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위기라는데, 임원들의 정년은 왜 오지 않는가
종자산업은 기다림의 산업이다.
하나의 품종이 시장에 나오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는 수많은 연구인력의 노력과 생산·영업 현장의 땀이 쌓인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품종 하나가 기업의 미래를 책임지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사람을 대하는 경영의 시간은 너무나 짧다.
경영이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현장 인력의 감축이고, 조직의 효율화이며, 직원들의 희생이다.
반면 오랜 시간 경영의 중심에서 의사결정을 해왔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정년을 넘긴 고액 연봉의 임원들까지 회사의 미래를 걱정한다는 명분으로 자리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회사의 위기를 만든 의사결정에는 책임이 없고, 그 결정에 따라 묵묵히 일했던 직원들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인가?
종자업계는 생각보다 좁다.
어느 회사가 어떤 품종으로 성장했는지, 어떤 경영 판단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가 책임을 지고 누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업계에 오래 몸담은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굳이 특정 회사의 이름을 언급할 생각은 없다.
이것은 어느 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의 문제이며, 오랜 시간 조직의 권력을 독점해 온 일부 경영진에게 던지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선배 세대의 퇴장으로 성장의 기회를 얻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후배 세대의 희생을 통해 자신의 자리를 연장하려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들이 지나온 시대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 정년을 넘긴 고액 연봉 임원들에게 묻는다
회사가 어렵다고 한다.
경영환경이 악화되었고, 비용을 줄여야 하며, 조직의 생존을 위해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그 희생은 언제나 힘없는 현장 직원과 젊은 실무자들의 몫인가?
왜 정년을 훌쩍 넘긴 고액 연봉 임원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가?
회사의 미래를 위해 조직을 바꿔야 한다면서, 정작 가장 먼저 변화해야 할 사람들은 왜 변화의 대상에서 제외되는가?
나는 묻고 싶다.
당신들이 말하는 구조조정은 진정 회사를 살리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당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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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대 — 가난한 시대에 태어났지만, 성장하는 대한민국에서 자랐다
1960년대에 태어난 세대는 대한민국이 가난했던 시절을 이야기한다.
물론 그들 역시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했을 것이다. 새마을운동과 산업화의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과 전후 복구의 혼란을 직접 겪었던 앞선 세대와 그들의 경험을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그들이 성장하던 1970년대 대한민국은 이미 고도성장의 궤도에 올라서고 있었다.
절대적인 생활 수준은 지금보다 낮았지만, 국가경제는 빠르게 성장했고 사회 전체의 기회도 확대되고 있었다.
그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성장하는 나라에서 청춘을 보낸 세대였다.
이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2. 20대 — 경쟁은 있었지만, 기회의 문은 지금보다 넓었다
1980년대 대학가는 민주화운동과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으로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그 시대의 민주화운동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희생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당시의 취업환경과 오늘날 청년들이 마주하는 취업환경은 분명히 달랐다.
오늘날 청년들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학점, 어학성적, 자격증, 인턴 경험, 직무역량을 쌓으며 치열한 경쟁을 치른다.
반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대한민국은 이른바 ‘3저 호황’과 산업 확장의 시기를 경험했다.
물론 그때도 취업이 어려운 사람들은 있었고, 모두가 좋은 직장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고 기업이 확장되던 시절의 취업시장과, 저성장과 고용 불안 속에서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오늘날의 취업시장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당신들의 능력이 오늘날 청년들보다 뛰어나서 더 많은 기회를 얻었던 것인가? 아니면 시대가 당신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허락했던 것인가?
그 질문에 적어도 한 번쯤은 답해야 한다.
3. 30대 — IMF 외환위기, 누군가의 퇴장은 누군가의 기회가 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는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수많은 가장이 직장을 잃었고, 평생직장이라는 믿음이 무너졌다.
당시 구조조정의 칼날은 중간관리자와 고연차 인력에게도 가혹하게 향했다.
