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들이 인사총무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해요
소기업에서 혼자 인사총무 업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조금 규모가 있는 외국계 회사를 오래 다녔어서 국내 회사는 처음이라 다들 힘들거라고 말렸지만 새로 생긴 회사이고 저에게 전 직장만큼 좋은 회사를 만들 수 있도록 많은 부분 맡겨주신다는 말씀에 전 직장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까지 반영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더 나이들기 전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도 인생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용기를 내어 최근에 이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직하니 임원분들이 너무 인사총무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너무 힘듭니다.
예를 들면 기념품을 제작하거나 인사회계 프로그램 같은 것을 도입하라고 해서 예산은 어느 정도로 하면되는지 여쭤보면 경력직인데 그정도는 알아서 해야되는거 아니냐고 하십니다.
그래서 맨날 돈이 없다고 하시니까 좀 저렴한 것으로 몇가지 뽑아가면 회사가 작다고 허접하게 알아본거냐 좀 좋은 것으로 뽑아가면 이렇게 돈을 막 쓰냐고 하거나 아이템이 마음에 안든다고 하시는데 그러고 나서도 예산 기준이나 아이템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드는지 같은 것은 알려주지 않고 임원 마음에 들도록 다시 알아오라고만 하셔서 같은 일을 임원들 마음에 들 때까지 반복해야하다보니 업무 효율이 너무 떨어집니다.
급여, 평가, 승진제도나 복리후생 같은 것도 어느 정도 경영진의 생각이나 회사마다의 직무 등 우리 회사에 맞게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전직원들이 당장 당면한 회사 과업이 너무 많아서 직무기술서까지 부탁드릴 상황이 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급한대로 각 부서 임원분들께 의견을 물어보면 그런건 다른 회사가 하는대로 똑같이 하면 되는데 왜 물어보냐 다 표준화 된 것들이 있을텐데 그런 자료도 안가지고 이직한거냐 경력자인데 능력이 없다 등등 모욕적인 말씀까지 아무렇지 않게 하십니다.
회사에 인재상이 없길래 인사, 평가, 교육제도를 만들려면 인재상이 있어야 하는데 임원분들이 원하시는 인재는 어떤 인재라고 생각하시냐고 했더니 저한테 그정도는 알아서 만들어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하면서 대기업 같은 체계를 왜 빨리 못 만드는거냐고 답답하다고 하시는데 우리 회사는 연구하고 생산하는 회사라는 말씀만 하실 뿐 어떤 연구를 어떻게 하는지, 어떤 제품을 어떤 프로세스로 생산하는지는 설명도 안해주시면서 인사담당자가 그런것도 모르냐면서 무조건 체계를 못 잡는다고만 하시니 저도 너무 답답합니다.
심지어 임원분들께 구체적인 생각이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 기분 나쁘다고 물어보지 말라고 하는 분도 계십니다. 본인이 잘 모르는 것을 들킬까봐 그러시는 것 같기도 한데 이론적인 것을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본인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고 임원들의 생각을 반영하지 않으면 방향 설정이 잘못 될 수 있어서 필요하니 바쁘시더라도 의견 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다거나 제 의견을 말씀드리면 제가 하는 말이 맞는 말이긴 하지만 자기는 기분 나쁘니까 하지 말라는데...맞는 말이지만 기분 나쁘다니 이게 대체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겠네요.
경영진의 생각을 이해하고 나서야 가능한 것들인데 임원분들은 자기가 말을 안해도 자기의 생각을 읽고 반영해서 가져와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하는 등 제가 점쟁이라도 되는 줄 아시는 것 같습니다.
하도 다른 회사는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셔서 업계가 달라서 적절하지는 않지만 전 직장은 이런 식으로 했다고 하면 그냥 그렇게 하면 되지 않냐고 별 생각없이 말하시고요, 복리후생이나 직원의식 향상에 도움이 되는 제도나 정책도 돈 안드는 것만 알려달라고 하셔서 예를 들면 연장휴일근로자제, 환경배려, 컴플라이언스, 가족의 날 조기퇴근(물론 비용이지만) 등등이 있다고 의견드리면 회사 사정상 조금 힘들 것 같다던가 아직 시기적으로 이른 것 같다던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오바하지마라 전 회사같은 줄 아냐 비꼬시기도 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왜 건강검진 안하는거냐 상조물품은 왜 안만드냐면서 갑자기 돈 드는 것들을 저때문에 안하는 것처럼 다른 직원들 앞에서 면박도 주시는데, 그래놓고 견적 뽑아가면 또 돈도 없는데 오바한다고 이랬다 저랬다 하세요.
그리고 임원분들이 대체로 각자의 전 직장에서 연구나 생산 실무급이었고 관리자급들이 아니었어서 그런지 자기들은 지금까지 전 직장에서 인사담당자가 알아서 했는데 왜 이렇게 많이 물어보는거냐 진짜 경력직 맞냐고 하시기도 합니다.
한 두 번이면 워낙 바쁘시니까 좀 짜증나실 수도 있겠다고 어느 정도 이해해 보려고 했는데 건건이 그러시니까 이제는 이정도면 직장내괴롭힘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제가 외국계 중에서도 꽤 체계가 잘 잡힌 곳에서만 일을 해봐서 국내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인지도 많이 고민해 봤습니다.
어차피 하루 아침에 임원분들이 바뀌지는 않을테니 제가 익숙해지는 수 밖에 없겠지만 국내 기업에는 아는 인사담당자도 없어서 답답한 마음에 올려봅니다.
국내 회사에서는 아무것도 주어진 것이 없이 막연하게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요? 다들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계신 것이라면 정말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