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이란 예측할 수 없고, 변덕스러우며, 가끔은 자신이 예상하고 원했던 방향과는 전혀 딴 방향으로 일이 풀리는 사례가 너무 많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나는, 설계실 책상에 앉아서 CAD프로그램과 씨름하며 엔지니어로서 경력을 쌓아가는 꿈을 꾸고 회사에 입사했다.
신입사원 때, 나는 기계장비 설계 및 개발 업무를 부여받고 1년 가까이 일을 배우면서, 좀 더 전문지식의 폭을 넓히고자, 시간이 날 때마다 사내에서 진행되는 각종 세미나, 교육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 했었다.
그날도, 업무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인 오후 5시경, 'CAD시스템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사내 세미나를 개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찌감치 세미나에 참석했다.
업무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시간이라서 그랬는지 참석자는 별로 없어 난 맨 앞자리에 자리잡았고.... 세미나가 시작 되었다.
그런데, 세미나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대부분 참석자들이 나이가 상당히 있는 분들(?)이었고, 이윽고 세미나가 시작한지 10분쯤이 지나서 사장님이 들어오시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그때 세미나가 회사내 중역 및 간부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난 당황한 나머지 그 이후에 발표자가 하는 말을 거의 듣지 못했던것 같다.
그러나, 맨 앞에 자리를 잡은 터라, 세미나 중에 그것도 사장님이 앉아 계시는 가운데 세미나 중간에 혼자서 빠져나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어쩔수 없이 거의 1시간을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했고, 불편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릴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세미나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세미나를 진행하시는 교수님은 다양한 현장의 소리를 듣겠다며, 현장상황에 대한 질문을 하라고 했지만, 거의 70~80명이 넘는 간부 및 중역들 중에서 누구하나 질문이 없었고, 주위를 살펴보던 발표자의 눈이 나와 마주지게 되었다.
난... 눈을 꼭 감고 외쳤다... 제발.... ..............!!
그러나 불행한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고 했는가?
"맨 앞줄에 계신 젊은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순간 내 머리속은 거의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었고, 난 당황해서 무슨 질문을 했는지도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마, CAD기술을 통한 생산성 향상... 미래의 공장자동화.. 등에 대해 횡설수설 하게 질문했던 것 같다.
그 다음날, 아침에 출근을 하자마자 부서장은 나를 호출해서 도대체 당신은 무슨 생각으로 간부 세미나에 참석했느냐고 다그쳤다... 임원회의에서 거의 스타가 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 난 그저 유구무언...
그런데 그 다음날, 난 갑자기 기술전략연구팀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고, 한참 뒤에야 그것이 사장님 지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은데,
사장님은 그 질문에 대단히 감명을 받으셨고, 새로 구성되는 TFT에 나와 같이 젊은 인력들을 대거 포함시키라는 특별지시를 하셨단다..
그 이후로 난, 내가 꿈꾸던 .. 컴퓨터 앞에서 CAD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기계를 설계하는 나의 모습이 아닌,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오게 되었고.. 그것이 벌써 30년이 지났다..
가끔은, 내가 그날의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그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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