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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국노 아들이 만든 김치 드시겠습니까?
슈퍼네임드 친일파, 을미사변의 주범 우범석의 아들, 우장춘.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접니다. 씨없는 수박을 만든 사람 정도로 기억하시는 분이 많은데요, 사실 씨없는 수박을 우장춘 박사가 만든 건 아닙니다. 근데 그게 별로 안 중요할 만큼 진짜 업적이 훨씬 대단한 사람인데 다른 업적들이 크게 알려지지 않아 아쉬운 마음에 글을 써봅니다. 1. 아버지는 을미사변의 주범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우장춘의 아버지 우범선은 조선 훈련대 제2대대장이었는데, 을미사변 당시 일본 낭인들을 궁궐로 안내하고 명성황후 시해에 직접 가담한 인물이에요. 사건 후 처벌을 피해 일본으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일본인 여성 사카이 나카와 결혼해서 낳은 첫째 아들이 바로 우장춘입니다. 즉 우장춘은 태어날 때부터 조선을 팔아먹은 역적의 자식이라는 딱지를 달고 시작한 거예요. 심지어 아버지는 우장춘이 다섯 살 때 명성황후의 원한을 갚으러 온 자객 고영근에게 암살당합니다. 아버지 없이 지독한 가난 속에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일본인들한테는 멸시받고, 매국노 자식이라는 이유로 또 손가락질받으며 자란 거죠. 어느 쪽에서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 유년기였습니다. 이 배경을 알아야 뒤에 나올 얘기가 더 묵직하게 다가와요. 2. 도쿄제국대학, 그리고 다윈도 몰랐던 것을 증명하다 가난 속에서도 우장춘은 도쿄제국대학 부설 농학 실과에 들어가 원예육종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1935년, 세계 학계를 뒤집어놓는 논문을 씁니다. 제목은 "배추속(Brassica) 식물에 관한 게놈 분석". 당시까지 진화론의 정설은 이거였어요. "같은 종끼리만 교배해야 자손을 남길 수 있고, 다른 종을 교배하면 자손을 못 낳으니 새로운 종이 나올 수 없다." 종은 아주 오랜 시간 자연선택을 통해서만 서서히 변한다는 게 다윈 이후 학계의 상식이었죠. 우장춘은 배추(B. campestris)와 양배추(B. oleracea)를 교배시켜서, 염색체 수가 배가되면(배수체화) 완전히 새로운, 그리고 생식 능력을 가진 종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실험으로 증명해버립니다. 실제로 유채(B. napus)가 배추와 양배추의 자연 교잡종이라는 사실까지 밝혀냈고요. 이걸 "종의 합성" 이론이라고 부르는데, 지금도 유전학 교과서에 실리는 내용이에요. 배춧과 작물들의 이 게놈 관계를 삼각형으로 그린 걸 우장춘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이 논문으로 1936년, 조선인 최초로 농학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여담이지만 그 전 해에는 논문을 완성해가던 농사시험장 본관에 불이 났는데 우장춘이 그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자료를 꺼내오려다 주변 사람들이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는 일화도 있어요. 얼마나 절박했을지 짐작이 가죠. 실제로 이 "종의 합성" 이론은 지금까지도 십자화과 식물(배추, 유채, 양배추) 관련 연구에서 빠지지 않고 인용되는 논문이에요. 한국인의 이름이 붙은 과학 이론 중에는 이휘소 박사의 이론과 나란히 놓일 정도로, 해외 과학 교과서에 실제 이름과 이론이 함께 실린 몇 안 되는 사례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후대 평가 중에는 "그가 계속 일본에 남아 연구에만 전념했다면 노벨상을 받았을 가능성도 컸다"는 이야기가 꽤 자주 나옵니다. 실제로 그의 생애를 다룬 여러 글에서 "독창적인 연구로 노벨상을 탈 가능성도 컸으나, 한국에서는 당장 시급한 채소 종자 개발에 힘을 쏟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다"는 식의 평가가 반복해서 등장하죠. 실력은 이 정도로 인정받았지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정작 승진은 막혀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키이 종묘 등에서 연구원으로 커리어를 이어가던 중, 해방을 맞습니다. 3. "아버지의 죄를 씻으려면 조국을 위해 일해라" 해방된 조국은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었어요. 