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어떻게 방어하고 있을까?
어느 하루 날을 잡아
맘먹고 주위를 관찰해보세요
직장에서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그리고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다른 부서의 누구는, 저 멀리 위에 있는 상사의 상사는?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나만 힘든 것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모두가 월급에 의존하는 가련한 존재일 뿐입니다. 회사 체질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곳이 바로 회사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였으니 욕구불만으로 가득 차 있을 수밖에 없겠죠. 매사 불안하고 여기저기 방어기제가 만연한 이유입니다.
직장에선 나를 보호하고 방어해야 할 일이 수시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주위를 다시 관찰하면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는 왜 그랬는지, 저 사람은 왜 저랬는지. 지나간 일도 돌아보면 나는, 저 사람은 각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하거나 반응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직장인들의 고됨은 불안에서 야기되고, 이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 각자는 다양한 방어 기제를 알게 모르게 사용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방어 기제'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나'는. '저 사람'은. '그 사람'은. 어떤 방어 기제를, 왜 사용했을지를 생각해보면 예전엔 몰랐던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실 겁니다.
여기에.
나는 왜 그랬는지.
쟤는 왜 그랬는지.
이에 대한 답이 숨어 있습니다.
1. 합리화
우리 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바로 '합리화'입니다.
책의 첫머리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침에 눈을 떠 인지부조화를 맞이하는 직장인에게 있어서 이것은 아주 달콤한 처방제입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욕구에서 나온 수많은 충동이나 행동에 대해 그럴듯한 구실을 붙입니다. 이솝우화의 비유로 잘 알려진 여우와 포도 이야기가 합리화를 한 번에 손쉽게 설명해줍니다. 이는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합리적인 이유를 만드는 일종의 자기기만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떠오르는 또 하나의 기제는 바로 '셀프 핸디캡'인데요.
회사에서 진급 교육에 참여하면 사전 시험을 보게 되는데, 불합격하면 짐을 싸고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모두가 불안하죠. 공부 많이 했냐는 질문에 거의 모든 사람들은 업무가 바쁘고, 출장을 다녀와서 공부를 하나도 못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부를 했을 겁니다. 시험에 떨어질까 봐 불안했으니 공부를 안 했을 리 없겠죠. 하지만, 정말로 시험에 떨어졌을 때 받아들이게 될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핸디캡을 줌으로써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것입니다.
다시 합리화로 돌아가, 적절한 합리화는 자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심한 합리화는 망상으로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이솝우화의 여우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됩니다. 자신이 먹지 못한다고 그 포도를 신포도로 규정했으니까요. 직장에서 상사에게 보고를 하다가 혼이 났을 때, 자신의 부족함은 인정하지 않고 그날 상사의 기분을 탓하거나 또 다른 깊은 뜻이 있을 거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그와 같습니다.
2. 투사
자아에 내재되어 있으나 용인되지 않는 것들을 다른 사람의 특성으로 탓해버리는 수단입니다.
자기 자신이 화가 나 있는 것은 의식하지 못하고 상대방이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즉, 자신의 심리적 속성이 타인에게 있는 것처럼 규정해버리는 겁니다. 늦잠 잤을 때, 어머니나 배우자가 깨우지 않아서 지각했다고 화를 내거나 불평하는 경우를 떠올리면 됩니다. 누군가 밑도 끝도 없이 미운 경우라면, 그 사람이 나를 매우 미워하고 있단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투사는 평소에도 자주 일어나는 자아 방어기제입니다.
자아의 현실 검증력에 의해 적절히 처리됩니다. 임산부 눈에는 임산부만 보이고, 장사꾼 눈에는 장사꾼만 보인다는 것도 투사를 잘 설명하는 사례입니다. 직장에서는 나의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상대방이 실수한 것을 꼬투리로 잡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또는, 내가 했던 실수를 똑같이 하는 후배를 보며 내가 싫어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떠올리며 누군가를 괴롭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탓할 때, 나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3. 주지화
감정의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대신, 이성적으로만 해결하려는 것을 말합니다.
'지성'에서 '감정'을 격리하는 자아 방어 기제입니다. 실제로 감정이 요동하는 직장생활 내에서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존경을 표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떠오르는 감정을 짓누르고 그저 이성적으로만 해결하려다 보면, 결국 감정의 순환이 되지 않습니다.
혈액 순환이 잘 되어야 하듯이, 감정과 마음도 순환이 일어나야 하는데 강력한 주지화는 이를 막게 됩니다. 한 집안의 가장이 퇴근하여 집에 도둑이 든 것을 발견하고, 가족들에게 무사하냐는 말보다 "그래서 문은 진짜로 잠갔던 거니?, 우리 집에 허점이 있었구나,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대책을 세워보자."라고 하면 어떨까요? 이것이 바로 주지화의 극단적 예입니다. 본인은 이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싶지 않다는 자아 방어기제를 가동한 것이지만 그와 사는 가족들은 혀를 찰 일이겠죠.
