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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방법 고민
새로운 회사 출근이 코앞입니다 집이 대전, 회사는 화성 정남단지 내 위치 셔틀버스는 오산역, 수원역에서 7시 출발 1. 자차로 통근 왕복 230킬로, 왕복 3시간 이상, 왕복 주유비 톨비 5만원(월 110깨짐) 피곤 극심(직전 회사는 왕복 100킬로, 왕복 2시간, 왕복 주유비 2만원) 2. 기차 정기권+자차 대전역~오산역 ITX 정기권 22만원(6시 기치 타려면 집에서 5시반 첫버스 타고 나와야됨) 오산역 7시반 도착하면 회사셔틀은 이미 떠남 ㅠㅠ 오산역 환승주차장 월주차 추첨해서 당첨되면 8만원 내고 자차 주차 자차로 회사 출퇴근 퇴근할때 오산역 주차장 주차하고 20시 기차타고 퇴근해서 대전집에 오면 22시 월 40 정도 비용 소모되나 잠잘 시간이 모자람 ㅠ 야근 잦아지면 집에 못가고 모텔가야하나? 3. 단기임대 회사 셔틀버스 지나가는 정류장 군처에 원룸 얻기 싼데는 3개월 단기임대 보증금60에 월40 나옴 집상태는 안좋음. 그냥 잠만 자는 용도 주말엔 집에 내려가야됨 몸은 덜 피로함 4. 모텔 회사근처 숙박 3.5만원, 월 80만원 나감 빨래할곳은 따로 구해야됨 원룸보단 깨끗? 어떻게 가야할지 아직까지도 고민입니다
해담채
16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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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제가 온다고 하면 괜히 밖에 나와 있습니다
주말에 엄마 아빠 집에 갔습니다. 도착하기 10분 전에 엄마한테 거의 다 왔다고 전화했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가는데 멀리서 아빠가 보였습니다. 슬리퍼 신고 혼자 서 있었습니다. 왜 나와 있냐고 물었더니 그냥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전에도 그랬습니다. 제가 간다고 한 날이면 아빠는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거나 편의점 갈 일이 있었다면서 꼭 집 근처에 나와 있었습니다. 엄마한테 물어보니 제가 온다고 전화하면 아빠가 언제 오냐고 엄마한테 몇 번씩 묻고 도착했는지 베란다에서도 내려다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집에 도착하면 왔냐 한마디 하고 별다른 이야기는 안하십니다. 오늘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어릴 때는 제가 아빠 퇴근 시간을 기다렸는데 이제는 아빠가 제가 오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거의 다 와서 전화하지 말고 조금 일찍 전화하려고 합니다. 아빠가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길어지더라도 딸 온다고 밖에 나와 기다리는 시간이 아빠한테는 싫지 않은 시간일 것 같아서요.
신서윤
쌍 따봉
4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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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딸은 6살입니다.
화장실에서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딸이 쾅쾅 문을 두드리더니.... 경찰이 응가하면 뭐냐고 물어보더니....출똥!!이러고 막 웃으며 거실로 뛰어가는군요... 다들 이러시죠??
딜러
억대연봉
은 따봉
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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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의 퇴직은 권리이지만 회사의 해고는 불법인 이유
근로자의 퇴직은 권리이지만 회사의 해고는 불법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커뮤니티의 글들을 보다보면 근로자의 퇴직은 권리라는 글이 많고.. 회사의 해고는 법적으로 부당하다는 글이 많은데요. 혹시 제가 잘 모르는 이유가 있는지 해서요. 여러 선생님들의 고견이 궁금합니다
wgwfej
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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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첫 자취고민 들어주실수 있나요?
지금은 안양에서 친오빠와 아파트에서 둘이 살고 있어요 부모님 명의이고 주거비는 따로 안내고있어요 회사까지 출퇴근 편도 1시간정도 걸리는데 지옥철 힘들어도 할만해서 통근하고있었어요 !! < 자취를 고민하게된 이유 > 1. 내년에 현재 집 재개발 및 이주예정 (상세시기는 미정) 2. 작년소득 기준으로 저금리 대출(2%초반대) 가능, 내년부터는 소득기준이 넘어서 4% 대출 받아야할거같아요 3. 꿀매물 보고옴 (지인이 지내던곳인데 결혼해서 방 빼신다함) 강남권 회사 도보 15분/ 10평 / 1억1천에 50만 원 대출이자랑 수도가스난방 포함하면 대충 총 주거비 월 75만원 정도씩 나갈거같아요 (월급의 약 20%정도) 마지막 저금리 대출기회와 이런 꿀매물이 다신 없을거같다는 생각에 바로 자취를 시작할지, 내년에 이주하기 직전까지 버티다가 대출없이 월세로 나갈지 고민입니다.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요…🥹 (참고로 결혼은 최소 3-4년뒤 생각중입니다)
디자인짱조아
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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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계고 공무원시험...
