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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종목을 목숨걸고 수련하는 직장동료
안녕하세요 저희 회사에는 투기종목과 헬스를 목숨걸고 수련하는 동료가 있는데요 술, 담배는 입에도 안대고 튀긴 음식이나 정제 탄수화물을 절대로 먹지 않는 자기관리 끝판왕입니다. 어느 정도인지, 갑자기 휴가를 쓰길래 급한 일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이번주에 회사일 때문에 체육관을 자주 못 가서 운동해야 된다고 할 정도로 수련에 진심인 친구입니다. 성격도 온순하고 서글서글하고 잘 웃는 동료고 외골수라 입에 발린 말이나 아부는 못해도 성실하고 진실된 사람같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동료인데 어느날 회식자리에서 한 발언이 살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더라구요. 임원이 땡땡씨는 술도 안먹고 담배도 안하고 퇴근하면 곧장 운동만하는데 회사원인거야 운동선수인거야 좀 쓸모없는데 시간을 너무 쓰는거 아니야? 라는 발언에 한 답변이 문제였는데요. 그 친구가 한 답변이 좀 일반적이진 않았어요... 자기는 원시시대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성은 조금도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사람에 대한 존중은 공포에서 나오고 가장 원초적이고 노력으로 만들 수 있는 공포는 압도적 신체 능력이다. 플라톤도 행복의 조건에 한사람과는 싸워 이기지만 두 사람에게는 이기지 못하는 신체능력을 꼽았다. 제 육신의 강함이 최후의 순간에 제 자존감을 지키고 제 인생을 버텨내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특히 남자라면 최후의 순간에 무력으로 사람 하나 정도는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식의 답변을 하더라구요.. 뭐 저는 이 답변이 그렇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이 말을 하는 순간 동료의 눈빛이 평소와는 다르게 좀 더 반짝이는거 같아서 멋지다고 생각이 들긴 했는데요. 투기종목을 수련하시는 분들은 혹시 이 친구와 비슷한 목표의식으로 수련하시는 분들이 많은가요? 또 실제로 강한 신체능력이 직장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버팀목으로 효과적인가요?
증린
은 따봉
25년 09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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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인베스트먼트] 비관론자들 그냥 숏치세요
요즘인터넷에 노상 비관론에 8월위기설 9월위기설 어그로끌면서 버핏코스프레 조회수따먹기하던데 비관전망되면 그냥 시원하게 레버리지 걸어서 숏치세요.. 뭔말들이 그렇게많아.. 하긴 그런분들때메 신중한분들이 팔아주고 또누군가는 받아올리고 하면서 조정이 안오는걸 수도 있긴 합니다만..
감성유랑극단방송
25년 09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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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성공하셨나요
돈을 많이 벌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우리, 왜 무언가를 위해 돈을 열심히 벌고 있잖아요 누군가는 집을 사기 위해, 누군가는 명품을 사기 위해 또는 차를 사기 위해 등등 근데 한번쯤 그런 생각 안드시나요? 왜 그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 성취한다면 정말 행복할지 정녕 내가 바라던 삶인지 등등.. 저는 위에서 말했던 집, 명품, 차 등과 같은 1차원적인 것들이 궁극적인 인간삶의 욕구가 아니라 생각해요. 누군가는 안정감과 여유를 위해 누군가는 자존감과 인정을 위해 누군가는 사랑과 존중을 위해 위와 같은 수많은 이유로 발생한 욕구가 단순 물체에 투영된 것일 뿐이겠죠. 그렇기 때문에 1차원적인 목표를 이룬다한들 궁극적인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 궁극적인 갈증을 해소하는 삶이 진정한 성공한 삶이 아닐까요? 그래서 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저는 이제 제 자신에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왜 그런 것들을 갈망했고, 왜 아직도 그것들을 갈망하고 있는지 내가 꿈꿔왔던 어른의 모습은 무엇이었는지 현재 정말로 바라는 삶의 모습은 어떤것인지 그리고 남들이 말하는 성공을 성공이라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진정한 성공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시길 응원합니다
luxid
