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하다 특종한 썰
때는 2019년, 버닝썬이다 조국 사태다 뭐다 대한민국이 시끄럽던 시절..
A사건에서 특종한 썰을 풀겠습니다.. (신상이 특정될 수 있으므로 사건 명칭은 익명으로 하겠습니다. 양해 부탁 드립니다.)
당시 저희 회사뿐 아니라 모든 언론사가 해당 사건에서 특종을 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습니다. 워낙 큰 사건이기도 해서 핵심 요인들마다 기자 수십명이 따라붙는 건 기본이고, 관련 변호사들에게까지 기자들이 붙었죠.
저도 해당 사건 취재팀에 속한 기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어느 사건이 쉽겠습니까만.. ㅠㅠ 이 사건 취재는 정말 유독 안 풀렸습니다. 핵심 인물들은 완전히 입을 다물었고, 수사기관들에서도 뭐 하나 흘러나오는 게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특종들은 매일 매일 쏟아졌습니다. 저희가 아니라 다른 회사들에서요. ㅋㅋㅋ 데스크에선 날마다 불호령이 떨어졌고 시간이 갈수록 뭐라도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팀원 모두에게 점점 심해졌습니다.
제가 따라붙던 건 주로 변호사들이었습니다. 워낙 큰 사건이라 5명 정도의 변호사들을 관리했는데 뭐 하나 잘 풀린 게 없었습니다. 잡상인 취급에 문전박대는 당연하고, 아예 쳐다도 안 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손님인 척 태연하게 들어갔다가 쫓겨난 적도 있고.. 정신 없이 쏘다녀야 하니 매 끼니 굶는 건 다반사고, 하염 없이 대기하다 자정 훌쩍 넘겨서 집에 가거나 아예 모텔이나 여인숙에서 자기도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되는 게 진짜 1도 없으니 죽을 맛이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그중 정보를 좀 흘리는 변호사를 알게 됐습니다. 저한테 흘린 건 아니고 ㅋㅋㅋ 그날도 어김 없이 인사차 들렀다가 묘한 분위기를 감지했습니다. 문 밖에서 면담 대기하는데 앞서 면담 중인 다른 기자가 "진짜 진짜 감사해요"하는 소리를 듣게 된 겁니다.
제 면담 차례가 왔습니다. 이렇게 변호사들한테 뻗쳐대던 게 어언 한달쯤 됐었는데 저도 억하심정이 생겨 대뜸 이렇게 얘기했어요. "변호사님, 서운하게 왜~~ 제가 변호사님이랑 그래도 이렇게 미운 정 고운 정 든 게 그래도 한달이 넘는데~ 갑자기 나타난 새 기자한테만 기사거리 주시고 너무 하시네~"
그랬더니 돌아온 답은 "아니, 기자님이 저한테 뭐라고 알려줘요 ㅋㅋㅋ 쟤는 내가 알고 지냈던 대학 후배예요 ㅋㅋ"
뭐 순간 할말이 없더라고요.. 억하심정에 별 대꾸도 못하고 나왔습니다. '하.. 이렇게 인맥도 학맥도 지연도 없는 상황에서 내가 계속 이런다고 뭐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현타'가 왔습니다.
그래도 뭐 어떡합니까? 뾰족한 다른 수가 없으니 계속 삐댔습니다. '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더 독하게 마음을 먹었죠. 더 냉랭하게 대할수록 더 생글 웃고, 얼굴에 철판을 더욱 더 깔아 달라붙었습니다. 나중엔 가벼운 티타임도 안 받아주고 출입도 안 시켜주더군요. 아무도 없을 때 무단으로 들어가 보기도 했습니다. (그냥 로비에 들어가서 손님처럼 대기하고 앉아있었어요.)
그 변호사가 돌아와서 격분하더군요. “야 너 경찰에 진짜 신고한다?” 원래 존댓말은 계속 써줬는데 그때부턴 반말로 상대하더군요. 이후론 로비에도 못 들어오게 비서든 변호사든 자리를 비울 땐 외부 문을 아예 잠가버리더군요.
상황이 그렇게 되니, 좀 서글펐습니다. 용 쓴다고 쓰는데 뭐 하나 건지는 건 아무 것도 없고. 근데 여전히 다른 매체들에선 특종이 빵빵 터지고.. ‘난 대체 뭘한 걸까 그간. 이 개고생을 뭐하려고 한 건가. 난 왜 이렇게 무능한가..’
그 로비에서 쫓겨난 날, 새벽 2시까지 변호사를 기다렸습니다. 동료들이랑 금요일이라고 모처럼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더군요. 숙취에 도움 되라고 헛깨수 6병 정도를 사서 주려고 했는데, 뵙기가 쉽지 않더군요. 미안하기도 하고 뭔가 제 자신도 비참하고.. 그래서 건물 밖에서만 서성대다가 사무실 문고리에 비닐봉지를 걸어두고 나갔습니다. 문자 한통과 함께요. "변호사님 매일 매일 괴롭혀드려 죄송합니다.. 제 사명과 인간적 죄송함이 부딪혀서 참 괴롭네요.. 변호사님이 절 박대하거나 그래도 변호사님이 밉지 않습니다.. 변호사님도 그래두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날, 여전히 같은 일상이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 사무실로 갔고, 그날은 그 변호사님이 다른 재판들을 도느라 하루종일 멍하니 대기하며 허탕만 쳤습니다. 그날 밤, 여자친구가 저를 보러 왔고 그 변호사 사무실 건물 앞 도로 연석에서 여자친구가 사온 삼각 김밥을 함께 까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연석 앞으로 누군가 내리더군요.
"야 ㅋㅋㅋ... 왜 불금 저녁에 이러고 있어! 이놈아 뭐가 궁금한데?!!" 저랑 여자친구 둘이서 궁상 맞게 있는 모습을 보자, 한달 넘게 닫혀 있던 그 변호사의 마음도 입도 열렸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너덧개의 특종을 하게 됐고 나중엔 상도 받게 됐습니다. 이후로 법률적인 문제가 있을 때 종종 무료로 상담도 받았구요 ㅎㅎ
지금은 기자로서 그때 같은 열정도 에너지도 없습니다. ㅋㅋ 다만 그때 왜 그렇게 미친듯 매달리고 쏟아부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그때가 가끔 그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