아들이 공고 전기과 재수생으로 이번에 공무원 경력경쟁시험을 치렀습니다.가산점 포함 88점이고요. 시험 특성상 채용인원이 소수이다보니 연도별 컷트라인이 들쑥날쑥이네요. 약간은 안정권 인거 같으면서도 점수가 높게 형성된 연도를 생각하면 불안하고.. 작년에 떨어진 경력이 있는데다 올해까지만 공고출신 시험을 칠 수 있어서 절실하네요...제가 입사시험 쳤을때 보다 더 초조하네요..
752기
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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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는 내게 막말했던 전팀장님을 만났습니다.
전 회사 동료 결혼식 가서 음식 쓸어담고 있는데 퇴사할 때 나한테 막말했던 전 팀장님이 슬쩍 옆에 오더니 사과를 하시더군요. 올해 초에 퇴사 통보했을 때 좀... 모진 말을 하셨던 터라 처음 식장에서 마주쳤을 때도 그냥 목례만 하고 바로 피했거든요. 근데 두 번째 접시 뜨고 있는데 옆으로 조용히 오더니 그러더라구요. 그때는 자기가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됐는데 일 잘하던 사람이 갑자기 나간다고 하니까 당황스럽고 서운해서 감정이 앞섰다고, 나 가고나서 내내 후회했다고. 연락할까 하다가 새 회사 잘 다니는 애한테 굳이 연락해서 잊고 살던 거 떠올리게 할까봐 말았는데 오늘 만난 김에 사과하고 싶었다고. 사실 놀랐어요. 이제 만날 일 없는 남남인데다가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 이렇게 먼저 다가와서 사과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나도 이분처럼 이렇게 먼저 다가와서 멋지게 사과할 수 있었을까. 대단하다 싶었고 감사했습니다. 괜찮다고, 이미 다 잊었다고 말씀드렸는데 배 채우고 집에 오는 길에 만감이 교차하네요. 솔직히 그때 막말 듣고 사람들한테 욕도 많이 하고 원망도 많이 했는데 뭔가 다 씻겨 내려간 기분이랄까요. 나도 이렇게, 시간이 지났다 하더라도 내 잘못 인정할 줄 아는 멋진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걸 보시는 분들도 모두 그런 어른이 된다면 모두의 회사 생활이 조금씩은 나아지겠죠?
솜vs
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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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은이의 마지막 시간
이태원의 끝나지 않은 밤 상은(실명/이상은)이가 언제든 찾아와 편히 쉬어가길 바라며 정성껏 정돈해 둔 방이었다. 강민하(실명)는 그 방문 앞에 설 때마다 걸음을 멈추었다.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 때면, 흐르던 시간이 거꾸로 소슬하게 되돌아가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침대 위에는 상은이가 까마득한 날들에 남겨둔 온기가 아직 얹혀 있었고, 책장 한 귀퉁이에는 몇 장의 사진이 오롯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진 속 상은이는 늘 환한 얼굴로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의 어떤 비극도 감히 침범할 수 없을 것처럼 맑고 평범하며, 무탈하고 무던한 일상을 담아낸 얼굴. 강민하는 그 미소를 차마 길게 마주하지 못했다. 그 웃음은 살가운 위로가 아니었다. 오히려 숨을 꽉 막히게 만드는 지독한 형벌에 가까웠다. 살아 있는 아이의 생생한 표정을 마주하면서도, 그 아이가 이 세상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냉혹한 진실을 뼈저리게 인식해야 하는 일. 과연 그보다 더 잔혹한 일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강민하는 차마 마주하지 못한 시선을 무겁게 거두어 책상 위 노트북으로 향했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어둠을 가르고 밝은 화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2022년 10월 29일, 그 참혹했던 밤이 다시금 그녀의 눈앞에서 서막을 열었다. 그날 밤, 서울 이태원의 골목길은 몰려드는 사람들로 기이할 만큼 빽빽하게 들이차고 있었다. 오랜 시간 이어졌던 코로나19의 방역 굴레가 마침내 크게 풀어지고 맞이한 첫 핼러윈 주말이었다. 억눌렸던 청춘들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비좁고 가파른 골목은 이내 사람들의 겹겹이 엉킨 몸짓으로 메워졌다. 화려한 상점 불빛이 빽빽한 머리 위로 번져나갔고, 쿵쿵 울리는 음악 소리와 들뜬 웃음소리가 공중을 맴돌았다. 