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평화를 위해 여쭙니다. 한화, 원래 이런 건가요?
본격적인 여름의 길목에서 평안하신지요.
저는 야구를 잘 모르는, 소위 '야알못'입니다.
평생 야구라곤 룰도 제대로 모르고 살아왔는데, 저희 집 양반 덕에 지난 십수년간 특정 팀의 경기를 강제로 시청해왔습니다. 바로 '한화'라는 팀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화는, 뭐랄까, 하나의 종교의식이었습니다.
해탈한 스님처럼 '나는 행복합니다'를 읊조리던 남편의 뒷모습. 역전패라도 당한 날이면 그날 저녁은 숨소리도 내면 안 되는 엄숙한 시간이었지요. 저에게 한화 야구는 곧 '고요함'과 '체념'의 다른 말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녁이 평화롭긴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최근 저희 집에 이상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고요해야 할 저녁 시간에 거실에서 돌고래 소리가 나고, 상의도 없이 치킨이 배달됩니다. 평생 들어볼 일 없을 줄 알았던 '노시환', '문동주', '심우준' 같은 낯선 이름들을 강제로 학습당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어제는 제 손을 붙잡고 "여보! 우리가 1등이야!"라며 아이처럼 기뻐하는데, 순간 이 사람이 괜찮은 건가 싶어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평생의 업보와도 같던 '나는 행복합니다'를, 이제는 정말 행복해서 부르는 모습을 보니 낯설고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야구팬 선배님들께 진지하게 여쭙니다.
이 현상, 일시적인 걸까요, 아니면 제가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걸까요?
이 '축제'라는 것이 끝나면, 예전의 그 평화롭던(고요하고 침울했던) 저녁이 다시 돌아오는 것이 맞는지요?
혹시 저와 비슷한 상황에 계신 회원님은 안 계신지요?
야구는 잘 모르지만 한 사람이 저토록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같아 참 묘한 요즘입니다.
저희 집 평화와 한화의 건승을 함께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