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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스타트업이라쓰고 'ㅈ소'라 읽는다. #적자탈출편
한풀이로 썼던 1부, '입사'편! 멤버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으로 '썰 본선'으로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호의적인 반응도, 그렇지 않은 반응도 있었지만 그래도 감사합니다! 이야기는 편의상 반말 또는 독백체로 진행되니 양해부탁드립니다. ■ 1부 '입사'편 : https://app.rmbr.in/hJaXpMqTYrb - 입사 4개월차에 '팀장' 직함을 받았다. 직함이 '사원'에서 '팀장'으로 바뀌었지만 크게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당장 소속원이 대표와 나, 둘(+RUN해버린 개발자) 뿐인 회사에서 "팀장님" 소리를 들어봐야 좋을게 있을까? 동네 구멍가게의 상무, 전무 같은 느낌이라 씁쓸할 뿐이지. 팀장이 되고 처음 했던 일은 회사의 손익 따져본것인데. 수익원, BM은 '강좌를 판매한다'라는 원툴의 구조였고 '어떻게든 굴러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유저를 모으고 강좌로 수익화를 한다. 뜻은 좋지만 수요가 너무 없었다. 시장 점유율은 10%가 채 안되었고. 한달 '매출'이 보통 200~400만원선에 강사와의 정산비율이 이례적으로 플랫폼이 더 낮았다. 상황이 이럼에도 '괜찮겠지?'라도 잠깐이나마 생각했었다. "그래도, (강사님들은)다 제 선배님들인데 편의를 봐드려야죠" 대표님의 말에 나는 '뭔가 믿는게 있으시구나!' 싶었다. 그게 착각이었다는걸 깨닫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표님의 차가 신형 벤츠(7000만원)에서 구형 소나타(400만원)로 바뀌며 몸으로 체감이 됐으니까. '대체 얼마를 벌어야 적자를 면할까?'싶어 계산해본적이 있다. [지출내역] 1. 서버, 호스팅, 관리료 : 월 100만원 2. 플레이어 사용료 : 월 200만원 3. 사무실 임대료 : 월 150만원(주거+사무로 대표님 주거를 겸했음) 4. 인건비 : 월 250만원 5. 강의제작료 : 월 300만원~시간당 15만원 /*한달에 강사님 5명~6명. 강의는 평균 4시간 정도 제작했다. */ 6. 잡비 : 월 20만원 따라서, 매월 지출이 820만원이 사실상 '고정 비용'이었다. 강사님과의 정산비율이 7:3으로 가정하면 매출이 1000만원일 때, 순익이 300만원이니 월 매출로만 2750만원이어야 적자를 간신히 면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한 적자 사유는 아래와 같다. 1. (수요가 없어)강좌가 많이 팔리지 않음. 2. 강좌가 판매되더라도 순익이 낮음. 3. 강좌 제작비를 온전히 회사가 부담. 근무를 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는건 계약서에 "제작비용을 강사에 청구한다"라는 항목이 있었지만 단 한번도 강사에게 제작비를 받지 못했다. "선배님들이니까.."라는 대표님의 말에 그저 암담할 따름. '이 사람은 사업이하고 싶은게 아니라 봉사를 하고싶은건가?' 흑자전환을 위해서는 당연하겠지만 지출을 줄이거나, 수익을 늘리는것. 둘 중 하나 또는 둘 다 하면 되는데 우선, 지출을 줄이기 사무실을 알아보았다. 강좌 제작비용이라도 줄이면 좋겠다 싶었다. 2달 정도를 퇴근 후 매일 2시간씩 마곡동 가산동 구로디지털단지 등을 돌며 사무실. 가능하면 스튜디오를 겸비한 매물을 찾아다녔다. 하늘이 도왔을까? 포기하고 싶을 때 즈음 라디오 팟캐스트 사무실로 사용하던 곳이 매물로 나왔다고 중개사분에게 연락을 받았다. "빨리오세요!"라고. 도착한 사무실은 방음부스와 교육에 필요한 크로마키 등 시설물 일체가 있었고 권리금은 없던 상황. 대표님께 "여기로 가야 합니다!" 입사 후 처음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2주 정도 대표님이 고민하는 과정에서 한번만 믿고 맡겨달라고 요청했고 결국, 방음시설이 구비된 11평 스튜디오로 이사를 했다. 당장 시설이 마련되니 매월 300~400가까이 지출되던 강의제작료가 줄었고 시기적절하게 청년디지털일자리 사업에 통과해 PD와 디자이너를 사실상 '0'원으로 팀을 구성할 수 있었다. 스튜디오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개인 또는 기업에게 렌트를 했고, 이사 후 3개월. 입사후 7개월차 시점에서 처음으로 적자를 면하더니 기존 촬영물을 포트폴리오 삼아 외부 영업을 통해 영상제작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었다. 입사 8개월차부터 14개월차까지 매월 흑자를 기록했다. 적게는 500만원. 많게는 3000만원. 더해 PD님과 숨고, 크몽등 시간이 날 때 마다 출장을 돌아 회사 계좌의 잔고는 점점 올라가는 와중 '그 사건'이 일어났다. 대표자가 (사설)비ㅌ코인 마진거래로 잔고 거의 전부를 날려버린것 "팀장님, 제가 사기를 당한것 같아요.." "이번달 급여는 조금 밀릴것 같습니다.." 'x발, 그만해요.. 제발.' "뭐라도 하겠지, 회산데 ㅋㅋ" "노오력하면 보답받는다!" 라는 댓글에 난 더 이상 공감할 수 없다. - 스타트업 4개월차부터 퇴사 직전까지의 이야기입니다. *. 스타트업 잔혹사 입사편 (완료) *. "살려야 한다." 홀로 월 -600만원에서 월+1500만원까지 회사 순익 올렸던 썰 (완료) 본 글의 반응이 좋다면 * 막내가 공금횡령한 썰 * 대표가 운영하던 병원이 망할뻔할 썰 + 관리비로 2000만원 청구 된 썰 * 대표가 믿었던 '선배'에게 빨대 꽃힌 썰(ing) * 입사한 날은 달라도 퇴사한 날은 통일한 썰 등 감동실화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글이 길었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서비스기획전문
2022.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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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하고 성희롱 3회 관찰한 썰 푼다
안녕하세요! 30명 이하 규모 기업에서 1년 반 근무하면서 성희롱만 3번 본 썰입니다. 이직을 많이한 편이고, 다양한 직군에 근무 해보았지만 현회사만큼 다이나믹한 곳이 없어서 썰게에 올려봅니다. 이 글 제목에 흥미를 가지고 클릭해주신 분들이 '오 이런것도 성희롱이 되는구나' 아시게 되어 주의 하시는 계기가 되셨으면 합니다. 결론이 궁금하실 분을 위한 요약: 가장 최근에 발생한 1건을 제외하곤 피해자 모두 이직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좋좋소에 근무하는 대리입니다. 이야.. 이 인트로듀스는 다 작성하고 마지막으로 수정중인데, 현 회사에 입사하게 된지 벌써 1년반이 넘었네요...😂 1. 입사 두달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제 상사(입사3개월)가 타부서 직원(입사 3.5개월)에게 - 다리가 쭉 빠졌다 -바디 셰입이 이쁘다 이런 얘길 나눠서 했습니다. 그쪽 상사에게도 보고가 올라갔겠죠? 얼마 지나지 않아 타부서 상사 대노해서 제 상사와 한판 붙었습니다. 