누군가에게는 가슴 설레는 축제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비로소 되찾은 보통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삶의 마지막 밤이 되고 말았다. 밤이 깊어갈수록 골목은 더 이상 인간의 의지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밀려드는 파도처럼 앞으로 나가려는 이들과 뒤에서 거세게 밀어붙이는 이들이 서로를 짓눌렀다. 도망쳐 숨을 돌릴 수 있는 한 뼘의 틈새조차 사라져 버렸다. 누군가 발을 헛디디는 순간, 그를 비켜설 여유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지옥의 문이 열리듯, 누군가 무너져 내렸다. 한 명으로 끝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비명이 공기를 찢었다. "사람이 깔렸어요! 살려주세요!" 비명은 이내 다급한 신고 전화로 이어졌다. 119 상황실의 벨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렸다. 경찰과 소방의 무전망에는 현장의 참담함을 실어 나르는 떨리는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교차했다. 출동을 아우성치는 목소리, 현장 상황을 다급히 묻는 음성,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인파가 몰렸다는 비명 같은 보고, 구조를 갈구하는 처절한 외침. 각기 다른 위치에서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파편화된 정보들이 무전망 속에서 어지럽게 뒤엉켰다. 그 혼란 속에서도 시곗바늘은 무심히 흘러갔다. 22시 몇 분, 23시 몇 분. 그 찰나의 몇 분 사이에, 수많은 사람의 운명이 갈라지고 있었다. 상은이 역시 그 비극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 어려운 공인회계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뒤, 사회로 나아갈 채비를 하던 참이었다. 앞으로 걸어갈 창창한 나날이 한참이나 많이 남아 있던 소중한 아이였다. 언제나 꿈이 많았던 아이는 훗날 결혼도 하고 싶다 했고, 예쁜 아이도 낳아 키우고 싶다고 조곤조곤 속싸개 같은 꿈을 털어놓곤 했다. 당시 강민하가 그 말이 가벼워 웃음을 터뜨리며 받아쳤었다. ​"그래, 네가 아이 낳으면 이 이모가 다 봐줄게." 그때는 그저 농담처럼 던진 무던한 한마디였다. 너무나 평범하여 굳이 마음에 아로새길 필요조차 없었던 일상의 대화였다. 그러나 2022년 10월 29일 그 밤 이후, 그 나지막한 약속은 강민하의 가슴속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새겨졌다. 훗날 조카가 아이를 낳으면 보살펴주겠다던 사람. 그 작은 생명을 가슴에 안아주겠다던 사람. 그렇게 서로의 곁에서 함께 늙어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삶. 그 평온했던 미래의 끈이 단 한 번의 밤으로 무참히 끊어져 버렸다. 처음에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사망자, 실종자, 이송. 강민하는 언론에 번져가는 그 차가운 단어들의 무게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 상은이가 죽었다는 절망적인 사실보다 먼저 마음을 짓누르며 떠오르는 질문들이 있었다. 어디에서? 어떻게? 누가 가장 먼저 발견했을까? 구급대는 제때 도착했던 걸까? 어느 병원으로 옮겨진 것일까? 그리고 가슴을 짓밟는 마지막 질문. '상은이는 정확히 언제까지 숨을 쉬고 있었을까.' 그 질문은 오랫동안 강민하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단지 차가운 사망 시각이라는 숫자를 확인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숨이 끊어지기 전 그 마지막 찰나에, 상은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진실을 간절히 알고 싶었다. 누군가 상은이의 떨리는 손을 잡아주었는지, 누군가 따뜻하게 이름을 불러주었는지, 구급대원이 상태를 세심히 확인해 주었는지, 어느 장소에서 어떤 긴급 처치를 받았는지, 그리고 그 사투의 모든 과정이 단 한 줄이라도 제대로 기록되어 있는지. 강민하는 그것을 반드시 밝혀내야만 했다.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자신이 조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소명이자 의무라고 믿었다. 계절의 옷이 몇 번이나 갈아입혀졌다. 세상 사람들은 참사의 충격을 딛고 다시 저마다의 일상으로 유유히 돌아갔다. 거리에는 날마다 새로운 뉴스가 흐르고 사람들은 또 다른 이슈들을 소비했다. 