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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참 잘했다 싶었던 순간인데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운동하고 독서하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아야죠.
지전짱
25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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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 그리고 새로운 시작
올해 초, 저는 유럽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 계획은 중간에 취소되었고, 잠시 흔들렸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때 저는 멈춰서 한탄하기보다,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 방향을 전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몇 달 동안 ChatGPT와의 깊은 상호작용을 통해 사고를 정리하고, 생각의 구조를 다시 세우며 **BBIU(Biopharma Business Intelligence Unit)**라는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6월부터 지금까지, 자본도 광고도 없이 오직 분석과 글로만 꾸준히 쌓아 올렸고, 그 결과 BBIU는 유료 광고 없이 Google과 Bing 검색에서 1위에 노출되는 성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아직 화려한 성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무너진 계획 이후에도 다시 일어섰고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끝까지 달려온 한 해였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저 자신에게는 가장 뿌듯했던 2025년의 기록입니다.
날벼락
25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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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 '결혼'과 '내집마련'
현역 기자로서 25년은 내게 참 다사다난했어. 1월 16일. 30대 초반의 나이에 '담낭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네. 다행히 완전 초반에 발견했지 뭐야. 의사 왈 "이 정도면 1기도 아니고 0기~1기 사이 입니다. 일찍 발견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신이 도우신 줄 아셔야 해요." 정말 그랬다. 찾아보니 담낭암은 후반부로 갈수록 5년 생존율이 7%도 안 되는 위험한 암이었단 것. 지금은 6개월에 한 번씩 추적관찰하며 CT 찍고, 사실상 완치 판정 받았지. 9월에 결혼을 했네. 하객들이 생각보다 많이 왔지. 방명록 보니 한 230명 넘었던 것 같아. 야외 예식장이라 날씨가 걱정됐는데 일주일 내내 비오더니 결혼식 당일만 딱 화창했지 뭐야. 부모님 도움 하나 없이 우리 부부가 모은 돈으로 예식을 잘 마무리했고, 생각 이상으로 축의금도 많이 들어왔어. 이걸로 집을 계약했네. 서울 700세대 아파트. 20살에 독립하고부터 엘리베이터 있는 집에 살고 싶었어. 대학생 때 고시원 > 반지하. 취업 후 원룸 > 전세로 차근차근 올라갔지. 근데 모두 엘베가 없었네. 지금 사는 전세집도 5층 아파트에 5층이야. 천국의 계단이지. 이제 내집마련을 했네. 아 물론 마용성, 강남 같은 상급지는 아니야. 지방 태생 출신이 서울에 내집마련이라니. 이사하는 곳은 9층. 엘베가 있어. 완전 새거더라. 그러다가 10월 15일 정부의 부동산대책이 발표됐지. 완전 빡빡해졌지 뭐야. 다행히 난 정책 발표 전에 계약했어. 종전 규제 적용 받아서 LTV나 DSR은 괜찮은데 앞으로 청년 신혼부부들 많이 힘들겠더라. 막상 실수요자 돼 보니까 이게 정말 정부가 부동산 건드리면 청년, 신혼부부, 실수요자, 서민들이 불안해진다는 게 느껴지더라고. 두서 없이 일기처럼 쓰고 있네. 아참 이사는 내년 1월 16일이야. 내가 암 진단 받은 지 딱 1년 째네. 1년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누가 이런 댓글을 썼던데. '너는 나를 집어삼킨 어둠이지만, 나는 너를 뚫고 나온 새벽이다.' 2025년. 슬펐고 무서웠고 불안했고 기뻤고 행복했다. 잘 가라.
