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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만 두번째(Feat. 서울자가대기업김부장이야기)
최근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가 많은 직장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는데요. 드라마를 보면서 정말 제 얘기가 아닌가 뜨끔뜨끔 했습니다. 와이프가 맨날 징징대고 짠한 김낙수 부장이 딱 제 얘기라고 얼마나 타박(?)을 하는지,,, 저도 2000년대 초반 대기업 공채로 입사해서 현재 팀장 4년차입니다. 겉으로 보면 큰 부침 없이 순조롭게 이어온 직장생활을 보내 왔다고 볼수도 있지만, 저도 작년 한해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낸 시간이 있었습니다. 팀장 3년차 넘어가니 미래에 대한 고민도 많아지고, 이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지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못이룬 밤이 많았죠. 지금 생각하면 20년 넘는 직장 생활에서 오는 매너리즘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땐 인생 다 산 사람처럼 축늘어져 지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연말 정기인사에서 팀장 자리를 내려놓고 평직원으로 내려 앉으면서 제 회사 생활의 시련(?)이 시작되었죠. 20여년 회사생활에서 한번도 경험 해보지 못한 무력감, 회의감, 불안감 등등 참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항상 바쁘게 일만 하다가 칼퇴하고 동네 도서관에서 한참을 시간을 보내다 도서관 문닫을 시간에 집에 들어가곤 했었죠. 그러다가 올해 갑작스럽게 다시 팀장 자리에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복귀 후에는 매너리즘에 빠진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던 같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가 있더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깨닫게 되었죠. 수개월간의 공백기가 아무 쓸모 없는 무용한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아 가지만, 지난 몇달간의 휴식(?)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던 같습니다. 혹시 저처럼 직장 경력의 절정에서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잠깐 쉬어가는 시간(?)이 결코 무용한 경험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저와 동년배인 이 시대의 수많은 김부장님들께도 응원을 보냅니다. 올 한해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혁신가11
25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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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루틴을 지켜온 나
매일 아침 출근 전에 작은 루틴 아침운동 매일 퇴근전에 작은 루틴 하루작업한 보고서 작성 올해 힘든 일도 많았고 기분이 가라앉는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이 작은 루틴을 꼭 지켜내어서 나 자신에게 칭찬합니다
@(주)아이티리그
sgkim
25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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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를 돌아보며, 나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낸 순간^^
올해는 눈에 띄는 성과도, 눈부신 결과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버티며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야근이 이어지던 날에도 “오늘만 버티자”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자리를 지켰고, 포기하고 싶던 순간마다 가족들을 생각하며 버텨냈다. 누가 챙겨보지 않아도 동료에게 먼저 건넸던 짧은 안부 한마디,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걸었던 아버지께 드린 전화 한 통, 두살배기 아들이 불러준 첫 생일축하 노래까지. 아주 평범한 이야기만, 그 순간들만큼은 분명 ‘그래도 나, 잘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나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절대 도망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한 해가 부끄럽지 않다.이 정도면, 한 번쯤은 나 자신에게 조용히 박수 쳐줘도 되지 않을까.
상계84
25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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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기