당시 경리 직원은 충격을 받은건지 처음으로 급여가 밀리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금이야 웃는 이모지를 붙이지만 당시에는... ceo는 정신 못차리고 제 상사를 감싸면서 겉으로는 인사위에 회부했고, coo는 타부서 상사를 감쌌습니다. 제 상사를 감싼건 제 상사가 직접 얘기해줘서 알게되었습니다 ㅋㅋ 사석에서 술을 마시자고 했다더라구여. 상사는 그 길로 아끼던 두명 데리고 본인이 준비하던 회사로 옮겼습니다. 간간히 들리는 소식으로는 잘 풀리시는것 같아요. 남아있던 선임, 주임은 하나는 퇴사 하나는 저네요. 그리고 피해자분은 조금 텀을 두고 이직하셨어요. 지금은 연락이 끊겼습니다. 2. 사실 제 상사(가해자 1호)는 육아휴직 대체였습니다. 아니 지금까지 읽은게 뭔데 그럼?! 싶겠지만 저도 설명하면서 얼떨떨한데, 육휴자가 복귀의사를 표명한 타이밍이 가해자 1호에게 퇴사(이직) 자극을 줬습니다. 가해자 2호는 육휴자입니다. 복귀해서 돌아온 사무실에 두명 덜렁 있고 둘다 본인과 합을 맞춰본 직원이 아닌 경력/신입이니 일주일 외부 미팅하고 하루 벙 쪄있다가 일을 하더라구요. 남은 팀원들 으쌰으쌰하고 밥먹이고 퇴사 못하게 막고 술마시고 그러다 신입의 어깨를 만졌다고 합니다 ㅡㅡ 신입이도 짬이 있어서 바로 뭐하는 거냐고 들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퇴사.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거겠지요 비슷한 규모로 이직해서 잘 다닌다고 합니다. 이때 저도 퇴사했어야했습니다. 짧은 기간동안 연달아 성희롱과 성추행이 발생하고 부서장은 다독이질 못하니 다른 직원들도 와르르 퇴사했거든요. 회사도 충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와르르 3. 세번째 가해자는 사외이사입니다. 사외이사라 사내 소식은 모르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연이은 기강문란 상황에서 몇개월만에 다시 터진 사고여서 좀 엄하게 대처중입니다. 사외이사를 재택으로 돌려 피해직원과 분리하고, 구체적인 상황은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가해 사실에 집중해 해임 검토 등 현재진행형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리도 저도 이번에야말로 퇴사를 꿈 꾸고 있습니다. 그동안 봐온 사례를 보면 피해자가 잘못한건 아닌 것 같아요. 회사의 교육 부재와 미비한 대처, 뭐라도 된마냥 구는 가해자들이 잘못한것 같습니다. 남아있는 가해자 2호가 3번 사건에 대해 "(피해자가) 회사에서 영향력이 없어서 가해자는 남고 피해자는 퇴사하는 거"라고 결과를 예측하는 이야기를 하는게 역겹기도 합니다. 덤덤한척 얘기하지만 썩어있는 한국 회사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순간에 충실하자
2022.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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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에서 자동화팀을 기획하고 소사장 이야기 듣던 시절
현재는 IT 물류회사에 다니지만 이전 회사는 건설회사 였습니다. 나름 현장에서 시공관리도 해보고 해외 설계관리도 해서 건설 업무를 다양하게 하고자 노력했었죠. 그런데 거기서는 신사업을 기획하게 되면 여기저기 불려다녔어요. 시공만 하던 제가 풍력발전에 대한 개발업무를 하지 않나, 우드펠릿을 알아보러 다녀야하지 않나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신사업에 투입되었습시다. 나중에는 물류자동화를 테마로 한 신규사업팀에 투입되었습니다. 당시에 계열사가 세계 최고 수준의 E-commerce 물류센터를 준비중이었기에 나름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과 다르게 경험이 전무한 계열사 신사업팀은 그 업무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외부에서 수주를 하기 위한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팀의 기획방향을 잡기 위해 아는 지인들에게 구걸도 하고 정보를 얻어서 팀의 역량은 조금씩 갖추어 갔습니다. 기획의 성과는 역시 사업이 수주로 이어져서 계약이 이루어질 때입니다. 드디어 저온 자동화 ASRS 물류센터를 수주하고 계약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설계, 공사를 수행하라고 하네요. 졸지에 영업, 설계, 공사, Maintenance 를 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 경험하는 것은 역시나 힘들었지만 다행히 마무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본사로 복귀하니 다시 영업으로 하게 되구 그 프로젝트를 수주하면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 현장에 나가구 중소기업도 하지 않는 프로세스가 반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 선배들은 소사장이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모든 프로젝트는 20% 정도의 실행 이익률을 냈지만 수주규모 자체가 100억 미만이다 보니 건설사의 특성상 주목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거기서 수주해서 설계도 하구 실행도 짜구 공사두 하구 또 연결수주 하는게 소사장 같았데요. 그런 물류자동화나 공장자동화가 저를 물류회사로 이직하게 했지만 건설회사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업분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곤 합니다. 근데 옛날 생각하니까 갑자기 갑갑해지네요. ㅜㅜ
박일 | coupang
2022.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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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연봉 2배가 된 썰~
내가 얼떨결에 2년만에 연봉 2배 받게된 썰을 한번 풀어볼께~ 아무래도 썰을 풀 때는 반말이 조금 더 잘 어울리는 듯해서 말이 좀 짧은건 이해 부탁할께. 요즘은 대기업 공채가 거의 없어지고 있는 추세라고 하던데 맞아? 제가 신입사원으로 입사할 때만해도 대기업 공채라고하면 어깨에 뽕이 들어가고 그랬어. 그룹 전체의 신입사원들을 그룹연구원에 1달씩 집어 넣어놓고~ 파란 피가 흐르니(삼성), 주황 피가 흐르니(한화) 이러던 시절... 웃기지 피 색깔이 저렇게 되면 외계인 아냐~?ㅋ 아무튼 저무튼 난 운이 좋았던 건지 나빴던건지 국내 재계순위 10위권 내에 있는 모 그룹사 공채로 입사를 하게되었어... 물론 10여년 전 일이긴 하지만 대기업 계열사라면서 신입사원 초봉 3500만원...그게 대부분 다 그런 줄 알았기에 열심히 일했지~ 야근을 새벽 2시까지하고 회사 근처 찜질방에서자고 또 회사가서 야근하고... 대리 진급하고 연봉은 4500만원 그렇게 근 10년을 불평없이 다녔고, 아마 그 이벤트가 없었으면 거기를 평생 직장으로 여기고 다녔을거야... 어느날 갑자기 그룹에서 해당 계열사를 사모펀드에 매각한다고, 사모펀드로 넘어갈지 회사를 그만둘지 정하라고 하더라고~ 그냥 그렇게 먼가 팽당하는거 같아서 따라가긴 싫더라고 그래서 이직 시장에 나왔지~ 얼떨결에 새로운 직장에 합격했는데, 우와 대리급 연봉이 6000만원이라고~ 대리말년차로 들어왔어. 