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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입니다! 수행평가로 명함 관리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리멤버에서 불편한 점을 알고 싶습니다!
혹시 리멤버를 사용하면서 불편한 점이 있으신가요? 혹시 있다면 적어주세요! 짧은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고딩
25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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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1의 간식 한상차림
아빠가 탐낼 것 같은 간식 한상차림 엔요가 안어울려서 넘 합성 같네요 ㅋㅋㅋㅋㅋㅋㅋ
밈밈무
25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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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因果應報)
글 들을 보다 보면 상대방의 일방적인 괴롭힘과 부정적인 상황들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많 습니다. 그들은 태생이 악해서 그런 경우도 있을 것이고 본인이 무슨 언행을 하는지 인지조차 못해 그것 때문에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을것이고 사람을 괴롭히는 것에 재미나 우월감을 느껴 반복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저 또한 이런 일들 때문에 정신과 상담도 1년 넘게 치료를 받은적이 있었으며 왜 저런 부정적인 것들 때문에 내가 피해를 봐야 하나 그런 생각에 그 들과 소통도 해보고 속으로 저주 하기도 하고 때론 직접 부딪치기도 하며 나름 그들을 이해해보려는 노력과 파해 해보려는 노력을 해보았지만 그 들은 보통의 사람들 즉 양지를 지향하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개념,행동,언행으로 본인이 원하던 원치않던 음지를 자처 한다는걸 아름아름 알게 된거 같습니다. 인과응보(因果應報) 행한 대로 그 대가를 받는다는 뜻 단지 악한 이들에게 당한 억울한 사람들에게 위로차 만들어진 언어라 치부하며 그들 에게서 온 고통과 아픔은 오롯이 당한 이들의 몫이라 생각했지만 조상님들의 삶속에서 쌓인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말이란걸 사건을 격게 됩니다. 저는 지금 직장에서 7년정도 근속중입니다 7년 동안 많은 부당한 일들을 당해왔지만 그중에 손가락에 꼽는 부당한일은 '밭'일 입니다 당연히 제 업무는 생산이지 밭일이 아닙니다 일하는 도중에 불려나가 밭일을 해봤고 퇴근후에도(기숙사 생활을 하며 기숙사 바로 앞에 밭이 있습니다) 불려나가 밭일을 했었고 나중엔 주말에도 불려나가 밭일을 했습니다 큰 규모에 밭은 아니였지만 작은 규모에 밭도 아니였기에 밭일은 기본 1시간은 넘겼습니다 7년이나 근속했기엔 이젠 "밭일을 자주 한건 아니 잖아?"라는 말도 무색합니다. 최근에 불경기로 회사가 많이 어려워 졌습니다 우리 회사뿐만아니라 이쪽 업계가 전부 어려워 졌습니다 불황전에 구두로 계약을 따놨던 건 수 들은 호황과 함께 나라가 버렸고 제게 부당하게 밭일을 시키시던 사장님은 본인이 아닌 친 아들이 구두 계약을 한 조합원 장의 밭에 가서 밭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와이프와 함께요. 처음엔 고소 했습니다 통쾌 했고요 "으휴 쯧쯧.. 그렇게 평소에좀 잘하지" 근데 좀 의아 했습니다 "왜?? 본인이 아니고 아들이지??" 조금 생각해보니 알것 같더군요 가끔 영화나 소설 같은걸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애들은 건들지 말아달라 애들만을 살려달라 어쩌면 본인보다 소중한 존재에게 본인이 한 악행이 다시 돌아간다라..... 꼬시다라는 생각은 없어지고 과거의 내가 했던 행동들이 떠오르며 무서워 지더군요 나도 혹시 밭일을 하게 된게 누군가에게 악행을 저질렀던게 아닐까? 하고 나의 아버지도 누군가에게 악행을 저지른게 아닐까? 하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맞다고도 장담할수 없는 찝찝함 인과응보(因果應報) 행한 대로 그 대가를 받는다는 뜻
내가백수라니
25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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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고려 조선은 결국 하나의 왕국이었다고?