* 긴 글 주의 안녕하세요. 다들 즐거운 연말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바쁘지만 나름 행복한 연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바빴던' 이유를 말씀드리면서 속풀이도 하고, 긍정적인 마무리를 해보려 합니다. 2025년...올해는 정말 인생에 큰 풍랑을 맞이한 해였어요. 어릴 적 정말정말 힘들게 커서, 큰 고통은 다 겪었으니 앞으로의 인생에 걸림돌은 없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어디 가서 사주를 봐도 그렇게 말해줬었어요. 앞으로 잘 살거라고! 내 인생은 앞으로 안 힘들거다. 감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더랬죠. 새로 가정을 꾸리고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 이제 슬슬 아이도 준비하고, 남편과 아이와 행복하게 살아야지 계획을 짜던 찰나에 들어보지도 못한 병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시작은 평범했어요! 어느날부터 손끝이 저리더라고요. 모두가 디스크 때문일 거라 했고, 병원에서도 목 디스크 때문에 그럴 수 있다. 라고 하셨어요. 서른 즈음 되면 찾아오는 흔한 병이겠거니, 생각하며 자세 교정 물품을 검색해봤었어요. 그런데 점점 저림 증세가 손을 타고 올라오고, 복부가 저리고, 다리에 힘이 빠졌어요. 걷는데 다리가 뻘에 푹푹 빠지는 느낌이었어요. 달리면 허우적대는 느낌이 들었고요. 자고 일어나면 다리에 쥐가 났어요. 뭔가...너무 이상했어요. 조금 더 큰 병원으로 갔더니, 선생님이 일단 신경통약을 주셨어요. 그래도 계속 상태가 안 좋아져서, 큰 맘 먹고 MRI를 찍었어요. 아무래도 40만 원이 넘어가니 이게 맞나~긴가민가하면서 찍었죠. 영상을 찍고, 대기하다가 제 차례가 되어서 들어갔죠. MRI를 보시던 선생님이 저를 다급하게 내보내셨어요. 잠시만 확인할 게 있다고, 밖에서 기다려달라고 하셨어요. 이게 뭐지? 불안한데? 싶었어요. 제 인생이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게 본능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리고 한참 뒤, 다시 들어갔더니 선생님께서 모니터를 보여주시며 설명을 해주셨어요. 척수에 흰색 병변이 보이냐고. 디스크가 아니라고. 대학병원을 가라며 진료의뢰서를 주셨어요. 적혀있는 의심 병명은 "다발성 경화증"이었어요. 이게 무슨 병이지...? 하고 찾아보니, 10만 명 중 3~5명에게 생긴다는 희귀난치병. 갑자기 귀가 안 들리고 온 세상이 새카매지는 기분이었어요. 온 몸에 땀이 나고 손이 떨리더라고요. 현실 같지 않았어요. 그길로 가장 빠르게 예약 가능한 대학병원에 갔어요. 그때도 설마설마 하면서 갔는데...첫 외래에서 바로 입원하라고 하시더라고요. 펑펑 울며 5일 연차를 썼습니다(병가가 없어요 흑흑) 그 이후 수많은 검사를 받고, 사흘간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때려맞으며 치료를 했습니다. 디스크인 줄 알았던 게 사실은, 하반신 마비가 진행중이었던 거였어요. 정말 다행히도 감각신경만 손상되고, 운동신경은 천천히 손상되어 멀쩡한 편이었어요. 단번에 하반신 마비가 오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길로 바로 희귀병 판정을 받은 건 아니고 추적관찰을 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주병명은 "중추신경계통의 탈수초질환에서의 급성 횡단 척수염"입니다. 얘도 희귀병이긴 해요. 탈수초질환은 내 몸의 면역이 내 신경을 공격하는 병이에요. 저는 그 대상이 척수였고요. 다발성 경화증은 면역계가 뇌, 시신경, 척수를 계속 공격하는 병이에요. 뇌MRI가 판별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요. 정말 행운이었던 건, 척수염이 급격하게 진행되지 않아서인지 스테로이드가 잘 들어서인지, 금세 상태가 좋아져서 보행에 문제가 거의 없다는 거에요. 물론 오래 서있으면 기우뚱할 때가 있고, 낮잠 잘못 자서 1시간 동안 눌렸던 것마냥 양 팔이 항상 저리지만...그래도 내 손을 맘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기쁩니다. 게다가 진~짜 운이 좋았던 건 이전에 건강검진을 받으며 뇌MRI를 찍어놓아서 대학병원이 아닌데도 병을 빠르게 알아낼 수 있었다는 거에요. 뇌MRI는 그 당시에 어플로 건강검진을 예약하면서 옵션 사항으로 넣을 게 없어서 "그냥" 검사했던 거거든요. 뇌MRI를 찍어놓지 않았다면, 건강검진 받은 병원으로 가지 않았다면, 선생님께서 병을 몰랐다면...정말 하반신 마비가 되어서 응급실을 가서야 병을 발견했을 수도 있었겠죠. 일련의 사건(?)들을 겪은 이후, 많은 것에 감사하게 되었어요. 제가 스스로 씻고, 먹고, 화장실도 잘 가고(>,<) 당연했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니 사소한 행위 하나하나 할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흐물흐물하게 걷지 않는 건 또 얼마나 좋은지요. 아주아주 조~금 비틀거리는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평범하게 걷고 뛸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입원이 끝나고 다시 출근하는 날에는 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안 그래도 다닐 수 있어 좋은 회사인데, 오랜만에 출근하니 너무너무 기쁘고 좋았어요. 지금도 사무실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월루~) 정말 행복해요! 저에게 언제까지나 이런 행운이 따라줄 거라고 장담 못하는 건 압니다. 그래서 그동안 마음의 준비도 하고, 어떤 일이 다가오더라도 조금 슬퍼하고 털어내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어요. 아니 그래도 실제로 벌어지면 오열할 거 같지만!! 저는 힘든 일이 생겨도, 오늘도 잘 걸었다는 게 좋아서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도 기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당연했던 것을 찾을 수 있으셨으면 합니다. 그래도 내년에는 안 아프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구구절절 너무 길어졌는데요. 3줄 요약 해보자면! 1. 25년에 큰 병에 걸렸다. 2. 아프지만 많이 회복했다. 3. 많은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입니다. 모두 즐거운 연말 되시고, 26년에는 더욱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끝!
