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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눈 제거해보신 분!
발에 티눈이 났는데, 어렸을때 어렴풋이 아프게 제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혹시 요즘 병원에서는 어떻게 제거하는가요?
fastdesk
억대연봉
쌍 따봉
25년 0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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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커넥트 광고 배너... 이랬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리멤버에 대한 애정이 넘치시는 ENDI2님의 좋은 글 보고 저도 생각나서 올려보는 내용. https://link.rmbr.in/sf4ejd 요즘 리멤버 커넥트 열심히 밀고 계시는 것 같아요. 방향성 좋고, 추진력도 좋은데 정작 바퀴가 작은 것 같습니다. 아래 배너 이미지에서 좀 이상한 것 발견하셨나요? 그냥 지나치면 잘 안보일텐데요. <당신이 '찾던' 업계 프로를 바로 '찾아'보세요!>라고 적혀 있죠. '찾던', '찾아'가 겹쳐요. 사실 별거 아닐 수도 있고 이렇게 이야기하면 억까일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리멤버에 있었다면(물론 지원했는데 안 뽑아주신 ㅎ), <당신에게 필요한 업계 프로. 바로 찾아보세요!> <당신을 도와줄 업계 프로를 쉽게 찾아보세요!> <당신의 힘이 될 업계 프로를 쉽게 찾아보세요!> 라고 썼을 것 같습니다. 한발 더 나간다면, <업계의 프로를 쉽고 빠르게 찾는 방법> <찾고 계시던 그루와 업계의 프로들이 여기에> 그리고 커넥트 부분에는 색을 넣어 부각시킬 거고요. PS. 기획자님, 카피님 죄송합니다.
고다르
쌍 따봉
25년 0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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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모호하게 하는 팀장 능력 부족임
자기도 잘 모르니까 말을 모호하게 해서 상대방이 매번 되묻게 하는데 진짜 답답하다. 제발 정신 좀 차렸으면 능력이 없으면 은퇴를 해라 그냥 회서 월급 축내지말고
소소도로
25년 0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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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리멤버 커뮤니티가 훨씬 재밌고 유익해졌다고 느끼는 이유 (장문주의)
안녕하세요 여러 선배님들, 동료분들. 저도 연차 깨나 먹은 직장인으로, 이곳에서 이직 팁과 업계 동향을 귀동냥으로 얻어가며 이래저래 도움을 받은 눈팅 사용자 중 한 명입니다. 요즘 "여기는 원래 건실하고 생산적으로 이직 / 커리어 상담을 하는 곳이었는데..." 라며 리멤버 커뮤니티의 바뀐 분위기를 논하는 댓글들이 가끔 보여서, 저 역시 애정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제 생각을 조심스럽게 나눠보고 싶어 글을 씁니다. 최근 연애나 결혼, 일상 관련 글이 많아지면서 이런 아쉬움을 토로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초기에 깊이 있는 커리어 고민을 나누던 특유의 분위기를 사랑하셨던 분들이라면, 지금의 변화가 조금은 낯설고 아쉽게 느껴지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겁니다. 여러가지 종류의 글들이 올라오면서 북적북적해진 건 좋지만 우리만 알던 분위기가 옅어지는 것 같고 해서 불안하기도 할테고요. 하지만 저는 이 변화가 오히려 리멤버 커뮤니티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가장 큰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1. 우리의 정체성은 '회사'가 아니라 '직장인'이니까요.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는 회사에서만 살아가지 않습니다. 점심시간 동료들과 나누는 대화 주제가 꼭 회사 이야기만은 아니잖아요. 어제 본 드라마 이야기, 주말에 다녀온 맛집, 남자친구 여자친구 이야기, 결혼 준비의 어려움, 주식장에 대한 걱정... 이 모든 것이 직장인의 삶을 이루는 현실적인 고민과 관심사입니다. 그러니까, 리멤버 커뮤니티는 이제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직장인이라는 사람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커리어 고민만큼이나 중요한 인생의 여러 고민들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이죠. 2. '가벼운 글'이 '무거운 글'을 살리는 선순환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커리어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야지!" 라는 말씀도 맞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바로 그 가벼운 글들이 커리어 관련 글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취미, 유머, 연애, 결혼 생활 상담 같은 글은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합니다. 이렇게 커뮤니티에 자주 들어오게 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글들에도 눈길을 주게 되니까요. 