그리고 1년 후에 과장진급하면서 연봉이 7000만원이되었는데 성과평가도 고평가를 받았더니 8000만원이 최종 연봉이 되었고 4500에서 2년만에 8000만원으로 거의 두배가 된거지~ 결국 시장에 나와봐야~ 나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받게 되었달까~? 가끔 주변 형들이나 여기 커뮤니티 형들보면 시장에서 평가 받아보기도 전에 스스로를 저평가하는 형들이 있더라고~ 회사가 매각 안되었다면 난 올해도 4500받으면서 야근을 하고 있었을거야~!!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깐~ 그래서 뭘 말하고 싶냐고~ 뭐 그냥 그렇다고 ㅋㅋ 내 자랑이라고 ㅋㅋ 농담이고~ 지레짐작해서 포기하지말고 지금 받는 연봉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거나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이직 시도를 해보라고 이야기 하고 싶어서~ 그래야 시장 가격을 알지
빠린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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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퇴직회사의 체불금 받아내기. 17년 전, 근무했던 곳에서 체불금이 있었습니다. 저 뿐 만 아니라 30여명이 월급의 일부와 퇴직자들은 퇴직금 전부까지 하여 대기업에 차량을 납품하기 직전까지의 임금은 지급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노동부 민원 부터 시작 했습니다. 민원 넣으면 바로 받을 줄 알았어요. 만나기 싫은 사람을 굳이 대면 시키는 근로감독관. 받아야 하는 돈을 합의 보라며 네고를 하는 근로감독관. 그래도 안주는 사업주. (그런데도 55AMG를 뽑아 몰고 다니던) 근로감독관은 노동자 만을 위한 것이 아닌, 사업체의 유지도 중요하다고 하데요. 법률구조공단에 갔습니다. 민형사 동시에 진행 했습니다. 노동부 진정서의 사실확인서를 바탕으로 안내를 받아서 국선변호인 이라는 법률상 대리인을 선임 받습니다. 노동주 처음 갔을 때 보다 더 많은 서류과 과정 및 단계를 거치고 또 거쳐서, 이제나 될까, 저제나 될까 받아야 하는 돈은 수천만원 인데 벌금은 300만원 집행 하더군요. 3년 걸렸습니다. 민사소송은 이자가 원금을 넘어갔지요. 그런데 제 통장에는 한푼도 들어 오지 않았고 3년동안 법원 쫒아다니는데 만 그놈이 낸 3백만원을 훌쩍 넘게 썼습니다. 은행별로 전부 털었는데 순위에서 밀리고 또 밀리고 밀려서 기약이 없었죠. 그 사이 저 혼자 설계한 차는 월 수백대가 납품 되면서 회사는 년 3백억원 규모로 성장을 합니다. (현재는 연 2천억 규모) 그래도 안 줍니다. 고민의 고민을 하다가 집으로 갑니다. 출근 전 들여서 초인종 누르고 “사장님 돈 주세요” 퇴근하고 귀가하며 들려서 문을 두드리며 “사장님 돈 주세요” 그렇게 한달을 매일 찾아 갔는데 안줍니다. 그래서 정말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사장 아들에게 문자를 했습니다. “니 아빠가 내 돈을 안준다. 잘 말씀드려서 니가 물려 받을 회사이니 잘 받을 수 있게 체불금을 당장 지급하라고 설득 해줬으면 좋겠다” 구구절절 보냈더니, 띠링~ “내일 회사로 와라” 다음날 회사에 갔더니, 체불한 대표는 없고 회사를 인수 받은 대표가 원금의 이자 없이 세금 다 떼고 현금으로 주면서 각서를 쓰라네요.(명의 넘기고 겸직 중 이었음) 내용은 “체불된 이들에게 받았다고 하지 않기” 끝까지 지독하더군요. 저도 처음부터 대표 자식에게 까지 이런 아픔을 옮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사장님. 제가 3개월 후에 결혼을 합니다. 반대하는 결혼 이라서 집에서 알아서 하랍니다. 체불금 주시면 월세 보증금은 됩니다. 제발 부탁이니 입금 해주십시오” 했는데 답변은, “미안허이, 내가 돈이 없어. 이미 벌금 냈으니 법적으로 나는 책임이 없다네” 라고 왔거든요. 당시에는 어디 가다가 낯짝 만 비쳐라. 면상에 못받은 돈 만큼 잊지 못 할 흔적을 남겨 주리라 하면서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하지만 미워하는 마음은 전달되지 않고 내 마음에 비수로 꽂혀서 나 만 더 어둡게 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세금 뗀 원금을 보면서 “이자는요? 정신적 피해보상은요?”가 목젖에 멍우리를 남기고 돌아 나왔습니다. 다 잊고 살던 어느날. 분당 오리역 하나로마트. 그사이 제 오른손에는 아들이 안겨있었고 밝게 웃으며 어항의 물고기를 함께보며 있었는데 백발의 노인이 물끄러미 쳐다보기에 “왜 그러지?” 하는 중 둘째를 임신 한 아내가 가자고 해서 계산을 마치고 나오며 “아! 사장이구나” 돈을 수천억 벌었다고 하던데 몰골은 상노인이 되어서 마트 수족관의 열대어 구경이나 하고 있던 겁니다. 저와 15살 정도 차이 였으니 백발이 될 정도는 아니었는데 남 이용해서 착복 할 잔머리를 얼마나 굴렸으면 그리 됐는지 안타까웠습니다. (그가 바라던 삶 이었을지도?) 반면,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아빠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들과 임신 한 아내와 함께 장을 보는 모습은 어쩌면 제가 할 수 있는 진정한 복수 였습니다. 그리고 그 대표 부부가 꿈이라며 바라던 카본모노코크 차체를 만들며 사업을 합니다. 저는 이 일을 겪은 후, 제 사업체는 물론이고 남의 사업체에도 임금 지급이 우려된다고 하면 우선적으로 해결을 해줍니다. 트라우마가 되었죠. 국세가 연체되면 죽을 때 까지 추징 하듯 임금 체불은 대표가 파산을 했어도 세금으로라도 최우선으로 지급해야 합니다. 아직도 선량한 직원들을 이용하며 체불을 일삼는 악덕 사업주가 많다고 합니다. 관련법을 조속시 개정하여 죽을 때 까지 흔적이 남아서 다시는 사업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움직이는모든것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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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썰. (4부:완결)