왕가남
25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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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저에게 변화가 있었고 새로운 곳에서 버틴 한해입니다
작년 여름에 들어갔던 회사에 이직해서 3월 31일자로 퇴사했고 그 다음달 말경에 지금 회사에 면접보고 일하고 있습니다. 버티면서 있습니다. 내년에도 버틸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멧돌손잡이가없네
25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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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위한 이직
내년 6월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입니다 당산에서 직장을 다니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기 위해 시화공단에 있는 곳으로 회사를 옮겼습니다. 집도 중간 부근에 구했어요 ㅎㅎ 이렇게 올라오니 결혼을 위한 준비가 일사천리더라구요 결혼을 위한 이동 이게 제일 잘 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집가고싶다앗
25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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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중에 도보배달
구직활동을 하면서 계속 취업이 되지 않았는데 그런 상태에서 배달을 도보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도보 배달이 가능한게 큰 도로에 음식점이 많이 있고 그 뒤로 주택가라 가능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미흡했지만 친절하게 고객에게 배달하고 오르막길도 오르면서 살도 빠지고 있습니다. 해오면서 체력도 좋아지고 얼굴이 밝아지고 돈도 벌면서 재취업에 대한 준비를 자연스레 하는거 같습니다. 취업준비하시는분들 포기하지 마시고 화이팅 하세요~~^^
kdaeye
25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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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한해 끝까지 버틴거
올한해 너무 힘들었는데도 포기하지않고 끝까지 버텨서 벌써한해를 마무리하네여
e wz
25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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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다니며,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올해 제가 저 자신에게 가장 잘한 일은 회사에 다니며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일이었습니다. 아침에는 늘 출근을 했고, 퇴근 후에는 다시 학생이 되었습니다. 야간 수업과 주말 세미나, 끝이 보이지 않는 논문이 일상의 일부였습니다. 회사 일만으로도 벅찬 날이 많았고, 체력과 시간이 늘 부족했습니다. “이걸 끝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미 선택한 길이었고, 중간에 내려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맡은 역할을 다하려 애썼고, 학교에서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버텼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하루하루를 쌓아 결국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올해 저는 거창한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바쁜 일상 속에서도 하나의 목표를 끝까지 지켜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선택과 시간들이 올해의 저를 가장 뿌듯하게 만들었습니다.
가족건강이요
25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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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잘 한일은
이직입니다.
고니77
25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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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앱 VIP였던 제가, 6개월 동안 도시락 싼 걸 자랑하고 싶어요!
올 한 해 제가 가장 잘한 일은 거창한 프로젝트 성공이 아니라 제 식습관과 통장을 지켜낸 일이라 부끄럽지만 자랑해 봅니다. 사실 저는 회사 점심시간마다 배달 앱을 습관처럼 켜던 사람이었습니다. 동료들과 마라탕, 햄버거, 찜닭... 매일 시켜 먹다 보니 배달비 포함해서 점심값으로만 하루에 15,000원~20,000원은 우습게 나가더라고요....ㄷㄷ 월급날 카드 명세서를 보는데 식비 항목을 보고 충격받아서 그날 바로 배달 앱을 삭제했습니다....ㅠㅠ 그리고 다음 날부터 생존형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는데요! 솔직히 바쁜 아침에 그걸 어떻게 싸냐 싶었지만... 막상 해보니 별거 없더라고요. 그냥 전날 먹다 남은 제육볶음, 냉동 볶음밥, 계란후라이, 김. 이렇게만 쌉니다. 준비 시간 10분 컷으로 하고요...ㅋㅋㅋ 주말에 닭가슴살이나 야채 볶음 같은 건 미리 왕창 만들어두고 소분해 둡니다. 이렇게 6개월을 보낸 결과... 1) 한 달에 식비만 30~40만 원 가까이 세이브됐습니다. 이 돈으로 소소하게 적금 하나 시작했습니다. 2) 자극적이고 짠 배달 음식 대신 집밥을 먹으니, 오후 업무 시간에 식곤증도 덜하고 속 더부룩한 것도 줄었고요! 3) 배달 기다리고 치우는 시간이 없어서 남는 시간에 산책하거나 낮잠 잘 여유가 생겼습니다. 처음엔 돈 아끼려고 시작했지만, 지금은 나를 대접하는 느낌이 좋아서 계속하게 되네요. 남들이 보기엔 고작 도시락 하나지만 소비의 주도권을 제가 다시 가져왔달까요 ㅎㅎ 올해 가장 잘한 일 같습니다. 오늘도 탕비실에서 도시락 까드신 동지 여러분, 모두 존경합니다! 도시락은 영 비주얼이 별로라 없습니다....ㅋㅋㅋㅋㅋ 내년에도 우리 건강하고 알뜰하게 버텨봐요! 화이팅!
