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어워즈
˗ˏˋ ꒰ NEW 10명 발표 ꒱ ˎˊ˗
베스트글
글쓰기
회원님, 지금 회사에서 어떤 고민이 있으신가요?
새글피드
배우 하영 친일파 논란이후에 근황 아시나요?
그냥 궁금해서.. 아시는분 있나요?? 하차했거나.. 등
하나오션
08월 16일
조회수
518
좋아요
0
댓글
4
외국계->외국계 이직하는데
기본급 3600 복리후생이 1000정도되서 TC가 4600일때 적정 희망연봉 얼마정도 부르면 될까요? 선배님들 도와주세요ㅠㅠ
아이고모리야
08월 16일
조회수
1,643
좋아요
15
댓글
17
20년차의 고민
20년 넘게 일했는데도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경력이 쌓이면 점점 확신이 생길 줄 알았습니다. 10년쯤 하면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고, 20년쯤 하면 적어도 내가 가는 방향 정도는 확실히 알게 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반대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이게 맞나 싶고, 제품 하나를 만들어도 사람들이 정말 좋아할까 걱정되고, 잘되는 일이 생겨도 이게 내 실력인지 운이 좋았던 건지 생각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이런 불안이 제가 부족해서 생기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오래 해봤기 때문에 오히려 실패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더 많이 보이는 건 아닐까. 모를 때는 자신 있게 결정했던 것도 이제는 그 뒤에 생길 일들이 보여서 한 번 더 고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궁금합니다. 경력이 쌓이면 원래 더 편해지는 건가요? 아니면 저처럼 오래 할수록 오히려 생각이 많아지는 분들도 계신가요?
마로니에2
08월 16일
조회수
391
좋아요
3
댓글
4
사무실에 남자 친구 동행
안녕하세요 매출 약 100억 정도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글쓴이 입니다. 오늘 공휴일인데 거래처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발주한 내용이 누락된 것 같으니 확인해달라는 연락이었습니다. 확인해보니 실제로 담당 직원이 발주를 누락한 상황이었고, 오늘 중으로 확인해서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다른 일 때문에 회사 CCTV를 확인하다가 사무실을 보게 됐는데, 해당 직원 옆에 모르는 남성이 앉아 있더라고요. 누구냐고 물어보니 남자친구라고 합니다. 왜 남자친구를 회사 사무실에 데리고 왔냐고 물었더니, 본인을 회사까지 데려다준 김에 같이 들어왔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더라고요. 제가 회사에 외부인을 임의로 데리고 오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니, “오늘은 공휴일이라 회사에 아무도 없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 는 식으로 답변을 했습니다. 저는 발주 누락과는 별개로, 직원이 회사의 허락 없이 외부인, 그것도 개인적인 지인을 사무실 내부까지 데리고 들어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특히 사무실에는 회사 서류나 거래처 정보 등 외부인이 봐서는 안 되는 자료들도 있을 수 있고요. 제가 너무 보수적으로 생각하는 걸까요?
리더
동 따봉
08월 16일
조회수
6,585
좋아요
236
댓글
64
회사생활 1n년차의 자랑거리
나름 회사생활 오래했다면 오래하고 적게했다면 적게 했는데 승진 누락 한번 없이 쭉쭉 올라간거나 2~3년 주기로 포상 받은거나 큰 프로젝트 성공시켜서 본사에서 벤치마킹해가고 전 그룹사 수평전개 한거나 오랫동안 고질적 문제였던 것들 해결해서 직무 내에서 입지전적인 업적 남겨서 우수사례 선정되거나 업무 표준 만들고 업무 메뉴얼 만들어서 직무 분야 시스템 구축해본 경험이나 그런 것들보다 후배들이 상사가 저 휴가간 중에 작업치려 할때 핸드폰으로 전화해서 다 일러주고 저한테 조심하라고 해준 거나 후배들이 힘들다고 술먹어달라고 부르는거나 팀 옮길때 사수나 후배들이 손편지 써주고 막내는 자기 키링이랑 똑같은 페어키링 선물해주며 돌아가며 저한테 항상 고마웠다고 선물주고 했던게 저한테는 정말 회사생활 제일 큰 자랑이더라구요 ㅎㅎㅎㅎ이 정도면 회사생활 잘 한거 아닐까 싶습니다 ㅋㅋㅋㅋ
샷건의집현전
08월 16일
조회수
579
좋아요
1
댓글
4
다른 공장을 찾고 있습니다.