25년 09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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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오피스) 연봉은 성과보다 잠재력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잡마켓에서 연봉과 포지션이 단순히 “성과”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이전 직장에서 얼마나 실적을 냈는지, B라는 관리자가 몇 명의 팀을 이끌며 어떤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는지 같은 눈에 보이는 결과만이 평가의 기준이라고 여기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의외로 더 중요한 요인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잠재력과 기회비용입니다. 회사는 한 사람을 채용할 때 단순히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더 큰 비중을 둡니다. 예를 들어, 5년차 개발자가 있다고 해봅시다. 지금까지의 실적만 보면 단순히 몇 개의 기능을 구현하고 프로젝트를 무난히 수행한 정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해외 명문대 학위, 빠른 학습 능력,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트랙 레코드를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앞으로 3년, 5년 뒤에 얼마나 더 커질 수 있을까?”를 따지게 되고, 그 잠재력은 곧 연봉과 포지션을 크게 끌어올리는 힘이 됩니다.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기회비용입니다. 쉽게 말해, 이 사람이 현재 자리를 떠나 올 때 포기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입니다. 예를 들어, 글로벌 컨설팅사에서 연봉 1억을 받는 사람이 스타트업으로 이직한다고 해봅시다. 단순히 성과만 보자면 스타트업은 그 사람을 당장 필요로 할 이유가 약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떠나오며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 즉 안정된 커리어와 업계 네트워크, 브랜드 네임 가치를 감안하면, 스타트업은 그만큼의 보상과 미래 성장을 약속해야만 그를 데려올 수 있습니다. 결국 “얼마를 벌어왔는가”보다 “얼마를 포기하고 오는가”가 협상의 핵심 지점이 되는 것이지요. 이 원리는 금융권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투자은행이나 대형 자산운용사에서 근무하는 30대 중반의 직장인을 생각해봅시다. 그는 이미 억대 연봉을 받고 있고, 안정된 포트폴리오 관리 경험과 고객 네트워크를 쌓아왔습니다. 만약 이 사람이 핀테크 스타트업이나 다른 금융사로 옮긴다면, 단순히 과거 성과만이 아니라 그가 가진 잠재력과 기회비용이 협상의 기준이 됩니다. 즉, “이 사람이 만약 여기서 자리를 옮긴다면 어떤 기존 고객과 네트워크를 놓고 오는가?”, “앞으로 새로운 금융 비즈니스를 창출할 능력이 얼마나 되는가?”가 평가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융권에서는 특정 인재가 이직할 때 과거 실적이 평범해 보여도, 포지션이 예상보다 훨씬 높아지고 연봉이 급등하는 일이 흔히 일어납니다. 이는 곧 기회비용이 가격을 매기는 힘을 발휘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 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성과는 과거의 기록일 뿐, 투자는 미래를 향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이런 사례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한 대기업이 경력 10년 차, 성과만 놓고 보면 평균적인 수준의 인재를 스카우트하면서 업계 평균보다 30% 높은 연봉을 제시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그 사람이 이전 직장에서 맡아온 핵심 프로젝트의 경험, 그리고 그를 둘러싼 네트워크가 향후 5년간 회사의 신사업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과거의 수치로는 설명이 안 되는, “앞으로 만들어낼 잠재 가치”에 대한 투자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잡마켓을 움직이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개인은 스스로를 너무 좁게 평가하거나 불필요하게 낮게 팔아넘기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반대로, 잠재력과 기회비용의 중요성을 이해하면 전략이 달라집니다. 자신이 가진 학력·경력·능력·트랙레코드가 앞으로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 또 지금 자리를 옮길 경우 포기하게 되는 자산이 무엇인지 스스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명확히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협상에서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결국, 잡마켓은 단순히 과거의 결과로 움직이는 곳이 아닙니다. 잠재력과 기회비용이라는 두 축 위에서 사람의 가치가 평가되고, 그 가치가 연봉과 포지션을 결정짓습니다. 이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는 순간, 연봉 협상이나 커리어 설계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에서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제대로 평가받고, 원하는 커리어를 쌓아가는 가장 확실한 전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성유랑극단방송
25년 09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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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스토리) 왕조시대엔 해외파가 없었다고?
