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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님, 지금 회사에서 어떤 고민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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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압박면접? 무례함?
위치도 업무도 마음에 드는 곳에 면접을 보고 왔는데요 걸리는게 두 가지 있습니다 1. 특이한 면접방식 전 회사 홈페이지와 재무제표를 화면에 띄워놓고 면접자한테 물어볼 필요가 딱히 없는? 것들을 물어보더라구요 예를 들면 법인을 왜 여러 개로 나누어서 운영하는지 매출이 왜 안나왔는지 등등.. 참고로 저는 2-3년차 경력직입니다 2. 입사율 128%(45명), 퇴사율 97%(34명) 퇴사율이 많이 높습니다
일희일비하지않기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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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캘린더 초대 수락 안하는 사람의 심리?
같이 일하는 사원급 직원이 구글 캘린더 초대 수락을 안합니다. 팀장님이 초대한 미팅은 물론이고, 동료와 함께하는 미팅, 외부 협력사와 하는 미팅도 그 직원만 캘린더 수락이 안되어있어요. (회의에 참석은 꼬박꼬박 합니다.) 그런데 또 이상한 건… 식사 약속을 잡거나 본인이 주최하는 미팅이 있을 땐 ‘제가 캘린더 초대로 스케줄 넣어둘게요~’ 하고 초대는 잘 보냅니다. 초대 받은 동료들은 다 수락하구요. 그래서 본인도 초대 수락 메일링을 받으니 수락이라는 기능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 것 같은데.. 참석하는거면 참석한다는 표시를 하고 신경을 쓰든지 신경 쓰는 척이라도 하면 좋을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너무 깐깐한 걸까요..? ㅎㅎㅠㅠ
ㅎㅍㅁㅇㄹ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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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든 소셜리스닝 평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바인더입니다. 제가 직접 만든 소셜리스닝 페이지이며 현업에 계신분들의 의견을 구하고자 글을 썼습니다. 기능은 매일 루틴하게 체크하는 고객의 목소리를 자동화 업무로 바꾸는 툴입니다. 첨부이미지 보시고 현업에 쓸만하실지 댓글로 의견 부탁드립니다. <<중고나라와 번개장터 고객의 목소리 데이터>>
홍보마케터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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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면 항상 등이 아파요. 이런경험 해보신 분들 계신가요..?
얼마전부터 자다가 등이 아파서 깹니다... 이런 경험 있으시분들 계신가요...?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조언 좀 부탁드립니다 ㅠㅠ 단순 운동부족일까요..?
스마트한노력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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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관리에서 PE관리
안녕하세요. VC관리로 꽉채운 6년차입니다. 저만 안주하고 있는 것 같아 이직처를 알아보고 있는데, 아는 분이 PE기회 있으면 가보라고 추천해주셔서요. 마침 딱 PE관리팀 자리를 헤드헌터분이 제안해주셨습니다. 커리어적인 측면이나 장기적으로 봤을때 PE로 가는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적용법도 달라 다시 배워야하겠지만 그 부분은 자신있습니다.
브린이벗어난다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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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가 올라갈수록 specialist 와 generalist 뭐가 맞을까요?
안녕하세요. 사이버 보안 분야에 6년정도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을'의 입장에서 일하다보니 개인정보보호 문서보다는 기술쪽으로 주로 일하면서 업무 범위가 넓어졌는데요. 6년차정도 되니 저의 정체성에 대해 조금 혼란이 오더라구요. 이직을 해본 적은 없는데 최근 다른 회사 JD를 보면 몇번 찍먹 해본 적도 있거나 경험해본 것들은 많지만 제가 각 분야들에 대해 깊이가 있다고 생각이 들진 않더라구요. 연차가 쌓일수록 저만의 전문성을 가져야할거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현재 회사에서는 힘들거같고, 요즘 여러 사업을 하다보니 또 새로운 것만 계속 찍먹하는거 같아 고민이 많습니다. 저연차일때는 이것도 다 경험인거같아 즐겁게 일했는데 요즘엔 제 연차에 맞는 경력을 가지고 있는건지 고민이 많아지네요. 이 업계에서 오래 일해보신 선배님들의 의견 및 조언이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mock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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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모델러 (공간- 건설분야) 업무 강도 어떠세요?
