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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 펜데믹의 아픔과 회복 그리고 다시 나눔…
저희는 네 명의 아이를 후원합니다. 아내의 권유로 결혼 하면서 세 아이를 후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생일이 같은 아이.. 아내와 생일이 같은 아이… 그리고 우리 결혼 기념일에 태어난 아이… 딸이 태어나고 우리는 딸과 생일이 같은 아이를 또다시 후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매달 18만원의 후원금… 우리 형편에 못 낼 정도로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작은 금액도 아닌 금액.. 하지만 나눈다는 것은 또다른 채움이라는 것을 깨닫을 수 있었고 우린 행복했습니다. 풍요롭진 않아도 부족함 없이 살았고 이대로만 살자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뒤 코비드 펜데믹이 발생했고 우리 가족에게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리 회사는 재무 문제로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와이프 회사는 코비드 영향으로 무기한 휴직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투자금은 반토막에 집값의 미친 상승으로 두 달 뒤 입주하려고 매매 계약한 집은 집주인의 파기로 부랴부랴 전세집을 알아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손실 금액이크니 증권사에서 등기로 안내도 해주고 계약금 위약금은 22%세금이 부과된다는 것도 이 때 알았네요. ㅋ) 이 날 이후 아내의 표장에선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딸을 무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고… 아이를 안고 울고… 이러다가 우울증으로 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지 걱정도 되더라구요. 아내에게 “괜찮아 다 잘될거야”를 수 없이 말해줬지만 가족들이 없었더라면 제가 먼저 무너졌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이들에겐 미안했지만 제코가 석자라 결국 후원을 멈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펜데믹이 종결되면서 화사 상황도 나아지고… 아내도 복직하고 투자금도 원금을 회복하고 이익이 발생하였습니다. 아내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기시작했습니다. 이젠 요즘엔 그 때의 힘든 상황을 잊고 휴직을 또 하고 싶다고 가 때가 좋았다고 농담도 하네요. ㅋ (제발 농담이길…) 이미 수 억원이 올라버린 집값은 뼈아프지만 나쁘지 않은 위치에 신규 아파트 분양도 받아서 이제 입주를 눈앞두고 있습니다. 올 해 초 아내가 지나가듯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을지 후원자가 포기해버렸다는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몰려올 때가 있다고 하더리구요. 그래서 3월부터 다시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이미 다들 다른 후원자님들을 만나 다른 아이들이게 후원중이지만 이번엔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할 생각입니다. 비록 제가 하는 것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지만 좋은 교육을 받고 성인이되어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되길 항상 기도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그 아이들을 위해 짧게나마 기도 부탁 드립니다.
미스터리명함
억대연봉
쌍 따봉
25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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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올해 초, 거울 속 내 모습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그 다짐을 끝까지 지켜낸 나 자신에게 먼저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실 처음에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러닝이 괴롭기도 했고, 덤벨 하나 들어 올리는 게 무겁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푸시업을 하고 운동화 끈을 묶으며 나 자신과의 약속을 최우선으로 두었다. 그 꾸준함 덕분에 어느덧 몸무게 10kg 감량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고, 힘없던 몸에는 탄탄한 근육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몸의 변화는 생각보다 더 큰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단순히 옷 태가 좋아진 것을 넘어, ‘나도 할 수 있다’는 강력한 자신감이 생겼다. 예전보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주변을 대하는 성격도 훨씬 긍정적이고 밝아진 것 같아 뿌듯하다. ​땀 흘린 시간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1년이었다. 이 성취감을 잊지 말고, 다가오는 새해에도 지금처럼 건강하고 당당하게 나아갔으면 좋겠다. 올 한 해, 정말 수고 많았어! ​
야놀자2
25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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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일로 버티다.