그래서 더 다양한 의견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생각을 요즘 종종 해요. 유입된 다양한 사람들 중에는 분명 특정 분야의 전문가나 경험자가 있잖아요. 가벼운 글로 커뮤니티에 정을 붙인 IT 전문가가, 어느 신입 개발자의 고충 글에 진심 어린 조언을 남겨줄 확률이 훨씬 높아지는 것입니다. 결국 다양한 주제의 글들은 커뮤니티의 활력을 만드는 연료가 되어서,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전문적인 고민에 대한 답변까지 풍성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게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전에는 그런 글이 너무 어렵고 무거워서 아예 댓글이 없었다면 요즘에는 한두개라도 달리는 걸 봤거든요. 3. 무엇보다, 이곳은 신뢰할 수 있는 <어른들의 대나무숲>이 되었습니다. 사실 연애나 결혼 같은 사적인 고민을 아무 데나 털어놓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유독 우리 리멤버 커뮤니티에 이런 글들이 자주 올라오는 이유는 단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리멤버 커뮤니티 사용자들에 대한 신뢰요. 이곳에는 익명성 뒤에 숨어 상대를 비난하기보다, 비슷한 사회적 경험을 바탕으로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는 어른들이 많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 초창기부터 이어져 온 리멤버 커뮤니티만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제가 다양해진 것은 이 훌륭한 문화가 다른 영역으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겪는 논쟁은 커뮤니티가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 겪는 행복한 성장통인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말 연애나 결혼생활 이야기가 보고싶지 않으시다면 보지 않게 할 수 있는, 카테고리별 필터 기능 강화 등 기술적인 보완이 이루어지면 더 좋겠지요. 하지만 방향성 자체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믿습니다. 다양한 이야기가 공존하되, 그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는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 리멤버 커뮤니티를 다른 곳과 차별화하는 가장 큰 힘이 될 테니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이곳이 모든 직장인들에게 힘이 되는 소중한 공간으로 남길 바랍니다.
ENDI2
25년 0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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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탈출 모임 모집!
안녕하세요, 저는 국내 대기업에서 기획 업무를 맡고 있는 직장인입니다. 저와 함께 경제적/시간적 자유를 향해 성장하실 분을 찾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투자에 성공하거나, 커리어 하이를 찍은 성공한 사람은 아닙니다. 여러분과 비슷한, 언제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지 각을 재고 있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 저이지만, 큰 꿈이 있기에, 이 꿈을 향해 함께 나아갈 동료를 찾고 있습니다. 거창한 건 아닙니다. 매일 나의 장점을 더 발굴하고, 업무 외에 나의 경제적 시간적 자유를 위해 한 일을 공유하고 서로 격려하는 생산적인 커뮤니티를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누군가가 성공하면 직장에서처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축하해주고, 파티를 열 계획입니다. 함께 동참하실 분은 언제든 접속해주세요. 참여코드는 happines 입니다. https://open.kakao.com/o/giXAOJSh
lllllaaa
25년 0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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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고양이 자랑해도돼?
넘 귀엽징 다들 오후 화이팅
미오장수하자
25년 0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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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카드 297만명 정보 유출... 해당되는지 확인해보세요.
롯데카드 “297만명 정보 유출·28만명 고객정보 부정사용 가능성…전액 보상 방침” 속보라 기사 내용은 없고 헤드라인만 떴네요. 롯데카드 앱에서 유출 여부 확인 가능한 것 같습니다. 정보 유출 고객에 연말까지 무이자 10개월 할부 혜택 준다네요 ㅎ CVC까지 털린 분도 있다고 하니까 찜찜하신 분들은 빨리 재발급 신청하세요. 아마 지금 신청해도 한참 뒤에나 발급될 것 같습니다.
하운드
25년 0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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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스토리) 바람의검심은 알고 신센구미(신선조)는 모른다고?
