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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도 월세를 못 냈어요ㅜㅜ
그래서 거미줄을 쏘는구나 ㅠㅠ
본투비한량
쌍 따봉
25년 08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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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가 장례식장 가는 것 어떻게 생각하세요?
먼저 상황을 말씀드리면, 저는 임신 10주차입니다. 금일 저의 친언니의 시모가 돌아가셨습니다 ㅠ 저희가족은 서울에 거주하고 장례식장은 대구 입니다. 저의 남편은 첫째(유치원생)와 저는 가지 않고 집에서 애도를 하면 좋겠다는 아주 완강한 입장이고.. 부모님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친언니네 가족이 상을 당한거니 임신해서 우려되는 것보다는 가족일이 먼저아니냐 하시며 안가려고 하는 저희가 이해안가고 오히려 언짢아하시면서 그냥 너네가족다 오지말어라 라고 하신 상황입니다. 저는.. 어떻게 할지 계속 고민입니다.. 미신이라 믿지 않고 싶지만 찝찝하고 또 친언니네 일이라 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남편과 부모님의 생각이 너무 달라 제가 결정해야할 것 같은데 여기 계신 분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다수의 의견에 따른다기 보다 뭔가 제 마음이 움직이는 말씀을 해주시는 분이 있다면 그 말을 참고하게 되지 않을 까 싶습니다.. ——————————————————— 많은분의 고견 너무 감사합니다. 금일 오전에 남편 혼자 출발했습니다. 의견이 편향될까 쓰지 않은 내용이 있었는데,, 입덧도 있고 유산경험도 있어서 초기에는 최대한 몸을 사려야했는데,, 하나밖에 없는 언니네 가족일이고, 이런일은 처음이었어서 고민이 참 많이 되었습니다. 언니네 형부 집안에 결혼하신 분이 아무도 없었어서 이해해즐까(언니도 아이가 없어요) 부터 많은 생각을 했네요 ㅠㅠ 그래도 다들 주신 의견에 따라 제가 제몸 생각하고 남편과 부모님이 가서 도리를 다하고 오신다면 이해해주지 않을까 싶네요!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내어 읽어주시고 댓글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
우리는워킹맘
25년 08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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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이야기 하나 보시겠어요?
1. 엄마의 증조할머니는 신내림 받은 무당이셨다고 한다. 대대로 이어진 신은 아니었기에 그리 영험하진 않았고 그덕인지 보통 신력이 딸에게 내려간다던 속설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자손들은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덕에 소소한 이야깃거리들이 만들어지곤 했다. 엄마는 그 중에서도 가장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이었다. 귀신이 수시로 보이거나 신이 깃들진 않았지만 죽음의 냄새를 잘 맡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시작은 엄마의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였다. 성격이 모질기로 유명했던 할머니는 그 성격탓인지 병치레도 길게 했다. 그러던 어느날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노인의 몸을 닦아주려 세숫대아에 물을 받아 방으로 향하던 엄마는 낡은 문 앞에 선 기이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깡마른 몸을 하고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사람의 형체를 한 그것은 온 몸이 짙은 회색빛이었다. 알몸으로 할머니의 방문 앞에 서서 비적비적 움직이더니 이내 문을 향해 큰 절을 했다. 그리고 엄마가 세숫대아를 떨어트린 것이 먼저인지 방 안에서 곡소리가 난 것이 먼저인지... 그리 오래 앓아 누웠던 엄마의 할머니는 그것의 절을 받고 그대로 숨이 넘어가셨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머지않아 또 찾아왔다. 할머니의 성격을 이어받은 엄마의 아버지, 나의 외할아버지는 성격이 별나기로 유명하셨다. 외할아버지는 당시 암에 걸려 오랜 기간 병치레를 하고 계셨다. 그리 성격이 유별나시면서도 둘째딸인 엄마는 귀애했던 외할아버지였기에 나를 낳은지 얼마 안된 몸으로 엄마는 옆에서 오래 병수발을 하셨다. 죽을 쑤어 외할아버지의 방으로 향하던 엄마는 또 그것과 마주쳤다. 엄마는 죽그릇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그것은 천천히 뒤를 돌았다. 몸에 비해 큰 머리에 새까만 눈동자. 그것은 엄마를 보고도 아무런 동요없이 천천히 큰절을 하기 시작했다. 