유재석의 핑계고 시상식을 보면서 마지막 인사에 크게 공감한 것은 2025년은 말 그대로 버틴 시간이였기 때문일 거다. 올해 연봉의 반으로 12개월을 버티다 보니 모아둔 적금을 도장깨기로 한개씩 해지하고 적은 생활비로 매달 지내다 보니 일을 하다 화가 나다가 내가 능력이 없어서 그런가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나마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면서 시간을 보내니 일이 없는 것보다 일이 있어서 버틴 것이라 생각하니 2025년 마지막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5년정도 개인사업자를 할때 시간의 자유는 있지만 철처히 매일매일 쉬지 않고 돌려야 하는 일상이 버거웠지만 그 때의 경험이 아마 2025년을 버틴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워킹맘으로 22년차 일하는 것으로 28년차 그래도 쉬지 않고 달려온 원동력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자리나 위치는 바뀌지만 내가 일할 곳이 있다는 것으로 2026년을 맞이해 보려 한다.
일할때는돌아이
25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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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도착한 크리스마스 선물.해고통보
올해 하반기는 버티는 시간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 전 직장의 경영 악화. 그 와중에 퇴근 후, 평일 퇴근 후 주말을 쪼개 공부하며 이직을 준비했다. 원하던 데이터 분석 업무를 하게 되었을 때는 “그래도 잘 버텼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직장에서는 이런일 저런일 바꾸며 나가기를 기다렸으니까. 이제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고 믿었다. 하지만 오늘, 해고 통보를 받았다. 내년프로젝트가 다 현실화 되지않고 1월중 폐업신고를 하신다고 한다. 들어온지 얼마안되었는데 이런이야기를 하게되서 미안하다고 하신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안이 벙벙하다는 말이 이렇게 정확할 줄 몰랐다. 노력의 방향이 틀렸던 걸까, 아니면 애초에 기회가 아니었던 걸까. 차라리 이럴 거면 처음부터 채용하지 말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도망치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지금은 무너진 기분이지만, 다시 공부하고 다시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만은 남아 있다. 올해의 끝에서 나는 또 한 번 멈춰 섰지만, 완전히 끝난 건 아니라고 믿어보려 한다. 수습기간 끝나가거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가야하는데 말이안나온다.
경쾌한물개
25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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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상
올해부터 초딩 시절 숙제로 기록했던 일기를 다시 써 봅니다.물론 매일은 아니지만요...사소한 일상의 기록이 제가 걸어 온 발자취이자 후회와 감동이 녹아 있더군요! 고물가 고환율 및 불황이 지속된 2025년을 뒤로 하고 다들 새해 좋은 일들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수고하셨습니다!
닉네임뭐냐9
25년 1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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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주식, 마드리드 섭렵(?)
첫 번째 이야기는 AI와 친구 맺기이다. 우연히 충북 평생교육이용권 지원대상자로 선정되어(35만원), 4주 동안 매주 금요일마다 퇴근 후 3시간씩 교육을 받고, 2주 후 자격증 시험에 응시하였다. 생성AI활용능력 자격증을 무려 96점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취득하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인데 평생교육이용권 우수사례 수기공모전에서 수장작으로 선정되어 상장과 시상금까지 받게 되었으니 말 그대로 가문의 영광이다. AI 자격증 취득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 스스로 AI 관련 자격증 보유자로서, 국내여행을 하든 해외여행을 하든 주식투자를 하든 업무상 모르는 일이 생기든 옷 코디까지 일단은 AI에게 물어보고 판단하여 추진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누구보다 똑똑한 가이드, 펀드매니저, 전문가, 비서, 친구, 코디네이터가 생긴 것이다. 