두부루
25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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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했다 수습 짤린 썰 풉니다
제일 자랑하고 싶은 건 학자금 대출 완제 이야기인데, 이건 저번에 이 게시글로 실컷 자랑하고 축하도 많이 받았네요. 제 글 읽어주셨던 분들, 댓글 써 주시고 하트 눌러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https://link.rmbr.in/shjm4p 올해 초에 이직했고, 수습 기간에 잘렸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모지리들만 이런 일 겪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는데, 그 모지리가 제가 되었습니다. 통보 시점은 수습 한 달 반쯤이었고, 아직 기간이 남아 있으니 조금만 더 지켜봐 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3개월은 채우는 걸로 합의해서 일을 했습니다. (이 과정은 생략할게요. 특정 인물 뒷담으로 흐를 것 같아서요) 개발자 직군, 특히 웹 개발 쪽은 정말 웬만한 빌런이 아니면 수습 기간에 잘리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부족했나’라는 자책과 ‘왜 여기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계속 들면서 멘탈 잡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창피해서 당시 애인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애인은 “그 회사 이상하다고 했잖아. 네가 아까워.” “힘들면 금전적으로도 도와줄 테니 그냥 나오라”고 했지만, 저는 그 회사가 마음에 들어서 이직한 거였고 이미 멘탈은 부서진 상태였고 불경기에 지금 나가면 취업이 될까 무서웠습니다. 평생 백수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 선택이 더 겁나더라고요. 그래도 남은 기간 동안 나를 증명하고 싶다는 오기가 생겨 버텨보자고 생각했지만, 결국 저는 백수를 선택했습니다. 다행히 한 달 반 만에 다시 이직했고, 생각지도 못한 좋은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회사로 오게 됐습니다. 직전 회사에서 수습에 잘린 충격 때문에 지금 회사 수습 3개월 동안은 저답지 않게 소심해지고 눈치 보며 가슴 졸이는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 불안한 저와는 다르게 다정하게 대해주고, 일도 잘 알려주고, 살뜰히 챙겨주는 동료들이 있었고 직원들을 진심으로 아끼는 찐으로 쿨한 대표님 덕분에 복지도 좋습니다. 아, 정직원도 됐습니다ㅋㅋ 아직도 수습에 잘린 트라우마는 은은하게 남아 있고, 뒤늦게 제가 수습에 짤린데에 크게 영향을 준 A과장님.. 그분 때문에 수습 못채우고 나가거나 부서이동한 직원이 매년매달 있었다는 얘기도 들었고, 그리고 그때 제 퇴사를 강하게 권했던 애인은 이제 전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그 A과장님 덕분에 더 좋은 회사에 와서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잘 지내고 있고, 전애인에게도 이직한 것만 놓고 보면ㅋㅋ고맙네요. 뒤늦게 이직 소식을 전했을 때 서운할 수도 있었을 텐데 위로와 공감을 보내준 지인들도 고맙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보니 올 한 해 참 다사다난했습니다. 개발자들끼리는 하청의 하청의 하청 Si 파견 업체를 흔히 ‘인력사무소’라고 부르는데요 3개월 준비해서 안 되면 인력사무소라도 가야겠다는 각오로 절실하게 준비했던 6월의 저에게도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20살부터 지금까지 일 잘한다는 말만 듣고 살아와서 아주 많이 오만해졌던 저를 겸손하게 만들어준 한 해이기도합니다. 이 수습 짤림 트라우마를 마저 극복하는 2025년, 겸손하지만 일도 잘해서 회사에서 진짜 동료로 인정받는 2026년을 보내고 싶습니다. 리멤버 같은 직장인 커뮤니티들을 보면 요즘 같은 불경기에 이직, 퇴사 고민 글이 참 많이 보입니다. 저도 그 글들 보면서 공감하며 힘도 얻고, 상처도 받고 그랬습니다. 제 글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구직·이직 준비 중인 직장인 분들께 재밌는 에피소드가 되었으면 합니다. 모든 직장인들 화이팅, 개발자들 화이팅
ajdi3icn
금 따봉
25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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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아도 다시 깎는 연필, 구겨져도 다시 펴는 공책