절을 하지 못하게 말려야 하는데 엄마는 발도, 입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외할아버지의 머리가 뉘인 방향으로 절을 했고 그와 동시에 방에서는 외삼촌의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고 한다. 엄마는 지금도 이야기한다. 그것이 아마 저승사자가 아니었을까 한다고. 혹은 오랜 병치레를 견디지 못한 자식들이 만들어낸 괴물일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그 뒤 엄마는 한 번도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이 엄마는 외할아버지의 죽음에 죄책감을 가졌다. 그 2년을 못버텨 내심 '어서 가셨으면'하는 마음이 그것을 불러낸 것만 같다고. 2. 엄마는 꿈을 꾸면 불안해했다. 잠귀가 예민해 수면제가 없이는 3시간 이상 푹 자지 못했던 엄마는 이따금 깊은 잠에 빠질 때면 무서운 꿈을 꾸곤 했다. 엄마가 약없이 푹 자는 다음날은 외출을 막는 엄마와 실갱이를 벌여야 했다. 하루는 엄마가 아침에 일어나 계속 불안해했다. 그러나 나나 아빠를 붙잡지는 않았기에 우린 아무렇지도 않게 외출을 했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흰 봉투 두 개를 들고 안절부절못하는 엄마를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아빠의 말에 엄마는 "**이 신랑이 갔어. 그런데 제 아버지 죽었단 소리에 급히 오던 딸도 교통사고가 나서 가버렸어. 부주를 두 개 해야할 것같아서."라고 하곤 아빠와 급히 장례식장으로 향하셨다. 엄마는 다음날 나를 붙잡고 한숨처럼 이야기를 토하셨다. 꿈에서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가 주저 앉아서 울고 있더란다. 바닥을 치고 가슴을 치며 울기에 엄마는 왜그러냐고 달래주려 다가갔는데 친구 앞에 두 개의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무덤 두 개 사이에서 가슴을 쥐어 뜯으며 우는 친구를 본 엄마는 그대로 꿈에서 깼고 친구에게 바로 전화할까 싶었지만 괜한소리를 해서 기분을 상하게 할까 참았다고 한다. 친구분의 남편은 오랜시간 투병중이었고 그리 위중치 않은 병이었기에 개꿈이라고 생각하기로 하셨단다. 그러나 곧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고 갑자기 전날 밤 상태가 나빠져 남편이 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위로를 건내고 신랑이 오는 대로 함께 가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않아 친구에게 또 전화가 왔고 엄마는 덜컥 심장이 내려 앉는 것같았다고 한다. 그리고 전화를 받음과 동시에 짐승처럼 울부짖는 친구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딸이 친구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오다가 사고가 나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같이 타고 있던 친구들은 가벼운 찰과상에 그쳤는데 딸만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하루사이에 남편과 딸을 잃은 엄마의 친구는 울음도 메말라버렸고 엄마는 그렇게 한동안 친구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 뒤 엄마는 이따금 집안 어르신들의 꿈을 꾸곤 했고 그런 뒤에는 어김없이 어른신들이 돌아가셨다. 그리고 하루는 엄마의 시어머니, 즉 나의 할머니가 꿈에 나오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누가 들어도 혀를 찰 만큼 고약한 시어머니였다. 시집살이를 혹독하게 겪은 엄마는 아빠에게 '시어머니 모시고 살자고 하면 이혼이야.'라고 못박을 만큼 할머니를 싫어했다. 할머니 또한 엄마를 싫어했다. 며느리 중 유일하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맏며느리는 언제나 눈엣 가시였다. 그래서 고부관계는 당연히 좋지 않았다. 명절을 제외하고는 왕래가 없었다. 할머니가 아프다는 사실도 엄마와 나는 모르고 있었다. 장남인 아버지는 자신의 부인과 딸이 최대한 어머니와 만나지 않게 애썼다. 그래서 우리에게 할머니의 병세를 알리지 않았다. 엄마는 꿈에서 기나긴 강을 따라 걷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강 건너에서 돌아가신 시어른들이 보였다고 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시고모할머니와 시할머니, 시할아버지와 돌아가신 시아버지까지. 그분들은 꽃밭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그리고 엄마의 옆에는 할머니가 서 계셨다. 할머니는 곱게 한복을 입고 강 건너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셨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내 강을 향해 발을 내딛었고 강 저편을 향해 가는 할머니를 엄마는 그저 멍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엄마는 나에게 할머니 병원에 가자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엄마는 그래도 곧 가실 텐데 얼굴을 보여드리라고 했다. 