오렌지3라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워드 클라우드를 작성해 2026년 사업계획 작성에 적용해 보았고, 생성형 AI는 아니지만 아두이노를 활용하여 설비 온도를 측정하는 코딩에도 도전해 보았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주저함이 없어졌다는 것이 가장 큰 베너핏이라고 하겠다. 두 번 째 이야기는 겁도 없이 남의 돈으로 주식투기하기이다. 올초부터 아주 소소하게 주식에 투자하게 되었고, 9월 말까지 감사하게도 평균 20% 정도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충만하던 10월 중순, 지인에게 빌린 돈 1억 3천 4백만원을 상환하겠다고 했더니, 한 달 후에 이체 말고 전액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AI와 재야의 고수인 구내식당 여사님께 조언을 구하여 미장 종목에 7천만원, 국장 종목에 나머지 금액을 투자했다. 10월 15일에 투자를 시작한 후 10월 29일에 미장 종목 평가수익률이 14%가 넘어 총평가수익이 천만원이 넘었다. 중간에 일부 매도하여 남편 임플란트 계약도 하고, 비트윈잡스 상태인 여동생에게 용돈 100만원도 주고, 스페인 마드리드 여행에서 쓸 유로 환전도 하고... 마드리드에서 11월 23일에 돌아왔는데, 돈주인이 한 달이 지났으니 이제 돈 받을 준비가 됐다고 했다. 그 시점에는 하락장이어서 원금 손실이 발생할 정도였다. 구질구질하게 몇 일만 시간을 달라고 애원했고 그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주식까지 탈탈 털어서 상환했다. 1억 3천 4백만원을 현금으로 찾는 과정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거래하는 금융기관에 사전에 연락해서 미리 현금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했고, 출동한 경찰의 여러 질문을 통과한 후에야 현금이 지급되었다. 내년에는 펀드투자권유대행인 자격증에 도전해보고자 한다. 오롯이 나의 실력과 나의 돈으로 제대로 투자해보려고. 마지막 세 번째 이야기는 혼자 떠난 마드리드 여행이다. 고등학교 친구가 10년째 선교사 수녀로서 스페인에서 일하고 있다. 도착한 다음 날이 토요일이어서 일찍 일을 마친 친구가 속성으로 마드리드 시내를 소개해 주면서 숙소 가는 지하철이랑 버스노선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친구가 본인의 교통카드를 줬고, 친구가 일 할 동안 나는 혼자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시외버스도 타고 시내투어버스도 탔다. 구글지도가 잘 되어 있어 목적지를 찾아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도착지마다 인증샷을 보냈다. 친구가 본인의 유심까지 교체해주면서 로밍비용도 아끼라고 했다. 친구의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후 덜 아쉬워 할 것 같아 그렇게 했지만 일이 생기고 말았다. 혼자 시내에 나갔다가 와이파이도 안되고 LTE도 안돼서 재부팅했다가 비밀번호를 몰라 휴대폰을 쓸 수 없게 되었다. 몇 일동안의 기억을 더듬어서 수녀원으로 찾아갔다. 친구는 이미 시내로 출발하였고, 한 수녀님께 친구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해서 친구를 만났다. 소매치기로 악명 높은 마드리드에서 혼자 다니면서도 6일차까지 무사했다는 점에 감사했다. 하지만 한국으로 출발하는 날,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탔던 버스 한 정거장 사이에서 결국 소매치기를 당했다. 공항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야 여권지갑을 잃어버린 것을 알았고 다행히 맨 앞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은 그대로 있었다. 대한항공 지점장님께서 도와달라고 부탁했더니 대사관에 전화를 한 번 해보겠다고 하셨고, 대사관 직원이 퇴근했지만 대사관으로 복귀할테니 우리랑 대사관에서 만나자고 했다고 전해주셨다. 세상 간절하게 기도했다. 긴급 여권을 만들고 너무 늦지 않게 공항으로 다시 돌아와 예정된 비행기의 그 좌석에 앉았다. 눈물이 났다. 너무나 고마운 대한항공 지점장님, 대사관 직원 두 분, 고생한 내 친구. 올해 충분히 행복했고 색다른 경험도 많이 했다. 내년이 기대된다.
50대 이직
25년 1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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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은 커녕 버티느라 고생만한 분들께. 그래도 괜찮아요.