그러나 강민하의 시간만큼은 2022년 10월 29일 그 밤에 꽁꽁 묶인 채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상은이가 다니러 오면 편히 쉬라 마련했던 방. 그 온기 있던 공간에 어느 날 차가운 노트북과 묵직한 서류 더미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장에 불과했던 종이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박스를 가득 채웠고, 그 상자들은 이내 책상 주변을 요새처럼 에워쌌다. 강민하는 참사 당시의 현장 영상들을 켜두고 밤을 지새웠다. 처음에는 그저 멍하니 영상을 바라보기만 했다. 두 번째 볼 때는 화면 속 시각을 노트에 적어 내렸다. 세 번째 볼 때는 엉켜있는 사람들의 위치를 일일이 표시했다. 네 번째부터는 소방과 경찰의 무전 녹음 파일을 함께 재생하며 대조했다. 영상 속에서 누군가 작은 움직임을 보이면 무전을 몇 번이고 되돌려 들었다. 무전에서 특정 시각이 언급되면 해당 시각의 영상을 다시 찾아 저위도 고위도를 잡듯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구급활동일지를 펼쳐 들었다. 오후 몇 시 몇 분, 환자의 상태, 구급대원의 소견, 의료지도 내역, 이송 병원. 하나씩 조각을 맞추어 나갔다. 그런데 기이했다. 기록과 기록이 톱니바퀴처럼 매끄럽게 맞물리지 않았다. 동일한 사안을 두고 기록된 시간들이 서로 어긋나 있었고, 당연히 있어야 할 항목들은 휑하게 비어 있었다. 어떤 일지는 다른 서류의 설명과 정면으로 배치되기도 했다. 강민하는 처음엔 그저 긴박한 현장에서 빚어진 단순한 행정적 실수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의 오류를 파헤치다 보면 또 다른 의구심이 꼬리를 물고 드러났다. 그것을 확인하려면 또 다른 종류의 자료가 끊임없이 필요했다. 구급활동일지를 확인하려면 무전 기록이 필요했고, 무전을 살피려면 출동 기록이 있어야 했다. 출동 기록의 진위를 따지려면 현장 도착 기록을 찾아야 했고, 현장 도착 기록을 보려면 상황보고서가 필요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상황보고서를 검증하기 위해 다시 영상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끝이 없는 굴레였다. 훗날 강민하는 그 아득했던 사투의 과정을 이렇게 회상했다. "큰 뿌리 하나만 캐내면 끝날 줄 알았어요." 그녀는 쓸쓸한 눈빛으로 잠시 말을 잊었다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옆에 또 서너 개가 있고, 그 밑을 파보니까 실뿌리 수천 개가 사방으로 엉켜 있더라고요." 그때서야 강민하는 깨달았다. 자신이 추적하는 것이 단순한 종이 한 장의 기록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녀가 피를 말리며 찾고자 한 것은 그 잔인했던 밤의 완벽한 '시간표'였다. 사람들이 도대체 어떻게 움직였는지, 구조는 제때 제대로 이루어진 것인지, 책임 있는 자들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침묵했는지, 그리고 소중한 상은이에게 그 마지막 순간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2024년 9월. 마침내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강민하는 비로소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이제는 자신이 골방에 갇혀 홀로 모든 자료를 파헤치며 피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될 것이라 믿었다. 전문성을 갖춘 조사관들이 정밀하게 파헤칠 것이다. 숨겨진 자료들을 당당히 확보할 것이다. 책임 있는 위치에 있던 이들에게 매서운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유가족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진실을 설명해 줄 것이다. 강민하는 그동안 가슴속에 빽빽하게 쌓아두었던 질문의 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차마 완전히 손을 놓지는 못했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은 그날 밤의 어지러운 시간표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참사 당시 긴급구조통제단 가동 시점과 관련한 충격적인 증언이 흘러나왔다. 강민하는 모니터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묵직한 한 문장이 가슴에 날카롭게 찔려왔다. '실제와 보고가 다르다면, 과연 어느 쪽이 진짜란 말인가.' 뒤이어 참사 당시 대통령 주재 긴급상황점검회의 영상이 또 다른 자료로 눈에 들어왔다. 강민하는 다시 노트북을 펼쳐 들었다. 