죽음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용서할 만큼 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나는 엄마의 제안을 끝내 거절했고 엄마는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김치를 담고 고구마를 쪄서 병원으로 가셨다. 그리고 다녀오셔선 몇날 몇일 한숨만 쉬셨다. "그 할마시가 나한테 사과를 다 하더라." 엄마는 멍하니 창밖을 보며 중얼거리셨다. 엄마 손에는 할머니가 엄마 환갑 때 주신 붉은 복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환갑에는 부모가 자식 용돈 챙겨주는거라며 주셨던 복주머니. 엄마는 그 복주머니를 만지작거리시더니 또 깊은 한숨을 쉬셨다. "할마시 못난 자기 아들이랑 사느라 고생했다고 미안하다더라. 갈 때가 진짜 되긴 됐는갑다. 못된 할마시." 그리고 엄마가 꿈을 꾸고 정확히 일주일 후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병세가 많이 호전되었다고 집으로 돌아가셔도 된다고 한 그 바로 다음날 아침 그대로 일어나지 않으셨다. 87세, 사람들은 호상이라고 했다. 장례식장에서 다들 오래 울지 않았다. 엄마는 전혀 울지 않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서럽게 우셨다. 노친네 미워하는 마음 풀지도 못하게 하고 갔다고 서럽게 우셨다. 3. 나는 취미로 타로카드 공부를 했다. 그저 고등학교 축제에서 돈을 벌기 위해 재미삼아 시작한 것이었다. 엄청난 양의 카드를 다 외우는 것은 입시를 앞둔 나에겐 귀찮은 일이었고 제대로 다 외지도 못한 상태로 동아리 부스에 앉아 손님을 받아야 했다. 고등학교 축제에서 큰 것을 바라고 타로카드를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들 학업이나 연애 등을 가볍게 물어봤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중얼거리고 나는 복채랍시고 1,000원씩을 받았다. 그러다 한 여자가 타로를 보러 왔고 특이하게 건강에 대해서 물어왔다. 대충 카드를 뽑고 이야기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심장에 병이 있네요. 선천적이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명은 긴 편이니까." 여자는 놀라며 어떻게 알았냐고 했다. 나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입이 자의식을 가진 마냥 제 멋대로 술술 움직여 나온 말이었다. 알음알음 소문이 났는지 애들이 쉬는 시간에 찾아와 타로를 봐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용돈이 궁했던 나이었기에 나는 신이 나서 과자 하나, 음료수 하나를 받고 타로를 봐주곤 했다. 그러다 얼마 뒤 엄마랑 함께 집 근처에 사시던 무당 할머니댁에 놀러를 갔다. 신력을 거의 잃으시고 무당일은 하지 않고 힘든 사람이 찾아오면 아는 용한 무당들을 소개해주곤 하던 할머니셨다. 할머니는 날 보면 늘 연신 팔이며 머리를 쓸어주곤 하셨다. 늘 인자하게 웃는 얼굴이셨다. 그러나 그날은 날 보더니 표정이 차갑게 굳으시곤 우리 엄마를 향해 화를 내셨다. "사주팔이까지 하며 내가 조심히 키우랬는데, 애한테 왜 잡귀가 들게 냅두노." 엄마는 무당 팔자에 아빠는 중이 될 팔자인데 두 사람이 부부가 되어 나를 낳았기에 나는 원래 타고난 명이 짧거나 불우할 팔자라고 했다. 그래서 할머니는 엄마에게 내 사주를 팔라고 했다. 내 사주를 다른 부모 밑으로 넣어 귀신들의 눈을 속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피를 받아 신들이 탐내기 쉬운 먹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엄한 얼굴로 나에게 신신당부하셨다. "니 계속 그런 무당 흉내 내고 다니면 잡귀 붙는다. 앞으로 그런 짓거리 하지 마라. 절대 하지 마래이." 나는 그 뒤 타로카드를 버리고 절대 남의 점을 봐주는 일따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나에게 다시 한 번 당부하셨다. '절대 귀신 불러들이지 말그라.' 4. 우리 외할머니는 참 어른이었다. 자신의 어머니는 노친네라고 하대하던 아버지도 '너희 외할머니는 참말로 어르신이다.' 라고 입이 마르도록 이야기 하곤 했다. 외할머니는 남에게 화내는 법을 몰랐다. 성격 유별난 시어머니와 남편에게도 단 한 번 원망하는 말 없이 모든 것을 감내하고 살아오신 분이셨다. 자식과 사위, 며느리, 손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내 잘못으로 외할머니가 크게 다치신 적이 있는데 놀라서 우는 나를 향해 할머니는 "괜찮다. 놀라지 말그라." 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흐르는 피 대신 내 눈물을 먼저 닦아주셨던 분이셨다. 그런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농활중이었다. 10일간 농촌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중이었기에 엄격한 규율 아래 휴대폰을 보는 것은 정해진 시간을 제하고는 금지되어 있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던 나는 갑자기 열이 오르고 속이 답답하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밤부터 시작된 고통은 아침까지 이어졌고 선배들은 내 상태를 보더니 일을 가지 말고 숙소에서 자고 있으라고 했다. 