밍강
은 따봉
25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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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솔직히 말하면 버틴 해였습니다
2025년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잘 해냈다기보단, 버텼다”에 가깝습니다. 올해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생각보다 긴 공백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불안했고, 아침에 눈 뜨는 게 부담스러운 날도 많았습니다. 아무것도 안 한 날도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내려놓지는 않았습니다. 이력서를 몇 번이고 고쳐봤고, 헬스장에 등록해서 며칠은 정말 열심히 가다가 또 빠지기도 했습니다. AI 공부도 시작했지만, 이해 안 되는 날에는 그냥 노트북을 덮었습니다. 그럼에도 며칠 뒤 다시 켰다는 게 올해의 저에겐 꽤 큰 일이었습니다. 남들이 보면 별거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도 불안한 상태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점만큼은 스스로 인정해 주고 싶습니다. 2025년은 아직 결과가 없는 해입니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썼고, 포기하지 않으려고 계속 다시 시작했습니다. 올해의 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딱 하나입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거면 충분히 잘했다.”
호크미사일
25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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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 아직은 안돼...
출근길 오른쪽 눈이 흐릿하게 보였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고, 창문에는 빗물이 줄줄 흘렀다. 처음에는 단순한 피로라고 생각했다. 피곤하면 눈이 침침해질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뿌연 시야는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안과를 찾았고, 의사는 조용한 목소리로 나에게 병명을 알려주었다. "큰 병원으로 가시죠." 그리고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할거라 했다. 그때 ‘아, 이제 한쪽 눈이 천천히 어두워지는구나’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른쪽 눈의 세계는 점점 희미해졌다. 처음에는 흐려지다가, 이제는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다. 처음에는 물체가 겹쳐 보이고, 빛이 번져 보이더니 이제는 그저 얕은 어둠뿐이다. 얕은 어둠을 통해서 아직 볼 수있다. 하지만 조금씩, 아주 천천히, 나는 ‘보는 것’에서 ‘보지 못하는 것’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아직 보이기에 그리울 것이 많고, 곧 보이지 않게 될 것들을 떠올리면 두려움도 밀려온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붙잡고만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지방에서 일한다. 월요일 아침이면 차를 몰고 일터로 떠난다. 목요일 저녁이 되면 다시 집으로 향한다. 이른 새벽부터 운전을 하며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로등 불빛이 반쯤 흐려져 보이고,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번져서 크게 퍼진다. 오른쪽 눈이 흐려진 후로는 야간 운전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내 앞에 펼쳐진 길을 따라가는 것만 생각하며 운전한다. 한쪽 눈으로 세상을 보며 방향을 잡고, 속도를 조절하고, 집으로 가는 길을 찾는다. 불안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여전히 핸들을 잡고 나아가야 한다. 목요일 밤, 집에 도착하면 아이들은 이미 잠들어 있고, 아내는 거실에서 날 기다린다. 피곤한 얼굴로 집에 들어서면 아내는 묻는다. "운전은 괜찮았어? 피곤하지 않아?" 나는 짧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그녀는 안다. 내가 보이지 않는 오른쪽 공간을 의식하며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을 했는지, 밤길이 점점 더 낯설고 조심스러워지고 있다는 것을.... 아내는 그런 나를 위해 눈에 좋다는 음식을 찾아 도시락을 만든다. 블루베리, 당근, 연어, 견과류가 가득 담긴 반찬들을 정성스럽게 4일치 만들어 차에 넣어준다. “눈에 좋은 음식이래. 점심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먹어.” 나는 그런 아내의 세심한 배려에 더는 불평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것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곁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깊이 느끼게 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절망을 이겨내야만 했다. 그냥 무너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백 미터도 힘들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뛰었다. 몸이 지칠 때까지, 머릿속이 하얘질 때까지.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갔다. 이제는 20킬로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다. 그렇게 올해 하프마라톤에 도전했고 완주 매달을 목에 걸었다. 누군가는 묻는다. “왜 그렇게까지 뛰어요?” 나는 대답한다. “살아야 하니까.” 나는 아직 보인다. 하지만 점점 더 보이지 않게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을 멈추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 두 세계를 함께 살아가며, 나는 끝까지 버텨낼 것이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 가족과 함께, 나는 앞으로도 계속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서, 나는 더 강해질 것이다.
