다. 여기서 또 한 번 인생 승리자의 면모가 드러납니다. 많은 사람은 오늘 잘나갈 때 내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왕건은 자기 뒤를 생각했습니다. 후손들이 나라를 어떻게 붙들어야 할지,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남겼습니다. 자기 생애의 성공을 후대의 생존 매뉴얼로 바꾸어 놓은 셈입니다. 이건 개인의 삶으로 봐도 엄청난 일입니다. 내가 잘 먹고 잘사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이후 사람들까지 살 길을 만들어놓는 것이니까요. 또 하나 왕건이 무서운 것은, 적과의 관계가 비교적 극단적 파탄으로 흐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전쟁의 시대였으니 충돌과 유혈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건은 궁예처럼 광기로 치닫지도 않았고, 견훤처럼 말년에 비참한 가족 파탄으로 무너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상대를 이기면서도 가능한 한 질서 속에 편입시켰습니다. 쉽게 말해 “칼을 쥐고도 칼만 믿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개인 인생에서도 가장 강합니다. 주변을 피로 물들이며 올라가는 사람은 언젠가 피의 대가를 치르게 마련인데, 왕건은 그 비용을 상대적으로 줄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승리는 더 오래가고 더 넓어질 수 있었습니다. 명예라는 점에서도 왕건은 거의 완벽합니다. 많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화려하지만 죽고 나면 욕을 먹고, 어떤 사람은 당대에는 강했지만 후대 평가가 나쁩니다. 그런데 왕건은 죽은 뒤에도 창업 군주로 추앙받았습니다. 고려 내내 태조 왕건은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후대 왕들이 정통성을 말할 때 결국 돌아가는 이름이 왕건이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승리냐 하면, 그는 자기 생전의 부귀영화만 누린 것이 아니라 사후에도 상징적 아버지로 남은 것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이보다 더 큰 명예가 또 있을까요. 살아서는 최고 권력을 누리고, 죽어서는 왕조의 뿌리로 기억되는 것. 그야말로 현실적 성공과 상징적 영광을 함께 쥔 삶입니다. 부귀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지방 호족 출신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천하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자리를 물려받아 유지한 것도 아니고, 자기 시대의 격랑을 타고 올라가 왕조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이 점이 특히 중요합니다. 그냥 상속받은 승리가 아니라, 판을 읽고 사람을 얻고 싸움을 이기고 관계를 넓히며 만든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건의 성공은 더욱 생생합니다. 원래 있던 자리를 지킨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판을 바꿔 자기를 꼭대기에 올려놓은 사람이니까요. 결국 왕건의 삶을 한 장면으로 압축하면 이런 느낌일 것입니다. 지방 유력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혼란한 세상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위험한 권력투쟁의 한가운데를 지나, 강력한 경쟁자들을 하나씩 넘어가고, 그 과정에서 무턱대고 적을 늘리지 않고 오히려 사람과 세력을 자기 편으로 만들며, 마침내 천하를 통일하고, 많은 자녀와 혼맥으로 자기 세계를 넓히고, 죽은 뒤에도 후대가 끊임없이 떠받드는 왕조의 시조가 된 사람. 이건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놓고 봐도 거의 모든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삶입니다. 그래서 왕건을 개인 차원의 인생 승리자라고 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그는 큰 실패 없이 꾸준히 성장했고, 정적을 이기면서도 포용과 연대로 더 큰 승리를 만들었으며, 명예와 부귀와 가문의 미래를 함께 성취했습니다. 자기 한 사람만 잘된 것이 아니라, 후대가 오래 누릴 질서까지 남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뜨겁게 빛나지만 짧고, 어떤 사람은 오래 버티지만 평범합니다. 그런데 왕건은 오래 버티면서도 크게 이겼고, 크게 이기면서도 오래 남았습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왕건은 정말 드물게, “개인 인생 전체를 통째로 이긴 사람”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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