2025년이 며칠 안남았네요. 연말 이벤트에 올라오는 글들 중 어려움을 극복하고 뭔가를 이뤄낸 분들이 많으시네요. 하지만 대부분은 저처럼 그냥 버티느라 고생한 분들이 더 많으시겠죠? 계획이라도 세워야한다. 작심삼일이라도 계속하면 된다고 하고, 생각 없이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인생에는 생각이 필요하고 그걸 구체화한 것이 계획이다.란 말도 있죠. 계획 없는 사람은 막 생각없는 사람 취급 당하고. 그런데 계획대로 사는게 쉽지 않아요. 의지박약인 사람들은 더 그렇고. 계획에서 멀어질수록 나란 존재는 게으르고, 무의미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죠. 이거 자신감, 자존감에 안 좋아요. 사람에 따라서는 셀프 디모티베이션이 될거고. 게다가 올해 우리는 본격적으로 인공지능을 맞닥뜨렸죠. 이제 끊임없이 인공지능이 덜 영향을 미치는 곳으로 도망 다녀야 합니다. 당연히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를 알 수가 없으니 계획을 세울 수도 없고. 이래도 계획이 유효할까요? 사실 이미 저는 오래전부터 계획 무용론자예요. 인생은 절대 계획대로 흘러갈만큼 시시하지 않으니까요. 저는 원래 인생에 대해 누구보다 원대한 계획이 있었어요. 계획 무용론자가 된 건 20대 초반 교통사고로 먼저 올라간 친구 때문. 60대까지 세부적인 계획이 있던 놈이었는데, 수 십 페이지의 워드 문서 중 2페이지도 못해보고 갔어요. 그 친구 장례식에 다녀와 저는 인생계획.doc를 휴지통에 던져버렸고요. 그 이후 계획은 없지만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인 하루하루는 참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50년 좀 넘게 그랬는데 별 문제 없네요. 계획, 성장에게 잡혀 먹히지 마세요. 그렇다고 오대수(오늘만 대충 수습하자)로 살면 안되겠죠. 그냥 하루하루 책임지는 삶.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뭐가 맞는지는 저도 잘 몰라요. 하지만 정답은 커녕 답도 없는게 인생이고, 인생은 비를 피하는 법을 배우는게 아니라, 비를 맞으며 춤을 추는 법을 배우는 것임은 분명하죠. 아. 요즘 퇴근할때 맨날 듣는 음악이 있어요. 위의 이야기 읽고 들으시면 위로가 될 것 같아요. https://youtu.be/Fc10aw2rz_w?si=EzOtpcp9VOuDgDEC
고다르
쌍 따봉
25년 1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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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1억도 안되던 내가 5년만에 연봉 4억?
다분히 낚시성 의도가 있음을 선사과 드립니다 죄송… 저는 지난달에 미국계 한국지사에 근무하다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5년전엔 국내대기업이긴 했지만 1억은 살짝 못미쳤고요 결론부터 빠르게 얘기하자면 워라밸따윈 개나 줘버린 10년이상의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겠네요 저는 2003년 30명가량 되는 ㅈㅅ기업 신입으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 했습니다. 연봉은 1800이었고요 2천대를 전전하다 2010년에 간신히 3천넘겼습니다 이래서 첫 직장이 중요합니다 2011년 첫 대기업에 입사하면서 대폭 상향되어 4500을 찍었습니다 2020년에 8200, 2021년에는 9500이었네요. 2022년에 미국계에 입사하고 1억 후반대 찍고 이번에 미국 오면서 4억중반대가 되었습니다 평균 이직주기는 3년에서 4년 사이, 여기가 8번째 직장입니다 저는 회사가 끝나고도 일을 쉬지 않습니다. 주당 근무시간으로 따지면 80시간은 넘을 것 같고 100시간은 안될 것 같네요. 더 중요한건 이짓을 10년이 넘게 해오고 있습니다. 가진것 없고 내세울 수 없는 저는 몸으로 때우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제 직업관은 딱 하나입니다. 인생은 마라톤 사실 80시간 전체를 다 빡세게 하진 않습니다. 리멤버도 보고 저녁땐 유튜브도 보고 설렁설렁.. 대신 지키는 원칙은 있습니다. 영어 하루 한시간. 자기계발 공부 한시간. 토요일 일요일도 예외가 없습니다. 설날 추석에도 합니다. 이걸 쉬는건 여름휴가 일주일 쉴때만 빼고 358일 합니다. 아 이건 업무시간과 별개입니다 코로나 전엔 이짓을 하면서도 순간순간 현타가 많이 왔었지만 언젠간 포텐이 터질날이 있을거란 믿음으로 달려왔습니다. 이때도 1억은 못넘었죠 올해 30만불이 넘는 미국 오퍼레터 보고 눈물이 주르륵 나더군요. 그리고 그날 저녁에 또 영어 한시간 공부 한시간 빼먹지 않았습니다. 은퇴 전 목표는 80만불입니다. 아마도 빠르면 5년정도 후에 찍을 수 있을 것 같고요. 될까요? 될지도… 되고싶습니다!! 올해 목표는 역시나 영어입니다. 한국에서 영어 좀 하는것과 미국의 테크회사 본진에서 영어하는것은 또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공인영어시험을 본지가 오래됐는데 AL 찍어보려고 합니다. 지금은 IM 정도이지 않을까 생각하네요 노력하는 대한직장인들 모두 화이팅입니다! — 댓글 달아주신분들 감사합니다 그냥 판깔린김에 읏슥읏슥 한번 해보고자 쓴 글이었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분들을 보니 부끄럽네요. 저라면 차마 입에 담지못할 말들도 있지만 그또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공개된 공간에 글을 쓰는 순간 감수해야 하는 일이겠죠 영어공부 방법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제 방법은 무식하기 짝이없어 효율이 좋지 않아 권장해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어떤 분 말씀대로 10년을 하고도 겨우 이모양이죠 다만 최근에 다른분께 추천받은 방법이 있어 시행해보려 하니 두어달쯤 지나서 효과가 있으면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Icoo
