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나요? 장인어른께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살면서 젓가락질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나요? 마인드로, 집을 수 있기만 하면 됐지! 하고 평생을 살아왔거든요. 중요한 건 속도와 양이지, 모양새가 아니잖아요?
문제는 상견례 날 터졌습니다.
분위기 좋게 시작했습니다. 제 예비 아내(현 와이프)가 사전 작업을 어찌나 잘해 놨는지, 장인어른 장모님 표정이 세상 인자하셨죠. 그런데 음식이 나오고, 제가 밥을 먹으려고 젓가락을 집는 순간. 기류가 달라졌습니다. 장인어른의 표정이 갑자기 묘해지더군요. 뭔가 잘못된 건 맞는데 뭔지는 모르겠는 그 쎄한 느낌! 그래도 배는 고프니 일단 먹는데, 장인어른의 눈길이 자꾸 제 손에 와닿는 겁니다.
아... 그제야 깨달았죠. 젓가락질! 제가 젓가락을 X자로 꼬아서 주먹으로 쥐는, 그야말로 기인열전 같은 방식으로 쥐거든요. 저처럼 쥐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사실 오히려 속으로 뿌듯해 했기도 했던 나의 젓가락질. 하지만 장인어른의 그 표정 앞에서는 저도 주눅이 들더군요.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어떡하겠습니까. 저는 위기를 모면하려고 잔뜩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제가 젓가락질은 이래도 굶어 죽진 않는답니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나요? 잇히! 라는 노래도 있지 않습니까! 핫하!"
와이프는 테이블 밑에서 제 허벅지를 꼬집고, 장인어른 표정은 딱히 풀리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이미 점수를 상당수 잃었다는 것을 직감했죠.
그날 이후, 점수를 만회하기 위해 온갖 아양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장인어른께서 낚시를 좋아하신다는 말에, 제가 사실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장인어른과 함께라면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하고 낚시를 배우고 싶다고 졸랐죠. 제 진심(이라기보다는 만회하려는 처절함)에 장인어른께서 못 이기는 척 노여움을 푸셨고, 결혼 후 장인어른과 낚시를 몇 번 다녔는데... 저도 그만 낚시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ㅋㅋㅋ
어느 날 낚시가 끝난 뒤였습니다. 잡은 생선을 들고 가서 장인어른 잘 아시는 식당에서 회를 떠서 먹고 있었는데, 제가 또 무심코 젓가락을 제맘대로 호탕하게 쥐었나 봅니다. 장인어른께서 갑자기 제 뒷통수를 퍽! 하고 때리시는 겁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아이고, 때려서 미안하다 하시더니, 신성한 회 앞에서 젓가락질을 그따위로 하는 게 말이 되냐며 또 버럭하셨죠.
다음번에 뵈었을 때였습니다. 장인어른께서 저에게 뽀로로 젓가락을 주시더군요. 젓가락질 교정기 있잖아요 그거.
허허 웃으면서 주시더니 이걸로 연습해서 다음번에 적어도 내 앞에서는 그딴식으로 젓가락 잡지 마라. 알겠냐! 하고 또 버럭하셨습니다. 제앞에서만 분노조절을 못하시는 우리 장인어른...
뽀로로 젓가락을 받아든 저의 광대가 잔뜩 승천했습니다. 확신했거든요. 장인어른께서 드디어 저에게 진심으로 빠지셨다는 것을! 낚시 동료이자 사위를 넘어, 아들처럼 저를 대하신다는 것을요. 뒷통수도 아무나 때리는 거 아니잖아요? 때려놓고 미안하다고 젓가락을 선물하신 장인어른. 뽀로로 젓가락과 함께 한 피나는 노력 덕분에 저도 이제 보통 사람처럼 젓가락질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장인어른 앞에서 맘 편히 젓가락질을 합니다. 눈치도 보지 않아요. 저는 젓가락질도 잘 하는 최애 사위니까요!
물론 사위는 저 하나뿐인 게 함정.
지난 일이지만 웹서핑하다가 아래 이미지를 보고 생각나서 적어봤습니다 ㅋㅋ
(젓가락질 이미지도 같이 첨부합니다. 제 젓가락질은 4번이었다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