신센구미(신선조,新選組)는 일본 근대화 직전, 막부 말기의 혼란기 속에서 탄생한 무사 집단이자, 동시에 신화가 된 존재입니다. 1863년 교토에서 결성된 이 조직은 단순한 폭력 집단이나 경비 조직이 아니라, 막부가 붕괴 직전의 위기를 막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사실상의 ‘특수경찰’이었습니다. 당시 교토는 반막부 세력이 활발히 활동하며 암살과 방화, 소요가 끊이지 않았고, 천황과 조정의 권위를 둘러싼 정치적 혼란까지 겹쳐 있었습니다. 이 불안한 시대 상황 속에서 신센구미는 질서를 지키고 반막부 세력을 억누르며, 막부 말기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 잡게 됩니다. 신센구미의 구성원들은 대체로 지방 하급 무사나 낭인 출신이 많았습니다. 가문의 권세나 부귀를 등에 업은 이들이 아니라, 오직 검술과 무예, 충성심으로 평가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출신과 신분의 한계를 넘어, 자신들의 칼과 생명을 담보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려 했습니다. 이는 전통적 무사 계급의 몰락과 새로운 사회질서의 탄생 사이에서 흔들리던 막부 말기 일본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조직의 중심에는 기요카와 하치로, 곤도 이사미, 히지카타 토시조, 오키타 소우지 같은 강렬한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곤도 이사미는 농가 출신이었으나 검술의 달인으로 성장해, 결국 신센구미의 초대 국장(組長)에 올랐습니다. 그의 오른팔이자 부국장이었던 히지카타 토시조는 냉철한 판단력과 강철 같은 의지로 조직의 규율을 지켜냈습니다. 신센구미의 규율은 가혹하기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배신, 명령 불복종, 탈영 같은 행위는 곧바로 할복이나 참수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무서운 규율 덕분에 신센구미는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단결된 전투력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검술 실력은 신센구미의 생명줄이었습니다. 오키타 소우지는 어린 나이에 이미 탁월한 검술 실력으로 명성을 떨쳤고, 전투 현장에서는 번개 같은 검격으로 적을 쓰러뜨렸습니다. 실제로 신센구미가 교토의 번잡한 거리에서 반막부 세력을 급습할 때, 오키타의 검술은 적들을 공포에 몰아넣는 상징적 존재였습니다. 이런 무사들의 모습은 훗날 문학과 드라마에서 더욱 미화되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사 집단’이라는 신화를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케다야 사건(1864년)입니다. 반막부 세력이 교토 시내를 불태우고 천황을 납치하려는 계획을 세우자, 신센구미는 신속하게 정보를 입수하고 밤중에 이케다야 여관을 습격했습니다. 그들의 과감한 공격으로 음모는 저지되었고, 신센구미의 이름은 전국적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전투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교토의 혼란을 잠재우고 천황과 막부의 권위를 일시적으로나마 지켜낸 이 공적은 신센구미를 ‘질서의 수호자’로 각인시켰습니다. 이러한 사건들로 신센구미는 백성들 사이에서도 공포와 존경이 뒤섞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교토의 상인과 서민들은 신센구미가 거리를 순찰할 때마다 긴장했습니다. 그들의 규율은 잔혹했고, 작은 위반에도 무자비한 처벌이 따랐기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한 시대 속에서 질서를 세우고, 도적과 과격파로부터 마을을 지켜내는 모습은 서민들에게 일종의 안도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 모순적인 감정은 신센구미가 단순히 폭력 집단이 아닌, 시대가 만들어낸 상징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신센구미의 활동과 명예 뒤에는 냉혹한 현실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막부 권력의 수호자였고, 시대의 흐름이 메이지 유신으로 기울어갈수록 점점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반막부 세력이 근대적 군사 조직과 신무기를 도입해 전력을 강화하던 시기에도, 신센구미는 여전히 전통적 검술과 무예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결국 이 간극은 메이지 유신의 성공과 막부의 몰락이라는 결과로 이어졌고, 신센구미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센구미가 신화적 존재로 기억되는 이유는, 단순히 패배한 무사 집단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막부 말기라는 거대한 전환기에,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충성, 명예, 생존을 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집단이었습니다. 히지카타 토시조가 마지막까지 싸우다 전사한 모습은 단순한 무인의 죽음을 넘어, 한 시대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오키타 소우지는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천재적 검술과 인간적 매력은 후대 사람들에게 ‘비극적 영웅’의 이미지를 남겼습니다. 또한 신센구미는 단순히 무력 집단이 아니라, 일본 사회의 근대화 과정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부 신센구미 출신은 새로운 경찰 조직이나 군대에 합류해 일본 근대 국가 형성에 기여했습니다. 그들이 지녔던 강력한 규율, 전투 경험, 조직 운영 방식은 근대적 제도 속으로 부분적으로 흡수되었고, 이는 신센구미가 단순히 과거의 유물에 머물지 않고 일본 근대화의 그림자 속에서도 흔적을 남겼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적 의미를 과장해서만은 안 됩니다. 신센구미는 근대화의 ‘개척자’라기보다는, 붕괴하는 전통을 지키려 한 최후의 방패였습니다. 