억대연봉
25년 1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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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추얼 스님이랑 협업을 우리팀이 해냄!
작고 귀여운 팀이 우당탕탕 팀이 되어 연말을 달렸는데요 그래도 꾸역꾸역 올한해 브랜드를 잘 키워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협업도 촉박하게 진행하기도 했고 잘될지 어떨지 주변 우려도 많았지만 그래도 오늘 드디어 결과물이 나와서 온에어가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스님에게 비건 면도케어 브랜드르 광고하겠다는 일념으로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임가공비 아끼려고 심야까지 굿즈도 직접 포장하고 언제 다 포장해 하면서도 모두 바쁜 연말 업무 쳐내가면서 짬짬히 손포장 했는데 기한 안에 입고도 마무리했습니다 그래서 저 뿐만 아니라 우리팀 모두 해냄!으로 자랑하고자 긴 글을 남깁니다 운이 좋게도 많은 관계자 분들의 도움도 받아서 성장하는 한해였고 이런 팀이랑 함께라면 내년은 더 좋은 일만 있지 않을까요? (여기에 구체적으로 많이 구매해주세요! 하고 싶지만, 그런 자리는 아니니 그냥 이런 애들도 있구나 해주시면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제품이니 더 많은 분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화이팅!
맥시멀리스트
25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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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 참 잘 버텼구나.”
올해를 돌아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 참 잘 버텼구나.” 50대의 직장인이라는 건, 더 이상 ‘나 하나만 잘하면 되는 나이’가 아니라는 뜻이다. 일의 결과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 책임져야 하는 자리. 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좌우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더 조심스러워지는 나이이기도 하다. 올해 내가 가장 잘했다고 느낀 순간은, 사실 아주 조용한 날이었다. 팀원 한 명이 힘들어 보였다. 성과도, 표정도 예전 같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요즘 왜 이래?”라는 말부터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커피 한 잔 할까?” 그 한마디로 시작된 짧은 대화에서 그는 일보다 삶이 먼저 무너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조언하지 않았다.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그저 끝까지 들어주었다. 며칠 뒤,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팀장님, 그날 말없이 들어주셔서… 다시 버틸 힘이 생겼어요.”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잘한 건 ‘정답을 말한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서 옆에 있어준 것’이었다는 걸. 올해 나는 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중심을 지킬 수 있다는 걸 배웠고, 앞서 달리지 않아도 누군가의 길을 밝혀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젊지 않아서 가능한 배려, 빠르지 않아서 가능한 기다림, 그리고 흔들렸기에 생긴 공감. 그래서 올해의 나는 큰 성과표가 없어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래, 너 참 잘했다.” 버텨낸 하루하루, 누군가의 어른이 되어준 순간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온 나 자신에게 조용히, 하지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ITSHIN
25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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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회사만 몰라주네...
