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작성) 여후배랑 정말 이게 이런 식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이전에 글을 썼을 때만 해도, 저는 정말 잘 모르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후배가 저를 좋은 선배로 생각하는 건지, 예전에 도움을 줬던 사람이라 편하게 연락하는 건지, 아니면 제가 괜히 혼자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건지 헷갈렸습니다.
주변 친구는 저를 보며 “너 진짜 모르는 거냐”고 했지만, 저는 여전히 조심스러웠습니다.
나이 차이도 있고, 예전에는 사수와 부사수에 가까운 관계였고, 제가 먼저 무언가를 착각하면 그 자체로 상대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음 한편이 조금 흔들리면서도 계속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좋은 선배일 뿐일 수 있다.”
“괜히 의미 부여하지 말자.”
“정신 차리자.”
그런데 오늘, 정말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KTX 출장을 가려고 서울역에 갔습니다.
당연히 누군가를 만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출장 일정 이야기를 한 적도 없었고, 시간도 이른 오전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거기서 그 후배를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잘못 본 줄 알았습니다.
서울역 한복판에서, 그것도 같은 시간대에, 같은 방향으로 가는 KTX를 탄다는 게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더 신기했던 건 호차도 바로 건너편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중간 입석 공간에서 잠깐 만나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출장길이니까 일 얘기를 꺼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안부만 묻고 각자 자리로 돌아가야 하나.
괜히 어색하게 굴면 더 이상해지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후배가 먼저 말했습니다.
“지금 일 얘기 꺼내시면 저 그냥 자리로 갈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살짝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괜히 업무 얘기부터 꺼내려던 마음을 접고 물었습니다.
“주말엔 뭐 했어?”
그렇게 이런저런 일상 얘기를 했습니다.
주말 이야기, 요즘 회사 생활 이야기, 별것 아닌 이야기들.
중간중간 자연스럽게 업무 이야기도 조금 섞이긴 했지만, 예전처럼 보고받고 조언하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오랜만에 편하게 이야기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도착지가 같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순간부터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습니다.
저녁까지 기다려서 술 한잔하자고 해야 하나.
아니면 너무 오버인가.
괜히 출장지에서 만났다고 들뜨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는 거 아닌가.
그렇게 혼자 계산만 하다가, 결국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혹시 혹시 혹시, 내가 오바하는 게 아니라면 점심 같이 먹을래?”
제가 생각해도 “혹시”를 세 번이나 붙인 게 좀 웃기긴 했습니다.
그만큼 조심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후배가 말했습니다.
“조금 늦게 먹어도 괜찮으세요?”
괜찮다고 했습니다.
사실 안 괜찮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점심 약속이 잡혔는데, 그때부터 오전 업무가 쉽지 않았습니다.
분명 일은 해야 하고, 출장 와서 해야 할 업무도 있었고, 집중해야 할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깐 긴장이 풀리면 계속 그 생각이 났습니다.
‘이따 같이 밥 먹는구나.’
‘괜히 너무 들떠 보이면 안 되는데.’
‘좋은 선배로 보는 걸 수도 있는데.’
‘아니, 그런데 요즘 매일 연락 오고 4시간 통화도 했는데.’
‘아니다. 정신 차리자.’
업무를 하면서도 머릿속 한쪽에서는 계속 혼자 회의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오전 업무는 무사히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미리 찾아둔 식당에서 밥을 먹자고 하고 기다리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정말 안 가더군요.
일분 일초가 이렇게 길 수 있나 싶었습니다.
기다리면서도 계속 별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냥 좋은 선배일 뿐일 수 있다.’
‘10살 차이면 감히 마음 가져볼 일이 아니다.’
‘괜히 착각하면 꼰대다.’
‘요즘 말로 영포티 소리 듣는 거 아닌가.’
‘상대는 그냥 편해서 그러는 걸 수도 있다.’
머릿속에서 제 자신을 거의 재판하듯이 몰아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시간이 되고, 후배가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식사를 주문했습니다.
저는 괜히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려고, 예전보다 많이 성장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혼자 출장도 다니고, 옛날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성장한 것 같다.”
그랬더니 후배가 대답했습니다.
“업무만 성장한 건 아닌데요.”
순간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자 후배가 저를 보더니 말했습니다.
“진짜 업무 쪽 빼고는 이렇게 눈치가 없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머릿속에 물음표가 정말 많이 떴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이게 농담인지 진심인지 바로 판단이 안 됐습니다.
제가 멍하게 있으니까 후배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답 안 알려줄 거예요. 알아서 생각하세요.”
그때 밥이 나왔습니다.
평소 같으면 일단 밥부터 먹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숟가락을 드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긴장돼서 밥이 잘 안 넘어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물어봤습니다.
정말 조심스럽게, 하지만 더 돌려 말하면 평생 못 물어볼 것 같아서요.
“내가 업무 외적으로 좀 무디긴 한데… 진짜 이상할 수도 있는 말인 거 알아. 혹시 내가 데이트 신청해도 돼?”
말하고 나서 심장이 정말 크게 뛰었습니다.
이 질문 하나로 지금까지의 관계가 어색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후배가 말했습니다.
“이제야 좀 감이 오세요?”
순간 정말 멍했습니다.
제가 방금 무슨 대답을 들은 건지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기분이 좋다기보다, 먼저 현실감이 없었습니다.
‘이게 진짜 맞나?’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건가?’
‘이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다고?’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제가 물었습니다.
“그럼 오늘 술… 마실래?”
그러자 후배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선배님 덕분에 오늘 일정이 좀 틀어져서, 술은 짧게 마실 것 같은데요. 주말에 데이트하고 마시는 건 어때요?”
저는 그냥 좋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 순간에는 다른 말을 할 정신이 별로 없었습니다.
돌아보면 오늘 하루는 정말 이상할 정도로 꿈같았습니다.
서울역에서 우연히 만난 것도, 호차가 바로 옆이었던 것도, 같은 도착지였던 것도, 점심을 같이 먹게 된 것도,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것도요.
아직도 조심스럽습니다.
나이 차이도 있고, 예전 관계도 있고, 괜히 들떠서 망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조금 인정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완전히 혼자 착각한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뭔가 정말 꿈 같은 하루가 지나간 것 같습니다.
주말이 오기 전까지, 저는 아마 몇 번이고 오늘 대화를 다시 떠올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