그들의 충성과 무용담은 후대에 낭만적으로 미화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새로운 시대의 물결을 막지 못한 ‘패자의 서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신센구미는 단순한 영웅 집단이 아니라, 근대와 전통 사이에서 갈라지는 역사의 균열 속에서 태어나고 사라진 ‘시대의 아이콘’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오늘날 일본 사회에서 신센구미는 드라마, 소설, 만화 속에서 여전히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검을 들었던 그들의 모습은, 현대인들에게도 충성과 용기, 그리고 비극적 영광이라는 테마로 다가옵니다. 일본의 대하드라마에서는 곤도 이사미와 히지카타 토시조의 고뇌와 결단이 반복적으로 그려졌고, 소설에서는 이들의 비극적 영웅성이 낭만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는 오키타 소우지가 젊은 천재 검사로 등장하거나, 히지카타 토시조가 냉철한 전략가로 재해석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패러디 작품이나 현대극 속에서도 신센구미는 시대를 초월한 캐릭터로 변주되며 등장합니다. 이처럼 신센구미는 단순한 역사적 집단이 아니라, 현대 일본 대중문화 속에서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상징적 코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화 뒤에 감춰진 냉혹한 현실을 이해할 때, 우리는 신센구미의 진짜 의미를 더 깊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대의 거대한 변화를 맞닥뜨린 개인과 집단이 어떻게 끝까지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살아갔는가 하는, 인간적이고도 역사적인 드라마입니다. 결국 신센구미는 단순한 무사 집단이 아니라, 근대와 전통이 교차하던 전환기에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명예와 생존을 선택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드라마였습니다. 동시에 그들의 이야기는 공포와 존경, 충성과 패배, 비극과 영광이 교차하는 복합적 서사로, 지금까지도 일본인의 집단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감성유랑극단방송
25년 0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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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차례대행 하는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번 추석때 개인적으로나 집안내부적으로 이슈도 있는데 추석에 차례를 갑자기 안지낼순 없고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은데, 알아보니까 차례대행하는 서비스가 있더라구요 전문성도 있어보이고 챙기는 것도 의미있고 집안에 한 번 말씀드려볼까 하는데 어르신들이라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네요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조회수가 엄청 많아졌네요.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 것 같아서 추가로 좀 덧붙여 봅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음식준비로 늘 부담이 있어왔는데 부모님은 차례는 꼭 챙기고 싶어하셔서 이런방식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요즘 음식 사서도 한다지만 그것도 비용이 만만치 않고.. 맡기고 그만인게 아니라 직접 가볼수도 있는거라서, 부모님 모시고 가보려고 한거거든요. 여건이 안되면 온라인도 있구요 모든 집이 제사를 바로 없앨수 있는건 아니니까요.. 홈페이지 보면 취지가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냥 비난 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당황스럽기도하네요 ;;
차밀
25년 0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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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면 항상 등이 아파요. 이런경험 해보신 분들 계신가요..?
얼마전부터 자다가 등이 아파서 깹니다... 이런 경험 있으시분들 계신가요...?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조언 좀 부탁드립니다 ㅠㅠ 단순 운동부족일까요..?
스마트한노력
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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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에 대해서
안녕하세요 작은 회사로 시작해서 대기업 이직 후 현재 수습이 종료된 직장인 입니다 이직 후 수습 기간동안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여 정규직 전환이 안될 줄 알았는데 운 좋게 전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여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해서 팀원들에게 미안함 마음이 계속 누적되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메일을 볼때마다 글자가 안읽혀서 숨이 막히고 글 쓰는 행동에 심각한 어려움을 느껴서 현재는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행위도 너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다니고 싶은 이유는 현재 회사의 업무 퀼리티가 추후 저의 커리어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회사를 다녀서 지금 상황을 극복하고 싶지만... 팀원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저의 몸이 망가지고 있는것을 체감하면서 다니는게 맞는건지 아닌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파닥몬같은아구몬
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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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스토리) 근대 일본의 설계자 료마를 아십니까?