국내 지식인들이 '우장춘박사 환국 추진 위원회'를 만들어서 그의 귀국을 추진합니다. 1950년 3월, 우장춘은 가족을 일본에 두고 혼자 배를 타고 한국으로 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 중에, 독립운동가 김철수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아버지가 매국한 죄를 씻으려면 조선의 독립과 조선을 위해 당신이 배운 것으로 봉사하며 살아야 하고, 절대로 조선인의 성을 갈지 마시오." 이 말이 우장춘에게 깊이 박혔고, 두 사람은 우장춘이 세상을 뜰 때까지 오랜 우정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부산 동래에 있던 한국농업과학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처우는 열악했습니다. 박봉에 인력도 부족하고 한국전쟁까지 겹쳐서 상황은 최악이었죠. 심지어 연구원들이 징집 대상이 되자 국방부와 씨름해서 "이 사람들이 있어야 군인들 먹을 식량이 나온다"고 설득해 간신히 면제를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늘 낡은 고무신을 신고 다녀서 '고무신 박사'라는 별명까지 붙었죠. 4. 그래서 우리가 지금 먹는 것들 우장춘의 진짜 업적은 지금 우리 밥상을 통째로 바꿔놓은 결과물들입니다. - 배추 : 1950년대까지 한국 배추는 얇고 부실해서 김치 담그기도 애매한 수준이었어요. 우장춘 연구팀이 개발한 '원예 2호' 배추가 지금 우리가 아는 속이 꽉 찬 결구배추의 시작입니다. 이게 없었으면 지금의 김치 맛도 없었던 거죠. 이 배추 품종개량은 이후 과학기술 70선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 감귤 : 제주도가 감귤 산지가 된 것도 우장춘이 일본에서 귤나무를 도입해 제주 기후에 맞게 시험재배하고 재배를 권장한 결과입니다. - 감자 : 병에 취약했던 강원도 감자를 무병 씨감자 개발과 시험재배로 개량해서 대관령이 감자 특산지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 무, 벼 등도 병충해 저항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품종개량에 매달렸고요. 그리고 그 유명한 씨없는 수박에 대해 말하자면, 우장춘은 그걸 만든 게 아니라 국내에 처음 들여와 시연한 사람입니다. 당시 농민들이 국내 개량종자를 안 믿고 일본 밀수 종자만 쓰려고 하니까, 새로운 육종 기술을 배우면 이런 신기한 것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충격요법으로 들고 나온 거였죠. 본인이 발명자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언론이 그렇게 대서특필하면서 와전된 겁니다. 오히려 이 오해 때문에 정작 배추, 감귤, 감자 같은 진짜 업적이 가려진 셈이니 좀 억울한 일이죠. 5. 마지막 순간 우장춘은 9년을 오로지 연구에만 쏟다가 1959년 만성 위궤양 악화로 세상을 떠납니다. 향년 61세. 죽기 직전 병상에서 정부로부터 문화포장을 받고는 "조국이 드디어 나를 인정했구나. 그런데 조금만 더 일찍 주지…" 라며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장례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사회장으로 치러졌고, 지금 그의 묘소는 수원 옛 농촌진흥청 자리에 있습니다. 2003년에는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랐고요. 매국노의 아들로 태어나 어디에서도 온전히 환영받지 못했던 사람이 결국 자기 손으로 수천만 명의 밥상을 바꿔놓았습니다. 아버지의 죄를 자기가 대신 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그럼에도 평생을 조국을 위한 연구에 갈아넣었다는 게 참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삶이죠. 혈통이나 태생이 아니라 결국 그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남겼는지가 그 사람을 말해준다는 걸 우장춘의 인생이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퇴근이꿈
은 따봉
16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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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업무 범위가 객관적으로 과도한 수준인지 궁금합니다.