한국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왕조는 여러 차례 교체되었지만, 지배계급과 역사·문화는 놀라울 정도로 연속성을 유지하며 앞선 왕조의 기반을 이어가는 역사적 계승으로 연결되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먼저 삼국시대의 세 나라인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기 독자적인 정치 체계와 문화를 발전시켰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반도 내에서 긴 세월 동안 공존했습니다. 특히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이전의 고구려와 백제 문화 요소들을 흡수하고 융합하면서 새로운 정치체계와 문화적 정체성을 만들어냈습니다. 예를 들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도 고구려의 강력한 군사 체계와 백제의 문화적 예술 전통이 신라 문화 안에 녹아들어, 단순한 승리자가 아닌 전통의 계승자로서 역할을 수행한 점은 역사적 계승의 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고려가 건국되면서 왕조는 교체되었지만, 고려 사회의 지배계급 상당수는 신라 말기부터 형성된 호족 세력과 왕실 혈통의 후손들이었습니다. 고려는 신라의 유교적 전통과 불교 문화 모두를 계승하고 발전시켰으며, 특히 유교의 정치적 이상과 불교적 문화를 조화롭게 융합한 독자적 국가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과거 시험 제도를 도입해 신분 상승의 길을 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존 호족과 왕실 연계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며 지배계급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었습니다. 조선 왕조가 출범할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고려 말 권문세족과 유력 호족 가문 출신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해 새로운 국가 체제를 안정시키고, 기존의 지배계급과의 협력을 통해 조선의 유교적 정치 질서를 세웠습니다. 양반 계층은 고려시대 사대부의 전통을 이어받아 문벌 중심의 정치와 사회를 주도했고,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아 교육과 관료 제도를 정비하며 사회 전반에 깊게 뿌리내렸습니다. 이렇듯 왕조가 바뀌어도 권력의 주체와 사회적 계급은 큰 변화 없이 이어졌고, 역사와 문화 역시 이전 왕조의 유산 위에서 발전해왔습니다. 한 예로, 신라의 불교 미술 전통은 고려의 불교문화에 이어졌고, 조선에서는 이보다 더 엄격한 유교적 가치관 속에서 재해석되면서도 그 근간을 유지했습니다. 또한, 지방 세력과 중앙 권력이 상호 보완하며 유지된 점도 계승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삼국시대의 호족, 고려의 권문세족, 조선의 양반가문 모두 각 시대의 핵심 지배계급으로서 사회 질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이들은 토지와 관직을 대물림하며 세대 간 권력과 부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한국의 역사는 단절된 왕조들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긴 역사적 흐름 속에서 왕조와 제도는 바뀌어도 지배계급과 문화적 기반은 계승되고 재구성되어 왔음을 보여줍니다. 이 연속성은 한국 사회가 오랜 시간 동안 전통과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중요한 힘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역사와 문화의 뿌리 깊은 연결고리를 이해하는 데 큰 의미를 갖습니다.
감성유랑극단방송
25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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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머 5,000억 밸류 매각?!
https://naver.me/GcK48abd
카낙쿠
25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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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귀족가문이 있다는걸 아시나요?