사카모토 료마는 1836년 일본 도사번(현재의 고치현)에서 비교적 하급 사무라이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검술을 익혔고, 청년 시절에는 에도(지금의 도쿄)로 올라가 무술을 연마하면서 세상에 눈을 뜨게 됩니다. 하지만 단순한 무사로 살아가기보다는, 당시 격동의 일본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시대는 막부 말기로, 일본은 개항 이후 서구 열강의 압력과 내부의 혼란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막부 체제는 점점 힘을 잃고 있었고, 각 지역 번과 사무라이들 사이에서 일본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료마는 전통적인 무사 신분의 틀을 깨고, 일본 전체의 미래를 고민하는 혁신가로 변모했습니다.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이른바 ‘사쓰마와 조슈의 동맹’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원래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서로 대립하는 세력이었지만, 료마는 일본이 근본적으로 개혁되려면 이 두 세력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점을 간파했습니다. 그는 양쪽을 설득하여 동맹을 성사시켰고, 이것이 훗날 막부 타도의 결정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또한 료마는 ‘해원대(海援隊)’라는 조직을 만들어 무역과 정치 활동을 병행하며 근대화의 길을 모색했습니다. 단순히 정치 권력의 쟁취가 아니라, 일본이 근대 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역, 산업, 해운을 포함한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는 그가 단순한 무장이 아니라 사상가이자 실천가였음을 보여줍니다. 사카모토 료마가 일본 근대화의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단순히 그가 막부 타도의 동맹을 성사시켰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그는 일본 사회가 전통적 신분제와 봉건 체제에 갇혀 있을 때, 한 세대 앞선 사고를 보여주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첫째, 그는 국가를 ‘번(藩)’이라는 지역 단위가 아니라 ‘일본 전체’라는 개념으로 보았습니다. 당시 많은 사무라이들은 자신이 속한 번의 이익에만 충실했지만, 료마는 이미 일본을 근대적 ‘국민국가’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도사번 출신의 하급 무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쓰마번과 조슈번 같은 강력한 세력을 설득하여 연합시켰습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정치적 교섭을 넘어, 일본이 하나의 통합된 국가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둘째, 그는 무사로서 칼만 휘두른 것이 아니라 경제적, 제도적 기반을 고민했습니다. 해원대의 창설은 단순히 무역 활동을 넘어 일본이 세계와 교류하고, 군사력과 경제력을 근대적으로 재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점에서 그는 일본판 ‘기업가형 혁신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살던 시대에는 아직 ‘근대 경제’라는 개념조차 낯설었는데, 그는 이미 해운과 상업을 국가의 힘으로 연결시키려 했습니다. 셋째, 그는 구체적인 개혁 구상을 제시했습니다. 료마가 남긴 ‘선중팔책(船中八策)’은 일본의 근대 국가 체제를 구상한 문건으로, 거기에는 의회 설립, 신분제 철폐, 근대적 군제 개편, 국제무역 확대 등 훗날 메이지 유신 정부가 실제로 실행한 핵심 정책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단순한 행동가가 아니라,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한 사상가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개인적 면모가 일본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권위와 위계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다양한 계층과 교류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던 그의 모습은 일본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낡은 질서에 맞서는 청년 혁명가’이자 ‘유머와 인간미로 무장한 지도자’로 기억됩니다. 이런 점에서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 근대화의 방향을 제시한 선구자로, 제도적으로는 아직 불완전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이미 ‘근대 일본’을 살아낸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지금도 일본에서 자유, 혁신, 청년 정신의 상징으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근대화에 대한 료마의 상징성은 때때로 과장되기도 합니다. 근대 일본은 그가 사망한 뒤에도 여전히 혼란과 불평등 속에서 성장했고, 료마 혼자서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그의 공적은 ‘선도적 구상과 정치적 연합 촉진’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막부 타도와 번 연합의 성과는 여러 사람과 사건들의 복합적 결과였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비전과 실행력, 그리고 시대를 앞선 사고는 이후 일본 근대화의 방향을 상징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료마의 개인적 삶 또한 당시 일본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그는 가난한 하급 무사로 태어나 신분적 제약과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자유로운 인간관계를 추구했고, 권위와 격식을 거부하며 다양한 계층과 교류했습니다. 