드디어 4부 마지막까지 다 쓰게 되었음^^ 좋아요를 눌러주신 덕분에 썰전 본선으로 올라올수 있었어요~ ■ 3부링크 : https://app.rmbr.in/zlPZE2VGWrb 다들 감사해요. 고맙고 4부 마지막편 바로 갈게요. -------------------------------------------------------------------------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나는 그렇게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순간을 위해 CEO님과 마주하게 되었음. "잠깐만 기다려요. 이것만 금방 마무리 할게" CEO님은 아직 업무가 덜 끝나셨는지 책상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계셨고, 나는 테이블에 앉아 비서가 타주신 따뜻한 차를 손에 쥐고있었음. 나는 머리속으로 그동안 준비했던 내용과 시물레이션 해봤던 여러 시나리오들을 그려보면서 오늘 이 대화에서 절대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손에 쥔 차만 응시하고있었음. 한... 5분정도 지났을까. CEO님이 의자를 돌려 테이블로 와서 앉으시자마자 말씀하셨음. "COO한테 이야기 들었어. 퇴사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 내가 예상한 질문이 아니었다.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잠시 침묵하고 있을 무렵, CEO님이 다시 말을 이어갔음. "1주일 만 더 생각해. 그리고 다시 이야기하도록 해요" . . . "COO에게 미리 이야기했던 내용은 이미 충분히 보셨을것이다. 그런데 왜 그에대해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을까..." 오늘 이순간에 오기전까지 몇백번을 생각해왔던 머리속의 여러 시나리오들은 CEO님의 저 말한마디에 얼어붙어버림. 뭔가 찜찜한 느낌.. 그렇게 CEO실을 나와서 어떻게 되었냐는 질문에 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는 이야기만으로 3일의 시간이 흘러가던날. 갑작스런 오후 CEO님 주관 임원소집회의가 열리게 되었음. "이번 구조조정 대상자 리스트 입니다" CEO님의 이야기로 시작된 회의는 시작하자마자 엑셀파일로 구조조정 대상자의 리스트가 스크린에 비춰지고 있었음. 그리고.. . . 그 대상자 중 우리 부서의 조직원들은 단 한명도 들어있지 않았음. . . . . . . 회의가 다 끝나갈 무렵 CEO님께서는 나만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나가도 괜찮다며, 회의 시간 좀 더 남았으니 잠깐 이야기 괜찮냐고 물으셨음. 그리고 모두 나간뒤 CEO님과 나만 둘이 남은 회의실. "어때? 그동안 좀 다시 생각해 봤어?"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웃고 계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음. 그말을 듣는순간 나는 갑자기 눈물이 터져서 앞으로 두번다시 울지 않을 사람 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음. 그건 그동안 마음의 설움이 복받쳐서 였을까.. 아니면 조직원들을 모두 살렸다는 안도감이었을까.. 얼마나 울었는지 절대 멈추지 않을것 같던 눈물이 CEO님이 휴지를 건내는 순간 진정되었음. "미안해. 내가 이런일을 겪게해서 많이 힘들었지?" CEO님의 이 말 한마디에 다시한번 눈물이 터져서 고객를 들지못하고 어깨만 들썩 거리고 있었음. 그때 CEO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음. "다 내새끼들인데 나는 누구는 살리고 누구는 자르고 싶겠어? 능력없는 CEO만나서 너희가 고생하는거 나도 알아." "이번 구조조정은 전체15%정도로 하기로 회장님과 마무리 지었어. 구조조정 대상자 리스트에 대한 추가 의견있어?" 리스트에는 우리 부서 조직원은 단 한명도 없는걸 이미 봤기에, 내가 더이상 낼 수 있는 의견은 없었음. 이어서 CEO님이 한말씀 더 하셨음. "하지만 계약직 만료되는 그친구는 이번에 정직전환은 힘들어. 지금회사에서는 더 인원을 늘릴수 없어. 이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지?" 최초 30%구조조정 예정이던 회사는 15%정도의 구조조정으로 마무리가 되었음. 그리고 15%에 속한 사람들은 대부분 계약직만료기간이 얼마남지 않거나 인턴사원 그리고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경력직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음. 특히 새로입사한 경력직들은 약 6개월 정도를 보상으로 권고사직 처리가 되었다고 전해들었음. 우리부서의 생존은 과연 나의 노력이었을까?... 나는 다른부서의 희생으로 우리부서가 살수 있는 방법만을 생각했지만, COO 그리고 CEO님은 회장님의 지시를 최소화 하고 다함께 하고자 노력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지금의 결과일 것 이다. 내가 선택했던 방법은 과연 현명했던 방법이었을까... 단지 편협한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자리로 돌아와 어쨋든 이 결과를 빠르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리더들을 모두 소집함. 그리고 다시 모인 회의실 안. " 우리 부서는 계약직 1명 외 구조조정 대상자는 없어. 다들 맘고생하느라 고생했다." 이말이 끝나자, 난 모두 환호하고 기뻐할거라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다들 표정이 기쁨인지 슬픔인지 알수없는 표정으로 침묵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이자리에 모두 함께 남아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 . . 나는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그때의 일이 잊혀질때쯤, 왜 그때 좋은 결과가 나왔었는데도 다들 표정이 어두웠냐고 물어보았다. 그들이 이야기 하길, 어쨋든 남아서 기분이좋았지만.. 살아남았다.. 라는 느낌.. 그 상황 자체가 몹시 얹짢았다고 한다. '내가 살면 누군가가 죽어야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행복한 느낌을 얻을수가 없었고, 그전에는 회사가 우리가 함께 일하는 공간으로 느껴졌지만 그 사건 이후 회사는 언제든지 잘릴수 있는 불안감을 가지고 일을 해야 만하는 공간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아마도 그래서 그때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이상한 어떤감정 이었다고... '구조조정'이라는 못을 빼낸 자리에 생긴 구멍은 '후유증'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었다. . . . 그 일이 있고나서 3개월 후 우리 조직원 중 한명이 다른곳으로 이직을 했다. 약 6개월이 지나서 우리 조직원중 두명이 또다른 곳으로 이직을 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던 즈음 나와함께 우리 조직원도 같이 이직을 했다. 우리가 그렇게 지키려고 애썻던 그자리에 우리는 더이상 없다. . . . . . . . . . "우리들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경영상황에 따라 회사의 부채가 되기도 하고 자산이 되기도 한다." . . . . . . . . . 그때.. 우리가 원했던 것은 회사에서 살아남는 것이었을까?... . . . . . . . 적어도..내가 원했던건 우리는 부채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원했던건 그저 우리를 보호하는 일 이었을 것이다. . . . . . . . . . . . . . 그동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프롤로그] 안녕하세요. 글쓴이 규칙없음 입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2016년 스타트업에 입사하고 2018년에 대기업에 인수합병되어 2019년~2020년 사이에 일어난 실제 구조조정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내용에 나오는 상황과 인물들은 실제 인물들이며, 이분 들은 현재 국내대표기업의 리더로써 좋은 커리어를 계속해서 만들어 가고 있답니다. 