우리나라에도 분명히 귀족 가문이 존재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부유하거나 학문이 뛰어난 집안이 아니었습니다. 왕실과 혼인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정치적·사회적 최상위 계층이었습니다. 1308년, 충선왕이 발표한 재상지종 15가문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린 가문들은 모두 권문세족이라 불렸습니다. 경주 김씨, 인천 이씨, 남양 홍씨, 언양 김씨, 해주 최씨, 파평 윤씨, 여흥 민씨, 청주 이씨, 횡성 조씨 등, 오늘날에도 귀에 익숙한 성씨들이 당시에는 나라의 중추를 이루는 집안이었습니다. 그 위상은 단순한 혈통을 넘어, 고려 정치의 핵심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왕실과 혼인하며 혈연으로 권력을 공고히 하고, 고위 관직을 대대로 차지하며 세력을 키웠습니다. 이들 가문은 마치 높은 성벽 안에 있는 하나의 도시처럼, 외부인이 쉽게 발을 들일 수 없는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관직과 토지, 인재와 명예가 집안 안에서만 순환했고, 원나라와의 관계를 통해 세력을 국제적으로 넓히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고려의 정치 지형은 몇몇 가문을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재상지종은 곧 국가의 심장부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 가문들은 존재 자체로 하나의 정치 제도와 같았습니다. 어느 가문에서 태어났는지가 곧 인생의 절반 이상을 결정하던 시대였지요. 과거시험의 성적보다, 전장에서 세운 공보다, 가문의 이름이 더 큰 힘을 가졌습니다. 집안의 문패 하나가 관직의 임명장보다 강력했던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가문 상당수가 고려 멸망 후에도 조선으로 이어져 양반가로 자리매김하며 여전히 명문가의 전통을 이어갔다는 사실입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그들의 영향력과 품격은 사라지지 않았고, 가문의 이름은 곧 사회적 신뢰와 권위의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오늘날 재상지종 15가문을 다시 떠올려 보면, 그것은 단순한 족보의 목록이 아니라 고려 사회의 권력 구조를 압축해 담은 기록입니다. 한 시대의 정점에 선 가문들이 어떻게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했는지, 그리고 혼인과 혈연이 정치의 핵심 도구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 명단은 고려라는 나라의 심장 박동을 그대로 옮겨 놓은 역사적 초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성유랑극단방송
25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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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실소-112] 싸움 중 코가 잘린 코끼리들을 뭐라고 할까?
넌센스 퀴즈 (아재 개그) === 코를 걸어 싸우는 코끼리들, 격렬한 싸움 중 코가 잘린 코끼리들을 뭐라고 할까? . .. ... .... ..... (^o^) .... ... .. . .. ... .... ..... (^ー^) .... ... .. . .. ... .... ..... (^∇^) .... ... .. . .. ... .... ..... o(^-^o)(o^-^)o .... ... .. . .. ... .... ..... ~(´∀`~) .... ... .. . -. 모범답안: 끼리끼리 -. 오답: 막상막하 === 피식했다면 댓글 고고! 신박한 기출변형이 있다면 댓글 고고! 좋아요 반사해드려요! ## 넌센스 퀴즈 더 보기: 커뮤니티에서 '가끔은 실소' 검색 =) 화장실에서, 식곤증에 좋아요 😂 === 우하하 🤣🤣🤣 웃음 가득한 하루 되세요!
싱싱한 회사원
억대연봉
은 따봉
25년 0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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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차가 3대나 와있는데...
아침부터 경찰차가 3대나와있는데 과학수사봉고, 세단, 형사과봉고... 살인사건인가??ㄷㄷㄷㄷㄷㄷ
오래가는그래핀
25년 0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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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이다..
겉으로 드러난 정보는 종종 허상이다. 진실은 감춰져 있고, 직관으로만 꿰뚫을 수 있는거 같습니다.. 직관은 경험과 통찰의 결합으로 들었는데... 반복되는 패턴과 흐름을 읽는 연습이 필요해 보입니다... #친절한엔큐씨
건전이
동 따봉
25년 0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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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겐 집밥같은 가족같은 단골식당이 있나요?