부서 내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요즘 두 종류의 사람과 섞여 일하다 보니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헷갈립니다. 두 종류의 사람은 이렇게 구분됩니다. 1. “지시하신 것, 했습니다.” ‘지시 → 가시적인 산출물 → 보고 → 인계 → 책임 분리’의 순서로 일합니다. 상급자가 지시하면 관련 자료와 해시태그를 모아 시각화한 뒤 보고합니다. 상급자가 왜 이 일을 지시했는지, 근본적으로 무엇을 해결하려 했는지는 배제합니다. 보고를 마친 뒤에는 당장 검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 운영팀에 넘깁니다. 그렇게 자신의 책임을 분리한 다음, 새로운 지시를 기다립니다. 2. “리스크를 관리하겠습니다.” ‘시장 확인 → 고객·상품 설정 → 실행 → 계약·매출 → 운영 안정화’의 순서로 일합니다. 문제는 실행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정을 설명하는 사람도, 그 설명을 듣는 사람도 답답해집니다. 게다가 지시받은 업무를 다시 기획하고, 다른 사람이 인계한 책임까지 떠안습니다. 그러다 일이 끝나기 전에 사람이 먼저 퍼져버립니다. 예전에는 두 번째 방식이 당연히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이란 결국 실제로 작동해야 하고, 계약과 매출로 이어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두 종류의 사람과 섞여 일하다 보니 조금씩 헷갈립니다. 지시받은 산출물을 정확히 만들어 보고하고, 정해진 시점에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것이 더 올바른 업무 방식일까요.?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일이 실제로 작동할 때까지 책임지는 것이 올바른 방식일까요.? 더 혼란스러운 것은 첫 번째 사람의 일은 늘 끝나 있는데, 두 번째 사람의 일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회사가 말하는 ‘일의 끝’과 내가 생각하는 ‘일의 끝’은 애초부터 달랐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어느 한쪽만 옳고, 다른 한쪽은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지금의 업무 방식은 품질검사 없이 계속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와 닮았습니다. 벨트에서는 매일 새로운 생산품이 쏟아지지만, 완성 여부를 확인하는 사람도 없고 출고를 책임지는 사람도 없습니다. 출고되지 못한 생산품은 벨트 끝에 계속 쌓여갑니다. 회사는 더 큰 창고를 만들고, 더 빠른 컨베이어 벨트를 들여놓습니다. 그러나 생산품이 왜 출고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습니다. 두 번째 사람들은 벨트 끝에 쌓인 생산품을 하나씩 검수하고, 다시 조립하고, 어떻게든 출고해보려 합니다. 그러나 쏟아지는 물량을 몇 사람이 계속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먼저 퍼지고 나면 생산품은 더 빠르게 쌓일 것입니다. 결국 컨베이어 벨트를 돌리는 첫 번째 사람들 역시 멈춰 설 수밖에 없습니다. 헛똑똑이는 그 결말을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손과 무릎에 묻은 먼지를 털고, 다른 공장을 찾고 있습니다.
버마짝귀
08월 16일
조회수
237
좋아요
2
댓글
1
무서워 이사갑니다. ​
결국 이사를 결정했습니다. ​아이도 전학을 갑니다. ​솔직히 다른 무엇보다 두려움이 앞서 이곳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저희 딸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입니다. ​1학기동안 같은 반 친구와 트러블이 있었습니다. ​상대측에서는 저희 아이가 "죽을래?"라고 했다고 주장하지만, 아이에게 확인해 보니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급식 시간에 줄을 서 있다가 앞에 서 있던 친구의 목 부분을 밀쳤던 일은 있었고, 그 자리에서 즉시 사과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후에도 그 친구는 지속적으로 먼저 자기랑 놀자고 찾아와서 저희 아이가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손뜨개질하며 놀 때마다 다가와 딸아이의 행동을 방해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저희 부부가 외출 중일 때 그 친구 어머니로부터 아내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밖이라 응대가 어렵다고 알렸음에도 그 어머니는 저희 집 앞까지 찾아와 2시간 가까이 문앞에서 벨을 눌렀습니다. (아파트 관리 앱에 방문 기록과 사진이 다수 남아 있습니다.) ​이후 아파트 1층에서 기다리겠다며 아내를 불러내어, "네 딸이 학폭 하는 거 몰랐냐, 그따위로 자식을 키우냐, 다 죽여버리겠다"며 폭언과 소란을 피웠습니다. (아파트 CCTV를 확인해 보니 아내를 코너로 몰아서 손에 우산을 들고 휘두르는 시늉을 하는 장면이 잡혀 있더군요.) ​같은 단지 이웃이었기에, 당시에는 정말 우리 아이가 큰 잘못을 저지른 줄 알고 큰 충격과 공포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해당 사건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시점 이후에 등교 시간이 달라졌을 때 "무슨 일 있어요? 혹시 우리 딸이나 저희가 실수한 게 있는지 마음 쓰이네요"라고 물어봤을 때도, "일정이 바빠져 당분간 등교를 같이하기 어렵다"며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처럼 이야기했고, 이후에도 아이들끼리 같이 놀게 하자며 먼저 연락을 취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상대가 갑자기 극단적인 언어폭력을 가한 이후, 하교 시간이나 아파트 엘리베이터, 단지 내에서 마주칠 때마다 저희 아이를 지속적으로 위협적인 표정으로 노려보았습니다.