직장 내에서도 타 부서와 싸우고 온 후배 사원에게, "화내지 마, 여기서 감정 내어 보이고 화내면 하수야, 하수라고!"를 외치는 선배 치고 고수를 본 일이 없습니다.
감정이 상해 있는 후배의 마음을 들어주고 나서 조언을 주어야 하는데, 자신은 성숙해 보이려고 주지화를 과용하고 있는 거라 볼 수 있습니다.
주지화는 감정을 소화해낼 능력이 있다면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방어 기제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이러한 욕구불만과 불안은 마음속에서 자라고 자라 언젠간 터지고 맙니다. 이성적으로 보이는 사람들(교수, 의사, 변호사 등의 전문직) 중에 예상치 못한 사고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사회적 지위 때문에 주지화를 사용하다 억누른 마음이 폭발한 경우라 볼 수 있습니다.
4. 보상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긍정적인 부분을 강화하여 약점을 보완하려는 정신적 시도입니다.
아들러는 보상작용이 콤플렉스를 이겨내고, 이러한 '보상작용'이 미래를 개척하는 원동력이라 봤습니다. 키가 작은 사람이 운동을 해서 근육을 키운다던가, 뚱뚱한 사람이 좋은 목소리를 가지려 노력하는 걸 떠올리시면 됩니다. 직장에서는 자신의 학벌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일을 누구보다 열심히 하거나, 추가로 공부해서 전문 영역을 넓혀가는 노력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상작용은 잘 이용하면 아주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만, 지나친 보상작용은 성과를 허위로 부풀리거나 학력이나 자신이 가진 역량을 왜곡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타 부서에서 퇴직한 팀장 한 명이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이후 밝혀진 사실인데 그의 학력이 왜곡되었고 그가 말한 학창 시절의 이야기가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것입니다. 배경을 살펴보니, 본인이 생각하기에 남들보다 부족한 학력이라 생각한 그 팀장은 유명 대학원을 나왔다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자신이 과학고등학교를 나왔고, 학창 시절에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에피소드를 늘어놓았지만 그것 또한 거짓으로 들통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일하는 방식, 논리력, 사고 등은 흠잡을 데 없이 모든 사람들이 인정한 부분이었습니다. 그 팀장은 본인의 콤플렉스라는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보상'이라는 자아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일을 열심히 하고 인정도 받았지만, 그것이 지나쳐 그만 거짓말까지 동원한 사례입니다.
문과 출신이어서 숫자에 약한 사람이 숫자에 대한 부족함을 깨닫고 노력하여, 매출액이나 업무 관련 숫자를 빠르게 연산하는 긍정적인 보상작용의 (저와 같은) 사례도 있습니다.
5. 반동 형성
'받아들일 수 없는 충동을 억압한다.', '그 반대적 행동이 의식적 차원에서 표현된다.'
이 두 가지는 반동 형성이 거치는 두 단계입니다. 반동 형성은 무의식적 욕구 충동을 억압만으로 이겨낼 수 없을 때 그것과 정반대 되는 욕구를 만들어냄으로써 대항하는 심리 기제입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해보자면 이타주의는 이기주의를 숨기기 위한 것이고, 경건은 죄를 감추기 위한 것, 그리고 박애는 야만적인 성욕을 숨기려는 의도일 수도 있습니다. 결벽 증세를 보이는 사람은 무엇을 망치거나 흐트러뜨리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고기를 먹고 싶은 욕구를 무의식적으로 억압한 사람이, 육식 반대 운동을 하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직장 생활에서 보이는 반동 형성은 다양합니다.
누군가가 두려운 경우, 어떤 이들은 반대로 그 사람과 친해지려 합니다. 마음이 여린 사람이 일부러 싸움닭처럼 업무를 진행하고 사람들을 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여린 것에 대한 불안이 무의식적으로 억압되어, 의식적으로 반대되는 행동을 보이려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매우 방어적이고, 강한 이미지를 표출할 때 매우 어색해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밖에도 동일시, 전이, 공감, 대치와 전치, 상환, 상징화, 격리, 부정, 저항, 고착과 퇴행, 승화 등 수많은 방어기제들이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다섯 가지 방어 기제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래서 직장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방어기제들입니다.
자, 나는 여러 가지 방어기제들 중에서 무엇을 주로 사용하고 있을까요?
스스로 방어 기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계신가요?
지난번에 나한테 이유모를 행동을 보인 그 사람은 어떤 상태였을까? 또 어떤 방어 기제를 선보인 걸까요?
관찰이 필요합니다.
나의 마음을 우선적으로. 심리학 이론을 몇 개 접했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타인을 이 몇 가지 이론에 욱여넣는 것입니다. 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이 이론들과 나를 접목시켜 보는 것입니다. 내가 그랬던 행동이나 마음가짐, 심리 상태를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른 이들을 조심스럽게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많은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이해의 크기만큼 내 마음을 더 잘 지켜낼 수 있을 것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