미국 법인장으로 3년 근무하다, 건설을 완료하고 국내 복귀하였습니다. 계획대비 약 1.5개월 조기 준공하고 회사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는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돌아왔는데 알아주는 이가 없습니다. 미국이라는 낮선 시장에 언어도 잘 통하지 않고 사회적 네트워크도 없는 환경에서 3년간 고생하다 돌아왔는데, 국내의 인식은 "미국에서 잘 지내다가 왔지?"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외사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현지에서 어떤 일들을 하는지 대부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인식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참 허탈합니다. 오히려 미국에 있는 금융기관과 사업파트너들이 이 사업의 중요성과 성공에 박수 갈채를 보내고 있습니다. 자원이 부족하고 시장이 작은 대한민국을 벗어나 해외로 나가는 것이 회사가 성장할수 있는 유일한 방안인데, 아직까지 큰 문제가 없으니 다들 국내에서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일부 깨어있는 사람들이 있어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아지리라 생각하지만, 현재로서는 참 답답합니다. 회사에서는 알아주지 않아도 대한민국 최초로 해외건설 사업을 조기 준공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끼고, 이 사업을 함께 수행한 동료들에게 그동안 정말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열일강호
25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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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꽤 많이 칭찬해주고 싶다.
올해를 돌아보니, 업계 특성 상 야근이 잦은 환경에서도 나는 1월부터 11월까지 퇴근 후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직 준비에 썼더라. 그럴려고 그런건 아닌데 달리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수십군데에 서류를 쓰고, 주말에는 무료 강의와 컨설팅을 찾아다니며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메우려 애썼다.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불안해하는 상태로 남아있지는 않으려고 했다. 11월에는 드디어 원하던 회사 중 하나에서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분명 의미 있는 성과였지만, 연봉 협상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많은 고민 끝에 그 선택을 내려놓았다. 아직도 아쉬움이 남지만, 그만큼 스스로의 기준을 명확히 확인한 순간이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겉으로 보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회사도, 직함도 그대로다. 하지만 분명 달라진 것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준비해본 경험, 나의 시장가치를 직접 마주해본 용기, 무엇보다 조건 앞에서 나를 함부로 타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현재 직장에 안주하기보다는, 내년의 내 몸값을 스스로 높이기 위해 지금도 새로운 부트캠프 도전을 앞두고 있다. 결과가 당장 보이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나를 성장시키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올해의 나는 화려한 결승선을 통과하지는 못했지만, 끝까지 레이스를 멈추지 않았다. 그 점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즈엉말
25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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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정말 힘든..일로 가득한..
올해를 돌아보면 잘했다는 말보다 “그래도 버텼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아침마다 출근길이 가볍지는 않았고, 일이 끝났다고 마음까지 쉬어지는 날도 많지 않았다.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에겐 매일이 작은 결심의 반복이었다. 티 내지 않았을 뿐 지친 날도 많았고,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다. 그래도 나는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으려고 했고, 사람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썼고, 하루를 대충 넘기지 않으려고 버텼다. 큰 성과를 낸 건 아니지만 출근했고, 참았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어떤 날은 집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고 “오늘도 잘 버텼다” 혼자 그렇게 말해본 적이 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 말 하나면 다시 내일을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올해의 나는 눈에 띄지 않았을지 몰라도 쉽게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한 해만큼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공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남기는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묵향S
25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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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살, 음악하다가 사회초년생 된 이야기
“우리 회사에 영어 되는 사람 있어요?” 대표님이 갑자기 벌컥 문을 열고 나오시더니 모든 직원에게 공지하듯 물어봤다.