골목 끝에 자리 잡은 작은 단골 식당은 멀리서 봐도 편안합니다. 유리창 안쪽으로 보이는 하얀 김,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주방, 그리고 바쁘게 손을 놀리면서도 손님이 들어오면 환하게 웃어주는 사장님의 얼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스칩니다. 갓 지은 밥의 포근한 향, 끓는 된장찌개의 구수함, 프라이팬 위에서 고소하게 익어가는 계란말이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테이블에 앉으면 주문하기도 전에 따끈한 보리차가 먼저 나옵니다. 주문은 늘 비슷합니다. 제육볶음, 고등어조림, 김치찌개, 가끔은 청국장.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고르지만, 무얼 고르든 실망한 적이 없습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사장님은 찬장을 열어 오늘 만든 반찬들을 꺼내놓습니다. 오이무침은 참기름에 살짝 버무려 윤기가 흐르고, 시금치나물은 초록빛이 살아 있습니다. 멸치볶음은 바삭하게 볶아 땅콩이 박혀 있고, 김치는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뒷맛이 납니다. 밥은 뚝배기처럼 뜨거운 돌솥에서 갓 퍼낸 듯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숟가락으로 살짝 떠서 입에 넣으면 고슬고슬하면서도 차진 식감이 살아 있어, 그 순간 집에서 밥 짓던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국물 요리는 한 숟갈만 떠도 속이 풀리는 맛입니다. 된장찌개 안에는 두부가 푹 잠겨 있고, 호박과 감자가 포근하게 익어 있습니다. 국물 사이로 피어오르는 김이 마치 겨울 아침의 입김처럼 따뜻합니다. 먹다 보면 사장님이 다가와 묻습니다. "반찬 더 드릴까요?" 그 말 한마디에 왠지 마음이 몽글몽글해집니다. 집에서 엄마가 숟가락을 놓기 무섭게 밥 한 숟갈 더 얹어주던 순간, 장독대 앞에서 김치통 뚜껑을 열던 소리, 명절 아침 부엌에서 들리던 부침개 부치는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벽 한쪽에는 오랫동안 붙어 있는 낡은 달력이 있고, 창가 자리에는 매일 같은 시간에 오는 할아버지가 혼자 앉아 김치찌개를 드십니다. 그 옆에는 오늘 처음 온 듯한 젊은 부부가 아이에게 된장국을 떠먹여 주고 있습니다. 이 식당의 풍경은 그렇게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한 끼 밥상 앞에서 잠시 같은 시간을 나누는 다큐 한 장면 같습니다. 계산을 마치고 문을 나설 때, 사장님이 "또 오세요"라고 인사합니다. 그 목소리가 참 묘합니다. 단순히 가게 단골을 붙잡기 위한 인사가 아니라, 정말로 나를 아는 사람처럼, 내가 다시 오길 바라는 사람의 마음이 묻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식당을 떠올리면 단순히 ‘맛있는 집’이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이곳은 내 하루 속에 잠깐 스며드는 집 같은 곳, 밥 한 그릇으로 마음까지 채워주는 따뜻한 사람들의 주방입니다. 그런 식당을 만나는 건, 바쁜 세상 속에서 작은 기적 하나를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감성유랑극단방송
25년 0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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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나는 다시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지금으로부터 십년 전. 그러니까 내나이가 스물셋, 넷되던 그 시기는 내 인생의 암흑기였다. 사람의 인생이 백년이라고 치면, 백년동안에 만날 나쁜 인간들을 1년이라는시간안에 한꺼번에 몰아쳐 만났다고 할까. 사기, 이간질, 배신, 구설수. 등등. 사람들의 관계에 치여 쓴맛을 참 여러번 봤다. 결국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사람들과 치고받고 싸워서에 경찰서도 들락거렸고. 예술을 전공하였으나 정서가 불안해지자 작품활동이 전혀 되지 않았다. 늦어지는 졸업 탓에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성화시고. 그쯤되니 그냥 사람이란 대상이 모두 두려워졌다. 