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되기 힘든것 같습니다(감사인사)
안녕하세요. 부서진 멘탈 보수하니라 정신없이 일하고 퇴근해서 댓글을 지금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봤습니다.
소중한 시간들 내시어 진심어린 충고와 위로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댓글 하나하나에 답변드릴 수 없어서 이런 방법으로 감사에 대한 대답을 드리는점 너그러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아들을 서울로 데려오기위해서 6년산 원룸을 정리하고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내년 1월이면 아이도 서울로 올라오고, 등원은 제가 담당하기로 했네요.
장모님께서 육아비용을 안받으시겠다하시어 그동안 못드리고 몸으로 때운 느낌도 있었는데, 아이 데려오면서 그동안의 육아비용 목돈으로 챙겨드리기로 원만하게 협의했습니다.
사랑하는 와이프,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응원해주시고 용기얻게 해주신 여러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올해도 너무 고생많으셨고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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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심란한데 이런이야기를 할 곳도 없고 펑펑울었는데도 해소가 안되서 여기서라도 해소해보겠답시고 글싸봅니다.
제가 타 커뮤니티를 안해서 딱히 해소할곳이 없어서 그러니 너그러이 양해부탁드립니다. 그냥 한사람의 일기라고 봐주셔도 돼요.
그럼 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저는 삼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부모님께 버림받아서 할머니가 키워주셨습니다.
부모님은 애없이 각자의 가정꾸리고 사셨고요.
그렇게 삼남매가 할머니 밑에서 자라다가 저 중학교때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다행히 중학교때 어느정도 해놓은게 있어서 기숙사가있는 고등학교로 갔고 동생들은 학교를 하도 빼먹어서 정상적으로 고등학교 진학도못하고 각자 삶찾아서 전국으로 흩어졌어요.
외가 통해서 서로 살아있다는 소식만 들을뿐 같이 살 기회는 없었고요.
이런 콩가루 상황에서도 저는 공부가 하고싶었습니다.
공장을 전전하다가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고, 어려운 환경에도 외할머니, 동생들 그리고 안타까웠는지 주변의 도움으로 늦게 회계사에 합격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서 결혼할 생각은 하지못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좋은인연으로 지금의 와이프를 식사자리에서 만났고 적극적이어서 제 환경을 있는 그대로 다말했어요.
부모는 살아는 있지만 안키워줬다. 돌아가시면 내몫이고, 동생도 둘 있어서 내가 부모 역할 해야한다라고요.
이런 상황을 다 오픈했고 와이프가 장인 장모님을 어떻게 설득했는지 결혼승낙을 받아서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와이프도 좋지만 평생 느껴보지못했던 느낌? 이라고해야할까요. 장인어른이 가장으로서 대우받는 분위기에 아들처럼 대해주시는 장인어른한테도 많이 끌렸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라 부르면서 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주말이면 4시간씩 걸리는 지방까지 매주 내려가야했고, 큰아들은 서울에서 바쁘다고 안내려오고, 작은아들은 놀러다니느라 뺑끼치고, 저혼자 일도와드려도 마냥 행복했습니다. 일도와 드리고 낚시가야지? 하는 순진한 생각에 마냥 즐거웠던것 같아요.
애가 태어나기 전까지는요....
장모님은 매우 부지런하시고 철인이십니다. 장인어른 도와서 힘든 돼지농장을 하시고, 농장에서 내려오면 자식들 먹이겠다고 밭을 또 가꾸십니다. 텃밭인데도 감자, 배추, 옥수수, 고추, 깻잎 등 다하세요. 그러고도 시간되면 아이 하원시켜서 열심히 케어해주시고요.
서울에서 워낙 거리가있다보니 퇴근하고 늦게 도착할때가 많습니다. 그럴때마다 제가 온줄도 모르고 주무시는 모습보면 저 키워주신 할머니 생각도 많이 나고 고맙고 미안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저도 처음부터 장모님의 육아를 원했던건 아니었습니다.
와이프 직장은 지방이고 저는 서울인데
출장이 많고 규칙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와이프에게 그만두고 육아를 하는것이 어떤지 의견을 물어보았으나 와이프는 경력단절이 싫다했고, 어렵게 들어간 자리이기도 하고 딸 잘되라고 열심히 키워서 번듯한 직장잡았는데 그만두는게 아깝다며 아이를 무보수로 봐주셨어요.
그때부터 당연히 즐겁게 도와드리던 일도 애키워주는 댓가처럼 변질되었고, 본인 자식보다 저를 먼저 부릅니다.
