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친절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오래 보니 좀 이상합니다.
처음에는 특이해도 그냥 친절한 사람인 줄 알았다
회사에 처음 보면 꽤 친절한 사람이 있다.
작은 것도 잘 기억하고, 먼저 연락하고, 이것저것 챙겨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조금 이상한 패턴이 보이기 시작한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친절한 게 아니다.
어느 순간 특정한 사람이 정해지면 관심의 밀도가 확 달라진다.
그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누구와 친한지, 어디를 갔는지, 누구와 갔는지, 요즘 뭘 하는지까지 굉장히 궁금해한다.
직접 같이 간 것도 아닌데 업무상 확인할 수 있는 결제정보를 보고 그 사람이 어디를 다녀왔는지 추정하는 경우도 있다.
취향을 알아내는 방식도 독특하다.
몇 사람이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다가
“이거 좋아한다.”
“거기 한번 가보고 싶다.”
라고 지나가듯 이야기한다.
본인에게 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런데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내용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중에 그 물건을 사오거나,
“거기 같이 가자”
고 따로 접근한다.
친해져서 상대의 취향을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상대의 취향을 먼저 알아내고 그 정보를 친해질 소재로 사용하는 식이다.
관심은 회사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상대가 회사 밖에서 별도로 하고 있는 일이 있으면 그쪽 인간관계에도 관심을 갖는다.
관련된 외부 사람을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이후 당사자에게 연락해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가면 되는지를 묻기도 한다.
업무시간이 지난 저녁에도 연락한다.
하나씩 떼놓으면 모두 별일 아닌 것처럼 설명할 수 있다.
선물은 친절일 수 있고,
전화는 업무 때문일 수 있고,
외부 사람을 만나는 데도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 행동들이 특정한 한 사람을 중심으로 반복적으로 겹친다는 것이다.
- 동선을 파악한다.
- 주변 대화를 통해 취향을 알아낸다.
- 그 취향에 맞춰 선물을 한다.
- 같이 갈 장소를 제안한다.
- 회사 밖 인간관계에도 접근한다.
- 계속 연락하며 접점을 만든다.
- 그러면서 상대에게 자신을 맞추기 시작한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상대의 취향을 따라가고,
상대의 생각에 동조하고,
공통점을 계속 만들어낸다.
보통 관계는
친해진다 → 서로 이야기한다 → 그래서 상대를 알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순서가 반대처럼 보인다.
상대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다
→ 그 정보에 자신을 맞춘다
→ 공통점을 만든다
→ 친밀감을 높이려 한다.
처음에는 이성적인 호감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대상이 특정 성별이나 연령대에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동성에게도, 기혼자에게도, 세대 차이가 상당한 후배에게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난다.
그래서 연애감정보다는 특정한 사람을 정하면 그 사람에게 과도하게 집중하는 관계방식에 더 가까워 보인다.
상대가 기대만큼 가까워지지 않거나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 그냥 물러나는 게 아니라 미묘하게 차가워지거나 예민하게 반응하고, 때로는 수동적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행동이 나타난다.
그러다가 새로운 사람이 눈에 들어오면 관심이 옮겨간다.
특정인에게 집중
→ 정보 파악
→ 미러링
→ 과도한 친절과 접촉
→ 빠른 친밀감 기대
→ 상대의 거리두기
→ 냉각 또는 수동적 공격
→ 새로운 대상.
그런데 주변에서는 오히려 이 사람을 이해시키려는 경우가 생긴다.
“원래 외로운 사람이잖아.”
“사람 관계가 좀 서툴러서 그래.”
“예민한 사람이니까 이해해줘.”
“좀 애 같은 면이 있잖아.”
그러다 보면 묘한 구조가 만들어진다.
상대방의 경계를 넘은 행동은 ‘외로워서 그런 것’으로 설명되고,
그 행동 때문에 불편해진 사람은 오히려 ‘조금 이해해줘야 하는 사람’이 된다.
당사자 역시 관계가 틀어지면 자신이 상처받거나 소외된 사람처럼 보이는 위치에 서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행동 자체보다 그 사람이 얼마나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지가 먼저 이야기되기도 한다.
겉으로 자신감과 우월감을 크게 과시하기보다는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처럼 보이면서, 타인의 인정과 관계에 상당히 의존하고, 거절이나 거리두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 등이다.
이 사람에게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자기 기준보다 특정 상대와의 관계에 자신을 맞추는 행동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은 업무에서도 묘하게 반복된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어디를 가는지, 어떤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지 파악하는 데 상당한 에너지를 쓴다.
-본인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큰 프로젝트가 나오면 특히 적극적이다.
-사람을 만나고 연락하면서 어떻게든 그 일을 확보하려 한다.
-그런데 일을 확보한 이후에는 처음 요구된 수준에서 내용이 실질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결과물의 완성도 때문에 윗선에서 강한 문제제기가 나오거나, 함께하던 사람들이 진행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이탈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 일이 있어도 다음에는 일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보다 다시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확보하는 데 적극적인 모습이 반복된다.
업무영역에서도 비슷하다.
다른 사람들이 충돌을 피하기 위해 아예 겹치지 않는 새로운 분야를 찾아 자기 영역을 만들어놓는다.
그런데 그 분야가 주목받거나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기면 다시 그쪽에 관심을 갖고 들어온다.
관련 사람에게 연락하고 자신도 그 일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겹치기 싫어서 다른 곳에 자기 영역을 만들어도 결국 다시 겹치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
사람 관계와 업무가 전혀 다른 문제처럼 보이지만 묘한 공통점이 있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경계를 자신의 경계와 분리해서 인식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사람이 거리를 두면 다른 접점을 만들고,
-다른 사람이 업무적으로 거리를 두기 위해 새로운 영역을 만들면 그 영역에도 다시 관심을 갖는다.
-결국 핵심은 친절이나 외로움보다는 경계와 자기 기준의 문제처럼 보인다.
-자신과 타인의 영역,
-친절과 과도한 개입,
-업무적 관심과 사적 관심,
-친밀감과 집착의 경계가 계속 흐려진다.
그리고 자기 안에서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보다 특정 사람과의 관계나 외부의 인정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모습이 반복된다.
그래서 이런 유형을 보다 보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그렇게 타인의 취향을 따라가고,
-타인의 동선을 파악하고,
-타인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고,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업무영역까지 따라 들어간다면,
그 모든 타인을 걷어냈을 때
과연 자기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친절한 사람은 상대를 알아갈수록 그 사람의 경계를 이해한다.
반면 어떤 사람은 상대를 알아갈수록
그 경계를 존중하는 게 아니라
그 경계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더 많이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