8년 차 마케팅 팀장입니다. 안녕하세요. 현재 상황을 감정적인 부분은 최대한 제외하고, 객관적으로 판단받고 싶어 글을 작성합니다. 저는 마케팅 경력 8년 차이고, 현재 병원에서 마케팅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재 6개월 차입니다. 이전 회사에서도 혼자 일하면서 업무량 성과 매출로 인정받고 팀원을 늘려갔었습니다. 팀원들과 함께 업무했고, 연봉 협상에서도 일년만에 30~40% 수준의 인상을 경험했습니다. 외부 업체나 대표님들도 업무 진행이나 결과에 대한 평가가 좋은 편이었습니다. 퇴사하고 건너건너 뒤에서 들려오는 얘기들만 해도 성격에 대해 안 좋은 말은 있었으나 일은 잘한다고 늘 들어왔습니다. 현재 회사에서는 팀원 없이 혼자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담당하고 있는 업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마케팅 전략 및 전체 업무 기획 * 국내외 광고 및 마케팅 대행사 관리 * 광고 운영 및 성과 관리 * 블로그, SNS, 유튜브 등 콘텐츠 기획 및 운영 * 콘텐츠 제작 및 디자인 * 영상 기획 및 촬영 관련 업무 * 홈페이지 및 랜딩페이지 관리 * 인플루언서 섭외 및 협업 관리 * 고객 후기 및 리뷰 관련 업무 * CRM 및 고객 데이터 관련 업무 * 국내외 업체 커뮤니케이션 및 계약 관련 업무 * 고객 문의 및 전화 응대 * 상담실장 및 코디 업무 지원 * 연구소, 관리실, 수술실 등 병원 내 각 부서 hr 지원 * 병원 운영 관련 행정 업무 * 전 직원의 각종 업무 문의 및 문제 해결 지원 * 대표님과 직원 간 업무 전달 및 커뮤니케이션 * 최근에는 신규 앱 개발과 관련된 내부 공지 및 직원 안내 업무까지 담당하고 있습니다. 마케팅 업무 외에도 병원 내 다른 부서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저에게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이나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저에게 문의하고, 직원들이 대표님께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으면 저에게 대신 문의해달라고 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상담실, 코디, 연구소, 관리실, 수술실 등 여러 부서의 업무와 관련된 문의도 지속적으로 들어옵니다. 결과적으로 하루 동안 마케팅 업무를 하다가 고객 문의를 처리하고, 다른 부서의 요청을 확인하고, 업체와 연락하고, 다시 마케팅 업무로 돌아가는 식으로 업무가 계속 전환되고 있습니다. 뭐하나 일을 제대로 매듭짓지 못하고 이거저거 들어오는대로 쳐내고 나면 하루가 끝나있고 반복의 연속입니다. 최근에는 대표님이 코딩으로 개발하신 자체회사앱과 관련된 장문의 내부 공지가 단체방에 공유되고 있는데, 이걸 다 외울 수 있는 직원이 없는 부분 장담하며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이 모두 저에게 물어보는 상황이라 해당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숙지해야 직원들의 질문에 답변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마케팅 업무뿐 아니라 병원 전체의 여러 업무를 동시에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구조가 되다 보니 기존에 계획했던 업무가 계속 밀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들어오는 일만 쳐내느라 제 업무성과는 기록조차 하지 못하고있습니다 정리가 안되고요. 제가 궁금한 부분은 이것입니다. 8년 차 마케팅 팀장이고 6개월 정도 근무했다면 이 정도 업무를 어느 정도 소화하는 것이 일반적인 수준인지, 팀원이 없으니 모든 구글시트정보작성이며 모든 실무 실행 운영 관리를 다 혼자 하고 있는데 현재 업무 범위 자체가 한 사람이 담당하기에는 과도한 수준인지 궁금합니다. 특히 이전 회사에서는 비슷한 직급으로 근무하면서도 팀원들과 역할을 나누어 업무를 진행했기 때문에, 현재처럼 마케팅부터 디자인·영상·고객응대·행정·병원 운영지원·전 직원 업무지원까지 동시에 담당해본 적은 없습니다. 현재 업무가 계속 누적되고 있고, 우선순위를 정해 중요한 업무부터 처리하려고 해도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타 부서 요청이나 고객 응대, 운영 관련 업무 때문에 계획했던 업무가 밀리는 상황입니다. 제가 실제로 업무 역량이 부족해서 현재 업무를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마케팅 팀장 직무 범위를 넘어선 업무를 맡고 있는 것인지 객관적인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비슷한 규모의 병원이나 기업에서 마케팅 팀장으로 근무하시는 분들이 보시기에 현재 업무 범위가 일반적인 수준인지, 조직 내에서 어느 정도까지 담당하는 것이 적정한지 의견 부탁드립니다.