이러한 성격 덕분에 그는 새로운 정치적 연합을 만들고, 다양한 계층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검술 능력은 단순히 무사로서의 명성을 넘어, 정치적 협상에서도 상대방에게 신뢰와 무게를 부여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의 검술은 기술적 숙련만이 아니라, 냉정한 판단력과 위기 관리 능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지표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너무 짧았습니다. 1867년, 메이지 유신이 막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 그는 교토에서 암살당합니다. 범인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나이 33세. 그의 죽음은 일본 근대화의 길을 앞서 보여주던 젊은 지도자의 안타까운 최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카모토 료마는 여전히 일본 역사에서 상징적인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무사 계급 사회의 틀을 깨고, 일본을 하나의 근대 국가로 재편하려는 큰 그림을 제시한 인물입니다. 그의 장점은 혁신적인 사상, 뛰어난 조정 능력, 그리고 인간적인 매력이었고, 단점이라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체계적인 조직 기반이 약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료마의 삶과 활동을 통해 당시 일본 사회가 단순히 봉건적 질서에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도 변화를 꿈꾸고 국제적 감각을 가진 인물들이 있었고, 그들의 행동은 근대 일본의 토대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무사 출신으로서 검술의 달인이었지만, 동시에 경제, 외교, 정치의 감각을 갖춘 전략가였던 것입니다. 결국 사카모토 료마는 검술과 무사적 능력을 기반으로 한 개인적 용맹, 시대를 앞서간 국제적 시각과 정치적 통찰, 그리고 구체적인 개혁 구상을 결합함으로써 일본 근대화의 길을 열었습니다. 그의 삶은 단순한 전설이나 낭만적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당대 일본 사회 속에서 현실적으로 존재했던 혁신과 용기의 실체였던 것입니다. 사카모토 료마는 메이지 유신의 ‘숨은 설계자’이자, 일본 근대화의 꿈을 미리 꾼 혁신가였습니다. 그의 짧지만 강렬한 생애는 오늘날에도 많은 일본인들에게 자유와 개혁의 상징으로 회자됩니다.
감성유랑극단방송
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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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스토리) 로마최초황제가 되는 건 너무 힘들어
아우구스투스, 본명 가이우스 옥타비우스는 기원전 63년 로마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소도시 벨레트라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원로원 귀족 가문이 아니라 기사 계급 출신이었고, 혈통적으로는 전형적인 로마의 지방 유력자 가문에 가까웠습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중상층 집안의 아들’ 정도였던 셈이지요. 그러나 그의 어머니 아티아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조카였기에, 옥타비우스는 어린 시절부터 카이사르와 일정한 친연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이 미묘한 혈연적 인연이 훗날 그의 운명을 극적으로 바꾸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옥타비우스는 건강이 좋지 않아 전장에서 활약하기보다는 행정과 정치에서 두각을 드러낼 가능성이 큰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찍부터 배움에 열심이었고, 남들 앞에서 차분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주는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지도자였던 카이사르는 옥타비우스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를 후계자로 삼아 양자로 입적합니다. 이 순간부터 한 소도시 출신 청년의 삶은 로마 제국 전체를 바꾸는 궤도로 들어서게 됩니다. 카이사르가 암살당했을 때, 로마는 피로 얼룩진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원로원 귀족들과 카이사르파, 군대와 민중이 모두 분열되어 있었고, 공화정의 권위는 이미 무너져 있었습니다. 이 혼돈의 시기에 갓 스무 살을 넘긴 옥타비우스는 놀라운 결단을 내립니다. 카이사르의 유언장을 들고 나와 자신이 양자이자 정당한 후계자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경험도, 군사력도 없던 청년이었지만, 그는 민중과 군대를 설득하며 차근차근 세력을 모았습니다. 그의 권력 장악 과정은 냉혹한 정치적 수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카이사르 암살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손잡고 제2차 삼두정치를 수립합니다. 