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고자 대화를 시도했으나, "본인에게 먼저 사과부터 해야 대화를 하겠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무엇을 사과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딸이 학폭을 저질렀다는 걸 이야기하는 건지, 딸아이 교육을 잘못 시켰다고 하는 건지,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왜 사과해야 하는 건지...) ​그 친구의 부모는 알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와 딸아이 휴대전화 통화 녹음에는 "야, 너 왜 돈 안 가지고 와? 빨리 가지고 와"라는 음성이 남아 있고, 문자 메시지로 서로 '바보'라고 보내며 장난을 칠 때도 저희 아이는 항상 "미안해"라며 저자세로 마무리하곤 했습니다. 상대 아이가 '444444' 같은 숫자를 반복해 보내며 무시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딸아이가 "친구가 나쁜 건 아니야, 괜찮아"라고 하여, 아이들 사이의 일이니 학폭이라 규정짓지 않고 넘기려 했습니다. 어느 부모나 자기 자식이 우선이겠지만, 아이의 말을 믿고 원만히 지나가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측은 저희 아이를 학교폭력 가해자라 주장하며, "학폭 기록을 남기기 싫으면 똑바로 교육하라"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사를 가고 전학을 보내든지 해서 자기 딸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알아서 조치하라고 합니다.) ​변호사 상담도 받아보고, 112 신고를 통해 경찰관의 도움을 받아 대화를 주선해보려 했으나 상대는 대화를 거부했습니다. (경찰을 통해 전달받은 바에 따르면, 사과를 먼저 해야만 대화에 응하겠다고 합니다.) 법적으로는 '자신은 그런 적 없다'고 부인하면 그만이라는 태도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저도 가서 뒤집어버리고, 욕하고, 그 아이 딸을 볼 때 제 큰 덩치로 위압을 가하고, 무서운 표정으로 노려보는 등... 다 하고 싶습니다만, 딸아이 앞에서 나쁜 아빠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직접 그 일을 겪는 딸아이가 괜찮다고 하는데 못난 아빠가 될 것 같아서 그럴 수가 없습니다. 너무... 눈물이 나게 아픕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실제로 해코지를 당한 뒤에야 법적 처벌을 물을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너무나 두렵고 무력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결국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꼭 당신 딸은 당신과 똑같은 사람으로 키워서 꼭 당신과 같은 사람이 되어 꼭 당신과 같은 표정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하지는 마십시오.... 당신 딸은 죄가... 없으니....'
회랑
은 따봉
08월 16일
조회수
6,372
좋아요
270
댓글
65
아내에게 서운해요
두 자녀(2세, 4세)가 있는 평범한 직장인 아빠입니다. 연애할 땐 나만 바라보던 아내가 두 자녀가 생기고 나서 모든 삶은 두 자녀에게 맞춰졌습니다. 자녀의 밥, 교육 그리고 자녀와 함께하는 여행 등 모든 것들이 자녀에 맞춰지게 되었고 저는 그 삶에 적응을 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첫째가 네 살이 되고 자기 고집이 강해지면서 와이프가 자녀를 키우는데 많이 힘들어 했고. 언성도 높아지고 성격도 좀 변하게 된 거 같아요. 힘들어 하는 아내를 위해서 6개월간 육아 휴직을 하면서 와이프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6개월간 와이프를 도와주면 와이프는 조금 더 여유가 생길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육아 휴직을 한 거에 대해서 엄청 고마워했는데 현재는 당연시가 되었고 육아를 하면서 항상 잔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또한 항상 후순위가 되는 입장에서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과 시간을 모두 보내고 아이들이 자는 시간인 저녁 10시 정도가 되면 저는 와이프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와이프는 항상 아이들과 같이 잠을 자 버렸고 와이프와 같이 저녁을 보내는 시간이 언제 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습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분에 대해서는 와이프가 잘 키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 집정리, 자기 관리, 직장(미래) 등등 모든걸 내려놓은 와이프를 보면 걱정도 되고 저와의 시간을 생각하지 않는 와이프를 보면 서운합니다. 가장으로서 어른으로서 묵묵히 그 자리에서 역할을 하는게 맞지만 저도 사랑받고 싶고 정리된 집에서 저녁을 같이보내고 퇴근했을때의 따뜻한 식사가 하루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선배님들 이런 경험들 있으시죠...? 어떻게 해야 와이프가 저를 바라보고 같이 시간을 보낼수 있을까요? 서운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 한적이 있었는데 하루 이틀 좀 하는것 같더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와이프를 보면 제가 잔소리를 하면서 서로 다시 서먹해지기도 했습니다..