미술쪽 큐레이터하다가 공간 디자이너로 넘어왔는데 거의 매일 야근에, 한달에 1/3은 철야, 매달 2회는 지방 출장이네요 .. 버티기 힘들어서 이직하려는데 다른 곳도 이러나요..?
byenye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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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구독 전화
받으시는 분 계신가요ㅠ 동종업계고 모두 어려운 처지라 십년전에 구독했었는데 그 이후 나이 지긋한 부장뻘 되시는 분들이 계속 거시는데 매몰차게 매번 거절하기도 미안하네요ㅜㅜ 기사는 좋아했지만 자꾸 밀려서 쌓아두었거든요 이제 오프라인 잡지는 점점 안 보는 추세인데 전화영업 말고 다른 활로를 개척해보시는게 좋겠어요 매번 너무 죄송하구 민망하구 그러네요ㅜㅜ
@시사IN미디어(주)
손예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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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한살 많은 사장 자꾸 나한테 이상한 소리하네요
솔직히 마음에 담아두기 싫은데 진짜 기분 나쁜 개소리처럼 들리는거 다 모아보고 있습니다 유부남 사장인데 1. 일본 여자가 좋다 일본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 이러니까 "일본여자 바람많이 핀다"고 안좋게 보더군요 무슨 일반화를...;; 2. 시추 죽고나서 또 같은 견종 시추 키우니까 사장이 대리만족으로 키우는줄 아네요. 대리만족으로 키우는게아니라 긴 텀(10년 가량)이 있었고 원래는 포메라니안 키우려고 했는데 애견샵에서 가장 반기는게 시추길래 키우는건데 사정도 모르면서 ㅉㅉ 당시에는 그냥 죽고나서 텀이 길었다고 답변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기분이 좀 불쾌했네요 3.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걸 자꾸 안좋게 보네요 서울집-회사 거리 40분이고, 돈도 못모아서 없고 월급 240충인데 어떻게 독립하라는건지... 하루하루 이런소리 들으면서 살아야되나 자괴감만 드네요 왜이러는지 모르겠음 매번 이런 류의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야되나 싶던
인생망함
동 따봉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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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에 대해서
안녕하세요 작은 회사로 시작해서 대기업 이직 후 현재 수습이 종료된 직장인 입니다 이직 후 수습 기간동안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여 정규직 전환이 안될 줄 알았는데 운 좋게 전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여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해서 팀원들에게 미안함 마음이 계속 누적되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메일을 볼때마다 글자가 안읽혀서 숨이 막히고 글 쓰는 행동에 심각한 어려움을 느껴서 현재는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행위도 너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다니고 싶은 이유는 현재 회사의 업무 퀼리티가 추후 저의 커리어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회사를 다녀서 지금 상황을 극복하고 싶지만... 팀원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저의 몸이 망가지고 있는것을 체감하면서 다니는게 맞는건지 아닌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파닥몬같은아구몬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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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스토리) 근대 일본의 설계자 료마를 아십니까?
