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이기심
저는 제 와이프에게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끝 없는 욕심쟁이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아침에 와이프가 챙겨준 영양제 한움큼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신혼 때는 와이프가 해줬던 아침밥 먹고 출근했었는데 금새 돼지 되어서 한 4년 아침밥 먹다가 말았네요. 하지만 와이프는 예쁘게 썰어놓은 과일, 아보카도, 계란을 줍니다. 이런 것들도 와이프가 만든 그릇에 담겨 있습니다. 와이프는 모든게 이뻐야 직성이 풀려서요.
아침에 식탁에 뭘 먹고 있으면 와이프가 정말 마음에 안든다며 머리를 만져줍니다. 진짜 애를 셋을 키우는거 같아. 하면서
와이프는 일반 반찬을 내놓아도 그릇에 예쁘게 데코레이션을 해야 직성이 풀리고, 주말에 남편이 캔맥주 하나 먹어도 뭘 이쁘게 내놓아야 스트레스를 안받습니다.
주말에 먹는 반찬에 계란 지단을 가늘게 곱게 썰어서 올려 놓는데, 애들은 그게 만들기 얼마나 어려운줄 모르니 몽땅 남깁니다. 그럼
야 이거 만들기 얼마나 어려운줄 알아? 다들 싹 다 먹어
한번은 대추야자에 견과류 끼워 넣어서 디저트도 만들었는데, 아마 신라호텔에도 이런건 없을 겁니다.
저는 결혼 생활하면서 주방에 발디뎌 본게 손을 꼽습니다. 설거지도 안합니다. 사실 전 와이프에게 손에 물대게 하지 않겠다느니 이런 소리를 한 적도 없습니다 ㅎ
우리 와이프는 이렇게 요리를 하지만, 요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 미대 나왔습니다. 시각디자인 전공이라고 그랬습니다.
우리 애들은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보다 예쁘고요, 그림도 잘그리고, 요리도 잘해요, 라고 합니다.
저의 와이프도 처가집에서 귀한 딸이었으니 결혼 전에는 거의 이런걸 해 본적이 없었을 겁니다. 그냥 저한테 시집 와서 하는 것뿐이죠.
결혼 전 연애할 때 생각해 보면 26살 아가씨고, 모태신앙에 보수적인 여자였기에 남자들 접근이 매우 어려운 사람이라고 그랬습니다. 처남이 저를 처음 보고, 누나가 연애한다고 얘기들었을 때에 매형 보기 전까지 매형이 정말 대단한 사람인지 알았어요, 라고 그랬죠.
생각해보면 와이프와 연애하던 순간은 하루 하루가 행운의 연속이었던 것 같습니다.
와이프와 처음 뮤지컬 미스사이공 보러 갔을 때, 그냥 비싸고 여자들 좋아할거 같아서 보자고 했는데, 이 남자는 이런 것도 좋아하네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뮤지컬 보다가 자서 더 놀랐다고 합니다. 아마 저는 손을 한번 잡아 볼까 이거 오바인가 생각하다가 졸았을 겁니다.
연애 시절 금요일은 항상 회사 근처에서 봤는데, 와이프와 같이 걷다가 소나기 내려서 제가 정장 셔츠로 와이프 머리 덮어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나 스스로도 나 이거 너무 잘한거 같아 하고 자뻑에 찼었습니다. 저에게는 술먹다가 어디 술집에 놓고 올수도 있는 정장 윗도리쯤은 사실 별거 아니었으니까요.
와이프 26살에 한창 예쁠 때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면사포 씌우려고 전 그 해에 바로 결혼을 했는데,
믾은 사람들은 오래 지켜봐야 한다, 따져봐야 한다, 이것 저것 단점을 더 찾아봐야 한다 합니다.
맞습니다. 우리 와이프는 더 따져보고 더 지켜 봤어야 했습니다. 아마 이런 놈인지 모르고 결혼 했을 겁니다.
우리 와이프는 세상 겁이 많고, 소심한 사람인데, 자기가 용감한 사람인줄로 압니다. 겁이 많아서 천둥이 치면 소리도 못내고 움츠러 들고, 공포 영화도 못보고, 제가 운전할 때에 조수석에서 옆차가 가까이만 와도 비명을 지릅니다. 그런데 우리 와이프는 난 오빠랑 살기로 했어, 얼마나 용감한 사람인데, 라고 합니다. 그래 니 말이 맞다.
프로포즈 할 때도 사기를 쳤는데,
나름 폼 낸다고 그냥 시를 읽었습니다.
괴테의 “그대 곁에서”라는 시입니다. 저는 제가 그 시 썼다고 한 적은 없었습니다.
와이프가 프로포즈 때 감동해서 울었는데, 나중에 그 시가 제가 쓴게 아니라 괴테 시란 얘기를 듣고 이거 다 사기야 물어내, 오빠가 잔짜로 쓴 줄 알았어, 완전히 사기 결혼이야 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덧붙여 줬죠. 그거 A4지로 예쁘게 출력한거다. 와… 손으로 쓰지도 않았다고?
미안하다… 내가 사기를 그것만 쳤겠냐 암튼.
내가 많은 것을 사기쳤어도 단 하나 맹세하고 지킬 것은
내가 살아 있는 한 너를 책임진다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너에 대한 책임은 너를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부부싸움을 하고, 아무리 미운 짓을 골라 하고, 아무리 슬퍼도,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너를 잡고 있는 손, 절대 놓지 않을거야.
네가 힘들어서 허우적거리며 놓치더라도,
나는 너를 놓치지 않을거야
네가 선녀 같고 천사 같아 하늘로 올라갈지
아니면 그 아래 천길만길 낭떠러지가 있을지 몰라도
내가 살아 있는 한 나는 너를 놓지 않을거야.
그리고 난 내가 죽는 날 가장 이기적일거야.
난 너보다 10년 정도는 빨리 죽을거라… 그게 한국인 평균 수명에도 맞지.
난 와이프와 애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서 죽어야지. 근데 와이프가 떠날 때에는 나는 없을테니까. 아마 나는 끝까지 이기적일거야.
내가 먼저 떠나더라도 와이프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와야지. 10년 초과해서 더더욱 늦게 오면 더 좋구
애들과 손주들과 아니면 증손주들과 할아버지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하고, 나를 추억해야지.
내가 좋은 사람으로 살았을 수록, 나와 추억이 더 좋았을 수록,
나와 오래 오래 살면서 서울 곳곳, 전국 곳곳, 아니 세계 곳곳에 나와 추억이 깃들일 수록
어딜 가든 나를 떠올릴 수 밖에 없을테고, 난 그러길 더 바랄테고, 암튼 이기적이어서 미안하다.
우리 장모님은 나이 드실수록, 사랑을 많이 해주신 장인 어른이 떠나면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도무지 혼자 살 자신이 없다고 얘기 하십니다.
다행인게, 난 그 정도로 잘한건 없어서 캬아
그러나 난 이기적이니까
더더욱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고,
나를 생각하면 웃음과 눈물이 함께 날 수 있게,
더욱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