눈큰부엉이
08월 16일
조회수
1,467
좋아요
11
댓글
25
나이 29에 3000만원 밖에 모으지 못한 돌싱입니다
안녕하세요. 나이 30 다되가는 나이에 3000모은 돌싱 입니다. 오늘 승소하고 이혼 서류 정리 다되어서 한풀이겸 써봐요. 시댁 살이와 마마보이 남편 때문에 못살겠어서 나왔어요. 제 20대는 그 순간순간에 충실하게 지냈는데 보여지는 결과는 왜 이렇게 가슴이 시릴까요. 대학교와 대학원 시절 장학금 받고 다녀서 부모님 손 벌리지도 않았어요. 조교 알바 하면서 번돈, 사회생활 하면서 번돈 차곡차곡 모아 제 수중엔 4000 정도 있었어요. 그때가 27세였네요. 제 전남편과 저는 국제 커플이었답니다. 20대를 함께 보냈어요. 27세에 결혼해서 미국으로 건너갔어요. 미국에서는 교사로 일했구요. 주일 예배 전에 성관계 갖지 마라. 각방 써라 - 순결을 지켜라. 직장 그만두고 애 낳을 생각해라. "너 옷 너무 도시적이다. 좀더 이 곳 분위기에 맞는 옷으로 바꿔 입어라." "다른 며느리는 피아노 쳐서 교회 음악 봉사한다던데, 너도 피아노 배워라." 네, 모두 제 시댁이 한 말입니다. 제 전남편은 자기 부모님이 무서워 와이프가 이런 말을 듣도록 내버려두고 있었고요. 왜 그렇게까지. 와이프를 던져두면서까지 엄마를 무서워 하냐 물어봤어요. "우리 부모님이 우리 사이를 축복해주지 못할까봐" 래요. 사람이 악에 받쳐서. 짐승 같이 밤새도록 울부짖으며 "너 이럴거면 나랑 결혼하지 말았어야지. 너가 지켜야할 사람은 나라고. 니 엄마 기분이 아니고."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 질렀습니다. 그러자 앞뒤 다 자르고 자기한테 소리 질렀다고 "정서적 학대자"라고 몰아가대요. 그렇게 제 결혼생활은 끝났습니다. 지금은 한국에서 다시 취업에서 일하고 있어요. 전남편이 서류 정리 협조를 잘 안해줘서 협의 이혼임에도 불구하고 1년 가까이 걸렸네요. 변호사 선임 비용이 많이 들어갔어요. 그렇게 제 수중에 남은 돈 3,000. 제 나이 29세. 유튜브와 경제 서적을 뒤적이며 재테크 공부할 수록 자괴감에 빠져요. 유튜브를 볼수록요. 이런 사연이 있어도. 여자 나이 30에 모은 돈 얼마 이하면 "경제관념 없는 여자" "지금 결혼 못하면 도태됩니다." 전 결혼생활을 막 끝내고 나왔기에 회복에 전념해야 하는데 말이죠. 이런 사연이 있어도, 결국 사회에서 보여지는 저란 존재는. "나이 30에 3,000밖에 모으지 못한 여자. 경제관념 없는 여자. 돌싱녀. 흠이 있는 여자구나." 제 자신이 한 없이 초라해지네요. 예상을 어느정도 했건만. 생각보다 많이 아프네요.
쿠쿠키키
동 따봉
08월 16일
조회수
21,674
좋아요
384
댓글
148
같이 일한다의 정의가 뭘까요
개인의 능력보다 같이 일하는게 중요하다 이런말 하려면 일을 최소한은 하고 해야되는거 아닌가 일을 비슷하게 할때 사이가 좋은게 가산점인거지 웬수랑 만나더라도 할일은 하는게 돈받으면서 회사다니는 자세 아닌가 말입니다. 무슨 유치원 온것도 아니고 같이 밥먹고 커피마시고 수다떨고 끝나고 술마시러 가면서 하하호호 지들 저러는 동안 몇명한테만 일몰리는건 생각안하는지 그래놓고 뒤에서는 일하는 몇명 성격이 별나다는 둥 배려가 없다는 둥 뒷담에 정작 결과 보고때는 몇명 작업물에 팀원들 이름 우르르 끼워넣고 발표는 팀장이, 나중에 물어보면 팀 전체가 한거. 하지만 추가 작업할거 생기면 다시 몇명한테 짬처리 그렇다고 챙겨주는것도 아니고 고과줄때는 누가 진급이 밀려서, 딱해서, 혹은 나랑 친한 애를 키우고 싶어서, 이 핑계 저핑계로 어거지로 애매한 고과 주기 개개인이 악한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는건 아니라는건 알지만, 이런 구조는 바뀌어야 하지 않나요? 노력하려는 마음이라도 보이면 좀 다르겠는데 난 모르는데 어쩌라고 식이면서 인간관계를 주업무로 보는 사람만 갈수록 늘어나니 일이 굴러가질 않는데 위에서는 그게 당연한거고 니가 참으라는 말만하고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왜 하필 저만 참아야 되죠? 그사람들 월급 모아서 저한테 넣어줄것도 아니면서? 이게 잘못된 생각입니까? 이직하고 싶은데 이직이 바로 되는것도 아니고 이직할때까지 이걸 어떻게 참나 싶고 그렇다고 던지기에는 해온게 아깝고 같이 열심히 해서 결과만들어가는 분위기 만들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다들 이렇게 회사생활하나요?
ujajuck
08월 16일
조회수
225
좋아요
3
댓글
1
직속 선배 때문에 입사 1년도 안 돼 이직 준비 중입니다. 제가 예민한 걸까요?