사카모토 료마는 1836년 일본 도사번(현재의 고치현)에서 비교적 하급 사무라이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검술을 익혔고, 청년 시절에는 에도(지금의 도쿄)로 올라가 무술을 연마하면서 세상에 눈을 뜨게 됩니다. 하지만 단순한 무사로 살아가기보다는, 당시 격동의 일본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시대는 막부 말기로, 일본은 개항 이후 서구 열강의 압력과 내부의 혼란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막부 체제는 점점 힘을 잃고 있었고, 각 지역 번과 사무라이들 사이에서 일본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료마는 전통적인 무사 신분의 틀을 깨고, 일본 전체의 미래를 고민하는 혁신가로 변모했습니다.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이른바 ‘사쓰마와 조슈의 동맹’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원래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서로 대립하는 세력이었지만, 료마는 일본이 근본적으로 개혁되려면 이 두 세력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점을 간파했습니다. 그는 양쪽을 설득하여 동맹을 성사시켰고, 이것이 훗날 막부 타도의 결정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또한 료마는 ‘해원대(海援隊)’라는 조직을 만들어 무역과 정치 활동을 병행하며 근대화의 길을 모색했습니다. 단순히 정치 권력의 쟁취가 아니라, 일본이 근대 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역, 산업, 해운을 포함한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는 그가 단순한 무장이 아니라 사상가이자 실천가였음을 보여줍니다. 사카모토 료마가 일본 근대화의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단순히 그가 막부 타도의 동맹을 성사시켰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그는 일본 사회가 전통적 신분제와 봉건 체제에 갇혀 있을 때, 한 세대 앞선 사고를 보여주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첫째, 그는 국가를 ‘번(藩)’이라는 지역 단위가 아니라 ‘일본 전체’라는 개념으로 보았습니다. 당시 많은 사무라이들은 자신이 속한 번의 이익에만 충실했지만, 료마는 이미 일본을 근대적 ‘국민국가’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도사번 출신의 하급 무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쓰마번과 조슈번 같은 강력한 세력을 설득하여 연합시켰습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정치적 교섭을 넘어, 일본이 하나의 통합된 국가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둘째, 그는 무사로서 칼만 휘두른 것이 아니라 경제적, 제도적 기반을 고민했습니다. 해원대의 창설은 단순히 무역 활동을 넘어 일본이 세계와 교류하고, 군사력과 경제력을 근대적으로 재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점에서 그는 일본판 ‘기업가형 혁신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살던 시대에는 아직 ‘근대 경제’라는 개념조차 낯설었는데, 그는 이미 해운과 상업을 국가의 힘으로 연결시키려 했습니다. 셋째, 그는 구체적인 개혁 구상을 제시했습니다. 료마가 남긴 ‘선중팔책(船中八策)’은 일본의 근대 국가 체제를 구상한 문건으로, 거기에는 의회 설립, 신분제 철폐, 근대적 군제 개편, 국제무역 확대 등 훗날 메이지 유신 정부가 실제로 실행한 핵심 정책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단순한 행동가가 아니라,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한 사상가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개인적 면모가 일본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권위와 위계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다양한 계층과 교류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던 그의 모습은 일본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낡은 질서에 맞서는 청년 혁명가’이자 ‘유머와 인간미로 무장한 지도자’로 기억됩니다. 이런 점에서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 근대화의 방향을 제시한 선구자로, 제도적으로는 아직 불완전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이미 ‘근대 일본’을 살아낸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지금도 일본에서 자유, 혁신, 청년 정신의 상징으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근대화에 대한 료마의 상징성은 때때로 과장되기도 합니다. 