하지만 권력은 나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격파한 후, 옥타비우스는 점차 안토니우스와 대립했고, 마침내 악티움 해전에서 클레오파트라와 연합한 안토니우스를 무너뜨렸습니다. 이 승리로 그는 사실상 로마 세계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었고, 기원전 27년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라는 존칭을 받으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가 권력을 잡은 뒤 보여준 정치적 지혜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그는 독재자의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공화정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실제로는 모든 실권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황제가 아닌 ‘프린켑스(시민들 중 첫째)’라고 불렀고, 원로원과 귀족들의 체면을 살려주며 동반자로 대우했습니다. 그러나 군대의 충성은 철저히 본인에게 귀속시켰습니다. 로마 시민들에게는 bread and circuses, 즉 빵과 서커스를 제공하며 생활의 안정을 보장했고, 행정 개혁과 세제 정비로 제국의 재정을 튼튼히 다졌습니다. 그의 개혁은 실로 제정 로마의 기초를 다진 것이었습니다. 직업 군제를 도입해 국경 방위를 안정시켰고, 도로와 항구를 건설해 로마를 지중해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나는 로마를 벽돌의 도시로 물려받았으나, 대리석의 도시로 남겼다’라는 그의 말처럼, 건축과 도시 정비에 심혈을 기울여 제국의 위용을 드러냈습니다. 그의 치세는 팍스 로마나라 불리는 평화의 시대를 열었고, 이후 200년 가까이 로마는 안정과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개인으로서의 아우구스투스는 이중적이었습니다. 그는 냉정할 정도로 계산적이었고, 필요하다면 가장 가까운 동맹조차 희생시켰습니다. 안토니우스와의 결별은 그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또한 말년에는 후계자 문제를 두고 가족 내에서 잦은 갈등을 겪었으며, 결국 이상적인 후계자를 찾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을 했으며, 정치적 승리 뒤에는 항상 신중함과 절제가 따라붙었습니다. 이런 면모 덕분에 그는 폭군이 아닌 안정된 건국자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삶을 그려보면, 한 소도시 출신의 청년이 혼란한 시대를 헤쳐나가 로마 제국의 설계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놀랍습니다. 그는 권력의 본질을 꿰뚫었고, 무력을 넘어 제도를 장악해야 진정한 지배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인간적인 갈등과 한계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제정 로마는 서양 문명의 기초가 되었고, 그 체제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500년 넘게 유지되었습니다. 이 점에서 그는 단순한 황제가 아니라 역사의 ‘시스템 창조자’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권력이란 단순히 힘으로만 얻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와 한 개인의 능력, 그리고 냉혹한 현실 감각이 어우러져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교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감성유랑극단방송
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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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전세계 챗gpt 사용량 2위인 이유 (슬픔 주의)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게 문제죠 역시... 일하면서 쓰다가 결국에는 의존도가 너무 높아져서 개인으로도 결제해서 삶의 효율까지 높이게 되는 아아 효율의 민족...!
그레그레
금 따봉
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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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니까 무서운 얘기
고등학생때 여름방학이었습니다 새벽늦게까지 친구들이랑 문자하느라 항상 엄마가 혼내서 내방에 불끄고 몰래 휴대폰하고 있었어요 방문앞에 누가 서있길래 당연히 엄마인줄알고 "아~ 알았다~ 휴대폰 그만하고 잘게~" 이랬는데 대답이 없는거야 엄마가 화났나 싶어서 "아~ 끈다니깐~ 화났나?" 이래도 대답 없어서 휴대폰 불빛을 휙 비췄지 그러니깐 서있던 사람이 후다다닥 안방쪽으로 도망가는거야 아.. 엄마 ㅋ 나랑 장난치는건가 싶어서 (안방 가기전에 화장실이 있어) 내가 그땐 무슨 생각이었는지 ㅋ 엄마 무조건 잡아야지 생각에 ... 화장실 불도 안켜고 화장실 욕조부터 막 찾았는데도 없는거야 그래서 안방으로 갔지 안방이 가니깐 엄마랑 아빠랑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자고 있길래 아 ㅋ 엄마 또 자는 척 하네 하고 이불을 휙 재치니깐 진짜 자고 있더라고... 거기다가 문앞에 서있던 사람이 입었던 잠옷이랑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자고 있는거야.... 와 씨 그때부터 너무 소름 돋아서 그날 불켜고 잤어... 그리고, 그 형체가 입었던 잠옷은 칠부 프릴 하얀색 바지잠옷이었어
커멘드키
25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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