제조 대기업의 한 관리 부서에서 일하는 경력직입니다. 작년 하반기에 지금 회사로 옮겼고, 경력은 몇 년 됩니다. 직속 선배 때문에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다른 회사에 이직하고자 계속 지원하고 있는 상태인데, 제 판단이 합리적인지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해 글 올립니다. 조금 깁니다. [입사 초기] - 입사하고 약 3개월간 OJT나 인수인계가 전혀 없었습니다. 업무는 그냥 던져주고 "알아서 하다가 모르면 물어봐라"는 식이었어요. - 그럼에도 저는 스스로 파고들고, 현장을 계속 다니며 확인하고, 함께 일하는 협력 관계자들과 관계도 쌓으려 노력했습니다. - 그런데 3개월쯤 됐을 때, 타 부서 사람들도 다 있는 사무실에서 저한테 "너 하루 종일 뭐 하는지 종이에 써봐라"고 하더군요. 공개 망신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떳떳했기에 제가 하는 일을 다 설명했습니다. [선배의 평소 행동] - 제가 초반에 엉망으로 방치돼 있던 업무들을 개선했더니, "50점짜리다", "네가 뭔데 기획을 하냐", "잘하지 마라" 식으로 성과를 깎아내립니다. 팀원 험담과 이간질이 심합니다. 예를 들어 다른 파트 선배가 실수한 걸 굳이 팀장한테 흘리고, 저한테는 "그 사람 따라 하지 마라"고 합니다. 정작 당사자 앞에서는 안 그런 척, 다른 데서는 그 사람 욕을 합니다. - 타 부서나 윗선한테는 엄청 친절하고 좋은 사람 이미지를 만들려 애씁니다. 반대로 같은 팀원한테는 챙기는 척하면서 본인 실속만 챙깁니다. - 팀장 자리를 노리는 티가 납니다. 다른 파트보다 일찍 출근하려 하고, 제가 정시에 퇴근하면 "우리 파트가 일 없어 보인다"며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회식 때 취해서 팀장한테 "본사로 올라가시는 게 좋겠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엔 대표이사 방문 소식을 듣고, 우리 팀에 입회 지시가 없었는데도 본인이 나서서 현장을 직접 앞장서 안내하더군요. - 사소한 통제도 많습니다. "금요일엔 휴가 쓰지 마라", "몇 시까지 출근해라", "타부서(생산)도 늦게까지 일하니까 일찍 가지 마라" 등. 회사 규정도 아니고 그냥 본인 요구입니다. [무보수 잔업] - 예전엔 가끔 있던 특정 현장 대응 업무가, 상황이 바뀌면서 최근 몇 배로 급증했습니다. 주로 저녁 시간대에 있어서 매번 남아서 봐야 하는데 수당은 없습니다. - 원래 우리 팀이 매번 직접 붙던 일이 아니었는데, 새로 온 상급자의 지시 이후 우리가 떠안게 됐습니다. 저는 "이건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담당자가 하는 게 맞다"고 보고 법에서도 현장 관리자가 관리하는 업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팀장님이 별다른 방법이 없어서 그냥 수용했습니다. 선배는 오히려 "남아서 보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를 앞장서서 만듭니다. 하지만 그 전까지 남아서 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합니다.(저녁 8시 넘어서까지 관리함) [최근 이슈 – 저를 핵심 업무에서 빼려는 움직임] - 회사가 경력직을 새로 뽑기로 했는데, 선배가 그 사람에게 제 핵심 업무를 맡기고 저를 다른 파트로 돌리고 싶어 합니다. 명분은 "네 스트레스도 덜어주고 선배로서 네 전공을 살려주려는 것"이라는데, 옮기려는 업무가 제 전문성과 연관성이 떨어져서 명분이 약하다고 느낍니다. - 하필 최근에 선배의 아침 말투가 너무 거슬려서 저도 퉁명스럽게 대꾸한 일이 있었는데, 그 직후에 이 움직임이 나왔습니다. 제 느낌엔 말 안 듣는 후배를 핵심에서 주변부로 빼내려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 인사는 선배에게 결정권이 없고 팀장이 주도하는데, 선배는 팀장을 통해 자기 뜻을 관철하려는 구도입니다. [저만 느끼는 게 아닙니다] - 같은 팀 동료 두 명도 이 선배의 말투 문제를 알고 있습니다. - 제가 오기 전, 본사에서 잠깐 지원 나왔던 분도 이 선배한테 말투와 업무 능력으로 모욕당해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 심지어 타 사업장의 같은 직군 젊은 직원들도 이 선배의 말투 때문에 다들 기피한다고 합니다. 근본적으로 본인이 그 분야 최고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도입니다. [제 상황 정리] - 사실 저는 입사 후 짧은 기간에 방치돼 있던 업무들을 스스로 정상화하고 나름의 성과도 냈다고 자부합니다. 곧 결혼 준비도 있고 개인적으로 준비하는 시험도 있어서 퇴근 후 시간이 중요합니다. 무보수로 매일 갈리는 상황에 회의적입니다. - 이 선배 때문에 회사에 정이 다 떨어졌고, 이미 이직 지원을 계속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질문드립니다] 1. 이 상황에서 제가 예민하게 구는 걸까요, 아니면 나갈 만한 상황이 맞을까요? 2. 이직이 확정되기 전까지, 저를 다른 파트로 빼려는 이 움직임에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까요? 정면으로 거부해야 할지, 일단 수용하는 척 시간을 끌어야 할지 고민입니다. 3. 이런 유형의 선배를 겪어보신 분들, 어떻게 버티거나 넘기셨는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이직해보장
08월 16일
조회수
479
좋아요
1
댓글
4
납품한 디자인을 Ai로 변형하는 문제 어떻게하죠??