진통제와 감기약을 먹고 바닥에 누워있던 나는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심장이 뛰고 눈앞이 어지러웠다. 빨리 휴대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을 모아둔 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선배들이 안다면 크게 혼날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떠오르지도 않을 만큼 휴대폰을 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을 켜고 왠지 모를 불안감에 손톱을 물어 뜯었다. 그리고 폰이 켜짐과 동시에 연달아 진동이 계속 울렸다. 부재중 전화 37통 문자 25개. 모두 엄마로부터 온 것이었다. 「어디고 할머니 위독하시다. 전화 해라」 「할머니 돌아가셨다.」 「전화 좀 해라.」 연달아 온 문자를 본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선배들이 오빠에게 전화를 해 가까스로 짐을 꾸리고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입관하기 5분 전 도착해 다행히 외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는 손님으로 가득했다. 사람이 많아서 생각할 틈도 없었다. 울다가 쓰러진 엄마를 돌보랴 손님들 맞이하랴, 맏손녀인 나는 해야 할 일이 많았고 모든 손님이 다 사라진 새벽 1시, 그제야 바쁜 것이 슬픔을 잊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있었다. 부모 보내는 자리에 자식들은 씻어서도 편히 자서도 안된다고 하던가, 이모, 외삼촌들은 이불도 덮지 않고 찬 바닥에 웅크려 눈만 감고 계셨다. 나는 문득 다시 슬픔이 떠올라 창가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엄마와 막내이모도 잠이 오지 않는지 내 옆으로 오셨다. 그리고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한 번 보고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거기엔 외할머니가 계셨다. 내가 할머니를 다치게 했을 때 피보다 먼저 내 눈물을 닦아주시던 그 얼굴 그대로였다. 창으로 장례식장 안의 자식들과 손녀들을 휘 한 번 둘러보시고는 걱정스런 표정을 하셨다. 나는 엄마가 알면 더 슬퍼할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이고 엄마, 편히 가시오. 자식 걱정은 말고." 엄마가 갑자기 울면서 말을 했다. 막내 이모도 이내 가슴을 치며 울었다. 엄마는 창밖을 보며 바닥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울었다. 저승가는 길까지 자식들 걱정이나 하고 왜 그러냐며 서럽게도 우셨다. 엄마랑 막내이모도 나와 함께 창밖에서 우리를 보던 할머니를 본 것이다. 하관하던 날, 아침부터 모진 비가 거세게 내렸다. 친척 어르신들은 이러다 하관 못하겠다고 근심스런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셨다. 엄마는 내내 창밖을 보며 울고 계셨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선산에 도착함과 동시에 날이 거짓말처럼 갰다. 비가 모두 그치고 햇빛이 나기 시작했고 어른들은 입을 모아 할머니 평소 성품대로 자손들 힘이 들까 울음을 그쳐주셨다며 참 인정 많은 어르신이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연의 일치라고는 하지만 나에겐 따스한 할머니의 성품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일화였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자신은 다시 태어나면 고운 아가씨로 다시 태어나고 싶으시다고 했다. 얼굴이 그리 곱지 않으셨던지라 큰 행사나 바깥 나들이에 외할아버지는 부인인 외할머니 대신 우리 엄마를 항상 데리고 다니셨다고 한다. 그래서 고운 아가씨로 태어나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싶다 하셨다. 우리 엄마는 그 말을 듣고 고운 아가씨로 태어나면 더 좋은 신랑 찾아가야지 왜 그 고약한 아버지랑 다시 결혼하냐며 타박을 하셨다. 그래도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랑 다시 결혼하고 싶다 하셨다. 그리고 돌아가신 후 엄마 꿈에 외할머니는 고운 한복을 입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 외할아버지 뒤를 그렇게 따라가고 있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돌아가시고 3년이 지났을까, 엄마나 이모들 꿈에는 이따금 등장하던 외할머니가 내 꿈에는 뵈는 일이 없었다. 어린시절 할머니 품에서 컸던지라 내심 섭섭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우리 아파트 입구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내가 늘 곱다고 이 한복만 입으라고 칭찬했던 외할머니의 옥색 한복이 보였다. 