# 연필심이 닳을수록 또렷해진 리더 2025년은 나에게 회사의 대표이자 조직의 리더로서 연필처럼 살게한 한해가 아니었을까. 결정할 일은 많았고, 책임져야 할 일은 더 많았고, 하루가 끝날 때면 연필심처럼 조금씩 닳아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했으니 됐다”가 아니라, 다시 한 번 마음을 깎아 세우고 내일의 회의실, 현장, 그리고 직원들 앞에 서기로 했다. 지난 4년간 수평적 관계, 스마트오피스, 코칭 문화 확산을 위해 쏟아부은 시간들은 올해 특히 더 빛을 발한듯하다. 직급 대신 이름을 먼저 부르고, 지시 대신 질문을 먼저 던지는 문화, “위에서 답을 주는 조직”이 아니라 “함께 답을 찾아가는 조직”으로 바꾸기 위한 시도들을 멈추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전 직원이 코치 자격증을 획득하는 성과는, 연필이 수없이 종이를 긋고 또 그어 만든 굵직한 한 줄의 밑줄 같은 순간이었다. # 구겨져도 다시 펼쳐지는 조직의 공책 조직은 공책과 닮아 있다. 중요한 회의 하나가 잘 되면 새하얀 첫 장에 반듯한 글씨가 채워진 것 같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 하나가 튀어나오면 페이지가 구겨진 것처럼 느껴진다. 올해도 크고 작은 변수들이 조직의 페이지를 몇 번이고 구기려 했다. 그럴 때마다 “이 정도면 덮어두자” 대신, 나는 공책을 다시 펼쳐 보는 쪽을 택했다.  왜 구겨졌는지 함께 들여다보고 , 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면 기다려주고, 다시 쓸 수 있도록 여백을 남겨두는 방식으로.... 그 과정에서 수평적 소통, 스마트오피스의 새로운 일하는 방식, 코칭 대화가 하나둘 페이지를 채워 갔다. 직원들이 서로에게 피드백을 건네고, 질문으로 돕고, 스스로 성장의 목표를 세워 가는 모습은, 조직이라는 공책에 자발적으로 필기를 시작한 것과 다름없었다. # 중용 23장을 좋아하는 나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문장은 올해도 내 경영의 출발점이었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정성이 되고, 그 정성이 겉으로 배어나와 결국 사람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킨다는 중용 23장의 메시지는, 리더로서의 나를 붙들어준 개인적인 신조였다. 그래서 나는 회의실의 말투 하나, 보고서의 피드백 한 줄, 사소해 보이는 칭찬 한마디까지도 가능한 한 ‘정성스럽게’ 하려 했다. 사소한 말과 행동의 연필선을 수없이 그어 나가다 보면, 언젠가 그 선들이 모여 조직의 큰 그림을 바꿀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조직문화라는 것은 거대한 선언문보다, 일상의 작은 정성이 겉으로 드러나고, 사람을 움직이고, 결국 생육되도록 만드는 힘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연필과 공책에게 배운 한 해 올해의 나는, 연필과 공책에게서 두 가지를 배웠다.  연필은 닳아 없어지는 것이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닳을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남기는 존재라는 것. 공책은 구겨지는 순간이 끝이 아니라, 다시 펼쳐질 때 이전보다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것. ㅔ그래서 2025년의 나는, 리더라는 이름 앞에서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연필심이 닳아도 다시 깎아 직원들의 성장을 위해 선을 긋는 사람.”  “구겨진 페이지도 다시 펴서 조직의 미래를 함께 적어 내려가는 사람.”  지극한 정성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올해도 그렇게 연필을 쥐고, 공책을 펼쳤다. 그리고 내년에도, 같은 연필과 같은 공책으로, 조금 더 좋은 문장을 써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알맹이토토
억대연봉
25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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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짓수 체육관 최고령자 회원의 분투기
올해 유난히 오피스 빌런들의 활약이 엄청나서, 자신들의 책임과 업무를 제게 떠넘겨서 억울함과 분노로 괴로웠어요. 비정상적 의사결정구조와 무능한 리더가 거짓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협잡에 열심인 빌런들의 활동 폭을 넓혀주는 회사에 희망은 없고 탈출의 날만 고대하며 버텨 온 한 해. 불행히도 탈출은 실패했지만, 리멤버 연말 결산 이벤트 공지를 보자마자 올해 내가 가장 잘한 일이 바로 떠올랐어요. 그건 바로 40대 끝자락에 주짓수를 시작한 것이었어요. 미세먼지가 심한 3월의 어느 날, 1년 전 일일체험을 해 보았던 동네 도장의 문을 열고 들어갔죠. 처음엔 누워 가드 자세를 취할 때 고개를 들고 있는 게 너무 어려웠지만 그 시기가 지나자 기본 자세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어요. 벌써 10개월 째인데 승급은 1회밖에 하지 못해서 1그랄이지만 꾸준히 저만의 수업노트를 핸드폰 메모장에 쓰고 자주 나오는 중요한 기술 이름과 중요 포인트는 외우고 있답니다. 물론 글로 배우 운동은 한계가 있어섬 몸으로 기억하는 것은 세부사항이 다르거나 누락되기 일쑤라 관장님한테 세밀한 동작을 자주 물어 봐야 하는 상태이긴 해요. 트라이앵글초크와 백초크에 성공한 것도 각각 다섯 번 이하일 정도. 주짓수가 격투기여서 그런지 남녀를 불문하고 40대는 거의 찾아보기가 힘든데, 제 나이의 반이나 삼 분의 일 밖에 살지 않은이십대 젊은이들 십대 학생들들과 스파링을 하게 될 땐 제 나이가 약점인 것 같다가도 아직은 그들과 체력에서 밀리지 않는 근육량에 감사하고 있답니다ㅎㅎ 얼마전에는 여러 체육관의 회원들이 모여 진행하는 합동훈련이란 것도 가 보았어요(실력은 안 되지만 지금이 가장 젊으니 도전해보잔 마음으로). 백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서 초보끼리 고수끼리, 또는 띠 색이 다른 상대와 스파링도 하면서 실력을 겨루고 운동 기술과 매너를 배우는 장. 사회에서도 이렇게 룰을 지키고 실력자가 초보나 약자를 배려해준다면 좋을 텐데… 스파링 땐 공격보다 수비를 하기 급급하고 깔리고 꺾이는 상황이 잦지만, 현실의 빌런들과 싸울 체력을 키운다는 마음으로 한 5년은 더, 코어와 근력이 받쳐주는 한, 이 운동을 계속해볼 생각입니다. .