심각했던 상황을 줄이고, 음슴체로 써내려가니 생각보다 편하게 작성해 나갈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빨리 다 쓸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응원해 주신 덕분에 틈나는 시간마다 계속해서 썼던것 같아요. 열심히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 주신 리멤버에게 감사합니다. . . . 마지막으로, 이글을 올리기전에 여기에 등장하는 조직원들에게 허락을 맡고 올렸는데요. 아마 지금 이글을 보고있을겁니다. 그때의 조직원들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애들아~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시간이 지나도 우리의 이야기가 좋은 추억으로 남도록 우리 앞으로 더 성공하고 계속 노력하자~^^" . . . . . 그동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규칙없음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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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쪽 다 빨리고 퇴사한 썰
예전에 스토리지 업체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저는 거의 스타팅 멤버로 들어가서 인원이 태부족이었습니다. 이때 그냥 도망쳤어야 했는데...... 무튼 제일 처음 맡은 일은 AS와 CS, 기술지원 담당이었습니다. 유통을 맡고 있는 협력업체 파견 직원 형태로 일을 했지요. 문제는 그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이 저 하나였습니다. 협력업체에서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그게 어디 성에 차겠습니까. 그래도 이때까진 그럭저럭 할만했습니다. 본격적으로 기가 빨리기 시작한 건 서비스센터를 차리면서입니다. 센터를 세울 거면 인력을 뽑아야 할텐데.. 이때도 담당 직원은 저 하나였습니다. 이때는 애사심에 불타오를 때라 빨리 사람을 붙여주겠다는 말만 믿고 혼자 해보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죠. 이때부터 한 반년 정도가 완전히 지옥이었습니다.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판매량이 대폭발 수준으로 늘어났거든요. 밀려드는 일감이야 그렇다 쳐도 진상.. 아니 싸이코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싸이코들 응대하느라 우울증이 찾아왔고 이때부터 인감혐오 정서가 강하게 자리잡았습니다. 본사에선 무슨 일이 있는지 대충은 알고 있지만 사람은 안 뽑히고. 한참 뒤에 사람 뽑히면서 숨통 트일 줄 알았으나 본사에서 지침이나 매뉴얼을 보내준 게 아니라... 결국 다 제가 데이터로 남겨두는 사후처리까지 끝냈습니다. 3~4인분 업무를 처리한 셈인데도 월급은 200도 못 받았습니다. 이정도 공로를 세웠으면 당연히 월급 인상이 있겠지 했는데 말로만 올려주겠다 하더니 결국 입 싹 닫길래 퇴사했습니다. 허허허........ 남는 거라곤 우울증과 인간혐오... 이 일을 계기로 어디를 가더라도 내가 피해보는 게 너무 싫었고, 그래서 한 곳에 오래 못 다녔습니다. 시간이 꽤 지난 일인데도 생각하니까 또 빡치네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런 노예 취급을 받았을까...
객주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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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스타트업이라쓰고 'ㅈ소'라 읽는다. #입사편
본 글은 지금은 퇴사한 전 직장. 스타트업이라 쓰고 ㅈ소라 읽는 회사에 시간을 날려버린 한풀이 글입니다.🥲 - 나는 오랜기간 작가 생활을 해왔다. 드라마나 영화 등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아닌 방송국 산하의 미디어제작사 소속 섭외작가로. 3년정도 근무했을까? 내가 섭외한 병원의 원장님 인터뷰 영상이 방송에 정상적으로 송출된것까지 확인했다. 방송이 송출되고 2주정도 지났을까? 원장님 연락이 오더라. "ㅇㅇ님, 혹시 저랑 일해보실래요?" 뜻 밖의 이직제안. 내가 근무했을 때는 작가 처우가 좋지 않았고,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동경 그리고, 의사들을 대상으로 커뮤니티를 만들고 강좌를 제작해 판매하겠다! 라는 원장님. 아니, 대표님의 비전은 좋게만 보였기에 "잘, 부탁드립니다." 입사했다. 입사한 회사의 현실은 꽃길인줄 알았지만 불꽃길이었다. 재택근무를 보장하겠다던 대표님. 출근 후 1주일만에 내근요청을 받았다. 근데. 사무실이 없더라? 공유오피스, 그것도 회의실 2시간만 예약하고 오후는 카페에서 업무를 도왔다. 분명 도우기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단 2개월 만에 대표자의 일마저 일개 사원 나부랭이인 내가 소화하는 수준까지 오더라. 강사님들 일정조절 강사님 의전(렌트카 대여 및 서울역, 공항 등 기사노릇) 강좌 순익 분석 외주관리 직원 추가 채용 협업문의 및 사용자 응대 영상편집 업무를 돕는게 아니라 하루 연차를 쓰면 회사가 돌아가질 않더라. 그런 와중 개발자로 근무하던 대표님의 사촌 동생이 본업을 이유로 탈주했다. 당시엔 '뭐 저런 사람이 있지?'싶었는데. 누구보다 현명했던 사람이더라.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급여는 밀리고 약속된 수준의 처우가 지켜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버텼다. '대표가 의산데 회사가 망하겠어?' '회산데, 뭐라도 되겠지.' 안일했다. 또, 노력한 만큼 알아주는걸 너무 당연시했다. 무엇보다 회사의 대표님은. 의사라는 프라이드가 천장을 뚫고 올라갔지만. 돈버는 머리는 없다는걸. 난 너무 늦게 깨달았다. 입사 4개월차. 팀장이라는 직함을 받고 회사의 현금흐름을 볼 권한이 생겨 하나씩 뜯어봤는데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더라 매달 고정적으로 600만원씩 적자가 나는 구조였다. 투자를 받은것도 전무한 상황에서 그제서야 왜 급여가 밀리고 약속된 급여 미만으로 월급이 입금된지 깨달았다. 'ㅂ신같은 ㅈ소기업..' '지금이라도 퇴사할까?' 이 모든게 고통의 시작에 불과할거란 사실을 난 몰랐었고. 알더라도 믿고 싶지않았다. 'x발, 내 인생' - 스타트업 입사부터 근무 4개월차까지의 이야기 입니다. 반응이 좋으면 몇가지 에피소드를 더 풀겠습니다. *. "살려야 한다." 홀로 월 -600만원에서 월+1500만원까지 회사 순익 올렸던 썰 *. 직원 3명을 추가 채용하고 인건비는 0원으로 돌린 썰 *. 입사 2개월차 회사 막내가 공금 황령한 썰 *. 대표가 공금으로 비ㅌ코인 마진거래로 회사 공금 타노스한 썰("팀장님, 제가 사기당한것 같아요.") 등등 골 때리는 에피소드가 많지만 현생이 바빠 우선 여기까지만 적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되세요.