이번 이야기는 우리의 흔한 선입견부터 지우고 시작하겠습니다. 왕조시대의 국경 역시 현대사회에서 그런 것처럼 완벽한 차단선이 아니었습니다. 성곽과 관제가 있었을 뿐, 사람들의 발걸음과 소식, 상품과 사상은 바다와 길을 타고 넘나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간 이들 가운데는 단순한 ‘떠돌이’가 아니라 새로운 뿌리를 내리고, 정체성을 뒤섞고, 한 지역의 기운을 바꿔 놓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는 당(唐)의 장안과 중앙아시아 상인들, 신라와 고려의 승려·사신·혼인 외교, 고려-원(元) 관계 속의 왕실 인사들, 그리고 조선의 명(明) 망명자들까지 — 실재했던 인물과 사례를 따라가며, 그들이 왜 떠났고 무엇을 겪었으며 그 경험이 왜 오늘 우리의 상상보다 더 국제적이었는지를 가능한 한 생생하게, 그리고 자세히 그려보겠습니다. 먼저 장안의 거리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8세기 전후의 장안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활력이 넘치는 도시였고, 실크로드의 동쪽 종착지였습니다. 사마르칸트·부하라에서 온 소그디아인들은 장안의 시장과 관청, 사원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중계무역상이 아니었습니다. 언어와 문화를 매개하며 상업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의례와 종교(매년의 축제, 종교 의식), 심지어 음악과 의복의 취향까지 바꿔 놓았습니다. 장안의 외국 구역에서는 페르시아어와 투르크어·소그드어와 중국어가 뒤섞여 들렸고, 낯선 노래와 향료 냄새, 유리·보석·양모 직물 같은 ‘먼 곳의 물건’들이 거리에 널려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성공한 소그디아인들은 당나라 관료와 결탁하거나 군대의 장수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정권의 핵심에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그 속도는 양면적이었습니다. 기회가 컸던 만큼 위험도 컸고, ‘외국인’이라는 신분은 때로 돌연 폭력과 배제의 표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장안의 다채로움 뒤에 놓인 이 묘한 긴장감은 당시 다문화 도시의 일상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 한 사람의 삶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그는 태생이 중앙아시아와 연관된 배경을 지녔고, 당 조정의 군·정 무대 위로 급부상했습니다. 그는 정권의 일부로 포용되었고, 동시에 그 포용은 언제라도 뒤집힐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반란을 일으켰고, 그 반란은 당의 중추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안록산. 그의 경력은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이 한 인물의 위상은 우리가 ‘외국인’이 곧 주변부에 머무르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동시에 국경을 넘나드는 자들이 권력의 한복판까지 진출할 수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그 권력의 행로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 또한, 국제적 삶의 불안정이자 현실이었습니다. 한편, 바다를 건너 배낭 하나로 떠난 승려들의 길은 다른 결의 국제성을 드러냅니다. 신라의 승려 혜초는 8세기 초 세상을 떠나 인도·중앙아시아를 순례하고 돌아와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여행기를 남겼습니다. 그의 글은 먼 땅의 풍경과 사람들을 세밀하게 기록한 르포르타주와도 같아, 오늘날 우리가 당대 인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그 길을 잇는 문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혜초의 여정은 단순한 종교적 헌신을 넘어서 지적 호기심과 학문적 열망의 표현이었고, 그의 발길은 한국·중국·인도 사이의 지식 전파망을 물질적으로 연결했습니다. 그의 눈으로 본 타국의 사원과 풍속, 그가 마주한 낯섦과 경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용한 성곽 안의 사람들’이라는 이미지와 거리감이 큽니다. 비슷한 시기, 신라의 다른 승려들도 중국으로 건너가 깊은 학문적 연마를 받았습니다. 원효와 의상 같은 인물은 당에서의 스승과 텍스트를 통해 한국 불교 사상의 한 축을 형성했습니다. 특히 의상은 당의 화엄(華嚴) 사상가들과 교류하며 한국의 화엄(華嚴, 우리말로는 화엄·화엄종) 전통을 세운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외국으로 나아가는 것을 ‘유학(遊學)’으로, ‘성장과 전파의 필수 과정’으로 여겼습니다. 