그때도 싫진 않았던거 같아요. 가족같은 느낌이 즐거웠으니까.....
애 키우는게 보통일은 아니더라고요. 와이프도 짜증이 늘고, 장모님도 짜증이 늘었습니다.
왜 우리 엄마만 고생하냐? 비빌건덕지가 없다는 등 저로서는 역린은 건드린느낌?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결혼한것도 아닌데?
그래서 저는 제안을 했습니다. 나도 장모님께 너무 못할짓 하는것 같다. 우리 가정으로서는 그래도 소득이 조금이라도 높은 사람이 직장에 전념하고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사람이 육아를 하는게 낫지않을까? 라고 했더니 난리가 난겁니다. 기깟 얼마나번다고 잘난채한다고....
사실 와이프가 버는소득으로 플러스가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교통비, 용돈, 와이프 고정비하면 또이또이거든요. 이거를 저는 애둘러 이야기를 했는데 반응이 저랬고, 여러번 싸운 끝에 너가 하고싶은것 해라! 단, 내 가슴은 후벼파지 말아달라고 일단락되었고, 그 이후 관계는 너무 좋습니다.
최근, 큰처남이 사업이 망해서 시골에서 일손을 돕고있습니다. 집도 날려먹고 이혼위기에 몸까지 아프니, 장모님으로서는 본인 자식 케어해야되는데 우리애때문에 뭐를 못하니 답답하시고 힘드셨겠지요.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와이프에게 심한소리를 부쩍해대십니다.
제 와이프도 극T라 그런가 장모님께 지지않아요.
자식을 그따위로 키우니 그모냥인거다. 스트레스를 왜 나한테 푸냐면서 매주 싸워댑니다.
서로의 가슴에 못을 박는달까요?
그래서 와이프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처남들보다 우리가 더 죄인이다. 공자, 맹자도 아니고 저정도 힘든데 짜증안내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래도 부모님인데 말좀 이쁘게하자....
와이프도 성격이있는지 안고쳐집니다.
그래서 제가 용기내어 장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이렇게 힘들게 애봐주시는거 항상 고맙고, 죄송하고, 힘든거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저때문도 아니고 외손주도 아니고 딸땜에 본인 힘든거 마다하지않고 봐주니는거 아닙니까? 사랑하는 딸자식 잘되라고 이왕 고생하시는거 와이프한테 상처되는말은 하지말아주세요..
그러고 일주일이 지났나요. ..
오늘 전화가 오셨네요. 곱씹어보니 제가 너무 건방지고 괘씸하다고요. 봐준 보람도없이 딸땜에 봐준단 말을 그렇게 하냐면서 한창 퍼부으셨습니다.
이미 회사에 있을 때 집에가서 전화를 하등가 말등가 하래서 준비는 하고있었습니다.
니가 뭔데 힘들게 얻은 직장 그만두라고하냐, 처음부터 애나키울 여자만나지, 콩가루 집안이라 처음부터 계산적일거라 생각했다, 콩가루인건 처음부터 알았지만 콩가루도 그런 콩가루가 없더라, 얼마벌지도 못하면서 잘난채한다, 거지같은데 시집가서 고생시킨다, 내가 처음부터 콩가루 집안이라고 했는데 시팔년 시집 잘도갔다.
니새끼들 다시는 안본다 등등 한 30분 제욕, 부모욕 들으니 뭐,..워낙 어릴때부터 너무 많이 듣기도 했고, 예상하고 있어서 덤덤했습니다만.
전화 끊고나니 이렇게 억울할수가 없네요.
어릴때도 동네 물건없어지면 다 부모없는 우리집, 말대꾸 한번 잘못하면 부모드립.
이런게 싫어서 더 악착같았던거 같습니다. 이거아니면 답없다...그리고 원래 내성적인데 살아남기위해서 외향적 포장을 하는것 같은 느낌으로 살았다고 할까요...
그러다보니 너무 잘하려다가 실수하고 상처받는일도 많았던것 같네요.
한참을 진짜 꺼이꺼이 울었네요. 이제 눈물도 안나요. 그런데 답답합니다ㅜㅜ
차분하게 전기장판키고 천장 바라보다가 제가 멍청했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제딴에는 모녀사이를 화해시키려했는데, 건방진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은 핏줄이고 신경안써도 알아서 화해할거에요.
두번째는 장모님이 와이프에게 이년저년 모진말씀하시고 그랬던거는 저에게 하고싶은 말씀이었던것 같네요.
거지같은데 시집가서 본인 고생시킨다고.......
이렇게 또 한번 성장합니다......
어른되기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