길가다 마주치는 고양이나 참새를 빼놓고 마주치는 인간은 다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길을 걷다 아파트가 보이면 떨어져 죽는 생각을 하고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 내가 치어서 죽는 상상을 했다. 자려고 누우면 잠도 잘 안 오고. 어쩌다 잠이 들면 꿈을 계속 꾸었는데 그 꿈도 매우 현실적이어서 현실과 꿈을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증이 심했던 것 같다. 그런 날들이 꽤 여러달 반복되었을 무렵. 지인을 만나서 길을 걷다가 우연히 점집 골목을 지나치게 되었다. 지인은 평상시에 그런 쪽(무속신앙)에 관심이 많은터라 점을 보자고 했다. 그 당시 지인은 꽤 오래 만나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사이가 좋지 않아 고민이었다. 매사에 의욕이 없는 나는, 점은 너 혼자 봐라 나는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그냥 있겠다고 했다. 점집은 옛날 일본식 상가 건물을 그대로 고쳐 쓰고 있었다. 그곳은 역전 앞, 점집 골목으로 대부분은 점집들의 형태가 비슷비슷했다.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신당이 보였는데, 주인이 없었다. 날이 아닌가 싶어서 그냥 나오자고 했는데 지인은 한사코 기다리자고 했다. 주인도 없는 신당에서 무려 30분이 넘게 기다렸다. 더는 기다리기 지루하고 또 우울한 마음이 도져서 먼저 가겠노라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서 일어났다. 지인은 망설였으나 기다린 시간이 아쉬웠는지 꼭 점을 보고 가겠다는 거다. 알겠다고 인사를 나누고 점집을 나서서 한 30미터 걸었을까. 저기 먼 곳에서 한복을 차려입고, 정갈하게 쪽진 머리를 한 중년 아줌마가 걸어오고 있었다. 차림새가 평범한 차림새가 아니라서 아- 저 아줌마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 하는 느낌이 났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성큼성큼 걸어 지나치려는 순간 중년여인이 내 손목을 낚아채더니 "왜, 조금만 더 기다리지 벌써 기어 나왔노." 팔목을 잡고 왔던 길로 다시 끌고 가는 것이다. 사실, 끌려가는 동안에 이 아줌마가 도를 아십니까나, 다단계같은 귀찮은 사람이 아닐까 머리가 복잡했으나 왔던 점집으로 밀어넣길래 이건 뭔가 싶었다. 그 당시에는 가정용 씨씨티비가 흔한 것도 아니어서 꽤 놀랬다. "아주머니, 혹시 다른 곳에서 씨씨티비로 보고 계셨어요?" 지인이 여러차레 물어봤으나 썩은 미소를 날리며 "내 장바구니 안보이나. 장보다 쌔빠지게 뛰어온 거 안보이나. 늦었으면 못볼 뻔 했네" 실제로 아줌마가 내려놓은 장바구니 안에는 대파며 사과며 뭐가 많았다. 지인은 기다린 보람이 있다며 기분이 업되어서 연애가 어쩌고 결혼이 어쩌고 쫑알댔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조용히 향에 불을 켜더니 "오늘은 너 말고 니 뒤에 가시내 이야기나 듣자" 며 나를 가리켰다. 그러더니 작은 소반같은 걸 내 앞에 끌어다놓고 마주 앉았다. 나는 아무 의욕이 없었다. 예를 들자면. 길을 걷다가 아무 일면식이 없는 사람이 내 뺨을 찰지게 때리고 지나가도 아- 내가 한대 맞았구나- 하고 다시 갈길 걸어가는 마네킹처럼. 그때 내 상태가 그랬다. 좀처럼 무슨 대답을 해야할 지 몰라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옆에서 지인이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고 옆구리를 찔러도 딱히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아줌마가 나를 유심히 보더니 나지막한 음성으로 "그리 죽고싶나." 경상도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이 지역은 전라도), 지인이 뭐라고요? 되물었더니 "아니~ 이 처자는 살고싶은 마음이 개미 눈꼽만큼도 없잖아. 친구아니야?" 지인 역시 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내가 죽을만큼 괴로워 했을거란 생각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지극히 외강내유형인지라 고민이 생겨도 내색을 안하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쟁이 아줌마가 해준 이야기를 듣고나서 나는 오열했다. "내가 기도드리러 산에 갈때가 됐거든. 