울라불라캡숑
7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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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 공무원 생존기 15화
적는 자가 살아 남는다
팅커베르
은 따봉
42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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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생활에 아직 배울게 많나봅니다
전 소속장이랑 면담때 팀원이 여러명인데도 코드 구현 대부분의 업무가 혼자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업하는 사람들과 담당자로서 소통하는게 아니라서 방향을 이해하기도 힘들고, 다시 소통을 해야하는 이유가 빈번하다. 내부 인원들도 협업하는 다른 부서 사람들도 제가 무슨 업무를 하는지 모르고 저도 다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서 소통하기 힘들다 라고 했는데 돌아오는 답변이 회사에서 코드 누가 짜냐가 중요하지 않다. 네가 인정욕구가 강하고 소유의식이 있는거 같다. 코딩이 주요업무가 아니고 (개발부서임)다른 사람들은 기록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것이다고 말해서 부서를 이동했습니다. 소속 바꾸고 3개월쯤 지나서 전 소속 사람이랑 협업할 일이 생겼는데 새로 구현 해야하는 부분이 이전 파트에서 했던 부분이랑 유사한게 있습니다. 일정이 굉장히 타이트 하게 잡혀서 확인해야 할 부분이 있으니 유관부서 협의할일이 있으면 저희 부서에서도 같이 참여하고 싶다고 했더니 회의는 자기 부서에서 이전에 진행한거랑 비슷해서 본인이 담당자고 본인 포함 최소 담당인원들만 참석하기로 했다며, 내가 짰던코드 나한테 들고와서 "이런거 짜는게 뭐가 어렵냐 우린 해봤는데 되던데" 라고 하네요 ㅋㅋㅋㅋㅋㅋ 이전 코드야 돌아는 가겠죠 제가 짜고 왔으니까 ㅋㅋㅋㅋㅋㅋ 근데 그걸 나한테 들고와서 자기들은 해봤는데 뭐가 어렵냐고 하는게 맞나요? 그러려고 누가짰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던걸까요? ㅋㅋㅋㅋㅋㅋ 진짜 어이가 없네
ujajuck
10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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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 괴롭힘
현 9개월차 대기업 신입사원입니다 직장내 괴롭힘이 힘들어서 올립니다 매번 웃고다니는 모습이 보기싫은지 이빨보이지마라 형이 우습나 술먹고 가슴팍을 때리면서 만만해? 끓어올라? 계급장때고 한판뜰까 형아직 안죽었어 십원짜리 욕 및 특수반이냐 다 잘되라고 하는말이야 이러고 인사 크게안한다고 윽박 욕 짓거리 상대 직책 팀장 그전일 사수랑 다른사람임 6개월간 동행하면서 업무 배울때 사수가 업무할때 조는모습을 보고 주변사람들에게 다 떠벌림 내가 생각하는 사수는 멘티가 잘못하더라도 잘하고있다 라고 커버쳐주는게 멘토의 역활이라고 생각함 하지만 멘토는 나의 단점들을 다 떠벌리도 다님 같이다닐때 대단한놈이다 라고 비꼬고 짜증내고 업무 스트레스 나에게품 참다가 넌 맞아도 싼놈이다 이래서 분노레이지 못참고 그사람이 다른사람 욕하고 다닌거 당사자한테 말해줌 사이 어긋남 회사생활 더럽고 지치는데 hr에 신고하고싶음 조언좀부탁드립니다
신입사원힘
9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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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생 현장직 이직해야할까요??.
22년2월까지 포스코 기계정비로 6년 근무 22년2월부터 메이저석화사 5년근무중 석화 시황이 박살나서 미래가 안보임 5년동안 21년도 원징 포스코 연봉 아래수준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 들어갈때 석화가 좋을거같아 2년경력까지 깍고왔는데 연봉이 이리 낮으니 근로의욕저하 되고 승진도 경력을깍고오니 밀리고..누적되서.. 참으로 답답합니다. 대신 철강보다야 일은편합니다. 이제 나이도 30대중반이라 다시 직장움기기도 쉽지않은데.. 이리 살아가야하나 싶어요.. 외벌이 4인가족인데.. 갑갑하네요.
메가점프
46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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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천황 하사금, 고종암살의혹, 이완용조직 안상호 증손자 안하영, 충격이네요
일본천황 하사금, 고종암살의혹, 이완용조직 안상호 증손자 안하영, 충격이네요
화성과지구사이
억대연봉
9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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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친일파 김신석 가문 홍라희 이건희 이재용
조선총독부 친일파 가문 홍라희 이건희 이재용 조선총독부 식민통치 자문,정치 충격이네..
