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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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제는 가족에게 있었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 후지노 도모아키 감독
글 남선우
2026-07-30
누나가 이상하다. 부모는 부정한다. 동생이자 아들로서,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답을 찾고자 카메라를 들었던 후지노 도모아키 감독은 영화 자체를 아득한 질문으로 매듭지었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라는 제목에 그 막막함이 엉겨 있다. 다만 이 다큐멘터리는 “누나가 조현병이 된 이유를 밝히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조현병이 어떤 병인지를 설명하려는 것도 아니”다. 당혹감에 압도된 채 문제를 회피해온 시절을 돌아보고, 가족이 지켜야 했던 태도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내기 위한 분투다. 서면 인터뷰에 응한 후지노 도모아키 감독은 이 기록을 “실패 사례”라 칭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수렁에 빠진 누군가가 간신히 붙잡을 나뭇가지가 되어줄 수도 있다.
- 2001년부터 집 안에서 가족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 기록이 한편의 영화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한 건 언제였나.
나는 누나에게 정신의학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은 누나의 병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될 것 같아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영상 공개를 고려하기 시작한 건 2008년, 누나가 정신과병원에서 퇴원한 이후였다. 치료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이 영상이 그저 고통스럽기만 한 것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본에 우리 가족과 비슷한 선택을 한 가정이 더 있을 수도, 앞으로 이런 상황을 겪게 될 가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이 영상을 하나의 실패 사례로 공개하기로 했다.
- 처음에는 카메라를 의식하던 가족구성원이 점점 그 존재를 잊고 행동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아들, 동생이자 감독으로서 애쓴 부분이 있다면.
누나의 상태를 두고 10년 넘게 부모님과 대립해왔다. 그래서 내가 집 안에서 촬영을 시작하면 부모님이 경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지역으로 여행을 가거나 큰 공원에 가서 식사하는 등 가족 행사를 계획했고, 그 시간을 기록하는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촬영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촬영을 꺼릴 때가 있었다.
- 영화가 굉장히 내밀한 기록의 집합체인 만큼 감독 혼자 작업을 도맡았을 것이라고 짐작했으나 아사노 유미코가 촬영과 편집을 함께했다.
아사노의 본업은 판화가다. 그와는 2012년쯤 처음 알게 되었고, 2013년부터 함께 다큐멘터리를 작업했다. 아사노에게 오래전부터 우리 가족의 문제를 얘기해왔다. 다만 그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의 촬영과 편집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것은 2022년부터다. 영화 초반에 내 내레이션처럼 들리는 음성은 사실 아사노가 나를 인터뷰한 녹음본이다. 보통 내레이션은 전문 성우나 감독이 원고를 읽지만, 내가 원고를 읽으면 말의 호흡이 부자연스럽고 마치 내 생각이 아닌 글을 읽는 것 같더라. 반면 인터뷰는 질문을 듣고 직접 생각하며 답하기 때문에 훨씬 자연스러운 호흡을 담을 수 있었다. 편집도 처음에는 혼자 했지만, 러닝타임이 3시간 정도에서 더이상 줄어들지 않았다. 아사노가 편집에 동참해준 덕분에 지금의 러닝타임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반대로 불꽃놀이 장면은 러닝타임을 줄이기 위해 처음에는 전부 삭제하려고 했으나, 아사노의 의견으로 남겼다. 결과적으로는 그 장면을 남기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 초반부에는 음성으로 가족의 역사를 소개했고, 중반부 이후에는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가족의 상황을 진술했다. 목소리로 영화의 문을 열고, 텍스트로 영화를 이어가겠다는 결정은 어떻게 내렸나.
2001년부터 촬영을 시작했기에 영화 초반 10분 정도는 음성 기록과 사진, 그리고 8mm 필름 영상밖에 없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배경음악을 사용하는 것은 관객의 인상을 의도적으로 유도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 그렇다고 음성 기록이 들어가는 부분을 제외하면 약 10분 동안 무음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영상만으로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정보는 음성을 통해 전달하기로 했다. 다만 일반적인 내레이션 형식은 원하지 않았기에, 앞서 언급했듯 아사노의 도움을 받아 인터뷰 음성을 편집하는 방식으로 필요한 정보를 전달했다. 직접 촬영한 영상을 사용할 수 있게 된 2001년 이후 부분은 가능한 영상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려 했고, 영상만으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정보에 한해 최소한의 자막을 사용했다. 영화의 재미란 관객이 영상과 소리 속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발견하는 데 있다. 제작자의 의도를 직접 전달하면 이는 외부에서 의미를 강요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반면 관객이 스스로 깨달은 것은 내면에서 나온 것이기에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된다. 이 차이는 매우 크며, 그렇기에 영상 이외의 정보는 가능한 한 적게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 영화의 오프닝에 이러한 문구도 띄웠다. “이 영상은 누나가 조현병이 된 이유를 밝히려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조현병이 어떤 병인지를 설명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의사와 같은 전문가가 영화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할까.