그래서 산에 갈 채비하느라고 한참 시장에서 장보고 있었는데. 아 느그 할머니가 살쾡이 같은 눈을 하고 날 보는기라. 사과를 하나 집어들면 사과 옆에서 째리보고 곶감을 집어 들면 곶감 옆에서 째리보고. 얼른 가라고 등 떠밀어서 진짜 가랭이 찢어지게 뛰왔다. 너거 할머니가 니 걱정 많~이 한다" ....... 그땐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2년이 채 되지 않을 무렵이었다. 어렸을때부터 할머니품에서 자랐기 때문에 사이가 각별했다. 너무 연로하신탓에 자연사로 돌아가셨기에 사람들은 할머니의 죽음을 두고 호상이다고 위로하였으나 사람의 죽음을 두고 잘 죽었다 논하는 것이 나는 분했다. 하지만 슬픔은 그때뿐이었고, 나는 나대로 대학생활을 하느라 할머니를 잃은 슬픔은 곧 잊고 살았었다. 아무 생각이 없다가, 할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눈물이 삐질삐질 밀려나왔다. 처음에는 뭔가 서러워서 흑흑거렸는데 나중에는 감당이 안될만큼 꺽꺽거리며 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정말로 정말로 힘들었는데 주변인은 나의 힘듬을 알아주지 않았고, 알 수도 없었다. 살아있는 사람들도 몰라주는 나의 힘듬을 돌아가신 할머니가 알고 계신다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더더욱 서러웠다. "그래가지고 내가 쌔빠지게 걸어왔는데, 할매가 니 뒤따라서 걷고 있데. 니 뒤에서 울면서 따라걷는거야. 그래서 내가 너를 알아봤지. 허리는 구부정해가지고 .. 허리 ㄱ자로 굽은 거 느그 할매 맞제?" 점쟁이 아줌마는 허리를 구부리며 지팡이짚는 흉내를 냈다. 우리 할머니가 맞았다. 우리 할머니는 나이 오십에 산에 땔감 주우러 갔다가 산비탈에서 구른 후에 점점 허리가 굽었다고 했다. 점쟁이 아줌마는 내 손을 감싸 쥐면서 "힘든 때는 누구나 온다. 보니까 너는 마음이 다른 누구보다 더 여리고 깨끗하네. 순진하니까 상처도 잘 받는거야. 할머니가 니 걱정되서 잠을 못잔다하잖아. 힘들 땐 죽을 생각부터 할 게 아니라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이겨먹을 생각을 해야 산다." 시간이 너무 지난이야기라, 기억을 더듬어 쓴것이지만 아줌마는 아무튼 저렇게 이야기를 하며 나를 달랬다. 나는 할머니가 너무 궁금하고 걱정이 되어서 정말 할머니가 보이냐고 할머니는 왜 천국에 가지않고 눈에 보이는 거냐고 물어봤다. 왜냐면 우리집안은 사돈에 팔촌까지 크리스챤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교회 권사님까지 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사는 지내본 적도 없고 절 근처에는 가본 적도 없는데... 유일하게 나혼자만 불교인지라 집안에서 상또라이 취급을 받는 때도 있었는데. 교회식으로 말하자면 애진즉 천당가셔서 영면하셔야 할 분이 왜...? 점집 아줌마는 썩소를 지으시며 "나중에 죽으면 느그 할매한테 물어 본나" 하셨다. 아무튼 할머니가 손녀걱정에 죽어서도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복채를 드리려고 지인에게 눈치껏 얼마냐 물었더니 점집 아줌마는 됐다고, 다음에 둘이서 다시 놀러오라고 복채 받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그러니까 나는 생전 처음 점보는 곳에 가서 처음부터 끝가지 울기만 하다 나온거다. 너무 울어서 지인의 부축을 받다시피 해서 나왔다. 어떤 믿음에서인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 나는 조금씩 변했다. 할머니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다시 복학했고. 옆에서 누가 뭐라하든 정신승리로 버텨냈다. 잡생각을 없애기 위해서 알바를 두탕씩 뛰었으며 일이 끝나면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호프집이나 까페에서 꼭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갔고 나중에는 집에 혼자 들어가는게 싫어서 그 지인과 살림을 합쳐 함께 살았다. 그러면서 나는 예전의 김푼수로 다시 돌아갔다. 가끔 그날의 그 점집이 생각나서, 오년 후엔가? 남자친구와 함께 찾아갔는데 그 거리가 싹 재개발이 되어서 새 건물이 들어서고 그 점집 역시 없어져있더라. 그 아줌마가 무속인이든, 뭐든간에 힘들어하는 어린 아가씨에게 시간을 투자해서 힘내라 응원해주어서 참 고맙다는 말을 하고싶다. ----- 요즘 힘들어하시는 분 많으신 것 같아서 위로가 될 글인 것 같아서 퍼왔습니다... 모두 화이팅!