1960년대생들 역시 외환위기의 피해를 겪었다. 그들 모두가 안전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 상대적으로 젊은 실무자였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조직에 남아 이후의 회복기를 맞이했다.
그 과정에서 윗세대의 퇴직으로 조직의 인사구조가 바뀌었고,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새로운 승진의 기회가 열렸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끝처럼 느껴졌던 구조조정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결과적으로 새로운 기회가 된 것이다.
그런데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은 어떠한가?
그때 구조조정의 시대를 지나 살아남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구조조정을 결정하는 자리에 앉아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들이 아니라 후배 직원들에게 희생을 요구한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4. 40대 — 성장의 과실을 누리면서 변화의 부담은 후배에게 넘겼다
2000년대 대한민국은 외환위기의 충격에서 회복하며 산업구조를 재편했다.
기업들은 성장했고, 살아남은 직원들은 승진과 임금 상승의 기회를 얻었다.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도 확대되었다.
동시에 사무환경에는 거대한 변화가 찾아왔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편화되고, 대부분의 업무가 디지털화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생들이 조직에 들어오면서 업무 방식도 빠르게 달라졌다.
그런데 일부 관리자들은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변화에 적응하기보다, 그 일을 젊은 직원들에게 떠넘기는 방식을 선택했다.
보고서는 부하 직원이 작성하고, 데이터는 실무자가 분석하고, 새로운 시스템도 후배들이 익혔다.
관리자는 결과를 보고받고 평가하는 위치에 머물렀다.
물론 모든 관리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실무 역량을 유지한 선배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문제는 변화에 적응하지 않은 일부 관리자들조차 직급과 연차만으로 자신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변화는 후배들이 감당했고, 그 변화의 성과는 윗사람들의 실적으로 기록되었다.
그렇게 권한은 위로 올라갔고, 실무 부담은 아래로 내려왔다.
5. 50대 — 조직의 성과는 기득권이 되고, 권력은 사유화되었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들은 조직의 핵심 의사결정권자가 되었다.
임원이 되었고, 인사권을 가졌으며, 회사의 자원과 조직을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
그동안 축적한 자산과 인맥, 직급과 영향력은 그들에게 안정적인 지위를 제공했다.
문제는 그 지위를 어떻게 사용했느냐는 것이다.
일부는 후배를 육성하고 조직의 미래를 준비했다.
그러나 또 다른 일부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을 주변에 두고, 조직의 성과보다 내부 정치와 자신의 입지를 우선했다.
능력보다 관계가 중요해지고, 성과보다 충성심이 평가받으며, 비판하는 직원보다 순응하는 직원이 살아남는 조직이 만들어졌다.
그들에게 회사는 더 이상 함께 성장시켜야 할 조직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성벽이 되어갔다.
회사를 위해 권한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권한을 유지하기 위해 회사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6. 60대 — 이제는 물러날 때인데, 왜 희생은 여전히 남의 몫인가
그리고 이제 그들은 60대가 되었다.
일반 직원들에게 정년은 냉정하다.
아무리 성실하게 일했어도, 아무리 회사에 헌신했어도 정해진 시기가 되면 자리를 정리해야 한다.
그런데 유독 일부 고위 임원들에게는 그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정년을 넘어서도 고액 연봉을 받고, 각종 혜택과 권한을 누리며, 여전히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관여한다.
그들은 말한다.
“회사가 어려워서 내가 아직은 있어야 한다.”
“지금 내가 나가면 조직이 흔들린다.”
“후배들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정말 그런가?
수십 년 동안 조직을 이끌었다는 사람이 자신의 후임자조차 제대로 육성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자랑이 아니라 관리자로서의 실패 아닌가?
한 사람이 없으면 회사가 흔들리는 조직을 만들었다면, 그것이야말로 경영의 무능을 증명하는 것 아닌가?
회사가 어려울 때 책임을 지라고 높은 연봉과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지, 회사가 어려울수록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라고 그 자리를 준 것은 아니다.