바다와 길 위에서의 고된 이동, 언어의 장벽, 낯선 음식과 기후 — 그 모든 것이 수반되었지만 그들은 새로운 사상을 손에 넣음으로써 고국의 사상적 지형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국경을 넘는다는 일이 항상 낭만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고려의 외교와 혼인정책 속에서 드러나는 ‘국경 간 삶’은 생존과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13세기 몽골의 전성기, 고려는 군사적 현실을 직시하고 ‘부마국 정책’으로 몽골과의 관계를 조정했습니다. 왕실의 혼인으로 인해 고려의 왕과 왕실 인사들은 때때로 몽골의 수도에 가서 성장하기도, 몽골 여인과 결혼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어떤 왕자·공주들은 원나라 수도인 대도에 머물며 몽골 귀족 문화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그 시간은 모욕과 존속, 굴복과 동맹이 뒤섞인 시간으로, 한편으로는 개인에게는 새로운 문화적 자원과 네트워크를 안겨 주었습니다. 예컨대 원의 사위국 체제 기간은 고려가 일정 부분 자치권을 유지하는 대가로 왕실 내부의 구조와 문화가 혼종적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고, 그 결과 고려의 정치·사회적 풍경은 이전과 다른 얼굴을 띠었습니다. 그 삶은 외국에서의 혜택과 동시에 고국에서의 의심과 갈등을 낳았습니다. 국경을 넘은 사람들의 내면을 조금 더 들여다볼까요?그들은 왜 떠났을까요. 먼저 학문을 좇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불경과 주석, 법문을 더 깊이 배우기 위해 바다를 건넌 이들은 스승을 만나고, 손에 든 책을 채워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남긴 기록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지식의 이동을 기록한 ‘문화의 증거’였습니다. 둘째, 상업과 이익을 좇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실크로드와 해로를 통해 상품을 중계하던 상인들은 언어와 관습을 배우며 ‘현지화’했고, 이들은 지역 사회에 정착하면서 결혼하고 가업을 이어갔습니다. 셋째, 정치적 이유로 움직인 자들이 있었습니다. 왕실간 혼인, 사신·외교단, 혹은 전쟁과 정변을 피해 고국을 떠난 난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출발은 때로 자발적이었고, 때로는 강제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종교적 소명 또는 모험을 좇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낯선 땅에서 영적 성취나 새로운 인연을 얻고자 떠났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맞닥뜨린 어려움은 무엇이었을까요. 언어의 장벽은 가장 근본적입니다. 장안이나 한양의 외국 구역에서조차, 현지 관습과 사법 체계는 다릅니다. 이름과 신분을 바꿔야 하는 상황도 흔했습니다. 당의 반란과 소요가 일어나면, 소그디아인 중에는 스스로 이름을 바꿔 한족의 성을 받는 선택을 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정치적 불안정은 또 다른 시련입니다. 안록산의 반란처럼, 외국 출신이라 하더라도 군사적·정치적 성공을 거두면 그에 따르는 책임과 위험 역시 커졌습니다. 또 현지 사회의 편견과 차별도 일상적 문제였습니다. 이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며 현지 관습에 적응해야 하는 미묘한 줄타기, 조국과의 연을 끊을 수 없는 심리적 고향 상실감 —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삶을 관통하는 정서였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움직임은 단선적 피해나 굴복으로만 귀결되지 않았습니다. 이동과 정착은 문화적 융합을 촉진했고, 기술과 제도의 전이는 긴 시간의 역사적 이득을 낳았습니다. 불교의 정신적 체계가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된 것은 한 예입니다. 수습된 서적과 스승, 번역본은 새로운 학파를 탄생시켰습니다. 무역은 지역 간 식단과 섬유, 도자기 기법을 바꾸었습니다. 정치적 혼인은 때로는 종속의 증표였지만 동시에 다리이기도 했습니다. 고려의 왕가가 몽골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얻은 정치적 안전은, 결국 고려가 내부 충돌 속에서도 존속할 수 있는 한 전략이었고, 그 후의 문화적 혼종성은 고려의 예술과 의례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조선으로 시대를 조금 옮겨 보겠습니다. 조선 시대에도 국경 너머 삶은 이어졌습니다. 