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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TJ분들 계신나요?
저의 MBTI가 궁금해서 무료 검사를 받았는데 ISTJ가 나왔습니다 저같은 ISTJ가 계신가요? ㅋㅋ
초코베이베
동 따봉
2022.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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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1천만원 이상 씩 연봉 계속 올리기🔔
https://app.rmbr.in/rOuzclGl3rb 이전에 올렸던 글 입니다. 이직을 권장하는 글 입니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불편한 내용 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오래 된 직원이 편 할 뿐이지 실적이 좋은 것도 아니며 문제를 일으키지만 눈감아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리멤버 커뮤니티 자체가 이직을 강요하는 것 같지만 그만큼 많은 사업주 및 임원들이 방만한 경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리멤버 커뮤니티에서 평상시 받지 못하는 홀대를 받기위해서 애용 합니다. 그만큼 이제는 느낄 수 없는 다양한 시야를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좀 더 잘 먹고 좋은 곳에서 머물기 위함 이지요. 꿈도 그렇고요. 저는 중학생 부터 일을 했습니다. 하는 것 마다 웃돈을 몰래 받았어요. 시작은 PCB 천공 공장 이었지요. 30년 전 입니다. 시급 600원 이었습니다. 아줌마들보다 시작부터 2배를 했고 보름이 지나자 3배의 생산량을 채웠습니다. 첫 달에 월급 외로 5만원을 챙겨 주시데요. 둘째 달에는 10만원을 더 주셨습니다. 이렇게 번돈은 누나들 학비에 보탰습니다. 아프게도 선친의 작고로 형편이 많이 좋아져서 한동안을 누리다가 고교시절에도 용돈이 필요하면 주말에 인력시장에 나갔습니다. 당시 만 해도 신분증 같은 것 확인 안했고 즉시 현금을 받을 수 있었지요. 5시 되면 다들 환복하고 돈을 받으러 가는데 저는 어리기도 하고(예의상 순서) 성향이 깔끔해서 남아있는 부자재를 정리정돈 하였습니다. 현장소장이 그런 모습을 보고 5만원 일당에 2만원을 더 붙여 주더군요. 주말에 이틀 일하면 삼일치를 받은 겁니다. 어느날은 두배를 주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안 것인데, 공사현장 비용 관리는 소장 재량) 성인이 된 후로는 완벽한 자립을 했습니다. (집 잘 살던 시절) 학비는 물론이고 당시 티뷰론을 새차로 내돈내산하였지요.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에 운동을 꾸준히 했었는데 친하게 지내던 코치형이 그만둔다고 하고 출입구에 “코치구함” 써있기에 제가 알바 개념으로 하기로 했죠. 고교시절 갑자기 잘 살게 되고 인문계 지독한(6~24) 수업량을 소화하며 110kg 되었었는데 운동을 하면서 73kg 까지 감량하는 모습을 회원들이 목격 했기에 코치를 하기 전 부터 아줌마들 한테 인기(동기부여 비결전수)가 많았으니 관장도 흔쾌히 수락을 했습니다. 집 앞 이니 오픈(05~09) 마감(10~12) 90만원. 몇 달 하다가 방학 기간이 되었는데 관장이 그만 두면서 제가 관장이 되어서 200만원을 받게 됩니다. (관련 자격 모두 취득) 당시에는 체육관 일하는 코치들이 청소도 직접 했는데 워낙 깔끔해서 매일 바닥 청결 유지와 운동 하면서 기구의 유지보수도 철처히 하니 대표가 사업 제의를 합니다. 기계제작하는 것이 본업 이었던 대표는 가끔있는 영업과 납품을 함께 하자는 것이죠. 게다가 체육관 회원수가 3배로 늘어나며 성과급이 추가되어 3백만원을 받게 되었죠. (주변 체육관 보다 깨끗하니 당연한 것) 심지어 병역 후 대형 스포츠센터의 러브콜, 피크타임 스타 강사를 했습니다. (당시에는 자격증 보유자 극소수) 동네 헬스장 관리와 납품을 하면서 대형센터의 피크타임(18~20) 80만원이 추가 되었고 대형센터는 지도 만 하는데다가 규모가 있으니 회원들도 여유있는지 친절하게 하면 용돈 쓰라도 몇 만원씩 주는데 수십만원이 되는 날도 더러 있었습니다. 