서비스기획전문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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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이 없네요ㅜㅜ
제나이 35살에 지인의 도움요청으로 내회사다 생각하고 들어와서 더운여름, 추운겨울에도 필드를 열심히 다니며 일해서 회사를 열심히 키웠습니다. 뒤돌아보니 43살 아저씨가 되었네요. 요근래 대표랑 미팅하면서 느낌은 있었지만, 메인업무 떠나 다른 업무로 가라더군요. 급여도 낮아줬구요. 그나마 가족이야기 하며서 ㅎㅎ 요청은 했지만. 가장이란게. 혼자라면 박차고 나왔을텐데ㅜㅜ 회사에 대한 애정이 있다보니 참 힘드네요. 8년이란 시간이 덧없군요. 그래도 알아줄거라 생각했는데 저혼자 생각이었다는게 슬프네요ㅜㅜ 이런젠장. 아오!~~~~~~~
suntree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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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예술가
#말 작가는 원래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있을만한 사실을 가상에서 그려내어 읽고 보고 듣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느끼게 한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예술가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반전의 묘미가 그렇다. 예비 며느리가 싫었다. 그 며느리 될 혜진 역시 시어머니를 두려워한다. 자신을 미워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머니 저 혼수에 필요한 것 없는데 꼭 주시려면 저에게 사랑을 주세요" 그 한 마디에 시어머니는 마음(사랑)을 주고 만다. 어쩌면 저런 상황에서 저렇게 예쁜 말을 했을까? 내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내가 내 표정을 보더니 "와 감동이다. 당신 지금 TV 대사 그 말 때문에 눈물이 난다고?" 말의 힘이다. 그 말 장난은 작가가 허구로 쓴 것이다. "현재가 괜찮아 보이더라. 삼일 내내 장례식에 찾아와 지키고" 그 말을 하니 "가족이란 함께 있어주는 것이잖아" 라고 답한다. 그래서 시청자가 가장 마음에 들게 시나리오를 쓴다. 작가는 글과 말로 표현하는 예술가다. #작가 #거짓말 #허구 #드라마 #혼수
반가운사람
202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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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썰. (3부)
다행히 많이 응원해준 덕분에 2부도 썰전 본선에 진출하게 되어 3부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음.^^ ■ 2부링크 : https://app.rmbr.in/pun7KWteVrb 다들 감사해요, 3부 바로 시작할게요. ------------------------------------------------------------------------- "잠깐.. 지금 이건 사실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두가지의 문제인데?. " 나는 다시 리더들을 카페로 불러모았음. "나도 이번에 회사를 같이 관두겠다고 이야기할거야." "그리고 내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딜을 할거야" 생각해보니 이건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두가지의 문제였음. 이제껏 나는 이문제를 '우리부서 인원의 30% 감축'이라는 하나의 문제로 보고 있었지만 새로운 사고로 생각하게된 이 사건의 두가지의 문제는 이랬음. 1. 회장님의 지시는 구조조정을 30% 하라고 CEO에게 지시하셨다. 2. 회장님의 지시를 받은 CEO님은 각 부서별 30%감축을 계획하셨다. . . . 애초에 이번 구조조정은 똑같이 30% 감축될 필요없이 회사가 30%가 감축되면 되는일이었던 거임. 즉, 다른 부서에서 30%이상 감축된다면.. 우리부서는 그보다 덜 감축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 더이상 다른생각은 할수 없었음. . . "지금 나한테 필요한건, 나의 이 '퇴사'라는 무기가 스노우불처럼 크게 불려져서 '회사의리스크'정도로 느껴질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야만 한다." 이게 성공할 수 있으려면, 방법을 찾아야만 했음. 그리고 내가 찾은 방법은 CEO에게 나와 우리 부서의 중요성을 회사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전달 하여 CEO의 계획을 바꾸는 일이었음. 그러기위해 내가 가장 먼저 선택한건 COO를 만나는 일이었음. 우리부서의 구조조정이 COO가 계획중인 사업상에 리스크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을 전달하고 COO의 의견이 CEO에게 전달되게 하는 일이었음. . . 현재 COO는 회사의 영업총괄자 였고 신사업을 꾸준히 추진하고 계셨지만 아직은 이렇다할 성과가 나온게 없는 상태였음. 그래서 COO님은 회사가 기본적으로 발생시키는 수익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게 가장 중요한 상황이었고, 나에게 현재사업을 100% 위임해두신 상태였음.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퇴사'를 한다고 하면, 현재사업 대체자가 없는 COO님은 고민하시는 계획들에 차질이 생길것임. 나의 키맨은 지금 COO였음. 그러면 나의 '퇴사' 그리고 우리부서의 구조조정은 '회사계획의 리스크' 라는 미래계획의 더 중요한 문제상황으로 이야기 될것이고 CEO님은 적어도 나를 회사에 잔존시키기 위해 큰 범위의 딜을 요구할 것이다... 더 이상 생각할 수 있는 묘수는 없었음. 그냥 이게 조직원들과 내가 같이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을 했음. 이 주제를 이야기 하기위해 난 1주일간 우리부서 그리고 구조조정 대상자가 부재시 회사가 계획하고 있는 일에 얼마나 문제가 될수 있는지 논리를 만드는데 집중하고 집중했음. . . . 그리고 약 1주정도가 지났을 무렵 나는 COO님에게 티타임을 신청했음. COO님과 티타임을 가지며 감정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최대한 겸손하게 나와 우리부서가 이번 구조조정이후 COO님이 준비하는 계획에서 차질이 생길수 있는 부분을 구조조정대상자의 현재 역할범위와 성과데이터로 정리해서 이야기했음. 그리고 한가지 말을 덧붙였음. "그리고 구조조정이 된다면 제가 남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일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저도 퇴사하겠습니다." COO님은 이번 구조조정이 자신에게도 얼마나 곤란한 상황인지 그리고 준비하던 여러가지 계획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시며 이 계획들을 어떻게든 실현시키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셨음. . . 그로부터 약 3일뒤 CEO님의 비서로 부터 연락이 왔음. . . "CEO님께서 혹시 내일 오후2시에 면담 가능하신지 스케줄 문의 주셨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COO님이 CEO님에게 우리부서 부재시 리스크 그리고 나의 퇴사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눈 뒤 만들어진 면담이란 것을 직감할 수 있었음. 그리고 다음날 약속된 시간 CEO님 업무실 앞에 도착함.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나는 그렇게 내인생에 가장 중요한 순간을 위해 CEO님과 마주하게 되었음. ---- 3부끝 ------ 응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거의 끝나가네요. 많은 분들이 기다려주셔서 주말에 가족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노트북을 켜서 적어내려가보았습니다. 부족한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재미있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내용이 마음에 드셨다면 좋아요를 꾸욱~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 ■4부링크 : https://app.rmbr.in/xEuw1xDXWrb
규칙없음
202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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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인연이 있듯, 직장연도 있을까요?