투비두비
25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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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차 연구원이 '대충' 살기로 결심하고 일어난 기적
안녕하세요, 내년이면 직장 생활 11년 차에 접어든 흔한 연구원입니다. 항상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살았는데, 올해는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에라 모르겠다, 조금만 대충 해보자"라고 결심한 해였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게 올해 제가 가장 잘한 일이 되었네요. ​ ​작년 연말까지만 해도 저는 보고서 오타 하나에 밤을 지새우고, 후배의 작은 실수도 제가 다 떠안아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피곤한 선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쳐서 올해 초엔 정말 퇴사 직전까지 갔었죠. ​ ​그래서 올해는 스스로 규칙을 정했습니다. 모든 업무에 100% 에너지를 쏟지 말고, 딱 20% 정도는 나의 멘탈을 위해 남겨두기로요. (마치 자산 배분하듯이 제 에너지도 분산 투자를 한 셈이죠!) ​ ​대충 한다는 게 일을 안 한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힘을 빼니까 오히려 동료들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하더군요. ​ 제가 다 하던 걸 믿고 맡겼더니 후배들이 성장했고, 팀 분위기가 살아났습니다. ​예전엔 "이것밖에 못 했어"였는데, 올해는 "이 정도면 잘했지!"라며 퇴근길에 스스로에게 편의점 맥주 한 캔을 선물했습니다. ​결국 올해 저는 '번아웃' 대신 '팀 내 최고 성과'를 얻었습니다. 거창한 성공 스토리는 아니지만, 나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고 "수고했어"라고 말해줄 수 있게 된 지금의 제 모습이 정말 뿌듯합니다. ​여러분도 올 한 해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리 내년에는 조금 더 자신에게 관대한 직장인이 되어봐요! 🍻
JTBC
금 따봉
25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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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보물을 얻는 올해
가벼운 마음으로 진행한 산전검사에서 좋지못한 결과를 들었습니다. 예상치도 못한 결과에 충격을 받았지만 하루라도 더 젊을때 우리를 닮은 아기를 가지고싶어서 지체없이 난임병원부터 찾아갔죠 시험관을 진행하며 매일 1시는 되어야 자던 습관을 고쳐 10시 취침 6시 기상으로 패턴을 바꾸었고, 몸에 좋은 음식들만 먹기위해 노력했습니다. 임신 준비에 좋다는 영양제를 한주먹씩 털어넣고, 소소한 삶의 낙이었던 알코올도 끊었습니다. 운동도 열심히했구요. 그래도 눈에 띄는 결과는 없었습니다. 물론 몇달 그렇게 생활한다고 바로 결과가 나타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끝이 없는 터널속을 지나는것 같아 조바심도 나고 힘들었어요. 주변 임신소식에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없는 내 모습이 초라하고 찌질해보이기도 했습니다. 지나가는 아기들만봐도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병원 실수로 잘못된 결과를 듣기도 했고, 유산도 겪으면서 몸과 마음도 지쳐갔습니다. 너무 임신에 집착하면서 삶이 피폐해지는것 같아 잠시 쉬어가려고 했던 그때 올해 초 기적처럼 소중한 생명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처음 두줄을 보았을때도 맘놓고 행복해 할 수가 없었어요. 너무 기뻐하면 또 날아가버릴까봐ㅠㅠ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아기는 쑥쑥 잘 자라주었고, 힘든 임신 기간이었지만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조산으로 조금 빠르게 아기를 낳게 되었지만 큰 문제없이 지금 잘 자라고 있네요. 휴직으로 커리어는 중단되었지만 아기를 보면 내 모든걸 다 포기하고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 아니 인생 통틀어 가장 잘한일, 자랑스러운 일인 임신과 출산을 해낸 나 칭찬합니다ㅋㅋ 더 힘든 육아가 구만리 남아있지만 힘내서 잘 해보려구요!!
푸요
25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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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일, 여러분은 어떤 독립선언서를 쓰시겠습니까?