이렇게 10대 때 년 400만원에서 시작하여 (부수입 까지 500) 20세 1200 21세 2600(부수입 까지 4천) 군대 다녀 온 후 다시 원복하여 지내던 중 스카웃 된 센터 병행으로 24세 4000(부수입 까지 5천) 이미 25세 때 통장에 1억 가까이 모았죠. (이 때, 모기지론 했으면 집 수십채~ 아까비) 이 때 큰 변화가 있었는데, 운동을 하다가 양쪽 무릅 모두 연골이 찢어지면서 2년간은 모아둔 돈으로 법 공부를 한답시고 전부 썼습니다. (공부 = 돈) 어려서 부터 돈을 벌었던 경험 탓에 뭘 해도 잘 번다는 자신이 충만했기에 걱정 한 적 없던 것 같습니다. 돈이 다 떨어져서 낙향하니 큰누나가 자동차 설계를 하라며 시니어를 소개시켜줬고 (기아-현대 통합기 퇴직자) 엔지니어 인생이 시작 됩니다. (그 전에도 엔지니어 였던 것 같기도) 26세 1500 지금 돌이켜 보면 최저 임금보다 못했던 것 같은데 월급이 107만원 이었던 것은 분명 합니다. 이렇게 3년간 동결 입니다. (새로운 시작은 늘 소득 감소를 각오) 근무하면서 후임을 저보다 많이 받게 하면서도 묵묵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전공이수를 병행 했습니다. (이전 전공 상이) 월급이 밀리거나 미지급 되는 경우가 많아서 일요일에는 웨딩카기사 알바를 했는데, 하루에 적으면 30 많으면 120 생활비 와 학비 충당하면서 적금은 무조건 의무적으로 했는데 제 재무 노하우는 1천만원 모일 때 마다 예치 하는 것. (당시 만 해도 년 15% 상품이 있었다) 28세 3700 박봉에 야근과 철야가 일반적인 삶에서 전공이수를 마치고 학위를 받으니 이직하면서 설계자로 일반적인 임금을 받게 되었죠. 29세 부터 30세 까지는 아는 바보형 도와 준다며 동업 했다가 돈도 못 받고 변절자 소리 들으며 헤어졌어요. 31세 6000 5년의 고난은 보상이 충분했습니다. 경험이 쌓인 것이죠. 32세 7000 이직하면서 1천 올렸는데 되더군요. 33세 때는 자동차 할 만큼 했다고 항공을 하러 가면서 석사 이수도 병행. (지방생활에 학위 하느랴 돈 다 씀) 34세 8000 다시 자동차로 가면서 35세 부터는 사업을 시작 했습니다. 사업은 재택근무를 하면서 병행하였고 재택근무 하는 회사는 7년간 6배 성장. 최우수사원 표창도 받으며 유지했지요. 그 후로 10년 동안 자동차, 항공우주, 조선, 건축 등을 망라하며 지냈습니다. 직장인 생활을 할 때는 년 1천만원 정도씩 올렸습니다. 물론 이직으로 이었죠. (20여년 전 이니 1500정도?) 이직을 한 이유는 오로시 꿈을 위해서 입니다. 꿈(기계)을 쫒다보니 처절하게 접근을 하며 관련 학위도 하고 교수 넘어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연봉이 상승을 했던 겁니다. 제가 하는 업무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고 회사에서 누구도 채워주지 못하니 학교를 다니고 학원도 갔지만 추구하는 바가 업무역량 이었기 때문에 (어느 박사들도 채우주지 못 함) 좀 더 업무 역량이 높은(높아 보이는) 기업으로 이직을 했던것입니다. 결과는 비슷한 것도 다른 것도 있지만 “사원이 근무를 하면서 업무가 익숙하고 모르는 것에 대한 갈망이 자연스럽게 높아지면서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으면 이직하게 되는 것” 입니다. 지속성을 위하여 단계별 적임자가 있으며 선행을 하면서 따라오게 하여야 하는 것. 회사의 규모와는 별개이다. 저도 회사를 운영 합니다. 동료(직원)가 궁금해 하는데 제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한국에서 그곳이 어디라도 찾아가서 해결을 해줍니다. 30년 넘게 사회라는 세상에서 돈을 받으며 일 이라는 것을 하며 돈 참 많이 벌었습니다. 평균으로 계산해보니 년 1천만원을 계속 늘리고 있었네요. 지난달에 수천만원 개인 소득세 냈습니다. 정부 사업도 단계별, 규모별로 150억 짜리 까지 직접 하면서 눈먼돈? 이라는 것들도 쫒아 봤습니다. “성장” 돈은 따라 오더라. 돈 때문도 있겠지만 일 열심히 탐구하면 돈은 따라 오더라. 모난 돌은 두드러집니다. 모난 부분이 업무적이면 눈에 띕니다. 누군가는 봅니다. 근무지 상사 일 수도 거래처 사장 일 수도 있습니다. 한두번 보다가 지속적이면 월급 외(형평성?) 더 챙겨 줍니다. 거래처에서 스카웃 제의나 프로젝트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열심히 하면 잘 살게 됩니다. 결국 모두 내 것 입니다.