이번에는 국가의 입을 무작정 기다리는 피해자가 아니라, 진실을 스스로 검증하는 '확인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민족의 대명절인 설 연휴였다. 사람들은 일상의 시름을 잊은 채 늦잠을 자거나 가족들과 도란도란 정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강민하는 차가운 책상 앞에 홀로 앉아 있었다. 새벽 세 시. 집 안은 적막에 싸여 있었고, 모니터에서 새어 나오는 푸르스름한 빛만이 방 안의 고요를 비추고 있었다. 강민하는 엑셀 파일을 열었다. 날짜, 시간, 환자 상태, 구급대원 소견, 의료지도, 이송 병원.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기계적으로 내리쳤다. 타닥, 타닥, 타닥. 그러다 손가락이 단단히 굳어버렸다. "왜 이 중요한 항목이 빈칸으로 남아 있지?" 강민하는 서둘러 다른 자료를 열었다. 그리고 정밀하게 대조했다. ​"이건 왜 앞선 기록과 시간이 확연히 다른 거지?" 하나의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기록을 펼쳤고, 의문이 꼬리를 물자 또 다른 서류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의구심은 줄어들기는커녕 거대한 눈덩이처럼 부풀어 올랐다. 3월, 마침내 특별조사위원회의 청문회가 열렸다. 강민하는 망설임 없이 휴가를 냈다. 이틀 내내 식음도 잊은 채 모니터 화면 앞에 바짝 다가앉았다. 책상 위에는 그녀가 피와 땀으로 정리해 둔 수많은 자료가 수놓아져 있었다. 빼곡한 시각 표시들, 구급활동일지, 무전 녹음 파일, 영상에서 잘라낸 수많은 캡처 화면들. 그녀는 간절히 기다렸다. 자신이 밤을 새워 찾아낸 이 수많은 이상징후와 오류들이 청문회장의 날카로운 질문으로 터져 나오기를. 그러나 이틀간 진행된 청문회가 끝날 때까지, 강민하가 그토록 기다리던 핵심적인 질문은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화면이 허무하게 꺼졌다. 강민하는 한동안 멍하니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책상 위에 사막처럼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내려다보았다. 몇 달 동안 밤을 지새우며 뼈를 깎는 심정으로 정리했던 기록들이었다. 그녀는 낮게 읊조렸다.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내가 찾아낸 이 명백한 진실조차... 여기서는 질문조차 되지 못하는구나." 그 순간, 그녀의 내부에서 무언가 기저에서부터 커다랗게 깨어져 나갔다. 타인에게 진실을 구하던 길고 긴 기다림은 끝났다. 이제 스스로 부딪쳐야 할 때였다. 정식으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쏟아져 들어온 자료들을 그러모았다. 공공기관의 공식 자료와 국회 제출 자료를 돋보기 들듯 대조했다. 감사원 감사보고서를 파헤쳤고, 화질이 뭉개진 영상 속 사람들의 동선을 극도로 확대해 확인했다. 무전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미세한 목소리를 수십, 수백 번 반복해 들었다. 단 한 문장의 진위를 검증하기 위해 수 시간을 바쳤고, 단 몇 분의 차이를 밝혀내기 위해 수일을 꼬박 새웠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라는 개념은 강민하에게 더 이상 단순한 숫자의 나열이 아니게 되었다. 22시 몇 분, 23시 몇 분. 그 간극 속에서 누군가는 처절하게 움직였고, 누군가는 무책임하게 방관하고 기다렸다.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며 도움을 요청했고, 누군가는 끝내 그 손길을 받지 못한 채 스러져 갔다. 몇 분, 때로는 몇십 분의 아득한 간격. 강민하는 기록과 기록 사이에 벌어진 그 참담한 틈새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 간극 속에 살아 숨 쉬던 사람이 있었고, 스러져간 존엄한 생명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영상을 기계적으로 재생하던 강민하는 갑자기 멈칫하며 마우스를 움켜쥔 손을 멈추었다. "잠깐만..." 화면을 일시 정지시켰다. 몇 초 전으로 되돌렸다. 다시 천천히 재생했다. 화면을 최대로 확대했다. 순간, 강민하는 숨을 멎었다. 상은이었다. 그 아수라장 같던 화면 속에, 그토록 그리웠던 상은이가 서 있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수많은 인파 속을 흘러가는 스쳐 지나가는 모습에 불과했다. 그러나 강민하에게는 그 순간 온 세상의 시간이 멈춰 버린 것만 같았다. "상은아..."