이건 어이 없네
25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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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급휴직, 육아휴가 그리고 이직
다른 분들에 비해 특별히 더 어려웠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나이가 조금 들어 어렵게 아이를 얻은 시기에 공교롭게도 회사의 경영 여건이 악화되며 무급휴직을 권고받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기에, 출산 이후 1년간 육아휴직을 선택했습니다. 무급휴직 상황이 아니었다면 아마 쉽게 결심하지 못했을 선택이었을 것 같습니다. 많지는 않았지만 육아휴직 수당을 아이를 위한 비용에 보태며 지냈고, 그 시간 동안 아이와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육아휴직이 끝난 뒤에도 회사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약 3개월 동안 정말 열심히 이직을 준비한 끝에 올해가 가기 전 새로운 직장으로 옮겨 다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나고 보니 아이를 만난 것, 그리고 육아휴직 동안 아이와 함께했던 시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쉽지 않았던 한 해를 버텨내고 새로운 회사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기에, 올해 크리스마스만큼은 아이에게 마음 편히 선물을 건넬 수 있다는 점이 스스로 조금은 대견하게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흔들릴 때가 있겠지만, 계속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해보려 합니다.
Jamie
25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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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아기와 함께한 1년
22개월 아들을 둔 아빠입니다. 올해를 돌아보면 육아휴직을 하며 아기와 함께한 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작년 말, 아내의 복직을 앞두고 아기가 장염과 폐렴으로 두 번이나 입원을 했습니다. 맞벌이는 아직 무리라는 판단이 섰지만, 아직 남자 육아휴직이 낯선 회사 분위기 탓에 주변의 만류와 걱정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내 상황에서는 육아휴직이 필요하고, 보편적인 아빠의 육아휴직이 우리사회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습니다. ​그 선택 덕분에 제 2025년은 아이와의 소중한 시간들로 채워졌습니다. ​벚꽃이 흩날리던 봄, 신발만 신으면 주저앉던 아이의 손을 잡고 걸음마를 연습시켰고, 뜨거운 여름엔 챙 넓은 모자를 쓰고 푸쉬카를 밀며 동네를 산책했습니다. 가을에는 단풍길과 낙엽길을 뛰어다녔고, 겨울에는 눈을 만져보며 놀았었네요. ​제주도와 강릉 가족여행, 둘이서 본가에서의 일주일 살기까지.. 아이는 훗날 이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제 기억 속에는 평생 남을 아름다운 순간들입니다. 걷지도 못하더니 이제는 놀이터 미끄럼틀을 거침없이 오르고, 저와 함께 시소와 그네를 타며 즐거워하는 아이와 매일 편의점에 들러 1+1 비타주스를 나눠 마시던 소소한 행복도 잊지 못할것입니다. 인간은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공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직접 주양육자가 되어보니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아이가 아파 장기간 어린이집을 못 갈 때 막막함과 육아의 힘듦을 느꼈고, 끝없는 집안일을 메인으로 경험하며 아내의 마음도, 부모님의 마음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책도 많이 읽어주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덕분인지 종알종알 말도 잘하고 웃음이 많은 아이를 볼 때마다 대견하고 뿌듯합니다. 이제 곧 복직을 앞두고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올 한해를 되돌아보면 용기 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끝으로 육아휴직을 시작하며 응원해준 직장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하고, 특히 퇴근후 피곤할 텐데도 집안일과 육아에 최선을 다하는 아내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사파이어블루