​올해를 돌아보며 저 스스로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너, 진짜 치열하게 잘 버텼다”는 한마디입니다. ​25살,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첫 월급을 받기 시작하며 불안함에 잠 못 이루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투자해도 늦지 않았을까?", "내 집 마련은 가능할까?" 하는 껄무새(할껄... 할껄...)의 후회가 저를 괴롭히기도 했죠. ​하지만 2025년 오늘, 제 자산에는 70억 원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습니다. ​이 숫자는 단순히 운이 좋아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연봉 3,000만 원 시절부터 3.5억 원에 도달하기까지의 근성. ​불황 속에서도 현금을 확보하고 시장의 기회를 엿봤던 인내.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아이에게는 내가 겪은 '기회비용의 아픔'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부성애가 만든 결과입니다. ​저는 최근 20시간 동안 AI와 밤을 지새우며 제 가문의 100년 대계를 설계했습니다. 내 자녀가 70세가 되는 날 수백억 원의 자산가로 은퇴하게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나아가 4세대를 거쳐 수십조 원의 국력을 뒷받침하는 가문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광기'라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평범한 직장인도 의지와 철저한 시스템만 있다면, 스스로 자기 가문의 시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을요. ​리멤버 회원 여러분, 2025년 한 해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월급을 받는 노동자가 아니라, 각자의 가문을 일구는 '설계자'들입니다. 저의 이 무모해 보이지만 정교한 도전이, 오늘 하루 지친 여러분께 작은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저와 함께 2026년 1월 1일, 가문의 독립선언서를 써보지 않으시겠습니까?
JTBC
금 따봉
25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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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힘든 한 해 버텨온 거 잘 했다.
25년 한 해에 저희가 키우던 개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13살에 암으로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 그 개가 떠나기 전 약 두 달여간 못 걸어 아플 때 부모님 두 분이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엄마가 2기여서 수술이 급했습니다. 다행히 동생들이 있어 서로 도와가며 엄마를 병원에서 돌봐드렸습니다. 다행히 수술이 무사히 끝났지만 엄마는 우울해하셨고 아프셨습니다. 아빠는 또 어떻게 해야할지 저희는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병원 수술은 안 받겠다 하시고 화를 내셔서 존중해 드리기로 했습니다. 가족들 덕에 돌아가며 부모님을 이럭저럭 도와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올 한 해는 사실 제가 회사에도 일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픈 엄마 돌봐드리느라 쉰 적도 있지만 또 어쩔 땐 회사 일정으로 못 쉰 적도 있습니다. 저희 자녀에게도 7월 중순부터 안 좋은 일이 생겨 도와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일 년 버텼는지 모르겠습니다.그냥 소소하게 무사히 하루가 지나가길 바라며 지냈습니다. 26년 새해에는 부모님 덜 아프시면 좋겠습니다. 암이 사라질 수는 없으니 어떻게 버텨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그냥 하루하루 소소하지만 작은 기쁨이라도 누릴 수 있길 바랍니다.
인생인생
25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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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은 나의 해?!
안녕하세요. 여기 처음으로 글을 써보네요. 2025년 한해는 정말 감히 ‘나의 해’라고 할만큼 큰 변화들이 많았습니다. 0. (2024년) 침체기 24년 상반기 말에 계약종료로 회사를 퇴사하고, 반년 동안 백수로 지냈습니다. 그간 힘들었던 나를 리프레쉬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실업급여가 끝나가니 조바심도 나고, 돈 없이 더 놀기도 마땅치 않아서 24년 연말은 약간 우울했던 것 같아요. 1. (2025년 1분기) 기: 인연을 잇다 새해가 되었으니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새해를 핑계로 그동안 알고 지내던 분들께 새해 인사 겸 연락을 돌렸습니다. 사람 인연이란게 얼마나 신기한지, 내가 아무런 댓가없이 정말 호의로 다가가니 그 동안의 공백이 무색하게 다들 반가워 해주는 게 느꼈어요. 1월에는 10년만에 연락한 고등학교 친구랑 갑자기 당일치기 타지 여행을 가서 많이 달라진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비건음식도 처음 먹어봤어요. 