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화면을 향해 손을 뻗으며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차가운 화면 속에서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강민하는 눈물을 훔치며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그다음 장면을 필사적으로 찾았다. 또 그다음 장면을 추적했다. 소방 무전 기록을 대조하며 시각을 맞추었고, 구급활동일지를 미친 듯이 뒤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상은이의 모습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화면에서도. 서류 기록에서도. 시간표의 흐름 속에서도. 강민하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누구도 확인해 주지 않는 참담한 '어둠의 시간'만이 도사리고 있었다. 강민하는 빛바랜 노트 한가운데에 정갈하게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상은이의 마지막 시간. 그리고 그 글자 아래에 길게 선을 그었다. 선의 오른쪽은 아무런 기록도 없이 비어 있었다. 아주 아득하고 넓게. 7월의 볕이 내리쬐던 날. 강민하는 무전 녹음파일의 복잡한 음성 파형을 모니터에 띄웠다. 이번에는 언니와 머리를 맞대고 함께였다. 서로 다른 경로로 확보한 음성 파일들을 나란히 배치했다. 동일한 시각이라고 표기된 구간을 정밀하게 대조해 나갔다. 위쪽의 음성 파형. 아래쪽의 음성 파형. 강민하는 모니터가 뚫어져라 시선을 고정했다. ​"언니, 여기 봐." 손가락 끝이 모니터 한구석을 짚었다. "이 구간의 음성이 완전히 다르잖아." 그녀들은 같은 음성 구간을 몇 번이고 고쳐 들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 작은 파형의 차이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종의 왜곡을 의미하는지 당장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제삼자의 개입이나 기록의 변조 가능성을 의심하기에는 충분한 증거였다. 자료를 차곡차곡 정돈했다. 그리고 고소장을 차분히 준비했다. 단지 누구인가를 처벌해 달라는 사적 복수심 때문이 아니었다. 강민하가 정말로 갈구한 것은 기록의 '진위'였다. 누가 옳은지,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따지기에 앞서, 그날 밤 도대체 '무엇이 실제였는가'를 온전히 밝혀내야 했다. 며칠 뒤, 또 다른 결정적인 자료가 그녀의 눈에 포착되었다. 참사 당시 혼란스러웠던 현장에 설치되었던 '재난 발생 현황 상황판'이었다. 그 서류에는 당시 용산소방서장이 23시 8분에 현장에 도착하여 지휘권을 선언한 것으로 명확히 기록되어 있었다. 강민하는 곧바로 다른 현장 기록들을 찾아 시간을 촘촘히 재구성해 보았다. 다시 비교하고 또 맞추어 보았다. 그리고 손을 멈추었다. 실제 현장 도착 시각과 지휘권 선언 시각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시간의 갭이 존재했다. "왜 기록된 시간이 이렇게 의도적으로 바뀌어 있는 거지?" 강민하는 텅 빈 방 안에서 혼잣말을 내뱉었다. 물론 찰나의 긴박함 속에서 빚어진 단순한 작성 오류일 수도 있었다. 행정적인 착오이거나 누군가의 혼란스러운 기억이 만든 오차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강민하는 이제 그런 의문들을 결코 유야무야 넘길 수 없었다. 잘못된 기록 하나가 또 다른 허위 기록을 낳고, 그 왜곡된 기록이 훗날 역사와 법정에서 정당한 판단을 방해하는 든든한 핑계가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사람의 기억은 이기적이라 잊힐 수 있어요." 그녀는 조용히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착각할 수도 있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억을 조작할 수도 있죠."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차가운 서류 더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기록은 거짓을 말하지 않고 남잖아요." 강민하에게 기록은 단순한 종이 쪼가리가 아니었다. 그 지옥 같았던 밤, 억울하게 스러져간 영혼들을 대변하는 또 하나의 위대한 목소리였다. 그러므로 그 목소리에 거짓이 섞여 있다면, 왜 틀렸는지를 끝까지 추적해 밝혀내야만 했다. 강민하를 비롯한 유가족 37명은 마침내 관계자들을 향한 고발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현장에 실제로 동원된 인원수, 구조 대응 평가보고서의 왜곡, 지휘권 이양 협의서의 조작 의혹. 현장의 실제 상황과 현격히 다르게 작성되었다는 강한 의심을 받는 자료들이었다. 