책임은 아래로 떠넘기면서 권한과 보수는 끝까지 움켜쥐는 것. 그것을 어떻게 리더십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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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면, 가장 먼저 책임의 무게부터 따져라
나는 구조조정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 비용을 줄여야 할 때도 있고, 사업을 정리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구조조정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회사가 어렵다면 가장 먼저 경영 판단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의 성과와 보수부터 검토해야 한다.
수억 원의 연봉을 받는 임원 한 명의 자리가 과연 몇 명의 현장 직원보다 더 중요한가?
실제 제품을 만들고, 고객을 상대하고, 생산과 연구를 책임지는 직원들이 회사를 움직이는 것 아닌가?
경영 악화의 책임이 있는 사람은 자리를 지키고, 그 결정에 따랐던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야 한다면 그것은 합리적인 구조조정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의 전가이며, 권력을 이용한 희생의 불평등이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과거의 구조조정을 경험한 세대라는 사실이다.
IMF 외환위기 당시 수많은 선배가 회사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을 것이다.
그 시대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자신들이 그 자리에 서자, 과거의 교훈은 잊어버린 듯하다.
그때는 회사가 살아야 한다며 선배들의 퇴장을 받아들였으면서, 지금은 자신이 있어야 회사가 산다고 주장한다.
이 얼마나 편리한 논리인가.
8. 당신들의 시대가 영원할 수는 없다
이 글은 1960년대생 전체를 비난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나이는 죄가 아니다.
정년 이후에도 전문성과 성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사람이라면 존중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태도이며, 연차가 아니라 책임이다.
과거의 성과를 현재의 능력으로 착각하고, 오랜 근속을 영구적인 권리로 여기며, 자신이 누린 기회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지 않으려는 태도.
바로 그것이 문제다.
당신들은 대한민국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에 사회에 진출했다.
산업화의 성과를 누렸고, 경제 회복의 기회를 경험했으며, 조직의 성장과 함께 승진하고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오직 당신들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결과라고 생각하는가?
당신들이 누렸던 기회에는 시대의 성장과 앞선 세대의 희생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다음 세대에게도 기회를 넘겨줄 책임이 있다.
후배들이 부족하다고 말하기 전에 그들을 얼마나 제대로 키웠는지 돌아보라.
회사가 어렵다고 말하기 전에 자신의 보수와 권한이 그만한 가치를 하고 있는지 증명하라.
회사를 걱정한다고 말하기 전에 회사의 미래를 위해 자신이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 생각하라.
회사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과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다르다.
그 둘을 교묘하게 섞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행위를 더 이상 헌신이라고 포장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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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묻는다
당신들은 이미 많은 기회를 누렸다.
물론 노력했고, 고생했고, 성취도 이루었을 것이다.
그 사실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과거의 노력과 성취가 오늘날의 모든 특권을 영구적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한때 조직의 미래였던 당신들이 이제는 조직의 미래를 가로막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회사가 어렵다면 책임 있는 자리부터 책임을 져야 한다.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면 가장 많은 권한을 누린 사람이 가장 먼저 자신의 역할을 돌아봐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의 공정이고, 리더가 보여야 할 마지막 품격이다.
30년 전에는 선배들의 퇴장으로 기회를 얻었으면서, 30년이 지난 지금은 후배들의 퇴장을 통해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하는가.
언제까지 회사의 위기를 명분으로 자신의 기득권을 연장할 것인가.
언제까지 후배들의 미래를 담보로 당신들의 현재를 유지할 것인가.
그리고 언제까지 그것을 회사에 대한 충성이라고 포장할 것인가.
자리를 지키는 것이 능력은 아니다.
물러날 때를 아는 것 또한 리더의 자격이다.
이제는 당신들이 답할 차례다.
당신들이 지키려는 것은 회사인가, 아니면 당신들의 자리인가.
특정 기업을 비판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종자산업에 몸담은 분들과 경영진의 책임, 세대교체, 조직의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