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의 뒤끝은 정의로웠을까?
마음은 참 신기하다.
분명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데 우리는 그것을 물리적으로 인식한다. 예를 들어, '마음에 상처 받았다'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상처'는 물리적 마찰이 있어야 생겨지는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아무런 설명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마음에 앙금이 남았다'라는 말도 그렇다. 보이지도 않는 마음인데, 저 깊은 어딘가에 잘 용해되지 아니한 무언가가 뭉뚱그려 가라앉아 있는 모습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런데 특히 '앙금'은 머리에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진다.
나와 케미가 잘 맞지 않거나, 말을 듣지 않거나, 여러 번 말했는데도 나아지지 않는 구성원을 마주할 때 그렇다.
구성원 중에는 자기 할 일은 다 하면서 제 할 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이 있다. 좀 봐가면서, 앞뒤를 재고 내가 이끌고자 하는 맥락에 맞추어 이야기해주면 참 좋을 텐데, 뭔가 엇박자가 날 때가 종종 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영 신경이 쓰인다. 살짝 얄밉긴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감정을 내보일 순 없다. 그러한 감정을 보이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때는 뭔지 모를 앙금이 약간 남는다. 안 생겼으면 좋겠지만, 어쩌나. 나도 사람인지라. 그렇다고 그 앙금이 곧바로 그 사람에게 해가 되거나 하진 않는다.
문제는, 내 말을 면전에서 듣지 않거나 여러 번 말했는데도 개선이 안 되는 구성원들이다.
아마도 두 가지 경우가 있겠다. 첫째는 내가 지시를 잘 내렸다고 생각하나 어찌 되었건 그것이 모호하게 전달된 경우. 둘째는 지시에는 정말 문제가 없는데 구성원이 그것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 전자의 경우도 센스가 있는 구성원이라면 보다 자세히 되묻거나, 중간보고를 하며 나와 조율을 해나갈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 난 '수평적' 리더가 된다. 하지만 문제는 후자 쪽이다. 지시가 올바르더라도 하기 싫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받아들이고, 그 과정과 결과 또한 좋지 않을 때다. 그러면 난 '수직적' 리더로 돌변한다.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 구성원의 앞 길을 막아 버리고 싶다. 원래, 직장에선 남 잘되게는 하지 못해도, 재를 뿌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다. 당장 말을 듣지 않는 구성원을 만나면 그러한 유혹에 자연스럽게 이끌린다.
하지만 리더는 앙금, 즉 뒤끝을 그렇게 막무가내로 사용하면 안 된다.
조직의 성과 때문이다. 개인적인 뒤끝과 복수는 조직 성과에 기여하지 못한다. 설령, 내가 그 구성원을 전배 조치한다거나 면전에서 윽박을 지르는 공포정치를 한다고 해도 그 효과는 순간만 반짝하고 미비해질 것이다. 아니,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 뻔하다.
높은 사람이 될수록 사람들은 '뒤끝'이 더 강해진다.
"저 사람한테 한 번 찍히면 끝이야!"는 그 높은 사람의 '뒤끝' 정도를 보여주는 척도다. 올라갈수록 외로운 사람들이 휘두를 수 있는 무기는 대부분이 '뒤끝'이다. 나 또한 리더로서 따로 오지 않는 구성원을 앞에 두고 마음에는 앙금을 쌓고, 결국에는 뒤끝을 내보인다. 하지만, 나는 다시금 결심한다. 나의 뒤끝은 정의로워야 한다고. 그리고 그 '정의'는 조직의 성과와 연관이 있느냐 없느냐와 관계있다.
누군가, 어느 구성원이 나의 뒤끝을 신경 써서 알아서 스스로를 개선시킨다면, 아마도 그 구성원은 그러는 길이 우리 팀의 성과를 좋게 하기 위함임을 느꼈을 것이다. 개인의 위신을 세우기 위한 뒤끝이 아닌, 팀의 성과를 내기 위한 뒤끝. 누군가를 질책하거나 개선이 되어야 하는 구성원에게, 개인의 감정이 아닌 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팀에게 어떤 피해가 갈 것인지에 대해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쉽지 않다. 정말 그렇다.
당장 이해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팀원 앞에서 얼굴이 굳지 않을 리더가 몇이나 될까. 일도 잘하면서 자기 할 말을 애살있게 내가 원하는 맥락에 맞추어 이야기해주는 구성원은 극소수다. 없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앙금이 쌓일 때마다 뒤끝을 부리고 나면, 솔직히 남는 팀원이 없을 것이다. 홧김에 일을 덜 주거나,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거나 하는 속 시원한 그러나 단기적인 처방전은 자멸의 길로 들어서는 지름길이다. 최악의 리더라는 명찰을 달기 딱 좋다. 그러니 리더는 앙금을 쌓고, 뒤끝을 부릴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리더라면, 아마도 오늘 분명 누군가로부터 어떠한 앙금이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뒤끝을 부릴 준비를 할 것이다. 그것을 부리기 전에, 나의 뒤끝은 정의로운지 한 번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물론, 나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