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입사 후 빠르게 제 역할을 하면서 부서내 상사, 선배들에게 인정 받고 새 직장에 잘 정착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장생활은 순조로웠고 일도 즐거웠습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제가 정규직이 아니었다는 점이었죠. 그 회사는 여러 고용형태가 있었는데, 정규직, 계약직, 보조금 계약직이 있었습니다. 공채를 거쳐 입사한 정규직은 승진할 수 있지만, 3~5년 마다 부서이동을 해야 했고, 제가 있던 부서 특성상 부서 내에 정규직은 2~3명 뿐이었습니다. 계약직은 수시채용으로 특정 부서에서 필요한 인력을 채용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부서이동이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고 계약직 2년 후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서 호봉도 오르고 고용안정성이 생기지만, 승진은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죠. 마지막으로 저의 고용형태였던 보조금 계약직. 국책사업의 보조금으로 채용하여 급여를 지급하기때문에 사업기간동안에만 고용된 것으로 사업기간이 종료되면 고용계약이 해제되는 고용형태 입니다. 그외에도 출산대체 계약직도 있었네요. 그 당시에는 암묵적으로 정규직 시험을 보지 못하게 하는 부서 분위기에 따라 정규직 시험을 볼 생각은 못했고, 무기계약직이 될 수 있는 계약직으로 재채용되어야 했죠. 계약직 자리가 날 때마다 보조금 계약직이나 출산대체 계약직 직원들에게 채용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 기회는 입사 순서대로 주어져서 저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자주 자리가 나지않았습니다. 재직하는 동안 제게 3번의 기회가 왔습니다. 첫번째 기회는 입사하고 얼마 뒤에 있었지만, 다른 팀에 있던 1주일 입사 선배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이건 제 기회가 아니었다 생각했기 때문에 아쉽지 않았습니다. 그 후 두번째 기회는 첫번째 기회를 차지했던 선배가 이직하며 생긴 자리였습니다. 부서행정을 담당하시던 분이 제 순서라고 했지만, 얼마 뒤 출산대체계약이 끝나는 선배의 순서라고 정정했습니다. 세번째 기회는 무기계약직 심사에서 떨어진 선배가 퇴사하면서 생겼습니다. 이제는 정말 제 순서라서 보조금 계약직으로써는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채용일에 맞춰 미리 제출해두고, 계약직으로 재입사하는 것이었죠. 이 와중에 행정절차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통상적으로 1주일이었던 서류접수기간은 저를 배려한다는 이유로 2일로 단축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때 일이 너무 바빠서 채용공고를 제때 확인하지 못했고, 봤다고 해도 전 직장에 경력증명서를 떼러 갈 시간도 없었죠. 그렇게 서류접수기간에 지원을 하지 못하면서 계약직 입사는 물거품이 됐습니다. 설상가상 제 사직서는 이미 수리되어 퇴사를 돌이킬 수도 없었죠. 그렇게 계약직 면접이 있던 날, 제가 퇴사한 보조금 계약직 자리에 제가 다시 면접을 보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계약직으로 입사해야했던 날 보조금 계약직으로 재입사를 했죠. 3번째 기회를 놓치면서 제 마음은 무너졌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채용공고를 늦게 확인한 제 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서류제출기간 단축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던 행정직원을 원망했습니다. 그 후 1달 뒤 4번째 기회가 왔습니다. 제가 재입사할 때 계약직으로 입사한 그 분이 바로 퇴사하면서 제게 기회가 온거죠. 하지만 저는 계약직 재입사를 포기했습니다. 이미 마음속에서는 이 직장과 나는 연이 아니었다,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할 운명이었던 거라고 정신승리를 해버린 뒤였죠. 깐깐하기로 유명하셨던 상사분께서 제 능력을 인정해주시며 이직에 대해 용기를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여기 계실 분이 아닙니다. 더 높은 곳 가서도 인정받으실 분입니다. 가서 능력을 맘껏 펼치세요." 누누히 해주시던 말씀이었지만 그냥 칭찬으로만 듣던 그 말씀이, 이 상황에서 들으니 큰 용기가 됐습니다. 계약직 재입사 포기 후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열심히 이직준비를 했습니다. 이미 한차례 재입사하며 연차가 리셋돼서 한달한달 생기는 연차를 모아 필요한 교육도 듣고, 퇴근 후에는 기업들의 채용공고를 찾아보고 이력서를 썼지만 좀 처럼 면접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이직 준비 2달만에 처음으로 합격한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업계지만 제 포지션은 달라져서 계약상 갑으로서 전 직장을 대하게 됐습니다. 고용불안정을 극복하기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직했었지만, 지금까지도 잘 다니고 있습니다. 좀 더 잘 되려고 이런 시련을 지나왔던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정말 인생 살면서 겪어본 제일 큰 마음고생이라 힘들었는데, 지나고보니 귀여울 정도로 작은 시련이었던 것 같아요. 직장연이라는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곳과 저는 연이 아니었다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네요.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 중, 지금 어떤 시련을 겪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더 잘되려고 시련이 온거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극복하실거예요. 화이팅입니다!
