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하고 있는 일과 자신에 대한 신뢰가 없을 때
안녕하세요. 지나가시다 한 마디씩만 조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서없이 긴 푸념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소프트웨어 개발/유지보수 쪽에서 얕은 풀스택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주 언어와 플렛폼이 있긴 하지만, 일단 일이 주어지면 다 맨땅에 헤딩해서 어떻게 해내는 식입니다.
지금 회사가 거의 처음이고, 안정적이라 할만한 중소기업입니다. 아니, 중소기업이였습니다. 회사가 합병되어 대기업 계열사가 되기 전까진요
3년 전까진 어떻게 회사에서 일하면서 버틸 수 있었는데, 2년 전부터 사장님과 면담할 때 항상 같은 얘길 하시더군요. 자세한 내용은 여기 적지 않지만 뭐 좋은 얘기는 아니였습니다.
제가 문제를 크게 일으켰었고, 회사 내 평판은 안 좋고.. 다 저와 일하기 싫어하신다고.
물론 기분이 나쁘면서도 이해는 됐습니다. 일할 때 결과적으로 클라이언트와 일하는걸 망쳤고, 그 외의 말한 평판과 평가를 들어보면 고용주 입장에서는 불만이 나올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1년 전에 유사한 면담을 하고, 팀원들과 타 팀원~팀장급과 회식에서 얘기할 땐 그렇지 않다고 이미 얘기를 들은 상태였습니다.
안 그래도 몇 달 전부터 부서 몇몇이 단체로 뭉뚱그려 정리될 거라는 얘기가 돌고 있고, 저희 부서도 거기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개발 인력의 20퍼센트 정도가 자발적으로 퇴사했고요.
솔직히 저도 얼마 못 버틸 것 같습니다. 길어야 몇 달이겠죠. 조금 아쉽긴 합니다. 부족하다 생각하는 부분을 채우려 노력했는데 잘 안 된거 같더라고요. '최소한 무너진 평판은 돌리고 가자!' 이런 식으로 생각햇습니다.
일일기록도 시작하고, 좀 더 체계적으로 일하려고 노력하고. AI도 좀 더 적극적으로 쓰고, 커뮤니케이션이 끔찍할 정도로 부족해서 팀원이나 상사와 소통할 때 구체적으로 말하고 마지막에 결론 정리하고 메모하고 공유하고... 스스로도 많이 나아졌다고 느끼고, 주변인들도 그렇다 말했는데.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회사 일도 좋게 돌아가진 않았습니다. 저희 부서의 업무 수주량이 불안정해졌고, 맨아워를 지켜야 실적으로 인정받는 상황이였습니다. 거기에 다들 전담으로 할 일을 배분받았는데, 저는 적당히 뒷처리나 마무리 못한 일을 정리하는 걸 주로 하다 보니 맨아워도 상대적으로 부족해습니다. 이거 때문에 사장님과 면담할 때 모모씨는 1인분을 못한다고, 모모씨가 있는데 프리랜서를 고용해야 했다면서 손실이 심하다고, 다시금 다른 사람들이 저와 일하기 싫어한다는 걸 언급하신 건 덤입니다. 개발자로 참여해 처리한 큰 프로젝트의 일을 받은 게 없으니 증명할 것도 없어 별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저희 부서 실적이 엉망이란 얘기를 들을 때는 좀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뭘 할 수 있는 게 아닌데도 제 잘못인 것 같았고, 이런 얘기를 듣고 상반된 평가를 기억하면서도 확실히 결론내리지 못하는 상태가 진절머리났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사내 정치 같은 걸 잘 몰라서, 다른 동료들의 평판을 좁쌀만큼도 몰라서 그런 건가 싶기도 했고요...
일만 하고 싶은 것도 있고, 다른 분들을 감히 평가할 생각도 없었거든요. 그레서 남을 평가하거나 사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기보단, 제 실수나 업무에 부족한 부분을 정리해 고칠 리스트로 만들어 고치려 했습니다.
다만 그게 2년 동안 제대로 못 한 건지 쓸모가 없던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저는 자기 평가가 안 되고 있거든요
메타인지라고 하던가요. 이 상태로 회사를 나와도 이직은 할 수 있는지, 월마다 근근히라도 수입을 낼 수 있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저보다 스펙 짱짱한 쉬었음 청년이 몇인데... 여기만큼 다른 곳에서 장기 근속할 수 있을지, 프리랜서로 일할 수나 있을지.... 지금도 글을 쓰면서 소주 마시듯 걱정을 들이키고 있습니다. 가관이죠. 끝내주는 취업난이라서 더 그런 듯 합니다. 생각을 안하려 해도, 퇴사가 눈앞에 닥치니까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다시 제목으로 돌아와서, 저는 남이든 저 자신에게든 인정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혼자 살 수 있을 정도로 제태크나 주식을 할 배짱도 없고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성공하고 싶은 야망도 없고, 그냥 이 일을 계속 하면서 먹고 살 수만 있으면 되는 겁 많은 월급쟁이입니다. 부업이나 재태크, 다른 업종을 알아봐도 나는 이거 못 하겠구나, 하는 생각부터 먼저 들고, 솔직히 주식은... 심장이 떨어질 거 같아요. 주변 팀원들의 얘기만 들으면 티 안 내지만 심장이 벌렁거립니다.
불안하기만 하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거 압니다. 하지만 그걸 자신을 바꾸는 원동력으로 만들고, 그걸로 주변에 인정을 받는 건(특히 한 번 일부 몇 사람에게 신뢰가 무너졌을 때) 전혀 다른 문제더라고요.
이렇게 혼란스럽고 불안한 때에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하시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커피챗 같은 걸 찾아볼까 생각중이기도 합니다.
지금 시대에 실패도 정체도 안 하고, 발전과 성공만 하고 싶다는 게 욕심이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이제 '겉으로 보는 것만 믿자. 내가 잘하면 돼.' 이런 생각이 안 먹히는 순간이 된 것 같더라고요.
잘 한다는 기준을 어떻게 가져야, 주변과 잘 협업할 수 있는지, 절 포함한 누구에게나 확실한 지표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들 이런 불확실성에서 어떻게 제정신으로 사는 겁니까? 저도 자소서에 진짜 제가 자신감 갖고 말할 수 있는 걸 좀 쓰고 싶습니다. 타인은 몰라도, 최소한 절 납득시킬 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이고 확실한 실적 정리 방법 같은 게 있을까요?
긴 푸념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