고운 한복에 미용실에서 싼 돈을 주고 풀리지 않게 볶은 하얀 머리. 동그랗고 좁은 어깨까지. 틀림없이 우리 할머니었다. 나는 외할머니가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까맣게 잊고 너무 반가워 대뜸 "할매!"하고 불렀다. 오후 6시, 여름의 시작이라 해가 제대로 지지도 않은 밝은 날이었다. 천천히 돌아보는 얼굴이 틀림없이 우리 외할머니였다. 할머니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한 번 그리고 우리집을 한 번 쳐다보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그 뒤 엄마는 큰 수술을 했다. 다행히 생명에 큰 지장은 없었지만 큰 수술이었기에 엄마도 나도 아빠도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문득 외할머니가 그리 걱정되는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손녀에게 부디 당신의 딸을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생각을 했다. 저승에서도 자식 걱정으로 안절부절못하고 계실 것은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출처 : 우리가족 소소한 이야기 (디미토리) ----- 입추를 보내고 날이 좀 선선해졌지만 그래도 오늘같은 날 보면 좋을 이야기 가져왔습니다
솜사탕퐁신
25년 08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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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활용하면
바이브 코딩을 하거나 LLM모델에게 이거 해줘 저거 해줘를 시키다 보면 결과가 마음에 안들때가 있죠? 그래서 이것 저것 정보도 찾아보고 하실텐데, 결국 이 작업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하고, 어떻게 지시해야 하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AI로 보고서를 작성 할 때도 마찬가지죠. 모두 각자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을거고 그 안에서 문제 해결능력이 있을텐데요 저는 AI를 활용해서 무언가를 구현하고 답을 얻는 과정이 문해력을 키우는 연습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할루시에이션도 있고, 잘못된 정보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그런 부분을 최소화 하고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활용 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내가 생각을 해야한다" 라는 것이 핵심 포인트고, AI는 내가 생각한 것을 실현 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도구로 활용해야 합니다. 스레드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것을 우연히 봤습니다. "개발자들에게 코딩은 20% 나머지 80%는 그걸 어떻게 구현할지 준비하는거다" 라고. 지원부서에 있는 제가 후배나 동료들에게 항상 말하는 내용이라 너무 공감이 됐습니다. 올바른 설계에서 결과도 잘 나오기 마련이죠! 상급자에게 보고서가 통과되거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충분한 시뮬레이션과 검토가 필요한 것과 같은 맥락인거죠. 특히 신입, 저연차 주니어들에게 이런 연습이 필요할텐데, 저도 선배님들의 까마득한 후배지만 AI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하며 개인 역량을 높일 수 있는 도구로 활용 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시해주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순살이 되어선 안되잖아요? 😀 **주말에 카페에서 업무효율을 높여줄 프로그램 개발하다가 끄적끄적**
골든프리저
25년 08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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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보통 얼마 주고 보세요?
외국인 친구에게 한국 야구를 보여주고 싶어서 야구표를 봤는데 이미 다 매진이더라구요. 일단 취소표 대기는 해놨는데 혹시 안될까봐 티켓베이에서 장당 오만원짜리를 사야하는지.. 고민입니다. 다들 보통 얼마 주고 보시나요?
조닫
25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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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 왔어요
블라만 알다가 오늘 처음! 블라가 싫어도 블라만 있는 줄 알고 계속 참았거든요. 이곳은 어떤 곳인지 기대하고싶네요.