생각만 하던 일들이 눈앞에서 일어납니다. 저는 주로 홍보용 디자인을 납품하였는데, 의뢰처에서 납품받은 후 임의로 Ai에 넣어 변형하여 사용하시네요. 의뢰처는 대부분 정부기관 또는 기업입니다. Ai이전에 납품시에는 계약시 변형 가능한 범위를 설정하고, 그에따라 비용을 책정했었습니다. Ai가 이제 일상이 되니, 저에게 알리지 않고 슬쩍 변형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너무 많이 생기네요.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삘릴리개굴개굴
08월 16일
조회수
475
좋아요
2
댓글
2
1차 면접 통과, 2차면접 예정
1차때 실무진 면접 통과 후, 2차면접 예정에 있습니다. 2차는 임원진 면접인데... 너무 떨려요. 너무나도 가고싶던 회사인데 취업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아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됩니다. 안되면 어쩌나 하구요... 임원진 면접 때는 보통 인성이나 이미지 보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동기등 보는거 같은데... 혹여 2차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있을까요??? 잘 답변드리고 잘할 자신 있는데 혹시나 떨어지려나 싶어서 걱정됩니다 ㅠㅠㅠ 무얼 더 준비하면 좋을까요?
사회초년생 A1
동 따봉
08월 16일
조회수
704
좋아요
7
댓글
7
여자 직급과 나이 그리고 출산
안녕하세요 저는 30대 중반에 이제 막 대리가 된 여자입니다. 정규직이지만 제가 취업을 늦게 해서 나이만 봤을 때는 동기들보다 3-4년이 늦습니다 보통 30대 초중반에 과장이 되는데 저는 대리가 되었네요 여자들의 공통고민 이겠지만 출산과 육아휴직을 하면 승진에 밀리겠지요 일에 욕심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후배들에게 나이로 밀리는 것도 먼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은 아이가 없는 지금이라도 타사 연봉계약직으로 이직하여 직급을 올리는게 나을지.. 아니면 출산+복직 (그리고 밀릴 것)을 감안해서 스테이 하는게 나을지 고민입니다
어러죽어도아메리
동 따봉
08월 16일
조회수
4,190
좋아요
157
댓글
31
[도요타 사례] 재벌의 최대적은 재벌: 재벌을 타도하라
요약: 최대의 적은 내면의 자만 - 스스로를 타도하라 오너가 대표가 아닌 직원출신 대표가 개혁 도요타가 변해야 국가가 변한다는 책임감과 자부심 장착 First Mover로 프리우스 성공 ”도요타가 영원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 ‘도요타 타도’라는 발상으로 개혁에 착수해 주길 바란다. 최대의 적은 ‘내면의 자만’이다.“ 이런 도요타도 테슬라 중국기업들에 전기차 자율주행에 밀린다 기업도 생노병사로 그 수명이 있다 한국 재벌들도 사라질 날이 온다 완장질과 갑질 범죄로 그 날은 앞당겨질 것이다 ____ “도요타를 타도하라” 전설의 경영자가 남긴 ‘자기혁신’의 경고[딥다이브] 한애란 기자 | 동아일보 2026.08.16. 오전 7:41 세계 1위 자동차 제조사는 일본 도요타죠. 하이브리드 전성시대를 맞이하며 사상 최고 실적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사실 과거 도요타는 ‘돌다리를 두드려도 건너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지극히 보수적인 기업이었습니다. 그 체질을 바꾸고 변화에 속도를 내게 된 건 30여 년 전 오쿠다 히로시(奥田碩) 전 사장이 취임하면서부터였죠. ‘강한 도요타’의 상징인 오쿠다 전 사장이 8월 8일 별세하면서 그가 남긴 일화와 어록이 재조명되는데요. 30년 전 이야기인데도 여전히 통하는 인사이트가 있습니다. ‘도요타를 세계 1등으로 끌어올린 경영자’ 오쿠다 히로시 전 사장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좌천은 도약의 기회다 도요타 본사 경리부에서 필리핀 마닐라 지점으로 발령. 1972년 가을, 오쿠다 히로시의 경력은 완전히 꼬인 듯했습니다. 회계처리에서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직급 안 가리고 거침없이 캐묻는 그 성질머리 탓에 상사에게 단단히 찍혀서 사실상 좌천당한 거죠.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필리핀 협력업체에 떼인 거액의 부품 대금을 받아내는 것. 협력업체가 배째라로 나온 탓에 전임자 누구도 성공해 내지 못한 일이었는데요. 하지만 그는 책상물림으로 숫자만 들여다보는 경리직원이 아니라, 현장으로 뛰어들어 담판 짓는 배짱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오쿠다는 일개 주재원 신분으로, 최고 권력자 마르코스 대통령의 정·재계 인맥을 뚫었고요. 필리핀 대통령궁을 움직여서 대금을 회수해 내는 데 성공했죠. 마침 필리핀을 방문한 도요타 가문의 황태자, 도요타 쇼이치로 부사장이 오쿠다를 만나 이런 활약상을 확인하게 됩니다 . 그리고 진심으로 감탄했죠. “정말 흥미로운 사람이다!” 1979년 오쿠다는 일본 본사로 소환됐고, 이후 도요타 쇼이치로의 심복으로 승승장구합니다. 