솜사탕퐁신
25년 0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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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만한 넷플릭스 추천해주세요 ㅠㅠ
날이 너무 더워서 오늘 집에만 콕 박혀있으려는데 넷플 볼만한 거 뭐 없을까요? 그동안 본 것보다 안본 게 많아서 추천받고 싶습니다 ㅠㅠ 다큐 드라마 예능 애니 등등 장르 안가리고 봅니다!! 최근에 재밌게 보신 거 아무거나 추천 던져주세요!! 넷플에 없는 거여도 추천 남겨주시면 찾아볼게요 ㅎㅎ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유)
후시딘숙
25년 0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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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금과 기부금을 착각하는거 같아요.
캐러비안 연안국에 주택보급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24년 6월 현지에 급한 비용이 필요해 3억을 빌렸는데 마침 지인이 자기아들이 결혼하는데 돈이 필요한데 애비노릇도 못하게됐다 하길래 2천만원이면 되겠냐고 했더니 해주면 고맙겠다고 해서 즉시 입금을 해줬는데 일년이 되도록 안갚길래 돈 해주라고 했더니 톡,문자,전화 다 씹고 나도 같이 아는 사람에게 내 험담을 늘어놓았다는 소식이 들리네요. 내가 돈 빌릴때 자기도 입회인으로 서명했는데 돈 갚으라 한다고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면서.. 그돈이 이사람과 같이 일해서 보수로 받은것도 아니고 내가 빌려쓴거고 갚아야될 돈인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이쉐이를 아주 조지뿔까 두고볼까 고민이네요.
westgun
25년 0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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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랑멀리사는데
주말에 어디가자고하면 데리러오는게아니라, 거기서 만나자고한다.. 시간을 소중하고 중요하게생각하는것도 알겠고 우리집에 들러서 가면 혼자 운전하기 오래걸리니까 그게효율이좋다는것도 알겠는데 나는 지하철타고 한시간가야하는거리 혼자 차타고 가서 거기서 만나자고하는건 연인이아니라 동업자나 직장동료아닌가? 물론 맨날 항상 이러는건아니지만.. 내가 초반에 서운한티를 좀 냈더니 눈치봐서 나태우러 올때도있지만 가끔 또 이럴때마다 의심스럽다. 서로좋아하면 지하철타고 가는 그순간까지 조금이라도 같이 붙어있고싶은게 마음아닌가?
살퀭이히
25년 0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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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 삼계탕
점심 무렵 서울의 공기는 이미 쪄죽일 듯 무거웠다. 회사 근처 골목 끝에 있는 허름한 삼계탕집 앞에는 양복 차림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오늘은 복날이니까요. 사장님도 삼계탕 드셔야죠." 배달부 민수는 주인 아저씨에게 닭과 인삼 대추를 내려놓으며 웃었다. 사장 정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웃지는 않았다. 그가 요 며칠 보인 표정은 늘 그랬다. 삼계탕집은 여전히 손님이 많았지만 정 회장은 마치 가게가 곧 망할 것처럼 불안해 보였다. 손님 중에는 낯선 남자가 한 명 있었다. 깔끔한 흰 셔츠에 뿔테 안경, 왼손에는 오래된 수첩을 들고 있었다. 그는 삼계탕을 다 먹고도 한참 동안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혹시 몇 년 전 여름에도 이 가게에 오셨던 적 있나요?" 그 남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 회장은 숟가락을 멈췄다. "왜 그런 걸 묻죠?" 남자는 수첩을 펼쳤다. 거기에는 5년 전 오늘 복날에 먹었던 삼계탕 가격과 재료 비율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볼펜으로 힘주어 쓴 한 줄. ‘닭이 두 마리였다.’ 정 회장의 손이 떨렸다. "5년 전 제 형이 여기서 삼계탕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그는 죽었어요." 남자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또렷했다. "그리고 부검 결과 닭고기 속에 들어 있던 약물이 문제였죠." 가게 안의 소음이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정 회장은 한숨을 쉬며 뚝배기 뚜껑을 덮었다. "여름이라 다들 몸보신하러 온다지만 사람 마음까지 건강해지는 건 아니더군요." 그 순간 주방 쪽에서 인삼 향이 다시 퍼져나왔다. 그리고 정 회장은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삼계탕은 드시겠습니까?" 남자는 대답 대신 수첩을 닫았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복날
AoBart
25년 08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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