명나라가 무너지던 때, 조선은 명에 대한 충절과 현실적 외교 사이에서 복잡한 균형을 잡아야 했습니다. 명의 멸망과 청의 부상 과정에서 조선에 유입된 명의 유민과 사신, 난민들은 단지 ‘이방인’이 아니라 조선 사회에서 하나의 집단으로 자리 잡기도 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조선의 의례와 사상적 논쟁 속에서 ‘명 잔존세력’으로 기억되었고, 조선 왕조는 그들을 때로 보호하고 때로 활용하면서 외교적·이데올로기적 자산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사례는 다시 한 번 보여줍니다. 국경을 넘은 삶은 단지 개인의 모험담이 아니라 국가 간 관계의 일부였고, 이들이 남긴 흔적은 오랫동안 사회의 기호와 관습을 바꾸었습니다. 이제 조금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왕조시대의 국제인은 세 가지 층위에서 오늘날의 우리에게 메시지를 남깁니다. 첫째, 개인의 삶은 국경을 넘을 수 있었고, 그 경험은 곧 권력·지식·부의 재분배를 낳았습니다. 둘째, 국가는 국경 너머 사람들과 긴밀히 교류함으로써 자신을 재정의했습니다. 혼인은 외교이고, 유학은 제도를 바꿀 수 있는 씨앗이었습니다. 셋째, 이동은 늘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동반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탁월한 기회였고, 누군가에게는 파멸의 기로였습니다. 이 복합성이 바로 ‘전통시대의 국제성’의 실체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 역사를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근대 이전의 사람들을 ‘국경 바깥을 모르는 소박한 농부’로만 상상하면, 역사에게서 중요한 교훈을 놓칩니다. 그들은 이미 세계를 읽었고, 세계와 협상했으며, 세계 속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혜초가 먼 인도의 사원에서 적어 온 여정의 한 줄, 장안 외국 구역에서 들려온 소그디아의 노랫소리, 고려 왕가의 몽골과의 통혼과 그 속에서 태어난 혼종적 문화, 조선의 궁궐에 남겨진 명의 유민들의 흔적 — 이 모든 것은 과거가 보여 주는 현실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국경을 넘어 문화와 사람을 만나는 방식은, 이 오랜 전통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하여 역사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국경은 벽이 아니라 흐름이며, 사람의 발걸음은 언제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는 작은 연못의 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감성유랑극단방송
25년 09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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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휴식기 중. 회사가 씻겨지지 않네요.
쉬는 중인데 (3개월딱 지남, 4개월째 접어드는 중) 전직장에서 상처 받았던 일들이 매일 때때로 떠올라, 살고 싶지 않게 만드네요. 그냥 이렇게 쉬다가 또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한다는게, 너무 삶을 살아갈 힘을 없게 만드는것 같아요. 그러면 회사로 안가면 되는거 아니냐, 하지만 또 가진 재주가 적어 회사말곤 방법이 없지 않을까 싶네요.ㅎㅎ 프리랜서 시도, 창업시도, 주식, 코인, 유튜브, 스마트스토어... 등등 시도를 해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만큼 돈을 버는건 늘 쉽지않네요. 다들하는 직장생활,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저는 이제 좀 회사밖의 생활로 살아가고 싶네요. 별건아니지만, 리멤버에서 이제 전직장의 명함을 삭제했어요. 최근명함으로 등록된것도 지우려니 지울수없다고 뜨더라구요. 그냥, 제 인생에서 사라져줬으면 싶은데 참.. 쉽게 씻겨지지 않네요.
로하스가
25년 09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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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하다가 사이드미러 해먹었네요..
하필 생일날에 에휴 내정신...
화이투벤코프
25년 09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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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결혼식 인사만 하고 가도 될까요?