오쿠다 전 사장은 훗날 인터뷰에서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말했는데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운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는 따라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곳을 찾아다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많은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겁니다.” 노력한 자에게만 운이 따른다는 얘기죠. 도요타가 변하면 일본이 변한다 1995년 8월, 도요타 다쓰로 사장(도요타 쇼이치로 당시 회장의 동생)이 병으로 쓰러지자 그 자리를 오쿠다 히로시가 이어받았습니다. 도요타에선 28년 만에 도요타 가문이 아닌 비창업가문 출신 사장이 탄생한 거였죠. 오쿠다 사장의 취임 일성은 이거였습니다. “앞으로의 도요타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것이 가장 나쁜 일이다.”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한 건데요. 그 시절 도요타는 여전히 품질 면에서 세계 1등이라 자부하는 자동차 제조사였지만, 성장세는 꺾인 상황이었습니다. 일본 내수시장 점유율은 30%대로 뚝 떨어졌고, 엔고로 수익성마저 악화됐죠. 당시 일본 경제는 버블 붕괴로 장기 불황에 빠지면서 자신감을 잃은 지 오래였고요. 도요타 내부엔 ‘이 정도면 그래도 나쁘지 않다’라며 자족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는데요. 오쿠다 사장은 외부 환경을 핑계로 안주하는 도요타의 ‘대기업병’ 깨부수기 시작했어요. 그는 이 유명한 말을 남겼죠. “도요타가 변하면 일본이 변한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 19명 임원 중 무려 17명을 한꺼번에 바꾸는 세대교체를 단행합니다. 오너 일가 의중만 살피며 변화에 몸을 사려온 나이 많은 임원들을 자르고, 젊은 인재를 대거 발탁한 거죠. 빠르고 과감한 결단력은 오쿠다 사장의 특장점으로 꼽히는데요. 사장실의 ‘미결 서류함’에는 결재 서류가 남아있을 틈이 없었다고 하죠. 사내에선 ‘사장 책상 위 서류는 1분 만에 사라진다’는 말이 나왔고요. 엘리베이터를 타는 수십 초 동안에 부하가 보고한 계획을 결재했다는 전설 같은 일화도 전해집니다. 그는 “서툴러도 좋으니, 어쨌든 빨리 움직이기 시작하라”며 경영의 속도를 강조했죠. 그 결과, 신중하다 못해 느려터졌던 도요타의 해외 진출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라졌고요. 미국 인디애나 공장과 웨스트버지니아 엔진 공장, 프랑스 발랑시엔 공장 건설이 속도감 있게 추진됩니다. 도요타의 글로벌화가 이때부터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죠. 무엇보다 오쿠다 사장은 도요타를 업계 리더로 올라서게 만드는 중요한 승부수를 던졌는데요. 바로 세계 최초 하이브리드 차량 ‘프리우스’의 조기 출시였습니다. 21세기에 맞춰 해냈습니다 1995년 10월 도쿄 모터쇼. 도요타 부스 한켠에 선보인 컨셉트카는 그리 큰 관심을 끌진 못했습니다. 그 이름은 프리우스. 도요타가 ‘21세기용 승용차’ 프로젝트로 탄생시킨 내연기관과 모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차량이었죠. 전 세계 어느 자동차 업체에도 없던 신기술이었지만, 당시엔 그게 진짜 조만간 도로를 달릴 수 있으리라 본 전문가는 거의 없었습니다. 실제로 개발 과정은 대단히 험난했어요. 같은 해 11월 개발팀이 프로토타입 차량 한 대를 조립했지만 도통 차가 움직이질 않았죠. “시제차가 처음 움직이게 하기까지 49일이 걸렸어요. 갑자기 움직인 건 아니었고, 컴퓨터도, 모터도 점차 개선됐죠. 모터로 5m를 움직이긴 했는데 엔진은 시동이 걸리지 않았고, 엔진은 시동이 걸렸지만 모터를 동시에 사용하려고 하면 멈춰 버리고. 그런 식으로 조금씩 나아졌어요. 덜컹거리며 움직였고 500m를 달린 뒤 다시 멈춰버렸죠.” (당시 개발을 맡았던 엔지니어 오기소 사토시의 회고글) 그런데 그해 말 개발팀에 날벼락 같은 일이 닥쳤으니.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오쿠다 사장이 “프리우스를 1997년 안에 내놔야 한다”고 통보한 겁니다. ‘21세기용 차량이니까 어떻게든 힘내면 1999년쯤엔 출시하게 되지 않을까’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엔지니어들로선 갑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죠. 실무진 사이에 “절대 무리”라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지만, 오쿠다 사장은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미국 캘리포니아가 1998년부터 초강력 환경규제(무공해차 의무화)를 시행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었고요.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선 ‘제3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가 열릴 예정이었죠.