화성과지구사이
억대연봉
9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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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첵 연락받았는데
몇년간 같은 팀이었지만 그렇게 교류있는 사이도 아니었고 오히려 감정적으로는 조금 좋지 않은 사이였는데요. 퇴사후에는 정말 단 한번도 서로 연락도 안한지라 이런식으로 이름을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여러 항목 말씀하시면서 같이 일한 선임자로서 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냐 물어봤는데... 그냥 제 딴에는 객관적인 사실 확인 가능한 것 위주로 답변했습니다. 보통 레퍼첵 지목은 지원자가 하지 않나요? 그 친구가 직접 저를 지목했을거라는게 믿기지가 않네요.
유일왕
은 따봉
53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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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수 없이 맨땅에 헤딩
사수 없이 이곳 저곳 기웃대며 일하는 방법을 배운지 어언 5년차입니다. 누군가는 이미 시니어의 직급을 달고 있는 연차긴 하지만 저는 아직도 배울 게 많네요. 업계에 적응했다가도 가끔 낯선 용어나 몰랐던 개념들을 알게 될때도 있구요 ㅎㅎ 대신 독립성은 무지하게 길러졌습니다. 알아서 찾아보고 프로세스를 만들고 시행착오를 거쳐 나만의, 우리팀의 방식을 만드는 것. 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경험은 없습니다. 다만 누군가 나를 이끌어 줄 사람이 있다면 내가 어떻게 일했을까,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을까 궁금해지긴 합니다. 사수가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네요.
왕왕12
8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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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으로 돈 날린 예비 신랑..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후반 예비 신부입니다. 결혼은 올해 12월 예정이고, 제목그대로 예비신랑이 결혼자금을 다 날렸어요. 올해 1월 동거를 시작하며 경제를 합쳤기때문에, 결혼자금이 아니라 사실 보유하고있던 현금을 다 날렸어요. 몇달전 하이닉스가 90만원이던 시기즘부터 지금 투자를 해야한다며 저를 부추기고 설득하기 시작했고, 주식 강의, 유투브 등 공부를 열심히하고, 평소 이성적인 예비신랑 성격을 믿었기에 현금을 주식에 투자하는 것을 동의했습니다. 예비신랑은 현금을 주식에 다 넣은 뒤 신용융자는 금리가 높으니, 신용대출을 받자고 권유했습니다. 저는 빚투는 싫어서 거절했지만, 같이 잘되려 그러는 것 아니냐 등 계속된 마찰 끝에 1억을 대출받았습니다. 대출을 받은 직후 예비신랑의 보챔에 1억중 일부를 투자금으로 전달해줬고, 6월말?7월초? 하이닉스가 하락세를 타기 시작하며, 예비신랑은 신용융자 담보금을 마련하지않으면 반대매매를 당한다고 추가 현금을 요구했습니다. 신용융자가 있는지도 몰랐던 저는 당황했지만, 저한테 신용융자 받겠다고 말했었다더라고요. 아무튼 반대매매는 안된다고 어떻게든 담보금을 마련하고 넣으려 7월 한달을 긍긍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1억 대출로 가지고있던 일부 금액, 예비신랑이 담보금을 마련하기위해 받은 신용대출금이 다 주식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7월말 더이상 담보금을 마련하지못해 반대매매를 당했습니다. 그렇게 보유한 현금은 하나도없이 1억+a의 빚이 생겨버렸어요. 매일매일 집에오면 주식을 보며 떨어질까 걱정하고 담보금마련을 위해 긍긍하는 예비 신랑을 보는 것도 힘들었고, 반대매매 당한 뒤 패닉에 빠져 덜덜떠는 모습과 이후 힘들어하는 모습까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3년이면 갚을수있는 경제력수준이라, 힘들지만 같이 헤쳐나가보려했여요. 하지만 빚이 생긴 이후, 신용융자로 단타를 하며 빚상환에 가속화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모습, 앞으로도 기회가오면 빚을내서 주식을 하겠다는 모습, 월급으로 조금씩 갚고있다가, 주식 시장에서 또 기회가오면 회복할수있다고 생각하는 모습에 불안감이 듭니다. 파혼하는게 맞는걸까요.. 힘들때 같이있어주는게 진정한사랑이라는데 어떻게해야할까요..
호이차
1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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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간 이직 고민
직무전환하고 새 직장에서 일한지 두 달됐습니다. 첫 달까지는 업무도 어려움이 없었고 나름 열심히 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저번에 중간 피드백 겸 팀장과 면담을 하는데 좋지 않은 피드백을 들었습니다. (야근을 많이 안해서 그런지 열정이 부족해보인다… )계속 이런 식으로 하면 같이 일 못한다는 얘기까지 들은 상태라 미리 이직 준비를 해야한다는 시그널인건지.. 만약 해야한다면 지금 직장 내용도 이력서 포함해서 적어야하는건지 면접가서는 뭐라고 설명할지 막막하네요 선배님들 도움을 주세요!!