뉴비61
25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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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 주의) 진짜 무서운 가위 이야기
본인 가위 엄청 자주 눌리는 편 근데 직업이 간호사라 수면시간 불규칙 + 스트레스로 최근에 가위 눌리는 빈도가 더 늘긴 했었음 근데 가위 눌려도 딱히 귀신을 보거나 그랬던 경험은 없었음 그냥 귀에 이명이 들리고 몸을 못 움직이고 심장이 조금 빨리 뛰는 정도만 경험했었거든 거기다 손가락부터 힘을 빡! 주면 가위에 금방 풀려서 사실 가위에 오래 눌려본 적도 없었음 근데 저번주에 코로나에 걸렸음 크게 아프진 않았는데 편도가 엄청 많이 부어서 침 삼킬 때마다 목이 엄청 아프고 나중에는 삼킴하면 귀까지 아플정도로 목이 엉망이었음.. 그래서 물도 못 마시고 침도 못 삼키고 그냥 누워만 있는데 잠에 들기도 힘들더라 침 삼킬때마다 잠에서 깨니까.. 그러다 겨우 잠들었는데 그때 가위에 눌려버림 평소에는 크게 고생없이 가위에서 깨는데 그날은 진짜 온몸이 통나무가 된 느낌으로 뻣뻣하게 굳어서 깨어지지가 않더라 귀에는 주전자 끓는듯한 이명소리랑 심장 막 빨리 뛰고 하는데 처음으로 귀신으로 생각되는 뭔가가 보임 뭔가가 내 옆에 서 있었음 관에 누운것처럼 정자세로 눕고 고개도 바로 된 상태로 자고 있었어서 얼굴은 안 보이는데 눈의 흰자로만 보이기에는 흰 원피스 입은 여자였음 여중생인지 여고생인지 뭔가 성인이 덜 된 느낌이더라 처음으로 바짝 쫄아서 몸도 못 가누고 있는데 나를 그렇게 몇분동안 가만히 쳐다보더라 사실 체감상으로는 몇분이었는데 30초도 안된 것 같기도? 그러다가 갑자기 손에 든 하얀 베개같은 걸 치켜 들더니 내 얼굴을 퍽 때리더라 그러면서 가위에서 풀려났음 당연히 꿈에서 맞은 거니까 아프진 않았는데 그 뭐라고 해야하지... 뭔가에 얼굴을 쳐맞았을 때의 놀람 + 기분더러움 그 느낌만은 생생하더라 별 거지같은 꿈을 다 꿨네 하면서 다시 자려고 누웠음 또 침 삼킬때마다 너무 아파서 진짜 겨우 겨우 잠들었는데 또 가위에 눌리고 걔가 나타남 마찬가지로 옆에서 쳐다보다가 베개로 내 얼굴을 내려침 또 xxxx 하면서 깨가지고 겨우 잠들었는데 또 또 또 이번에도 가위 눌리면서 걔가 옆에 서있더라 근데 더 열받는건 얘가 마치 나 놀리는것처럼 베개로 때리는 척하다가 잠시 멈칫 하더니 다시 얼굴 내려침 마치 평타 캔슬 하듯이 페이크를 섞어서 때릴듯 말듯 하다가 때리더니 존나 쳐웃더라 사실 웃었는진 잘 모르겠음 웃는 소리도 안나고 얼굴도 안보이니까 근데 쳐웃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음 이때부터 진짜 존나 열받았었음 안그래도 잠들기도 힘든데 개같은걸로 자꾸 가위눌리고 개같은 걸로 잠에서 깨고 하니까 이번에도 나타나면 진짜 죽여버린단 생각으로 겨우 다시 잠에 듦 마찬가지로 또 가위에 눌렸음 이쯤되니까 빡이 돌아서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하는데 마찬가지로 가위에 눌리고 어김없이 옆에 서있더라 이번에도 때릴듯 말듯 베개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면서 마치 미드 부쉬에 박힌 핑와 막타를 쳐먹으려고하는 탑이랑 미드처럼 평캔을 오지게 하더라 존나 리븐 개고수인 ㄴ처럼 존나 청기백기 개고수인 ㄴ처럼 그러다 진짜 날 때리려고 맘 먹었는지 베개를 높게 쳐들었는데 그때 기적처럼 가위가 딱 풀림 내가 잉어처럼 퍼덕거리면서 침대에서 일어나니까 그 ㄴ이 화들짝 놀라면서 내 방에서 도도도 달려서 도망치더라 진짜 존나 개빡이쳐서 나도 그대로 내 방에서 나간다음 그 개같은 귀신ㄴ 죽일 생각으로 바로 주방에 가서 식칼 큰 거 하나 뽑은 다음 그 귀신ㄴ 어디있는지 둘러봄 거실 쇼파에 이불 덮어쓰고 숨어있는게 보이더라 그대로 걸어가서 그 ㄴ이 베개로 나를 쳤던 것처럼 나도 칼 이빠이 치켜들어서 찍으려고 했음 근데 당연히 귀신은 없었고 쇼파에는 우리엄마가 누워서 자고 있더라 새벽 네시 반 나는 조현병이 왜 무서운건지 알았음 ------- 오랜만에 소름이 오도도도해서 퍼왔어요
솜사탕퐁신
25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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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산 8.5억...정체 ㅠㅠ
우선 저는 84년생...이고 결혼해서 애 한명 낳고 그렇저렇 지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직장생활 13년째이고 와이프 연봉을 합치면 대략 1.4~1.5억정도 둘다 흙수저 집안이라 결혼 전 양가에서 받은건 없고 아끼고 돌리고 해서 순자산 8.5억 모았는데... (퇴직금 제외기준, 뭐 얼마 되지도 않아요...ㅠ) 하..이제는 좀 막힌 느낌이랄까...몇년간 정체되어 있고 순자산이 늘어나지가 않네요. 나이는 자꾸 먹어서 이제 회사생활도 10년? 길어야 13년정도 할거 같은데... 조급한 마음이 자꾸 드네요.. (조급함때문에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1억 가까이 손해봤었는데...최근 운좋게 제로 만들었네요ㅠ) 주변에 또래들 보면 다 저보다 잘 사는거 같고.. 그래서 머리속엔 맨날 어떻게 굴려야하지..이 생각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입니다.