25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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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아기가 태어난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작년부터 시도한 임신과정 중 쓰라린 아픔을 두 번 견뎌냈다. 자연임신이 아닌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의 두 과정을 진행하며 너무나 허탈하고 생명을 가진다는게 이렇게 어려운 과정인줄 몰랐다. 하지만 드디어 세 번째 시도만에 가지게 되었다. 나는 남편으로서 시험관 임신을 준비하는 와이프를 보며 매일매일이 힘들었다. 아침 저녁으로 주기적으로 약을 넣어야 되고 아침마다 일정한 시간에 자기 손으로 자기 배에 주사 놓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고 누가 돈준다해도 못할 짓을 아기를 갖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로 최선을 다하는 우리에게는 결국 아기를 갖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여자가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 중간에 입양도 괜찮으니 제의했지만 와이프는 그래도 우리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아기를 갖고 싶다는 의지를 존중하여 우리 둘은 정말 죽을동살동하여 노력했다. 드디어 임테기에 두 줄이 나왔고 초음파를 하러갔을 때 처음으로 심장소리를 들었다. 나의 새끼손가락보다도 작은 생명체에서 심장소리가 들리는게 너무 신기하면서 뭔가 마음이 웅장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몇 주 후 계속 초음파 관찰하며 심장 박동 수가 정상 범위에 있음을 지속 확인하고 니프티 검사를 통해서 유전적 이슈가 없고 성별은 공주님임을 확인한 순간 너무 기뻤다. 우리 둘은 딸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임신하고도 출산까지 과정이 쉽지 않았다. 3개월차 때 쯤, 갑자기 새벽 3시에 와이프가 하혈을 하면서 핏덩이들이 쏟아졌고 와이프는 울었다. 우리 둘은 유산인줄 알았고 급히 산부인과 응급실을 가서 유산은 아니고 자궁 내 양수가 새서 나온 걸 알았다. 그 날부로 와이프는 아무 미동없이 침대에 그대로 누워서 일주일을 보냈고 퇴원했다. 그리고 약 한 달 뒤, 우리 둘은 밖에서 모임을 갖고 집에 왔는데 밤에 또 하혈을 하였다. 또 응급실에 달려갔고 마찬가지 증상이 나타났다. 이번엔 10일을 입원했다. 와이프가 너무나 고생을 많이해서 안쓰러웠지만 와이프는 아기를 반드시 건강하게 출산하고야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잘 버텼다. 그리고 또 약 두 달 뒤쯤에 와이프가 낮에 무거운걸 들은 탓이었는지 또 똑같은 증상이 나타났고 또 입원했다. 다행히 임신 중기 쯤이라 3박 4일만에 끝났다. 우리는 너무나 많이 과정을 겪으면서 몸과 마음이 지쳤지만 우리 아기의 생명이 너무나 소중하고 간절함을 알기에 끝까지 노력했다. 마침내 수술일정이 정해졌고 11월 19일 오후 1시 2분에 우리 공주님이 태어났다. 와이프는 봉합 수술을 진행하였고 나는 신생아실에가서 커튼을 치고 간호사님이 나와서 안고 있는 아기를 보여주었다. 나는 정말 너무나 눈물이 많이 나왔다. 아기가 너무 작고 가여웠고 엄마 배 안에서 오랫동안 잘 버텨줘서 고마움이 느껴졌으며 여러가지 감정이 들면서 펑펑 울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와이프가 수술실을 베드에 누운채로 나왔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었다. 많이 울었냐는 질문에 본인도 아기를 보자마자 눈물이 너무 많이 쏟아졌다고 한다. 심지어 나랑 말하는 중에도 베개가 젖을 정도로 계속 눈물이 나와 감정이 잘 잡히지 않았다. 이로써 우리의 임신과 출산의 과정이 끝났다. 현재 우리는 30일된 아기를 밤새가며 잘 키우고 있다. 아기를 키워보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행복을 매일 느끼고 있다. 2025년 우리 부부 둘에게 너무 고생했고 행복한 결실을 맞이하게 돼서 너무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크리스토퍼논란
쌍 따봉
25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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