근대 일본은 그가 사망한 뒤에도 여전히 혼란과 불평등 속에서 성장했고, 료마 혼자서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그의 공적은 ‘선도적 구상과 정치적 연합 촉진’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막부 타도와 번 연합의 성과는 여러 사람과 사건들의 복합적 결과였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비전과 실행력, 그리고 시대를 앞선 사고는 이후 일본 근대화의 방향을 상징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료마의 개인적 삶 또한 당시 일본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그는 가난한 하급 무사로 태어나 신분적 제약과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자유로운 인간관계를 추구했고, 권위와 격식을 거부하며 다양한 계층과 교류했습니다. 이러한 성격 덕분에 그는 새로운 정치적 연합을 만들고, 다양한 계층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검술 능력은 단순히 무사로서의 명성을 넘어, 정치적 협상에서도 상대방에게 신뢰와 무게를 부여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의 검술은 기술적 숙련만이 아니라, 냉정한 판단력과 위기 관리 능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지표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너무 짧았습니다. 1867년, 메이지 유신이 막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 그는 교토에서 암살당합니다. 범인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나이 33세. 그의 죽음은 일본 근대화의 길을 앞서 보여주던 젊은 지도자의 안타까운 최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카모토 료마는 여전히 일본 역사에서 상징적인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무사 계급 사회의 틀을 깨고, 일본을 하나의 근대 국가로 재편하려는 큰 그림을 제시한 인물입니다. 그의 장점은 혁신적인 사상, 뛰어난 조정 능력, 그리고 인간적인 매력이었고, 단점이라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체계적인 조직 기반이 약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료마의 삶과 활동을 통해 당시 일본 사회가 단순히 봉건적 질서에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도 변화를 꿈꾸고 국제적 감각을 가진 인물들이 있었고, 그들의 행동은 근대 일본의 토대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무사 출신으로서 검술의 달인이었지만, 동시에 경제, 외교, 정치의 감각을 갖춘 전략가였던 것입니다. 결국 사카모토 료마는 검술과 무사적 능력을 기반으로 한 개인적 용맹, 시대를 앞서간 국제적 시각과 정치적 통찰, 그리고 구체적인 개혁 구상을 결합함으로써 일본 근대화의 길을 열었습니다. 그의 삶은 단순한 전설이나 낭만적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당대 일본 사회 속에서 현실적으로 존재했던 혁신과 용기의 실체였던 것입니다. 사카모토 료마는 메이지 유신의 ‘숨은 설계자’이자, 일본 근대화의 꿈을 미리 꾼 혁신가였습니다. 그의 짧지만 강렬한 생애는 오늘날에도 많은 일본인들에게 자유와 개혁의 상징으로 회자됩니다.
X전략지식
금 따봉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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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 가전제품 시장도 하향세인가요?
https://n.news.naver.com/article/015/0005186280?sid=101 LG전자 희망퇴직 뉴스보니 단순 일회성으로 보이질 않네요
반박시네말이맞음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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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1년, 창업 2년한 개발자의 인턴지원
개발스탯은 Next.js, nestjs 이렇게 풀스택 주력이지만 스타트업과 창업으로 인해 제 스킬에는 여러 개의 거품이 꼈어요. Unity3D, PHP, React-Naitve, Three.js부터 그래픽 툴인 블렌더,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프리미어 프로, 에프터 이펙트 까지 전혀 개발 업무가 아닌 것도 창업을 하면서 다 감당하느라 정작 취업하려고 보니 많이 꼬였네요. 어디로 가야할지.. 이 경력으로 2년 경력직 공고 보는 것도 무리인 것 같고 어디로 가야할지.. 공고에선 1년 경력직으로도 헤드급으로 많은 걸 요구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완전 인턴으로 가는 건 지금까지 세월이 아깝기도 하고.. 99년생입니다. 학생 때 아는 분 밑에서 방학과 휴학을 통해 스타트업에서 1년 일하고, 생산력 믿고 2년간 창업했다가 현실에 부딪혀 취업하는 사람입니다..
감성로봇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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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지갑 이직선물로 괜찮을까요︖
안녕하세요 이번에 남편이 이직에 성공하여 축하선물을 해주고싶은데 여전사 기업금융 영업직 분들 명함지갑 많이들 쓰시나요︖ 지갑안쓰고 폰만들고 다니는 편이고 현직장에서도 명함지갑들고다닌걸 본적이없긴해여 그래도 이직하고 외부로 영업다니면 명함지갑이 필요할까하여 고민중입니다~ 그래도 브랜드 명함지갑 하나정도는 있어야 좋겠죱︖ 다른 선물 아이디어 공유주셔도 고맙겠습니다!
안녕내일은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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