엉뚱한꼰대
202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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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제안서 제출 실패 썰
그저 중소기업 상사가 프로젝트 제안서를 작성하고 내가 받아서 제출을 하면 되는 날이었다 오전 10시 마감인 프로젝트 제안 상사는 무슨 대학교 과제하는마냥 하루전날 회사에서 밤까지 새며 제안서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무려 9시 56분에 나에게 카톡으로 제안서를 줬다 심지어 완성본이 아닌 목차 수정, 회사 직인 안찍힘 그외 실적증명 및 재직증명서 미첨부…… 나는 당연히 10시까지 제출을 못했고 상사는 나한테 왜 제출 못했냐며,,,,^^할많하않 이번일로 나는 입사한지 한달반이 되었지만 퇴사를 결심 앞으로도 이렇게 일을 한다면 어떤일이 펼쳐질지 너무 뻔히 보이기 때문에 차라리 빠르게 퇴사해서 다른일을 알아보는게 나은거 같다…. 어디다 화풀이라도 하고싶어서 처음으로 올린다
지유지구
202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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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일곱 회사 겸직 썰🕚
일곱마리 토끼를 잡아 봤습니다. 시작은, 육아 였습니다. https://youtu.be/qTxNBFHOA7w 2011년, 해외취업을 몇 일 앞둔 어느날. “임신했어요” 아내의 한마디. 분명히 즐거워 해야 하는 일 이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계획에 없던 일 이라서 시간이 멈춘 듯, 이 공간에서 없어지고 싶었습니다. 다시 자동차 밴더사에 취업을 하고 매일 저녁이 음주 였지요. 태교가 아빠의 음주 취침 이었을 만큼. 아이가 태어나던 날, 저는 태어나서 가장 뜨거운 눈물을 흘렸답니다. “내가 지금까지 뭘 한거야?” 8개월 동안 제가 보인 가장의 모습은 제 인생에서 지우고 싶을 정도로 못난 행동이었습니다. 자동차 개발 다 해봤다며 항공기 제조업체에 가서 근무하다가 비행기 만드는 기술을 직접 익히겠노라 해외 취업과 박사학위 코스도 준비했는데 수년간 준비해 온 것이 물거품이 됐다며 자책하고 질책하고 있었거든요. “아~ 다시 자동차 회사를 가야 하다니…” 이틀 후, 회사에 출근을 하여 사직서를 제출 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내 아이를 돌보리라” 이런 마음이 통했을까요, 회사에서는 이례적으로 #재택근무 를 발령 내렸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제가 설계엔지니어로 데이터로 말하는 업무를 하였고 고객사의 대응은 이메일 또는 통화로 충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육아가 시작 되었죠. 처음에는 가사와 업무가 중첩되었지만 갓난아가의 취침 시간이 곧 업무 시간이 되며 균형을 찾았습니다. 심지어 6개월 후 최우수사원 상을 받았죠. 파격적인 대우에 열심히 하여서 관리하던 업무의 매출이 6배 성장 했으니까요. 업무는 익숙해졌습니다. 이 업체는 이후 7년동안 겸직을 했습니다. 육아가 익숙해지는 만큼 업무도 수월해졌습니다. 당시 제조문화 확산, 메이커문화 등등 태동기 였는데 저를 찾는 사람들이 생겼고 한가지 일이 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알고 지내던 기업에서 알바를 주며 세가지 일을 하게되었으며 둘째가 생겼을 무렵에는 새벽 분유를 먹이는 시간에 아이를 안고 설계를 할 수 있을 만큼 네가지 일이 익숙해져서 박근혜 시절 1회 창업공모전에서 우승하며 제조사업도 시작하게 되어 다섯가지 일을 하게 되었는데 수년 전 고사 한 유아전동차 업체에서 연구소장 제의를 하여 여섯가지 일을 하게 되었고 학생들과 호주 종단 랠리를 준비하면서 일곱가지 일을 동시에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최적화 가 되어서 오히려 짧은 시간에 빠른 판단을 하는 연습이 지속되며 익숙해졌습니다. 대기업 PT 와 정부 기관장 오찬에도 오른손에는 첫째, 가슴에는 둘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한동안의 휴식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다 싫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2년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사람도 만나지 않았던 때도 있습니다. 너무 빠르면 일찍 도착하여 고독하게 되더군요.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아빠로써 내 아이가 자라는 모든 순간들을 담을 수 있기에 행복했습니다. https://youtu.be/w73PrmjTVfE 많은 분들이 시도하지 않고 지례 겁을 먹으며 걱정을 합니다. 사람은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는 만큼 더 하게 된다는 것이죠. 지금은 다시 일을 늘려서 4가지를 겸업 중 입니다. 그래도 아이들과 노는 것은 언제나 아빠의 즐거움 입니다. https://youtu.be/uPR_G1xcBbk 이제는 어느덧 많이 자라서 아빠가 벌어오는 돈이 함께하는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지만 먼 훗날 눈을 감을 때, 가장 즐거웠던 12년 이었다고 자부 할 듯 합니다. “하면 되는 겁니다”
움직이는모든것
202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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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한 재택근무를 기술지원하게 된 썰
코로나19확산으로 인해 많은분들이 재택근무를 경험하셨을 것 같습니다. 저희회사 또한 VPN을 통해 재택근무를 진행하였고 VPN을 운영하던 저에게 문의도 많이 오고 기술지원을 빈번하게 해드리며 바쁜기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이른아침 출근시간대에 재택근무 VPN에 제대로 동작하지않는다는 연락을 받고 VPN설정이나 사내 재택신청시스템등을 확인하였으나 문제가 없었고 임직원분들의 PC에 설치가 되어있어야하는 인증서가 잘설치되어 있는지 확인하였으나 잘모르시더라구요. 그럼에도 이미 재택근무를 하셨던 내역은 있으셨구요. 적극적인 지원을 위해 사용중인 컴퓨터를 원격으로 접속하여 조치를 해드리고 정상접속되는것을 확인하였는데 조금지나서 컴퓨터를 재부팅하니 접속이 안된다고 하시는겁니다. 제가 운영하던 VPN에서는 설정상 특이사항이 없다보니 개인PC에 혹시 특별한 소프트웨어가 설치되어있는지 여쭤보니 그때서야.. "오늘 호텔에 와서 방에 있는 컴퓨터로 접속을 해보다보니 어떤프로그램이 있는지 잘모르겠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요즘 '워케이션'이라는 용어도 있지만 코로나19확산을 방지하기위해 재택근무를 시행 중임에도 재택근무기간에 호텔에서 사내시스템접속을 하시는게 맞나도 싶고 호텔컴퓨터를 저에게 확인을 요청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 하루였습니다. 재택근무를 지원하면서 재택근무를 사용해도 될지 저에게 물어보시는분, 어떤준비를 해야되는지 설치해달라고 사무실로 개인노트북을 가져오시는분, 아이가 병원진료가 있어서 재택근무를 사용하시겠다고 저에게 당일 연락하시는분. 다양한분들이 계셨지만 이런분은 처음이었네요. 참고로 저는 OA지원담당, 인사담당이 아닌 정보보안담당입니다. 재택근무시스템을 운영하시면서 다른분들은 어떠한 경우가 있으셨을까요?
Jamie
202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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