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앞에 눈사람 만들었는데 퇴근 후에 보니 부서져 있네요
얼마전 서울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던 날 기억하시나요? 저녁즈음 갑자기 내린 눈에 대중교통이 마비될 정도였죠.
저는 그 다음날 저희 부서에서 가장 일찍 출근했습니다.
새벽부터 추위를 뚫고 도착하니 사무실 주변이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더군요.
아무도 없는 고요한 회사 앞을 거닐다보니 갑자기 동심이 발동했습니다.
업무 시간되려면 멀었는데, 잠시라도 동심을 느껴보자! 싶어서 화단 한쪽에 작고 귀여운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약 20분 동안 정성을 들였습니다. 눈덩이를 굴려 몸통과 머리를 만들고, 낙엽을 잘라서 눈을 붙이고, 잔가지로 팔을 만들었죠. 제법 똘망똘망한 눈사람이 완성되었습니다.
나름 뿌듯하더군요. 점심시간에 나와서 팀원들에게도 보여줄 생각이었습니다.
오전 내내 일에 시달리다가 급한 일에 점심도 못 먹고, 탕비실에서 컵라면으로 때우고 정신 없이 일하다 보니 해가 졌더군요.
야근을 마치고 회사를 나왔는데... 눈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눈사람이 없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누가 발로 차고 간 것처럼 몸과 머리가 분리되어 부서져 있었습니다. 눈, 코, 팔 역할을 했던 자잘한 장식들은 주변에 흩어져 있었고요. 마치 눈사람 살해 현장 같았죠.
저는 순간적으로 너무 허무하고 슬퍼졌습니다. 우리 회사의 누군가가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더 슬펐습니다.
제 찰나의 낭만을 부수고 간 사람은 누구일까요?
일부러 나무 뒤에 잘 보이지 않게 만들어두었는데도 말이죠...
어른이 되어 회사에서 만든, 잠시 동안의 행복이 이렇게 허무하게 부서지니 왠지 제 동심까지 함께 부서진 기분이었습니다.
리멤버 분들께라도, 부탁드립니다.
눈사람 부수지 마세요.
차라리 때가 되어 녹아 없어지는게 낫습니다.
부디 누군가의 작은 낭만을 짓밟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