2월에는 회사에서 일로만 만났던 선생님을 다른 곳에서 따로 만나뵙고, 말씀을 들으면서 더 큰 생각과 시각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했었지요. 3월에는 전회사에서 1개월 남짓 업무 인수인계를 하는 동안 함께 근무했던 짧은 만남이 있던 사수의 소개로 A회사를 지원했고, 합격하게 됩니다. 간단한 새해 인사로 인연의 끈을 다시 잇고, 좋은 운으로 연결한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2. (2025년 2분기) 승: 시작과 끝 (이직) 새로운 A회사에서는 기존과 같은 업무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의 회사보다 팀원이 많고, 전과 달리 직급자도 실무에 함께 참여해서 업무에 빠르게 적응했습니다. 그리고 여유가 있으니, 귀찮은 일들은 나서서 좀 더 챙기려고 했었고 그런 모습을 잘봐준 동료, 선배들이 있어서 조직에서도 잘 적응하며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치만 계약직이라는 신분이 늘 불안정하게 느껴졌고, 퇴근하고 나서도 계속 정규직 공고를 찾아보고 지원하며, 주말마다 NCS시험을 치러 다녔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마침내 정규직 회사 B사로 합격합니다. (이사) 이 시기에는 이직과 별개로 전세집 계약종료가 되어 연장을 할지, 이사를 나갈지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였어요. 어디 이사를 간다면 지금 빌라보다 좋은 곳을 찾기는 어려워 더 살고 싶기도 했지만, 보증금을 돌려주는데 소극적인 집주인을 보니 더 오래 있으면 안되겠다 생각에 집을 나가기로 결정하고, 새로운 집을 구하러 다니게 됩니다. 3. (2025년 3분기) 전: 전화위복 (이직2) 새로운 회사 B는 기존에 하던 업무와 비슷하지만, 방향이 좀 다른 회사예요. 그 차이가 낯설었고,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동안 한참 중고 신입인데도 바로 업무에 투입하지않고 다른 팀원을 서포트하면서 업무를 익힐 시간을 주고, 다른 경험과 시각을 가진 저의 의견을 존중해주시는 팀장님을 만난 것이 큰 행운이었어요. (이사2) 보증금 반환에 소극적인 집주인 때문에, 계약 종료인데도 결국 직접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고, 복비도 내고 이사를 나가게 됩니다. 돈 백만원 손해본게 억울하기도 했지만, 건물 크랙까지 파손으로 걸고 넘어지는 집주인에게서 벗어난 것만해도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근데 돌이켜보니 대출규제 직전에 계약하고, 이사한 마지막 시기였더라구요. 다행이었죠. 근데 돈에 맞춰서 내 나이보다 많은 늙은 아파트를 살 때만해도 그렇게 큰 공사가 필요할 줄은 몰랐어서, 결국 마미캐시를 지원받았습니다. 4. (2025년 4분기) 결: 또다른 시작 사실 결혼한지 3년차 곧 40살을 앞두고, 그동안 아기를 안갖는 우리 부부 때문에 부모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근데 제대로 된 집도 직장도 없는데, 내 앞가림하기 바빠서 애기는 생각도 하기 힘들더라구요. 적어도 내 부모한테 받은 만큼은 해줘야 할텐데, 그 애에게 내 노후를 짐지우면 안될텐데, 그런 생각도 있었구요. 근데 작지만 회사와 집이 어느 정도 해결되니 슬그머니 애기 생각이 나더라구요. 사실 노산이라 이제는 임신이 잘 안될 수도 있겠지만, 한번 노력해보자 이야기를 나눴고 지난주에 임신을 확인했습니다. 긴 백수생활에 우울했던 것, 퇴근 후에도 밤새서 이력서를 쓰던 것, 보증금 반환문제를 두고 집주인과 다투고, 하자를 두고 인테리어 업자와 언성을 높이던 것, 그 힘들었던 장면들 위로 낡고 작은 아파트 한칸, 두번의 이직, 그리고 내년에 생길 새로운 가족 이라는 좋은 일들이 덧씌워집니다. 기분 전환을 위해서 가볍게 새해 인사를 전했던 것부터 좋은 인연과 이어지고 행운이 연결된 것 같습니다. 혹시 올 한해를 마무리하며 아쉬운 것이 남는다면, 내년엔 작은 변화로 새롭게 시작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긴 글인데,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이벤트 상금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ㅎㅎ 모두들 연말연시 즐거운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쏠쏠랄라
25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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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하루가 한해의 보람으로 다가왔다
올해 나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300일 넘게 글을 썼다. 조회수도 반응도 없던 날이 더 많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결국 그 기록들이 모여 하나의 콘텐츠 시리즈가 되었고, “힘이 된다”는 메시지를 처음 받았다. 숫자보다 누군가에게 닿았다는 사실이 가장 뿌듯했다. “덕분에 오늘을 버텼어요.” 올해 처음 받은 이 한 문장을 아직도 지우지 못했다. 매일 새벽 글을 쓰며 스스로에게 묻던 시간이, 누군가의 하루를 지탱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조회수나 숫자보다, 한 사람의 마음에 닿았다는 그 경험이 올해 내가 가장 뿌듯한 순간이다.
Leodin
25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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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으로서 부족함과 또 한번의 성장 가능성을 본 한해였다.