움직이는모든것
은 따봉
2022.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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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출장 중 납치(??)미수 사건 썰
어차피 몇 가지 글을 보면 내가 누군지 알 것 같아서 그냥 실명으로 쓰려다가~ 그래도 썰은 익명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오늘은 사회초년차 때 중국 출장 중에 경험을 한번 이야기 해볼라고~ 앞선 글과 맞찬가지로 썰은 반말체가 더 적정한거 같아서 그냥 반말로 쓰께~ 형들이 이해해줘 ㅎ 때는 바야흐로 2015년 직장생활 2년차에 첨으로 해외 출장을 갈 기회가 생겼지 뭐야~ 상해에 해외법인이 있었는데, 업무진단 및 내부회계 감사를 해야한다나 뭐라나. 우와 나도 회사 돈으로 해외를 다 나가보고 뭔일이냐~ ! 엄청 좋아했는데 ㅎ 뭐 출장은 어디까지나 일이더라고 ㅠㅠ 낮에는 해외법인 사무실에서 업무 돌아와서 밤에는 호텔 방에서 보고서 작성....결국 한국에서처럼 매일 새벽까지 야근하는 출장 일정을 마치는 날 일이 일어난거야..... '중국동방항공' 아직도 잊을 수도 없는 그 항공사가....바보같이 오버부킹이 되었다는거징!! 우리 일행은 3명인데, 자리가 2개밖에 없다고 선택지를 주더라고... 1. 세명 모두 다음 날 첫 비행기로 돌아온다. 2. 두명은 먼저가고 1명만 남아서 다음날 첫 행기로 돌아온다. 윗 분들의 결정이 뭐였을지 대충 짐작가~~?? 본인들은 바빠서 먼저가야하니 막내는 남아있다 내일 비행기로 돌아오라더군 그렇게 나 혼자 중국에 남겨진거야...참고로 난 중국어는 전혀 못해~ 비즈니스 영어만 살짝~ 보상으로 공항 근처의 호텔과 소정의 위로금(30만원정도)이 항공사로부터 제공되었지 호텔에 들어오고 혼자 누워 있으니 너무 심심한거야~~ 이제 오후 4시밖에 안되었는데 호텔에만 있으려니....그래서 상해에 오면 꼭 가봐야한다는 외탄에 가보기로 결심을 해버린거야.... 상해 지하철을 타고 외탄까지가고 관광을 할 때까진 너무 좋았는데....아뿔사 막차 시간이 그렇게 빠를 줄 몰랐어...가게들은 다 문을 열고 있는 시간인데 지하철이 끊겼더라고(대략 9시~10시쯤이었던것 같아) 어쩌지 어쩌지 이러고 있다가 그냥 택시를 타면 되겠네 하고 역 밖으로 나왔어!(중국어도 못하면서 뭔 배짱인지....) 밖에 나오자마자 어떤 중국인 남자가 다가오더니 중국어로 뭐라뭐라 이야기를 하네....내가 못 알아 듣고 그냥 무심코 택시? 이랬더니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더라고 그래서 에어포트 아러고 아저씨를 따라갔어. 근데 이건 뭐지~~택시가 아닌 그냥 검은색 승용차 한대가 있더라고, 망설이는데 빨리 타라고해서 탔더니...갑자기 양 옆으로 덩치 좋은 아저씨 두명이 타고, 조수석에도 어떤 아저씨 한명 타더니 출발을 했어....손짓 발짓 섞어서 질문을 했더니 자기들도 택시, 택시 하는거 보면 택시 다같이 타고 가는거다...이런말인거 같았어.. 근데 뭐가 이상한거야.....1시단 넘게 가는거 같은데 계속가고 주변은 황무지고...절대 상햐공항으로 가는거 같진 않더라고... 아....이거 먼가 잘못 되었구나 싶으면서 머리 속에는 장기밀매, 인신매매 이런 단어만 잔뜩 생각나더라고~~아 망했다 이 짧은 인생은 이걸로 마지막이구나 싶으면서 그냥 무심코 담배를 꺼내서 옆에 아저씨한테 보여주면서 창문을 좀 내려달라고 했어...그리고 담배를 피웠지(당시까지도 중국은 아무데서나 흡연이되서 좋았어)~~ 그 순간 갑자기 차가 멈추었어~~!! 기사가 담배 냄새를 맡더니 자기도 피워보고 싶다고 한 가치만 달라는거야....