축의금 내고, 인사만 하고 가려는데 괜찮겠죠? 사진까지 찍고 얼굴도장 찍어야할지.. 저는 아직 결혼 안해서 조언 구합니다
부동마운틴
25년 09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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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 다들 뽑으시나요.......
요즘 부쩍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네요... 아직 30대인데도 가르마 사이사이로 반짝이는 게 눈에 걸려서… 거울 볼 때마다 괜히 신경 쓰입니다 흑... 정수리에 뙇 나있으니까 볼때마다 뽑고 싶은 충동이 드는데 듣기로는 뽑았을 때 운 나쁘면 더 이상 그 모낭에서 머리가 안난다고 해서요;; 다들 흰머리 발견하면 그냥 뽑으세요?? 아직까진 한두가닥이라 염색하기에도 뭣하고 ㅜㅜ 에혀 조언 좀 주십쇼... 흰머리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더 흰머리 날 기세입니다
레이저빔우
25년 09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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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회사에서 비둘기 한 마리 때문에 전쟁 났었습니다.
점심 먹고 나른해진, 평화로운 금요일 오후였습니다. 열린 창문으로 그것이 들어오기 전까지는요. 푸드드드드드득!!! 밖에서만 보던 회색 닭둘기 한 마리가... 좁은 사무실 상공을 날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사무실은 아비규환이었습니다. 비둘기는 푸드드드드득 떴다 착륙했다를 반복하면서 사람들 책상 위 물건들을 다 쓸고 지나가고, 커피고 물이고 그냥 죄다 쏟아놨습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죠. 이 녀석을 내보내야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빈 박스를 챙겨오고, 빗자루를 들고, 또는 맨몸으로 닭둘기를 몰고, 또 남은 창문을 다 열어 나가는 길을 만들어드리고... 저는 우리 회사 사람들이 이렇게 단합이 잘 되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닭둘기녀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해 한참을 푸드덕거리고... 녀석이 힘이 빠졌는지 나는 걸 멈췄을 때 사람들이 구석으로 닭둘기를 모니까, 여자 대리 한 분이 녀석을 맨 손으로 잡아서는 창밖으로 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고... 아니 어떻게 비둘기를 맨손으로 잡냐고 난리 난리. 여러분이 몰아주셔서 잡을 수 있었다고 마치 수상 소감을 말하는 것 같은 닭둘기 포획자 ㅋㅋㅋ 비록 사무실은 비둘기 깃털과 쏟아진 물건들로 난장판이지만 분위기는 아주 좋습니다 ㅋㅋㅋㅋ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니 뭔가 도파민도 싹 돌고 동료들과도 끈끈한 전우애가 생긴 기분이네요. 회식이라도 하고싶지만 금요일 저녁 회식은 다들 싫어할테니 여기에라도 자랑글 올려봅니다 참고로 비둘기 어떻게 잡았냐고 했더니 어릴때 집에서 닭을 키워서 새 잡는 거 어렵지 않다고 역시 이래서 경력직을 뽑나 봅니다 ㅎㅎ
입질의추억
25년 09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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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을 해야하나 고민입니다.