방향성
25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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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구 낮잠 좋네요
요즘 점심 후딱 먹구 낮잠 자는데 10-20분 자는데도 아주 개운하고 좋네요! 오후에도 그나마 덜 피곤한 느낌입니다
마케터곰발바닥
25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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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 면접이 사라지는 이유를 들으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최근 압박 면접이 점점 사라지는 배경에 대해 들었는데, 생각보다 이유가 단순하지 않더군요. 예전에는 압박 면접이 지원자의 돌발 상황 대처 능력을 확인하는 방법이라고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상적인 사고와 공감 능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질문의 의도와 맥락을 파악하며 ‘상대가 왜 이런 태도를 보일까’부터 고민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 결과, 즉각적인 공격적 대응보다는 상황 자체를 완화하려는 반응이 나온다고 하죠. 반면, 이입 능력이 부족하거나 경쟁을 게임처럼 인식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거침없이 맞대응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유형이 조직 내에 많아질수록, 협업보다는 각자도생 분위기가 강해지고, 회사 자원 활용도 개인 위주로 변하게 된다고 하네요. 결국 압박 면접은 지원자의 대처 능력을 본다기보다, 면접관이 원하는 특정 성향을 걸러내는 장치였던 셈입니다. 문제는 이 과정이 공정성이나 실제 직무 적합성과는 무관하게, 조직 문화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압박 면접이 줄어드는 건 단순한 유행의 변화가 아니라, 기업들이 협력 중심의 문화로 전환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민수아빠1
25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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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은 평생 20대에 머물러있는거같다
사람의 마음은 참 오래도록, 어느 순간 멈춰버린 듯한 채 살아갑니다. 그 시점은 유난히 감각이 예민하고, 세상이 처음으로 뜨겁게 다가왔던 시절, 바로 20대입니다. 몸은 분명 나이를 먹고, 주름도 생기고 체력도 줄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켠은 여전히 그때 좋아하던 음악을 들으며 똑같이 설레고, 그때 보던 영화를 다시 틀어놓으면 익숙한 대사에 미소 지으며 빠져듭니다. 20대에 좋아하던 노래는 단지 음악이 아니라, 그 시절 내 감정의 배경음이었고 내가 사랑했던 순간들을 감싸는 공기였습니다. 심지어 그 가수를 지금도 좋아하고, 그 무대 영상을 유튜브에서 또 찾아보곤 하지요. 그때 좋아하던 연예인은, 지금 봐도 여전히 ‘내 이상형’ 같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사람의 미소에는 첫사랑 같은 감정이 녹아 있습니다. 그 시절 감성이란, 참 독특합니다. 어설픈 듯 진지했고, 말 한마디에 울컥했고, 누군가의 손길 하나에 세상이 흔들리는 것 같던 시절. 사랑이란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던 시기. 이상형은 사실 구체적인 조건이 아니라 느낌 하나로 정의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길을 걷다 마주친 누군가의 눈빛만으로 하루 종일 멍해지기도 했지요. 그렇게 내 마음은 계속해서 시간을 따라가고 있는 척하지만, 사실은 그 시절 어디쯤에 자리를 깔고 눌러앉아 있습니다. 그때 느꼈던 감정, 그때 빠져들던 감성, 그때 꿈꾸던 사랑의 모양이 지금도 내 감정의 기본값이 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하면 여전히 그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떤 대화에선 괜히 진심이 튀어나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드러내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때처럼 사랑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조건보다 설렘을 먼저 보고, 계산보다 감정을 믿고 싶고, 여전히 그때처럼 누군가를 뜨겁게 만나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마음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 시절을 끝내 떠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대라는 시공간에 머물러 계속 나를 구성하고, 내 선택과 내 감정의 기준이 되어주고, 때로는 나를 붙잡고, 때로는 나를 또다시 시작하게 만듭니다. 사람의 마음은 평생 20대 어딘가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건 유약해서가 아니라, 그 시절이 너무 뜨겁고 찬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그때처럼 살고 싶고, 그때처럼 사랑하고 싶은 겁니다.
감성유랑극단방송
25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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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필요 없다"…노안 교정 안약, 곧 나온다
노안을 개선해주는 점안액이 곧 나온다고 합니다 선배님들!!!! 저도 이제 슬슬 노안이 올 때가 돼서 걱정중이었는데 큰 부작용은 없다지만 작은 부작용이 뭔지도 궁금하네요 ㅎㅎㅎㅎ 눈에 떨어뜨리기만 하면 노안을 개선해 주는 안약이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곧 제품으로 출시된다고 과학전문매체 뉴아틀라스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92/0002385249?sid=001 이 안약은 렌즈(LENX) 테라퓨릭스의 비즈(VIZZ)라는 제품으로, 성인 노안을 효과적으로 개선하는 아세클리딘 성분의 점안제다. 하루 한 번 눈에 넣으면 최대 10시간 동안 근거리 시야 흐림을 완화해 준다. 비즈는 아세클리딘을 사용해 눈의 동공을 부드럽게 수축시켜 동공이 2mm 미만으로 줄어들면서 가까운 거리를 보는 데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점안액은 눈의 초점 근육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아 먼 거리의 시야가 흐려지거나 근시가 발생하지 않는다. 렌즈 테라퓨릭스의 에프 쉬멜페닝크 사장 겸 최고 경영자(CEO)는 "미국에서 근거리 시력 저하로 어려움을 겪는 1억 2천800만 명의 성인을 위한 치료에 획기적인 발전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전에도 이와 유사한 노안 완화 점안액이 개발됐으나 눈썹 무거움이나 유리체 망막 문제 등의 부작용을 유발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아세클리딘 기반 점안제는 큰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FDA 승인에는 3상 임상시험 결과가 근거로 작용했다. CLARITY 1과 2에서 총 466명을 대상으로 42일간 하루 1회 점안한 결과, 투약 30분 이내에 시력 개선이 시작돼 최대 10시간까지 유지됐다. CLARITY 3에서는 6개월간 장기 투여 시 안전성을 확인했다.