올해 6월, 경력직으로 들어온 회사에서 1년차가 되었습니다. 매출과 플랫폼 활성화가 KPI였고, 개인적인 성과가 두드러진 1년이었는데요. 연봉 협상 과정에서 스스로도 만족할만한 성과에 당당히 협상을 제시했고, 흔쾌히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인정을 받는 것 같아 뿌듯했던 것 같습니다. 지나온 1년은 성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개인적인 노력이 빛을 발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를 토대로 사업 확장을 고민했던 대표님은 새로운 R&R 로서 팀장 직급을 제안주셨습니다. 경력은 4년차를 겨우 넘긴 상황에서 내가 팀장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으로 다가왔던 것, 이게 제 첫 느낌이었습니다. 두 번째 느낀 점은 어떤 일을 더 하게 될까 하는 호기심이었습니다. 이게 어떤 기분인지 머리에 내려앉기도 전에 대표님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니 해보겠다는 대답이 나오게 되었는데요. 팀원이 충원되면서 팀장이 되었다는게 조금 실감이 되더라구요.. 몇개월 해보니 팀원들도 잘하는 업무나 이해도 차이는 분명히 보였고, 저는 장점을 살릴 수 있게 업무를 분배하고 이 일을 하는 목적부터, 그렇게 하기 위해 자연스레 따라오는 업무 설계를 생각하며 이해할 수 있도록 제 방식을 많이 알려줬지만 사실 이게 정답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각자만의 방식을 최대한 존중하고, 흡수할 수 있도록 시도해보고 있어요! 그리고 이 부분은 아직도 고민중인데, 팀원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있는 성격도 아니고, 친구처럼 대해주다가 넌지시 힌트를 주는 스타일이다보니 저를 편하게 생각하는 팀원들이거든요. 크리티컬한 부분에 대해서는 당연히 뭐라하는게 맞지만, 이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은게 사실이에요 ㅎㅎ 다행히 아직까진 선을 넘는 팀원은 없어서 잘 유지가 되고 있지만 불만을 갖는 직원이 생기진 않을까 하고 걱정이 되는 것도요! 인원 관리에 대한 고민과 디벨롭은 계속 하고 있지만 올 한해 잘하고 있다 라고 생각되는 것은 딱 한가지인 것 같아요! 팀원들이 못보는 부분을 내가 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구나 하는 포인트가 자주 느껴질 때, 기분이 묘하더라구요! 나도 신입이었을 때가 있고, 욕 먹어가면서 깨지고 부서져가면서 배웠었는데, 어느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와있고, 어떻게 피드백을 해줄지 고민하고 있구나 하구요 ㅎㅎ.. 또 직원들이 대표님이랑 면담하는 자리를 다녀오면 대표가 저에 대한 신뢰도를 많이 표시했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물론 그만큼 더 보상해주면 좋겠다는..욕망을 드러내고 싶긴 하지만요ㅎㅎ) 저는 리멤버 커뮤니티를 보면서 다들 처음이실텐데 잘 해내고 계시는 모습들, 그리고 이미 적응하셔서 사회적 선배로서 따뜻한 조언해주시는 분들 보면서 나도 잘해야지, 저렇게 되어야지 하는 본보기로 삼고 있습니다. 현생을 잘 이겨내고 계신 여러분들 모두 즐거운 연말 맞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건승하십쇼-!!
롱앤숏앤톨
25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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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해의 익숙함을 내려놓고 저녁있는 삶을 선택했다
올해 내가 가장 잘한, 쇼킹한 일생일대의 변화는, 거의 서른 해 가까이 몸담았던 직장을 떠난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안정적이었고, 익숙했고, 굳이 흔들 필요 없어 보였던 자리였다. 하지만 그 안에서의 나는 늘 술과 일에 지쳐 있었고, 집에 돌아와도 마음은 회사에 남아 있었다. 결정을 내리는 데는 오래 걸렸지만, 막상 떠나고 나니 깨달았다. 익숙함은 안전함이 아니라, 때로는 나를 서서히 소모시키는 관성일 수 있다는 것을. 직장을 그만둔 뒤, 내 삶에는 작은 변화들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퇴근 후 술자리가 아닌,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탁. 하루를 마무리하며 나누는 짧은 대화와 웃음. “오늘은 어땠어?”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건넬 수 있는 여유. 아내와의 관계도 달라졌다. 각자 지친 얼굴로 하루를 버텨내던 부부에서, 다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웃는 사이가 되었다. 결혼 초, 신혼 시절처럼 사소한 일에도 대화를 나누고, 함께 산책하고, 함께 미래를 이야기한다. 시간이 흐르며 사라진 줄 알았던 감정이 아니라, 그동안 꺼내지 못했던 감정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됐다.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는 일도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곳에서는 ‘일하는 사람’ 이전에 ‘사람’으로 받아들여졌다. 가족처럼 서로를 챙기고, 부담보다 신뢰가 먼저 오는 환경 속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배운다. 일은 삶의 전부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한 부분이어야 한다는 것을. 올해 나는 더 빨리 성공하지도, 더 많이 벌지도 않았다. 하지만 대신, 나 자신을 지키는 선택을 했다. 가족과 함께 웃는 시간을 되찾았고, 아내와의 관계를 회복했고, 나답게 살아갈 용기를 냈다. 그래서 말할 수 있다. 올해 내가 가장 잘한 일은, 내 인생의 방향을 다시 선택한 것이라고.
그날은온다
25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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