그때 팀장님이 나를 지목해 “어… 정태님 영어 좀 하실걸요?”라고 1초 만에 대답했다. (왜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 나는 그렇게 영상 편집 직원에서 갑자기 해외영업팀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 얼마나 롤러코스터 같은 행보인가. 사실 나는 음악 생활을 18년 가까이 하다 수입이 유지되지 않아 직장을 얻게 되었다. 글로만 보면 이렇게 쉽게 “취직했다”로 귀결되지만, 정말 어려웠다. 그나마 갖고 있던 스킬인 영상 촬영·편집으로 이력서를 냈지만 60군데 중 딱 두 군데에서 연락이 왔고, 그중 한 곳인 우리 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우리 회사는 미용기기를 제조하고 판매, 마케팅까지 하는 회사이다. 이야기가 좀 샜는데, 아마 팀장님은 내가
[오랫동안 음악했음 → 팝송을 많이 들음(추측) → 영어 잘함]
이런 알고리즘으로 나를 추천한 게 아니었을까. 아무튼 나는 그렇게 전혀 해본 적 없는 업무를, 심지어 사수도 없이 시작했다. 아니, 팀 자체가 새로 개설된 것이었다. 우리 회사는 사실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을 해야 했다. 새로운 직무가 맡겨졌을 때 당황하긴 했지만 거부감은 없었다. 대표님과의 면담 때
“영어를 좋아하긴 합니다만 잘하지는…”
이라고 말하자 대표님이 말을 자르며
“그럼 그걸로 된 거예요. 해외영업 파트가 우리 회사의 핵심이 될 거예요. 한번 꾸려보실 수 있겠어요?”
라고 깜빡이 없이 들어오셨다. (뭔가 희한한 표현 같군요) 아무튼 나는 수락했고, 그날 이후 아침마다 회사에 1시간 반 정도 일찍 도착해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약 1년 동안 어쩌다 보니 그게 유지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하다. 나는 그렇게 끈기가 있지도, 대단한 능력이 있지도 않다. 그냥 ‘습관을 들여보자’ 정도였다. 그렇게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유튜브로 영어 강의를 보고, 회사에 도착해서는 ChatGPT와 함께 스몰톡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쯤 되면 많은 이들이
‘아… 이렇게 영어 실력자가 되었다는 거군?’
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여전히 나는 걸음마 수준이다. 다만 해외 전시회에서 바이어에게 우리 제품을 겨우 설명할 수준까지는 되었다. 다행히 이런 점들이 나에게는 재미로 다가왔다. 사실 해외 박람회는 굉장히 고단하다. 우리가 제조하는 미용 장비는 개인용 조그마한 기기가 아니라 피부관리 숍에서 사용하는 큰 장비라, 그걸 일일이 포장하고 개봉하고 설치하고, 부스도 정리해야 한다. 후우… 일이 많다. 아무튼 해외 출장이란 말을 들으면
“와, 여행 가는 것 같고 좋겠다”
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니었다. 그 와중에 영어로 제품 설명까지?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 어찌어찌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식 전개처럼, 정말 그렇게 되었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습관의 힘이다. 이 얼마나 클리셰한 말인가. 하지만 정말 하루에 10분, 20분, 30분 시간을 늘려가고, 뭔가 대단하게 해내겠다는 것보다는
‘이 정도면 좋아, 꾸준히 했잖아’
라는 마음만으로도 무언가는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여전히 불안하고 어설프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렇지 않을까. 그렇게 회사는 조금씩 커졌고, 지금은 어엿한 구조를 갖춘 회사가 되었다. 나에게도, 회사에게도 뜻깊은 일이다. 사회 초년생이나 다름없는 나에게 이런 기회를 준 대표님에게 감사하고, 스스로에게도 칭찬해주고 싶다. 아, 참고로 나는 40세다. 음악을 오랫동안 해왔고 결국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래서 늘 실패자라는 생각을 품고 살았다. 하지만 작은 걸음이 의미가 없지는 않더라. 1년, 2년… 이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나를 스스로 격려해주고 싶다. 마흔의 사회 초년생 이야기가 나름의 귀감이 되기를 바란다. 사진은.. 음악할때의 나, 나와 함께 1년을 버텨준 영어 필기노트, 홍콩 박람회에서 부스 세팅을 마치고. 모두 모두 행복한 연말되세요 :)
영포티정태
25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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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결산 이벤트
동아제약 이주광 너 참 잘했다. 2025년 20년 근속상 받은 주광아! 너 참 잘살았다. 앞으로 남은 20년 쉼없이 달려가자! 너 참 고맙다. 가족들 잘챙겨줘서 너무 고맙다! 100만원 상금 가즈아^^~♡♡♡
@동아제약(주)
최고에요
억대연봉
25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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