얼그레잉
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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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독재 세습에 순종적인 이유
다음은 구글에서 나온 삼국에 대한 내용 고구려 (즁국, 북한으로), 백제 (일본으로) 떠나고 중국과 결탁해 뒷통수 친 신라 후손들만 한국에 남아서 사대주의 성향만 남음. 중국에게 덤빈 고구려 백제 없어진 것 봐서 사대주의가 국룰로 정립. 그건 강대국에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동일 전새계 선진국 중 주요 상장사 세습 4대까지 허용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 (선진국 아니라는 반증) 이승만 독재 다음 남로당 공산당 출신으로 사형선고꺼지 받았던 박정희 독재도 부족해 전두광이에게 정권 갖다 바친 3김 분열 그 후 독재자 자식을 대통령으로 뽑는 국민성. 공과가 있는데 공이 았더라도 굳이 독재자의 자식을 다시 대통령으로 뽑는 한국인들은 선진국에선 이해 못 함 민주화 운동 자화자찬하는데 애초 쿠데타 용납 안 했음 할 필요도 없었고. 옳고 틀리고 떠나서 매우 독재 세급에 복종적인 국민성 그렇게 복종적이니 무슨 창조성이 나오겠나 시키는 거나 해야지 재벌 경영권 세습 = 북한 세습 지분 상속이야 세금 내고 하는 것이고, 대기업 상장사들이 경영권 3, 4세 세습하는 건 한국이 유일 ___ 고구려, 백제, 신라의 국민성(기질) 차이는 각 나라가 처한 지리적 환경과 성장 과정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고구려는 거친 산악 지대에서 북방 문화를 받아들이며 진취적이고 호전적인 기질을 가졌고, 백제는 풍요로운 한강 유역에서 개방적이고 세련된 귀족적·온조(문화적) 성향을 보였으며, 신라는 동남쪽 구석에 치여 뒤늦게 성장하며 끈질기고 폐쇄적이면서도 단결력이 강한 보수성과 집단성을 발전시켰습니다. 나라별 기질과 특징 고구려 (진취적·용맹함)추운 북쪽 땅과 산이 많은 곳에서 살았습니다.사냥과 활쏘기를 좋아하며 성격이 거칠고 용감했습니다.넓은 땅을 차지하려고 싸우는 씩씩한 기질이 강했습니다. 백제 (개방적·우아함)따뜻하고 기름진 땅에서 풍요롭게 자랐습니다.성격이 부드럽고 문화와 예술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다른 나라와 교류를 잘하며 세련된 생활을 즐겼습니다. 신라 (끈기·단결력)동남쪽 구석에 있어 처음에는 발전이 느렸습니다.살아남으려고 힘을 모아야 했으므로 화랑도처럼 청년들을 단단히 묶어주는 무리가 발달했습니다.조심스럽고 보수적이지만, 끝까지 버티며 결국 삼국을 하나로 합치는 끈기를 가졌습니다.
Matrix
쌍 따봉
8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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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지 않은 결혼식 가야할까요
안녕하세요, 20대 후반 여자 입니다. 말 그대로 가고 싶지 않은 결혼식 가야할까요. 친구가 제게 가방순이를 부탁해왔네요. 얼떨결에 하겠다고 했어요 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기독교 예식이라서예요. 사실 저는 한번 갔다왔어요. 전남편과 시댁 의 종교 강요가 제겐 지옥이었어요. 그 뒤로 기독교라면 치를 떠는데, 예식이 기독교 예식으로 치른다 하네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되게 가기 싫어졌는데 이미 가방순이 부탁을 받은 뒤라.. 이 친구가 제 결혼식때는 와서 축의도 해준 친구였거든요. 마음 같아선 그냥 축의금만 맞춰주고 가고 싶지가 않는데 애매하네요. 그냥 한번 참고 가방 순이 하는게 좋을지.. 의견 부탁 드립니다
쿠쿠키키
9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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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 커리어 학회 경험 유무
이제 곧 취준을 앞둔 ib 지망생입니다 제가 궁금한점은 학회가 취업에 치명적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인생 선배님들 고견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리겡
7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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