안녕하세요 올해 30대의 마지막을 보내는 중소직장인입니다. 시험 공부를 오래하다 뒤늦게 나마 취업을 해서 어느덧 4년여 가까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직영매장20여곳 및 거래처 300여곳, 매입처100여곳 등을 담당하고, 기획, 제안, 견적 등 전반적인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전공은 아니지만 첫직장이기도 하고, 맡은 바 업무를 하다보니 일이 점점 제게로 몰리는 게 보입니다. 직원들 및 거래처 담당자들과 얘기를 해도 대부분 제가 업무를 다 한다고 하는데 제게는 다른 곳과 비교 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다보니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하고 넘기곤 랬습니다. 그런데 최근 협업 할 일이 있어서 거래처 대표님을 만났는데 직원 3-4명이 하는 업무를 저 혼자 한다고 하십니다. 숙달된 업무를 처리하는데 있어도 처리속도가 다르니 일이 몰리는 것 같고, 처우 개선에 대해서 꾸준히 어필 했는데도 회사 사정을 얘기하시길래 매번 참았습니다만. 더이상 버티기 버거울 정도 입니다. 일종의 가스라이팅도 서슴치 않아서 네 나이에 어디 갈 데 찾느니 그냥 있어라 라는 말도 듣습니다. 거래처에서는 나중에라도 퇴사하면 같이 일하자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구분이 잘 안됩니다. 매번 새로운 일이 생기거나 정책이 바뀌면 대부분 제게 일이 옵니다. 고학력 고스펙이 너니깐 네가 해라. 다른 사람들 자료는 못보겠다 등 말하고 직접 많이 못챙겨줘서 미안하다 라는 말은 하면서 정작 급여 인상시기에는 회사 사정을 말합니다. 제가 입사하고 동료분들과 같이 열심히 해서 매출이 180억에서 280억으로 100억이 올랐으나 이에 대한 성과급 반영은 없습니다. 현장직을 더 중요시 하는 부분도 있는거 같구요. 같은 경험을 하셨던 분이나, 고민을 가지고 계신분이 있으실까요? 두서없이 적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토리푸리
25년 09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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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느낀것들9
1.인간관계에도 유통기한이있다.(보내줘) 2.이성이든 동성이든 끼리끼리는 과학 3.세상은 웬만해선 나한테 특별대우 하지않는다 4.알만한 사람들은 수요일에 연차를쓴다 5.예의는 지능의 문제다
초키형부
25년 09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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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느낀것들8
1.생각을 줄이면 인생이 편해진다 2.기록은 기억을 이긴다 3.인간이 다 거기서 거기다. 주눅들필요1도없다(진짜로) 4.점심메뉴 고르는것도 일이다 5.덕업일치는 축복이다
초키형부
25년 09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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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코코넛을 묵사발을 내버리셨네요~~ ㅋㅋㅋ
부모님께서 베트남에 가셔서 살고 계십니다. 복작복작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계신데요 오늘은 어머니가 코코넛을 묵사발을 내버리셨네요~~ ㅋㅋㅋ 코코넛 어떻게 먹는지 아시는 분 계신가요? ㅎㅎ ++ 평화로운 베트남 일상들 사진 공유드립니다. 한국 장난감에 관심 갖는 베트남 고양이들, 베트남꽃입니다 ㅎㅎ (꽃 이름은 모르겠네요)
복작복작
25년 09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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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라이프) 행복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나는 딱 이만큼이면 행복하다, 라는 기준을 세우는 것은 단순한 자기 위안이나 소박한 태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행복을 위한 하나의 전략입니다. 우리는 모두 제한된 자원 속에서 살아갑니다. 돈도, 시간도, 에너지도 무한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을 추구하는 데 있어 무작정 욕망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만족에 이르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집에 사는 것을 행복의 조건으로 삼고, 또 다른 사람은 취미와 여가에 아낌없이 투자하며, 또 다른 이는 검소하게 살더라도 저축과 자산 축적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이렇게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은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디에서 가장 큰 만족을 느끼는지를 분명히 정하는 일입니다. 행복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전략적 선택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지는 곧 무엇을 포기할지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기회비용의 문제입니다. 집을 더 좋게 할 것인가, 아니면 여가에 더 투자할 것인가, 저축을 늘릴 것인가—이 모든 선택은 동시에 할 수 없고, 우선순위를 정해야만 합니다. 행복 기준을 세우면 이런 선택이 훨씬 분명해집니다. 단순히 소비를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내 행복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리는지 판단하고 그쪽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은 완벽히 계산적인 존재가 아니기에, 늘 최적의 선택을 찾아 헤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을 정하고 그 안에서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만족화(satisficing)’라는 개념인데, 행복의 기준은 만족화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끝없이 더 나은 조건을 찾아 헤매는 대신, 내가 정한 선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기준은 또 쾌락의 적응이라는 심리학적 원리를 다루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사람은 새로 얻은 것에 금세 익숙해지고, 처음 느낀 기쁨은 빠르게 사라집니다. 