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이 교토로 쏠리는 시점에 맞춰 프리우스를 출시하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이었습니다. ‘팔면 팔수록 손해’인 적자를 각오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2년 뒤인 1997년 12월 10일, 세계 첫 양산형 하이브리드차량 프리우스가 일본에서 출시됐습니다. 가격은 215만엔, 연비는 L당 28㎞이었죠. “21세기에 맞춰서 해냈습니다”라는 카피와 함께 초원 위를 달리는 프리우스의 광고는 큰 화제를 모았고요. 교토 COP3 행사장엔 프리우스가 배치돼 회의 참석자들을 태우면서 도요타의 기술력을 세계에 알렸어요. “그렇게 복잡한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 건가.” 당시 유럽 자동차 제조사의 최고 경영자가 이렇게 감탄했을 정도로 프리우스는 자동차 업계를 뒤흔드는 혁신이었습니다. 이로써 도요타는 글로벌 친환경 차량 경쟁에서 선두주자로 올라서게 됐어요. 이제 도요타의 글로벌 판매량 중 하이브리드차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반에 육박합니다. 30년 전 오쿠다 사장 시절의 무모했던 도전이 지금의 세계 1등 도요타로 이어진 셈입니다. 도요타를 타도하라 오쿠다 전 사장의 결단력이 탄생시킨 또 다른 도요타의 히트상품은 소형차 ‘야리스(옛 일본 내수 제품명은 ’비츠)’입니다. 전 세계 누적 판매량 1000만대를 돌파한 도요타의 글로벌 베스트셀링카인데요. 야리스는 젊은층과 유럽 시장을 겨냥해서 개발한 소형 해치백이었습니다. 하지만 1세대 야리스 디자인이 처음 사내에 공개됐을 때 임원들 사이에선 ‘이게 정말 팔릴까?’라는 우려가 많았어요. 기존 도요타 차와는 스타일이 전혀 달랐던 데다, 계기판을 대시보드 한가운데로 옮긴 ‘센터 미터’도 파격적이었거든요. 이에 오쿠다 사장은 “이건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차”라면서 망설임 없이 이를 승인했고요. 출시 직후 2000년 ‘유럽 올해의 차’로 선정됐을 정도로 대히트를 쳤습니다. 도요타의 포뮬러원(F1) 도전 스토리도 유명한데요. 1997년 6월 오쿠다 사장은 연구개발 거점인 히가시후지 연구소를 방문해 이런 질문을 불쑥 던집니다. “F1은 어때?” F1 참가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뿐만 아니라, 리스크가 상당히 큰 일이죠. 자칫 성적이 엉망이면 된통 망신당할 수 있으니까요. 보수적이고 안정 지향적인 도요타 사내 분위기상 F1 얘기는 일종의 금기에 가까웠는데요. 이걸 오쿠다 사장이 깬 겁니다. 이제 도요타도 세계적 레이싱 무대에서 실력을 검증받을 때가 됐다는 자신감과 도전정신을 드러낸 거죠. 오쿠다 사장은 이렇게 말했어요. “F1 그랑프리는 어떤 의미에서 예술과 같은 면이 있습니다. 시대를 이끌어갈 힘이 있죠. 그런 것들이 이끌어가는 시대가 바로 21세기라고 생각합니다.” 1999년 1월 F1 참가를 공식 선언한 도요타는 2002년 데뷔전을 치렀고요. 한동안은 별 성과를 내지 못했고 이로 인해 조롱당하기도 했지만, 2009년 시즌이 되자 잇달아 2위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이후 금융위기 여파로 실적이 악화되면서 도요타는 2010년 시즌에 F1 철수를 결정) 오쿠다 히로시의 사장·회장 재임기간(1995~2006년)은 도요타의 극적인 황금기였습니다. 이 시기 도요타 연결 매출액은 2.5배로 불어났고요. 2008년, 마침내 도요타의 연간 판매대수가 사상 최초로 미국 GM을 제치고 세계 1위를 기록했죠. 하지만 그는 도요타가 잘나가던 시절에도 “도요타가 영원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며 조직에 위기의식을 불어넣었어요. 2001년 그의 신년사엔 이런 내용이 담겼죠. “한 사람 한 사람이 경영자의 관점에 서서 ‘도요타 타도’라는 발상으로 개혁에 착수해 주길 바란다. 최대의 적은 ‘내면의 자만’이다. 변혁의 기회를 놓치지 마라.” “도요타의 적은 도요타”라던 오쿠다 전 사장의 통찰. 사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마련인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말 아닐까요. 점점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요즘, 전설의 경영자가 남긴 어록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이유입니다. By.딥다이브
Matrix
쌍 따봉
08월 16일
조회수
154
좋아요
6
댓글
1
대표전화 : 02-556-4202
06235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134, 5,6,9층
(역삼동, 포스코타워 역삼) (대표자:최재호, 송기홍)
사업자등록번호 : 211-88-81111
통신판매업 신고번호: 2016-서울강남-03104호
| 직업정보제공사업 신고번호: 서울강남 제2019-11호
| 유료직업소개사업 신고번호: 2020-3220237-14-5-00003
| 국외 유료직업소개사업 신고번호: F1200020240004
Copyright Remember & Compan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