비가내리고
25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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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한눈에 보는 입추 매직
절기는 역시 과학인가 봅니다 ㅋㅋㅋㅋ 출근길이 이렇게 선선하다니
그레그레
금 따봉
25년 08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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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절대로 워렌 버핏과 경쟁하지마라
워렌 버핏과 경쟁하려는 생각은 멋지고 도전적일 수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워렌 버핏이라는 이름 뒤에는 단순한 행운이나 운용기술 이상의 엄청난 노력과 전략 그리고 시간을 초월한 꾸준함이 숨어 있습니다. 그가 수십 년 동안 매년 평균 20퍼센트 이상의 수익률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재능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철저한 분석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투자 원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일반 개인 투자자들이 이와 같은 성과를 매년 꾸준히 내는 것은 상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먼저 시장은 언제나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오늘 잘 나가던 주식이 내일 갑자기 폭락할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경제 위기나 글로벌 변수들이 투자 환경을 한순간에 뒤바꿔 놓습니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매년 20퍼센트 이상이라는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려면 단순한 행운뿐 아니라 뛰어난 투자 감각과 빠른 판단력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수익률을 극대화하려고 무리하게 레버리지를 사용하거나 위험한 투자처에 과도하게 자금을 몰아넣는 경우 단기적으로는 큰 이익을 볼 수 있지만 한 번의 실패가 자산을 순식간에 날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양날의 검을 다루는 것은 전문가에게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반면 워렌 버핏 자신도 시장의 평균을 넘어서려는 시도가 얼마나 어려운지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는 평균 수익률만 꾸준히 따라가도 평범한 투자자로서는 성공한 것이라는 뜻을 여러 번 표현했습니다. 이는 결국 꾸준함과 위험 관리가 개인 투자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단기적으로 20퍼센트 넘는 수익률에 집착하기보다는 시장의 평균 수익률을 따라가며 꾸준히 자금을 추가 투자하고 자산 배분을 통해 위험을 분산시키는 포트폴리오 관리가 더욱 현명한 전략입니다. 이런 전략은 마라톤과도 같습니다. 폭발적인 속도로 단숨에 달리려 하기보다는 꾸준한 페이스로 지치지 않고 달려 결국 완주하는 것이 더 확실한 승리법이죠. 워렌 버핏과 경쟁하는 대신 내 페이스를 지키고 내 원칙에 따라 자산을 천천히 키워나가는 데 집중한다면 결과적으로는 훨씬 안정적이고 오래 지속되는 투자의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투자는 숫자 이상의 삶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지나친 욕심과 조급함은 오히려 독이 되고 인내와 계획 그리고 현실적인 기대치가 진짜 부를 만드는 법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말하고 싶습니다. 워렌 버핏과 경쟁하지 말고 당신만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십시오.
감성유랑극단방송
25년 08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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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실소-111] 물고기의 반댓말은?
넌센스 퀴즈 (아재 개그) === 물고기의 반댓말은? . .. ... .... ..... (^o^) .... ... .. . .. ... .... ..... (^ー^) .... ... .. . .. ... .... ..... (^∇^) .... ... .. . .. ... .... ..... o(^-^o)(o^-^)o .... ... .. . .. ... .... ..... ~(´∀`~) .... ... .. . -. 모범답안: 불고기 === 피식했다면 댓글 고고! 신박한 기출변형이 있다면 댓글 고고! 좋아요 반사해드려요! ## 넌센스 퀴즈 더 보기: 커뮤니티에서 '가끔은 실소' 검색 =) 화장실에서, 식곤증에 좋아요 😂 === 우하하 🤣🤣🤣 웃음 가득한 하루 되세요!
싱싱한 회사원
억대연봉
은 따봉
25년 08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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