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문학 - 김 병장의 마지노선]
여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싫어하는 이유를 대강 안다. ‘공감할 수 없어서’도 큰 이유겠지만 대부분 비슷한 결론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후임들 잘 챙겼고, 라떼는 그렇게까지 개판이진 않았다고.
이건 군대 얘기가 아니다. 사람이 어떤 틀 안에 들어가면 어디까지 버티고 어디서 바뀌는지를 지켜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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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시절의 나는 얌전한 쪽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앞에 나가 부딪히는 성향도 아니었다.
대신 빨리 봤다. 이곳이 무엇으로 유지되는지, 어디까지는 건드려도 괜찮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남들이 시키는 일을 그대로 따라갈 때 나는 그 안에서 최대한 덜 얽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래서 눈치 빠르다, 일 머리 있다는 말은 좀 들었다. 실제로는 단순했다. 덜 휘둘리고 싶었다.
군대에는 짬이라는 게 있다. 이등병, 일병 때는 각이 전부고, 상병쯤 되면 짝다리를 짚어볼 수 있고, 상꺾쯤 되면 눈치 보며 주머니에 손을 넣어볼 수 있다. (그리고 병장을 찍으면 신이 된다.)
따로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상병 5호봉, 흔히 말하는 상꺾이었다. 통상적으로 이때쯤 부대에서 실세가 된다. 모든 일은 내 선에서 정리됐고 대부분 말 한마디면 움직였다.
그 흐름에서 벗어난 사람이 하나 있었다.
두 달 선임 송 병장이었다.
(그는 특급전사라 1개월 조기진급했다.)
평소 송 병장은 조용했다. 쓸데없는 말이 없었고, 괜히 건드리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맡은 일은 빠르고 정확하게 끝냈다. 한 번 맡기면 다시 확인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위에서 좋아할 수밖에 없는 유형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건 그 정도였다.
분대장을 달고 나서 다른 모습이 나왔다.
187cm, 덩치로 눌러버리는 체형. 표정 변화는 거의 없고 눈을 마주치는 순간 숨이 막히는 느낌이 있었다. 목소리를 높일 필요도 없었다. 눈을 한 번 부라리면 누구도 거역할 수 없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기준에는 예외가 없었다.
모포 각이 틀어지면 다시 펴게 했고, 관물대 정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끝까지 잡았다. 선을 넘는 행동이 나오면 바로 정리됐다. 노골적인 구타와 폭력은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생활관은 빠르게 정리됐다. 말이 길지 않았고, 지시도 단순했다. 대신 기준은 분명했다. 어디까지가 허용되고, 어디서부터 끊기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불만은 쌓였다. 표정으로 드러났다.
그렇다고 거슬러 올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 상태가 유지됐다.
공포정치의 화신이 있다면 그 양반이었을거다.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틀렸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납득되는 기준은 아니었지만, 결과는 분명했다. 정리는 깔끔해졌고 사람들은 빠릿해졌다.
그래서 더 불편했다. 그 사람 앞에서는 내 영향력이 먹히지 않았다. 그걸 확인해본 적이 있다.
정비 시간이었다. 모포 각 때문에 모두가 다시 뒤집힌 날이었다. 이미 한 번 정리한 걸 다시 펴접고 있었다. 상황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고 결국 나는 반골이 되었다.
“모포 각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순간 공기가 멈췄다. 다 듣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한 마디를 더 붙였다.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단걸 확신했기에.
“이런 말 하기 좀 그런데 저 상꺾입니다, 송 병장님.”
어찌보면 질문이 아니라 영토 확장.
그어진 선을 좀 더 바깥으로 밀기 위한 시도.
그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천천히 다가왔다. 모포를 한 번 보고, 다시 나를 봤다.
“실세가 더 잘해야지. 두 번 말 안한다.“
짧게 끝났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놀라울 정도의 정치력이었다. 실세라는 말로 나의 체면을 세워주고, 부정할 수 없는 지휘자의 절대력을 넌지시 전달한다.
그 다음은 말이 필요 없었다. 모포를 다시 폈고 처음부터 접었다. 각 맞추고, 선 맞추고, 끝까지 확인했다.
주변은 조용했다.