내가 이해하기로 조현병의 발병 기전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조차 원인을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내가 “누나의 조현병 발병 원인은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관객은 이 영화를 보며 자연스럽게 원인을 찾고 싶어 할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처음에 그렇게 원인을 찾으려 해도 의미 없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었다. 처음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감수도 부탁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영화의 기획 의도를 설명하자 돌아온 반응은 “매우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의사의 우려가 타당하다고 느꼈고, 결국 감수를 요청하지 않기로 했다. 그 덕분에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는 더욱 분명해졌다고 생각한다. 만약 의사의 감수가 들어갔다면 영화에 조현병이라는 질환에 대한 설명이 추가되고, 치료하는 의사의 시각 역시 함께 담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만들고자 했던 영화가 아니다. 나는 이 영화가 조현병에 걸린 누나에 관한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곁에 있던 부모님과 나 자신에게 있었다. 이 영화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과 마주한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기록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한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의 이해와 수용 역시 매우 중요한 문제다.
- 이제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정리하고 싶나.
올해 1월에 영화와 같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거기에도 썼듯 누나가 가장 빠른 시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2008년, 누나가 정신과병원에 입원했을 때 증상을 호전시키는 효과가 있는 향정신성의약품을 찾았다. 그 약이 일본에서 언제 승인되었는지 찾아보니 1996년이었다. 만약 그 무렵 누나가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면, 그 약을 12년이나 더 일찍 사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1996년 당시 나는 이미 집을 떠나 있었기에 가족과의 접점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선 1992년, 대학 4학년이었을 때 학생상담실에서 만난 상담사의 권유를 계기로 부모님을 설득해 누나의 치료를 시작하려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로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만약 그때 치료가 시작되었다면, 1996년에 효과적인 치료로 이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나와 부모님은 제대로 대화하지 못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기보다 각자의 생각만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은 부모님이 왜 그렇게 정신과 진료를 꺼리셨는지, 그 이유를 더 깊이 들었어야 했다. 누나의 목소리도 있었고, 아버지의 목소리도 있었고, 어머니의 목소리도 있었으며, 나 자신의 목소리도 있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 어쩌면 이 영화를 만드는 일은 아들, 남동생, 그리고 다큐멘터리 감독의 자리를 계속해서 오가는 동시에 그 셋 모두로 살아가기 위해 싸우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테다. 그럼에도 영화를 완성해 공개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나.
어릴 때부터 자존감이 높은 편이었다. 부모님은 나를 항상 소중하게 대해줬고, 누나도 정말 다정했다. 그래서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언젠가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자연스럽게 믿고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또 하나의 중요한 경험은 애니메이션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의 원작인 어슐러 K. 르 귄의 소설을 읽은 일이다. 그 책에서 “정면으로 마주하라”라는 대사가 나오던 순간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깊이 남아 있다.
- 일본 영화학교를 다녔고, 애니메이션 제작의 꿈도 가졌었다고 들었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마음을 붙잡아준 영화의 목록이 궁금하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빅토르 에리세, 사사키 쇼이치로, 미야자키 하야오, 프레더릭 와이즈먼, 페드로 코스타, 오가와 신스케, 소다 가즈히로, 쓰치야 유타카 감독에게 영향을 받아왔다.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인 고 이강길 감독에게도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영화학교 시절 친구였고, 나는 줄곧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어부로 살고 싶다-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2001)은 도쿄의 환경영화제에서 관람했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편집할 때 사용한 책상도 이강길 감독이 일본을 떠나며 내게 준 것이다. 한국 개봉에 기해 서울에 방문할 때 그의 묘소를 찾아 참배할 예정이다.
- 차기작에 관해 귀띔해준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와 병행해 제작해온 아사노 유미코의 첫 연출작 <유호, 노 보더>도 올해 극장에서 개봉했다. 나는 프로듀서로서 참여했다. 주인공인 아사카 유호가 장애인이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복합적인 차별을 겪으면서도 스스로 길을 개척해온 과정을 기록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약 13년 동안 메이지 시대에 연어를 잡을 권리를 일본 정부에 침해당했다며 정부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아이누(홋카이도 선주민) 공동체를 기록해왔다. 미국에서는 1975년 재판을 통해 인정된 권리이지만, 일본에서는 최근 아이누측의 패소가 확정되어 안타깝다.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 호주를 취재하며 알게 된 바로는, 일본 정부가 아이누 민족에게 행한 일은 역사적인 잘못이며, 그 잘못은 현재까지도 바로잡히지 않았다. 현재 그 작품을 편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