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와 결혼해도 될까요
제목 그대로 5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 얘기가 오가고 있는데 많이 고민이 됩니다.
사실 양가에 인사도 드렸고 날도 잡아서 웬만하면 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 거 같은데, 그래도 제가 어떤 조언을 들으면 좋을지, 이 남자에게는 어떤 말을 해주면 좋을지 의견이 궁금합니다.
먼저 좋은 점은,
이 남자, 사람이 참 좋습니다. 텐션 자체가 잔잔하니 물 흐르듯 넘어가는 편입니다. 워낙 사람이 둥글둥글해 여사친도 많아서 첨엔 그걸로도 많이 싸우긴 했지만, 햇수가 오래되니 저도 좀 그 문제는 무뎌졌고, 그 사람 나름의 인생관이니 존중해주기로 했어요. 욕도 안 하고, 웬만하면 저한테 맞춰주고 존중해줘서 5년간 저한테 화낸 게 한 손가락 안에 드네요.
무엇보다 물욕이 별로 없어요. 아끼려고 아끼는 게 아니라 그냥 소비에 별 관심이 없어요. 오죽하면 전에 본가에서 지낼 땐 식비도 잘 안 나가서 연말정산 때 오히려 추가로 더 냈다고 하더군요. 경제적인 부분에서 '낭비', '탕진'으로 걱정되진 않을 거 같아요. 30대가 됐을 때 주식없이 예적금으로만 1억을 모았더라고요. (본인은 또 근데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더군요..제가 알려줬어요.. 밑에서 보면 아시겠지만 1억 모으기를 계획해서 모은 그런 설계에 능한 사람은 아닙니다)
이제부터 고민지점인 문제입니다.
이 남자, 욕심+작심삼일+무계획 쓰리콤보입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자꾸 자기가 해보겠다, 맡겨달라 그래서 맡기면, 안 해요. 하는 꼬라지를 못봐요. 제가 그래서 뭐라고 해서 자극을 받으면 다시 열심히는 하는데 그 동력이 며칠 안 가요.
본인 말로는 결혼준비는 워낙 큰 일이다 보니, 주말 같이 시간 많을 때 자기가 맘편히 시간을 쭉 쓸 수 있을 때 챙기고 싶었다는데, 그런 여유가 그리 흔하게 있겠냐고요. 전 출퇴근, 쉬는시간 마다 않고 짬짬이 내서 드레스 알아보고 하는데..
그리고 사람이 잔잔하다 했잖아요. 삶이 계획대로 안 돼도 큰 타격을 안 받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애초에 '계획'을 안 합니다. 정확히는 '인생설계'를 안 해요.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안 되니 그냥 물 흐르듯 몸을 맡기되 대응만 해나간다는 마인드로 보인달까.
와중에 본인 루틴은 또 잘 챙겨요. 아침마다 운동가고 뉴스보고 가계부 쓰고...그런거 보면 삶은 성실히 사는데, 너무 마이크로매니징 같달까.. 지금 저 뒤에 더 큰 '결혼'이라는 행사가 기다리고 있는데, 가정을 이끌어 갈 사람이 되는 건데 뭐가 저렇게 태평한지.
그냥 조금 미루는 사람 정도인 거 아니냐고요? 대기업 취업해보겠다는 사람이 한달간 냅뒀더니 고작 한 게, 지원할 기업 리스트업을 해놨대요. 실제 넣거나 자소서 작성을 시작한 건 하나도 없었고요. 자꾸 뭔가 여건이 준비되는 거에 고집해요. 오래 걸리는 일이니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하겠다, 지원할 기업이 뭐뭐인지 알기 쉽게 쭉 정리를 먼저 해놓겠다 등등, 프러포즈는 분위기 좋은 행사를 먼저 알아보겠다고 한지만 벌써 1년이 넘었네요...
(이런 사람인데도 의외로 결혼에 대해서는 '준비가 안됐다' 이런 얘기 안 하고 좋아라 하자네요. 확신있게 저를 사랑하는 거 같은데, 왜 저한테는 확신을 못 갖게 하는 건지ㅠ)
그러면서 자기가 미안하다고 이번엔 열심히 해보겠다고 또 욕심부려요. 자꾸 뭔가를 만회를 하고 싶나봐요. 지금 만회가 중요한 게 아니라 뭐라도 진행이 돼야하는데, 근데 작심삼일도 나름 실행력이라고 첨엔 또 열심히 해요. 그래서 어! 이번엔..? 하면 또 어김없이 용두사미가 됩니다. 언제까지 믿어줘야 할지.. 자극은 잘 받긴 하는데 제가 매주마다 자극을 주는 것도 피곤하고 지치잖아요ㅠ
전에는 본인이 먼저 일본여행 가자고 얘기해놓고, 자기가 코스 짜보겠대요. 그래서 알겠다고 했는데, 한달인가 두달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안 해놨더래요. 제가 그래서 왜그랬냐고 물었더니, 제가 그때 아직 취준중이었는데, 제가 취업 되면 일정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제 취업을 기다렸대요. 제가 그럼 취업 안되면 영원히 안 갈 생각이었던 건가..
결국, 알아보라고 닥달한 날 들어가서 보니, 기억나시는 분들 계실 텐데, 바로 며칠 직전에 외국인관광객 대상 일본 열차비가 크게 올랐더군요. 진작 알아봤으면 더 싸게 갔을 텐데. 그와중에 정말 알아만 보고, 본인 혼자 오늘은 이정도면 됐다 하고 비행기표는 안 끊어놨던데, 그담날 비행기값이 10만원이나 올랐습니다..ㅂㄷㅂㄷ지금도 생각하면 답답해 미치겠네요.
암튼 정리해보면, 본인 혼자 살 사람이면 정말 갓생에 열심히 사는 사람이지만(가사도 알아서 잘 챙겨서 합니다), 가장으로, 남편으로 보면 이렇게 태평한 사람을 믿고 의지해도 되나 싶은 사람이라 고민입니다. 저는 아직 20대인데 연애기간이 길어져서 관성으로 결혼하는 건 아닐지..
이 사람 지금은 결국 대기업 취업 실패해서 최근 다른 중소기업으로 이직했는데, 이직 성공했다고 며칠 또 놀고먹네요.. 저는 지금 중견인데도 육아휴직, 출산휴가 편히 쓸 수 있는지, 없으면 가능한 곳으로 미리 이직해놔야 하나 고민하고 알아보고 있는데..
성향차이 때문에 유독 제가 더 스트레스 받는 쪽인거 같긴 한데, 어떻게 극복해볼 수 있을까요ㅠㅠ 글이 좀 길어졌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