그날 이후로 그 사람에게 같은 말을 꺼낸 적은 없다. 기분이 상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정리됐다. 이게 안 통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부터 기준이 다시 나뉘었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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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나도 병장이 되었다.
기준은 그에게서 내 손으로 넘어왔다.
처음에는 꽤 많이 바꿨다. 암기식 점검을 없애고 불필요한 절차를 줄였으며, TV는 막내들에게 먼저 넘겼다. 내가 겪었던 시절과 비교하면 분명 나아진 상태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새로 들어온 후임들에게 그 환경은 당연한 것이었다. 누군가 바꿔놓은 결과라는 인식은 없었고, 처음부터 그런 곳이었다. 하나를 풀어주면 둘을 요구했고, 둘이 되면 셋이 필요해졌다. 멈추는 지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걸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건 한 후임이었다.
군대에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지켜지는 규칙이 있다. 불침번 교대가 그 중 하나였다. 10분 전에 일어나고, 5분 전에 나가서 교대한다.
그 친구는 그 규칙을 조금씩 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5분 전이 아니라 4분 전이었다. 애매해서 넘어갔다. 다음에는 3분 전이 됐다. 그 다음에는 정시가 됐다.
그 변화는 눈에 띄지 않게 진행됐지만, 결과는 분명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교대 시간이 되어야 움직이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그 친구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걸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누가 먼저 나가는지, 어디까지 늦어도 괜찮은지. 그 기준이 같이 밀리고 있었다.
그때 보였다. 이건 게으름이 아니었다.
주어진 규칙 안에서 어디까지 어겨도 괜찮은지 계속 시험하고 있었다. 그걸 그대로 두면 규칙이 의미를 잃는다.
그 시점부터 내가 슬슬 바뀌었다. 처음에는 “다음부터는 시간 맞춰라”, “지금 나와야 너도 배려받을 수 있어”정도였는데 점점 거칠어졌다.
“1분 내로 전투복 환복해라. 두 번 말 안 한다.”
예전에 내가 싫어하던 말투였다.
그런데 그 말이 아니면 유지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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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 날 아침, 전 병력이 도열해 있었다. 간격, 각도, 시선까지 전부 맞춰진 상태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미 그렇게 서 있었다. 설명 없이도 공유되는 기준이 있었고, 그 기준 안에서 사람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알았다.
이건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내가 끝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계승되는 것이다.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너희가 더 잘 바꿔라.”
그 말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어디까지를 두고 갈 것인지, 무엇을 넘기고 무엇을 끊을 것인지.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우리의 마지노선은 여기까지다.”
그걸로 끝이었다. 더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다들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 선 하나면 충분했다.
마지막 경례를 받고 나오면서 느꼈다. 내가 붙잡고 있던 것도, 밀어내려 했던 것도 결국 같은 흐름 안에 있었다.
그걸 끊는 방법은 없다. 선을 긋고 나오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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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삼 개월 뒤.
선임들과 함께 부대를 다시 찾았다.
(물론 송 병장도 함께.)
치킨이랑 피자를 들고.
헤벌쭉해질 녀석들의 표정을 기대하며.
생활관 문을 열자마자 느껴졌다.
이미 돌아가 있었다.
정리 방식, 분위기, 말투.
형태는 그대로였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놈이 하나 보였다.
내 아들 군번(입대 1년 차이, 그때쯤 상병이었을거다)후임이었다.
공사판에서 굴러먹은 티가 났고, 학교에서 평범하게 공부했을리 없다는 건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싹싹했고, 일은 잘했다. 그래서 위에서 이쁨받던 애였다.
그놈이 기준을 잡고 있었다.
말투는 거칠었고 선을 넘으면 바로 정리했다.
잠깐 보고 있다가 웃음이 나왔다.
(특히 송 병장을 보면서 웃었던 것 같다.)
남겨진 것들이 있었다. 그 전에 누가 남기고 간 것들, 내가 만들고 나온 것들, 뒤에 누군가가 만드는 것들.
형태만 조금씩 바뀔 뿐 흐름은 이어진다.
이 굴레는 반복된다. 어디서 본 장면이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선 하나 긋고 나왔다.
그게 뭔가를 바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