그래서 아무리 큰 집이나 좋은 차를 가져도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면, 끝없는 비교나 더 큰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그 기준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식주는 평범해도 여가와 취미에 지출할 때 행복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여행, 운동, 취미활동 같은 경험에 투자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옳은 선택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집과 음식 같은 일상적 삶의 질이 무엇보다 중요해서, 그 부분에 자원을 더 많이 쓰는 것이 맞습니다. 반대로 어떤 이는 검소하게 살면서 저축이나 자산을 늘려가는 과정 자체에서 성취감을 얻습니다. 이 경우 월 소득의 일정 비율을 꾸준히 저축하고, 그 과정을 ‘내 행복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전략적으로 적합합니다. 결국 누구에게나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지출 구조에서 가장 만족을 얻는가’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전략이냐 하면, 행복도 일종의 자원 관리이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시간, 돈,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에 따라 삶의 만족도가 크게 달라집니다. 계획 없는 행복 추구는 마치 회사가 예산을 세우지 않고 무작정 돈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행복 기준을 정하는 것은 기업의 전략 기획처럼 자원을 최적 배분하는 과정입니다. 덕분에 삶은 불필요한 낭비 없이 효율적이고 만족스럽게 흘러갑니다. 실제 적용을 위해서는 몇 가지 단계를 밟을 수 있습니다. 먼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정리해야 합니다. 의식주, 건강, 관계, 여가, 성장 같은 항목에 점수를 매겨보는 겁니다. 이 과정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기초가 됩니다. 다음으로 시간과 돈의 배분을 계획합니다. 월 소득의 몇 퍼센트를 주거에, 얼마를 여가에, 얼마를 저축에 배정할지를 정하는 것이죠. 이후에는 작은 규칙들을 세워야 합니다. 예를 들어 외식은 한 달에 몇 번 이하, 고가 구매는 2주 이상 숙성 후 결정한다는 식의 규칙을 만들면 기준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여기에 자동 이체나 캘린더 블록처럼 시스템을 걸어두면 의지력이 약해질 때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달이나 분기마다 실제 만족도를 점검하며 기준을 수정하면 됩니다. 행복의 기준은 단일한 지점이 아니라 포트폴리오처럼 설계될 수 있습니다. 필수적인 부분(주거, 식사, 안전망), 경험적인 부분(여행, 취미, 관계), 성장적인 부분(교육, 건강), 그리고 여유의 부분(저축, 휴식)을 나눠 각각 최소 기준과 이상 기준을 설정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어떤 부분에서 줄이고 어떤 부분에 집중할지 더 명확해집니다. 이 기준은 인생의 국면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청년기에는 자산은 적고 시간이 많으니 성장과 경험에 투자하는 것이 좋습니다. 중년기에는 책임과 안정이 중요해지므로 생활의 기반과 가족 중심의 여가에 무게를 두어야 합니다. 은퇴기에는 고정 소득이 줄어들기에 건강과 여유를 중시하는 기준으로 바뀌는 것이 현명합니다. 물론 기준을 세운다고 해서 외부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동료의 소비, SNS의 과시, 주변의 기대는 끊임없이 기준을 흔듭니다. 하지만 기준을 분명히 세우고 주변에도 알리면 불필요한 비교에서 벗어나 내 행복을 지킬 수 있습니다.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가 아니라, 내가 정한 기준대로 사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행복 기준을 세우면 성장을 멈추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됩니다. 그러나 이는 오해입니다. 기준은 성장을 막는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성장을 위한 기반입니다. 기준을 정해 놓으면 불필요한 탐색과 방황이 줄고, 그 에너지를 새로운 도전이나 성취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기준은 안전망이고, 그 위에서야 비로소 모험과 도전을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결국 ‘나는 딱 이만큼이면 행복하다’는 기준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삶을 전략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나침반입니다. 비교와 욕망의 무한 경쟁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고, 한정된 자원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게 합니다. 행복은 무작정 많은 것을 쫓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정한 기준을 지키며 작은 만족을 꾸준히 쌓아가는 데서 오는 안정과 성취가 진짜 행복입니다. 오늘 당신도 종이를 꺼내어, 나만의 행복 기준을 적어보고, 그에 맞는 작은 실행을 시작해 보십시오. 그것이 전략적 행복의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감성유랑극단방송
25년 09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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