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난 치앙마이 여행에서 만난 사람 때문에 제 삶이 달라졌습니다.
삶의 방향을 잃고 모든 것이 무기력하던 시기였습니다. 직장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고, 인간관계도 지쳐있었죠. 저는 도피하듯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도착한 곳은 태국 치앙마이였습니다.
힙한 카페도, 매일같이 열리는 북적이는 마켓도, 걸음 걸음마다 하나씩 보이는 사원도 며칠이 지나니 질리는 느낌이 들더군요. 아 이런 걸 하려고 온 게 아닌데. 그때 구글이 추천해 준 게 왓파랏 사원이었어요. 구글 앱을 켰는데 제일 첫번째 콘텐츠로 추천을 해주더라고요. 인디아나 존스에 나올 법한 비밀스런 사원, 도이수텝이라는 산 속에 있는 숲속 사원. 다른 사원들과는 너무 다른 분위기의 사원, 그것도 산 중턱이라니. 여기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바로 숙소를 나섰습니다.
왓파랏에 가려면 가파른 숲길을 걸어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렇잖아도 더운 날씨, 홀로 걷는 길은 금세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제 마음처럼 복잡하고 외로웠습니다. 물 소리가 졸졸졸 들리더군요. 소리를 따라 내려가니 물길이 있더라고요. 나무가 우거져서 시원하길래 여기서 좀 쉬어가야 겠다 하고 앉아있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어요.
"한국인이세요?"
네? 하고 쳐다보니 어떤 남성분이 계시는 거예요. 치앙마이에 워낙 한국 여행객들이 많아서 여행하는동안 한국사람들을 만나도 크게 신기하거나 반갑다거나 하진 않았는데 혼자 산을 오르다보니 조금 반갑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네! 한국사람이에요!"
하니까 웃으면서, 왓파랏 가시는 거냐고, 왓파랏 가는 한국사람들 많지 않은데 만나서 반갑다면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자기는 왓파랏이 너무 좋아서, 이번에 치앙마이 머무는 일주일동안 매일 아침마다 올랐다고, 오늘은 아침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못 왔는데 이렇게 왓파랏 가는 한국 사람 만나려고 그랬나 보다며 너스레를 떠는데 뭔가 기분을 좋게 만드는 기운이 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목 마르지 않냐며 가방에서 텀블러를 건네주는데 와. 진짜 생명수였어요. 진짜 목이 말랐거든요. 이미 숙소에서 챙겨온 작은 물은 다 마신 상태여서. 만나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도 저처럼 평범한 직장인인데, 휴가가 자유로운 회사라 1년에 한 번 1-2주씩 휴가를 내고 배낭 여행을 떠난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리프레쉬 휴가를 받아서 한 달을 쉬게 되었는데, 그 한 달을 라오스와 태국에 쓰기로 했다고 하더군요. 함께 산길을 걸으며 마치 오래 알던 사람처럼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는 걸 듣고 있노라니 저도 모르게 제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습니다. 제가 요즘 모든 게 불안하고 힘들다고 했더니, 그분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삶이 불안한 게 당연해요. 지금 이 산을 오르는 것처럼. 지금도 우리는 내 발이 닿을 곳 한 치 앞만 보잖아요. 지금 고개를 들어도 우리가 가고자 하는 왓파랏 사원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게 불안하다고 주저앉으면 결국 왓파랏은 영영 못 봐요. 그냥 내 발이 닿는 곳에 집중하면서 한 걸음씩 떼는 것, 그러다 보면 왓파랏도 만나게 되고, 왓파랏에서 또 기운을 얻어서 더 걸으면 도이수텝 사원도 보고, 온천도 하고... 그게 삶 아닐까요?
그분의 말은 제 머리를 망치로 때린 듯했습니다. 저는 늘 정답을 찾지 못해서 불안해했는데, 과정과 그 과정 중의 작은 성취에 집중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니. 왓파랏 사원에서 내려다본 치앙마이 전경만큼이나 제 마음속의 시야도 뻥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왓파랏에 앉아 함께 코코넛을 먹고, 같이 내려와서 식사를 하고, 수영을 하고, 다음날 그분이 빌린 바이크를 타고 근교도 다녀왔습니다. 혼자라면 가지 못했을 곳을 덕분에 함께 하니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치앙마이에서 돌아온 후 저도 조금은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불안해하는 대신 일단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보자는 그분의 말을 실천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불안이 조금은 걷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와 단 이틀을 함께했을 뿐이지만, 인스타 친구를 맺어서 스토리로 서로의 삶을 엿보고 있습니다. 가끔 dm으로 이야기도 나누고요. 낯선 여행지에서의 뜻밖의 만남이 이렇게 이어질 줄은 정말 몰랐네요.
혹시 여러분의 삶에도 여전히 함께 하고 있는 여행지에서의 인연이 있나요?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참고로 첫번째 사진 너머 보이는 산이 저희가 올랐던 도이수텝이고, 다른 사진들은 모두 왓파랏 사원의 풍경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