강민하는 단지 관련자들의 형사처벌만을 바라보고 나선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보다 훨씬 오랫동안 역사에 남을 가치를 원했다. 바로 '공식적인 진실의 기록'. 훗날 누군가 다시 그 비극의 날을 반추하고 조사할 때, "그 당시 유가족들이 이러한 명백한 의문을 제기했었고, 진실은 이러했다."라고 명명백백히 남아있을 흔적. 그녀는 나지막이 다짐했다. "형사처벌의 유무와 상관없이, 그날 기록의 진위만큼은 반드시 가려내야 해요." 그리고 그 다짐을 가슴속 깊은 곳에 다시금 단단히 새겨 넣었다. 무엇이 진짜였는지, 그날의 진실을 반드시 세상 밖으로 끌어내리라. 참사 4주기를 코앞에 둔 어느 날. 특별조사위원회가 피해자들의 참사 기록물 열람을 지원하기 위한 내부 규칙을 의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유가족들의 가슴속에 차오른 차가운 앙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강민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더 이상 국가나 특조위가 모든 정답을 손에 쥐여줄 것이라는 천진난만한 기대를 품지 않았다. 그렇다고 진실을 향한 여정을 여기서 포기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들이 일을 하게 만들어야죠." 강민하는 입술을 씹으며 말했다. "정말 제대로 조사하는지, 우리가 눈을 서슬 않게 뜨고 끝까지 지켜볼 겁니다." ​그날 밤. 그녀는 또다시 상은이의 방으로 향했다. 책상 위에는 여전히 산더미 같은 서류들이 위태롭게 쌓여 있었다. 구조상황보고서, 1029 녹취록, 현장 지휘 표준작전절차, 구급활동일지, 정보공개 청구로 받은 비밀 자료들, 소방 무전 녹음 파일. 그리고 서류 틈새마다 알록달록하게 붙어있는 색색의 메모지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그것은 강민하가 세상에 던지는 처절한 질문의 기호들이었다. 노트북을 켜자 차가운 모니터 불빛이 방 안을 환히 밝혔다. 다시 2022년 10월 29일. 다시 이태원. 다시 그 지옥 같던 골목길. 다시 혼란스럽게 엉켜있는 수많은 사람. 그리고 그 아수라장 속을 스쳐 지나가는 내 사랑하는 조카, 상은이. 강민하는 멈춤 버튼을 눌렀다. 한참 동안 정적 속에서 화면을 응시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펜을 들었다. 종이 위에 천천히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22시 ○○분.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른 뒤, 다음 줄에 펜촉을 대었다. 그다음에 아이는 어디로 끌려갔는가. 다음 줄. 누가 가장 먼저 숨이 넘어가는 아이를 발견했는가. 그리고 마지막 줄. 그 절박했던 순간에,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강민하는 펜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방 안은 죽음처럼 적막했다. 이내 서늘한 정적을 깨고 키보드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갈랐다. 타닥. 타닥. 타닥. 창밖으로 짙은 어둠을 걷어내며 새벽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그날 밤은 이미 흘러가 버린 아득한 과거일 뿐이었다. 달력 위의 한 줄 날짜가 되었고, 해마다 돌아오는 상투적인 기념일이 되었으며, 인터넷 기사의 자극적인 제목이나 통계 수치 속 차가운 숫자로 전락해 버렸다. -이하 생략 https://m.blog.naver.com/swnjm12/224460685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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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만작가
10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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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은퇴 후 노후준비 얼마가 적당할까요?
현재 맞벌이 중이며 30초 부부입니다. FIRE를 꿈꾸고 있습니다. 현재 아이는 아직 고민중입니다. 아이가 없을 시 은퇴자금이 어느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그랄
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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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용기간(수습기간) 평가 기반으로 해고할 수 있을까?
