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저한테 관심이 있는 걸까요, 아니면 제가 착각하는 걸까요
저는 IT업계에서 이제 10년 차가 된 직장인입니다.
회사 규모는 100명 미만의 작은 회사였고, 재작년에 한 여후배가 인턴으로 저희 팀 막내로 들어왔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오래 버티기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업무 이해도도 낮아 보였고, 집중도도 조금 떨어져 보였고, 일이 잘 맞지 않는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금방 그만두겠지’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타 팀 사람들과 술자리를 하던 중에 그 후배를 깎아내리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넘겼을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그냥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팀 사람인데, 까도 내가 까야지 싶었습니다.
그래서 좀 세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걔 일하는 거 제대로 봤냐. 지금은 서툴러도 익숙해지면 너희보다 잘할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엔 대기만성형이다.”
말하고 나서는 바로 후회했습니다.
괜히 오버한 건 아닌가 싶었고, 사실 저도 그 후배가 정말 그렇게 잘할 거라고 확신했던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다음 날 그 후배가 조용히 오더니 감사하다고 하더군요.
어제 술자리에서 제가 했던 얘기를 다른 인턴 동료에게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뭔가 소설처럼 갑자기 각성해서 일을 엄청 잘하게 됐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여전히 실수도 많았고, 챙겨야 할 것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표정이 조금씩 좋아졌고, 도망가지 않고 버티더군요.
서툴지만 꾸준히 해내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사수와 부사수로 2년 정도 같이 근무했습니다.
저는 원래 여자 직원들에게 인기가 많은 스타일도 아니고, 직장 상사나 선배가 퇴근 후나 주말에 연락하는 건 매너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먼저 연락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후배는 주말이나 퇴근 후에도 종종 연락을 했습니다.
저는 그냥 사회생활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래서 바쁘다는 핑계로 답장을 늦게 하거나 안 하면, 다음 날 살짝 뭐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도 그냥 “아, 아직 막내라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그러다 그 후배가 헤드헌터를 통해 무난한 중견기업으로 이직하게 됐습니다.
저는 정말 진심으로 축하해줬습니다.
그동안 고생한 걸 옆에서 봤으니까요.
퇴사하는 날, 그 후배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 연락해도 잘 받아주셔야 해요.”
그때도 저는 그냥 인사치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한 번쯤은 안부를 물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조심스러웠습니다.
이직 후 6개월 정도는 새 회사 적응하느라 힘들 테고, 팀 분위기 익히고 업무 따라가느라 정신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괜히 제가 연락하면 부담이 될까 봐, 그 흔한 안부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그냥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주말에 갑자기 연락이 왔습니다.
“저 안 잊어버리셨죠?”
그래서 제가 답했습니다.
“잊을 리가 있냐.”
그랬더니 바로 전화가 오더군요.
처음에는 그냥 새 회사는 어떤지, 일은 할 만한지, 팀 분위기는 어떤지 묻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정신 차려보니 4시간 넘게 통화하고 있더군요.
귀가 뜨거워져서 더는 통화를 못 하겠어서, 잘 지내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는 그걸로 끝일 줄 알았습니다.
오랜만에 안부 나눈 거고, 이제 각자 잘 지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거의 매일 카톡이 옵니다.
안부 인사도 오고, 본인 회사 이야기도 하고, 힘든 얘기도 하고, 조만간 술 한잔하자는 말도 합니다.
저는 사실 조금 보수적인 편입니다.
그래서 이 후배가 저를 그냥 좋은 선배, 예전에 도움을 줬던 사람,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수 정도로 생각하는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들은 친구는 저를 보더니 혀를 끌끌 차더군요.
“야, 너 진짜 모르는 거냐?”
라고요.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저한테 관심이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냥 고마운 선배에게 편하게 연락하는 걸 제가 괜히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