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싫어하면서 왜 나치처럼 생각하시나요?
애한테 울지 마라, 노인들 냄새 난다, 장애인은 감사를 알아야 한다...
요즘 혐오는 이상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칩니다.
혐오하는 본인이 잔인하다는 자각도 없습니다.
오히려 현실적이고 솔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복잡한 것을 싫어합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답이 딱 떨어지는 일이 별로 없는데도요.
길에서 우는 아기가 있다고 해서 부모가 무책임한 건 아닐 수 있습니다.
냄새가 나는 노인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일부러 주변을 괴롭히는 건 아닐 수 있습니다.
장애인이 도움을 요구한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특별한 대우를 받고 싶어서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누군가의 행동 때문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불편하다'는 마음에서 '저 사람은 잘못됐다'까지 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졌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그 중간에 있어야 할 질문들이 사라졌다는 말입니다.
> 저 사람은 왜 저럴까?
>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나?
> 저 한 사람의 행동을 저 집단 전체의 특징으로 봐도 되나?
이런 질문을 할 새도 없이 금세 혐오로 치닫는 세상이 되었죠.
그리고 알고리즘은 그중에서도 가장 화나는 이야기부터 보여줍니다.
여기서 알고리즘의 역할을 빼놓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추천 시스템이 꼭 혐오하라고 명령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대체로 사람들이 오래 보고, 댓글을 달고, 공유하고, 반박하게 만드는 것을 더 잘 퍼뜨립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게시물로 나를 둘러싸서 그게 진짜 세상이라고 생각하게 하죠. 흥미로운 건 이용자들이 그런 게시물을 많이 반응했다고 해서, 그걸 진짜 보고 싶었던 콘텐츠라고 평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런 과정을 반복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자극적인 게시물 하나를 봅니다.
> 화가 나서 댓글을 답니다.
> 다른 사람도 화를 냅니다.
> 댓글이 늘어납니다.
> 더 많은 사람에게 추천됩니다.
> "요즘 사람들이 다 이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 다음에는 더 강한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걸 보는 사람은 착각합니다. 아 이게 대세구나. 이런 게 요즘 많이 보이니까 이런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구나. 많이 보인다 vs 많다. 비슷하지만 이 둘은 전혀 같은 말이 아닙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온라인의 유해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실제보다 훨씬 많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심각한 독성 댓글이나 허위정보의 상당 부분은 소수의 매우 활동적인 이용자들이 만들어내는데 사람들은 이를 보고 전체 이용자의 상당수가 그렇게 행동한다고 추정한 것이죠.
저는 이게 요즘 세상을 이해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라고 봅니다. 소수가 많이 말하면 알고리즘은 그 소수를 다수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혐오하는 사람이 많다고 믿게 됩니다.
이 현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온라인에서 강한 분노 표현을 많이 접할수록 사람들은 '저 집단 사람들은 우리를 정말 싫어하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쉬워집니다. 실제로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온라인 메시지에 담긴 도덕적 분노의 수준을 실제보다 더 크게 읽어내고, 그 결과 집단 간 적대감과 극단성이 실제보다 높다고 믿게 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특히 정치 관련 소셜미디어를 많이 이용할수록 이런 과대인식이 더 강했습니다.
심지어 분노는 학습되기도 합니다. 연구에서는 온라인에서 분노를 표현했을 때 동조를 얻으면 이후에도 더 분노를 표현하게 되고,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네트워크의 분노 표현 수준에 맞춰 표현을 조정하는 경향이 확인됐습니다. 쉽게 말하면, 처음에는 한 사람이 심하게 말하지만 나중에는 그 공간 전체가 이 정도로 말하는 게 정상이라고 학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의 혐오는 특정 집단 하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혐오의 흐름은 고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정치적 진영, 세대와 연령을 중심으로 한 양극화가 크게 나타났고, 동시에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같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주변화도 관찰됐습니다. 연구 기간 동안 혐오의 주요 대상과 흐름은 성별 중심에서 연령 중심으로 이동하는 변화도 보였습니다.
이 말은 결국 이겁니다.
온라인의 혐오는 하나의 이념이 아니라, 그때그때 가장 쉽게 '우리와 그들'로 나눌 수 있는 대상을 찾아 이동합니다.
남자 대 여자.
노인 대 청년.
기성세대 대 MZ.
기혼 대 미혼.
유자녀 대 무자녀.
서울 대 지방.
정규직 대 비정규직.
이 구도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옳은가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저 사람이 진짜 잘못했는지를 보기 보다는, 저 사람이 나에게 피해를 주는가를 먼저 봅니다.
그리고 내가 피해를 봤다고 느끼는 순간, 그 피해가 크든 작든 그 피해를 끼쳤던 원인이 무엇이든 상대를 향한 공격은 쉽게 정의가 됩니다.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봤습니다.
'애한테 울지 마라, 노인한테 노인냄새 난다, 장애인은 감사를 알아야 한다 하는 거 보면 나치즘이라는 말 없이 나치즘이 유행하는 거 같음''
'사람들은 사실 나치즘을 좋아하지만 그 '나치'라는 단어만 싫어할 뿐이에요'
그러니까 이 말의 요지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사람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인간성을 덜 부여하는 방식' 자체에는 생각보다 쉽게 끌리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불편함을 말하는 사람을 나치라고 부르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건 오히려 또 다른 단순화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는 너무 쉽게 사람을 '개인'이 아닌 '유형'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엄마들은 다 민폐다.”
“노인들은 다 냄새난다.”
“장애인들은 맨날 요구만 한다.”
“남자는 원래 그렇다.”
“여자는 원래 그렇다.”
한 사람을 지우고 집단만 남겨두면 욕하기가 편해집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 사람에게도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상대를 인간으로 보는 순간 혐오는 복잡해지지만, 집단으로 보는 순간 혐오는 아주 쉬워집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이 뭐 대단한 사랑이나 무조건적인 이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정말 세상의 평균인지 한 번 의심하는 것.
댓글 몇천개가 달렸다고 해서 대한민국 전체의 생각이 아닐 수 있다는 것.
내 타임라인에 계속 나온다고 해서 다수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는 것.
가장 크게 소리내는 사람이 그 집단을 대표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어떤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이해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니까 가끔은 유튜브나 인스타, 스레드 피드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세상이 이렇게 혐오로 가득한 걸까. 어쩌면 그저 혐오하는 사람들이 내 피드를 점령한 건 아닐까 하고.
그걸 구분하지 못하는 순간 우리는 혐오가 싫어서 혐오를 소비하다가 결국 그 혐오의 언어를 배우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리멤버야 뭐 내가 본 것만 더 보여주는 곳이 아니니 다행이지만요.
물론 이곳에도 작은 불편으로 큰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고, 개인의 일탈을 집단의 일탈로 끌고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또 혐오의 세상에서는 미처 보지 못한 훈훈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을 같은 레벨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저는 리멤버를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