제목과 같습니다 - 최근 저 이슈로 글이 좀 올라오는 것 같아서 정리드리고자 합니다. 수습이면 손쉽게 계약직처럼 해고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진 분들이 있어서.... 한번 판례 기준으로 정리드리려 합니다. 법원은 아래의 기준을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즉, 하나를 만족시키지 않았다고 자동으로 부당해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부당해고가 될 가능성이 높겠죠? 1) 수습사원에 대한 평가방법이 사전에 구체적으로 마련돼 있는지, 2) 그러한 평가기준 및 평가방법에 관한 내용이 근로자에게 알려져 있는지, 3) 업무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지는지, 4) (수습기간이 만료되지 않았다면) 재교육 기회를 부여했는지, 5) 해고 사유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사회통념상 합리적인지 출처(및 추가 예시): https://www.worklaw.co.kr/main2022/view/view.asp?in_cate=106&gopage=1&bi_pidx=35491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sayhi
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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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래미랑 둘 만의 데이트, 소소한 행복~^♡^
오늘 참 날씨가 좋네요. 오늘은 딸래미 미술학원 데려다가 주는 날이라서 아점으로 어묵우동, 떡볶이, 콜라 음료 시켜서 딸래미랑 맛나게 먹었네요. ㅎ 리뷰를 쓰니까는 맛난 고기 만두 8개도 무료로 주셔서 고맙게 먹었구요 ㅎㅎ 딸래미 그림 그리다가 먹으라고 간식과 음료도 사서 줬구요, 이제 전 커피숍에서 정보보안기사 실기 자격증 공부 필사하면서 딸래미 기다려야겠네요 ㅎㅎㅎ 횐님들 날씨가 참 좋네요. 외출해서 행복한 시간들 보내세요^♡^
월천선한부자
쌍 따봉
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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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직 이직으로 매일 첫출근입니다.
대리로 가고요 연봉 5700입니다. 저에게 기대를 많이 하능 거 같은데 가서 제가 어떤 식으로 아웃풋을 낼수 있을지 막막하네요. 첫날에 눈에 띄거나 튀는 행동 안하고 어떤 식으로 해야 3개월 사용기간을 무사히 넘기고 통과할 수 있을까요??
419cindy
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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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동창 절친 축의금 얼마 정도가 적당할까요
초등학생때부터 거의 20년 가까이 된 친구가 결혼해서 축의금 고민하고 있어요. 돈이 아깝다는게 아니라 제가 지인 결혼식에 축의금 내본적이 없어서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싶어서 의견 묻습니다ㅠ 저는 50 생각했는데 회사 동료들은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다 하더라구요…? 너무 많을까요 계속 친구로 지냈는데 맨날 붙어다니는 친구는 아니고 분기별로 보고 부모님이랑도 몇번 뵙고 뭐 그런…? 저희 둘다 맨날 연락하는 스타일은 아니긴해요. 선물로 할까 했는데 제가 생각한건 집에 다 있어요 ㅋㅋㅋ 그냥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kdo
16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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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부서랑 밥 먹는걸 굉장히 싫어하는 팀장
타부서랑 밥먹는걸 굉장히 싫어하고 평상시 말하는것도 정말 싫어합니다.. 본인 허락하에 가능합니다 늘 같은부서사람들 끼리만 다니는걸 강요해요.. 그런걸로 혼내니까 회식도 타부서랑하는건 몰래 참여하는데 도대체 무슨심리일까요..? 사내메신저로도 타부서랑 대화하다가 들켰는데 그걸로 정말 혼났습니다.. 좀 이해가안가요 그래서 저희 부서만 우물안 개구리입니다...
Allora
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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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모회사가 바뀔 거 같은데 이직 준비 하는게 맞을까요?
안녕하세요. 현재 5년차 직장인이고 현재 회사는 아직 1년은 못채웠지만 그냥 이래저래 다니고 있습니다.요즘 고민인 부분이 있는데, 여러분들의 조언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우선 저희회사는 모회사가 있고, 이번달 중으로 모회사가 변경이 될 것 같더라고요. 아직 정해진건 없지만 거의 정해진 느낌이랄까요.. 일단 대기업 계열사 중 한곳의 자회사로 들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다만 그곳은 이미 자회사가 있어요 (모회사, 이미 있는 자회사, 우리회사 모두 같은 업종) 괜히 구조조정 들어가면 어떡하지 생각도 있고, 구조조정 없이 간다해도 자잘한 업무만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또래 분들은 이직 준비하는게 나을 것 같다고 하고 이제 나이가 있으신 전직장 분들이나 가족들은 대기업 계열사면 버티라고 하시는데, 사실 제가 느꼈을 땐 바뀔 모회사가 그 업계에서 썩 좋아보이진 않거든요...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하실 거 같으신가요 조언 부탁드립니다..
켁켁켁
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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