람보르기니 아이스볼트....한국에서 가져간 담배였는데 뽕따 향이나는 담배였거든 그래서 그런지 급관심을 끌게 된거지 그렇게 길가에 다 같이 내려서 담배를 폈어~~ 그리고 나한테 담배를 더 달라고 하더니 내 가방에 있던 3갑을 다 가져가더니 뭐라뭐라 말하고 그냥 나는 길가에 버려둔채 가더라고... 대충 담배가 맘에 들어서 너 살려준다 이런 내용이 아니었을까 혼자 상상하면서 해뜰 때까지 길가에 멍하니 앉아있었어...그리고 날이 밝고 지나가는 시골버수 같은거 물어서 얻어타고 공항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바로 비행기타고 한국에 돌아왔지. 아직도 사실관계는 모르겠어~~ 진짜 납치 생각이 있었는지 뭐였는지도~ 그냥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지금 글 쓰면서 다시 그 때를 생각해봐도 등골이 서늘한거 보면.....많이 무서웠던 경험이었어
빠린
2022.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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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스타트업이라 쓰고 'ㅈ소'라 읽는다. #'0원'으로 직원뽑기
이야기는 편의상 반말 또는 독백체로 진행되니 양해부탁드립니다. 성원에 감사합니다. ■ 1부 '입사'편 : https://app.rmbr.in/hJaXpMqTYrb ■ 2부 '적자탈출'편 : https://app.rmbr.in/KG9hASPMZrb ■ 3부 '공금횡령'편 : https://app.rmbr.in/cyyqsHbb1rb ■ 4부 '연재중단'편 : https://app.rmbr.in/mIAoMnMj2rb - 팀장 직함을 받은 이후 퇴사 직전까지 했던 루틴 아닌 루틴이 있다. ​ HR업무, 그러니까 디자이너와 PD채용이다. 그 중 디자이너는 월에 2~4명씩 면접을 봤는데 퇴사율이 심각할정도로 높은건 둘째치더라도 회사가 만성적인 적자상태라 정직원으로 채용을 할수가 없었다. ​ 당연히, 촬영전문 PD 채용은 언감생심이었기에 ​ 평소와 같이 꾸역꾸역 망고보드, 미리캔버스(디자인툴)와 윈도우무비메이커(윈도우기본영상편집툴)로 1인 3역을 하던 중 '이러다 죽겠는데?'싶었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싶어 이것 저것 알아보는 도중 ​ [청년디지털일자리사업] 모집공고를 접했다. 타이밍 좋게 접수 마감일까지 2일정도 남았기에 부랴부랴 신청하고 기획서 제출 및 협약서를 날인해 등기발송했다. ​ 그리고 배정받은 인원 "2명" ​ 알바몬, 잡코리아, 사람인 등 생각나는 모든 플랫폼에 채용 공고를 돌렸지만 ​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디지털 일자리로 지원이 가능한 대상은 크게 3가지 요건이 충족이 되야하는데 1, 지원자의 나이가 만19~34세 일것 2. 대학생이거나 휴학생이 아닐것 (방통대 제외) 3. 사업자를 등록하지 않은 인원일것 1번과 2번에서 우수수 필터링이 되더라 전화 및 줌 면접만 20~30명 진행했고 대면 면접으로 5~10명을 진행했는데 결국, 디자이너만 반 재택조건으로 채용 할 수 있었다. ​ PD의 경우. 가끔 땜빵식으로 일하던 외주인원에게 정직원 채용 제안을 했다. 탄력근무를 미끼로. 기대없이 제안했지만 금방 OK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 PD가 딱, 한달 뒤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요?"라고 일이 너무 많다고 칭얼댈줄은 몰랐지만. ​ 만약 알았어도, 똑같은 행동을 했을거다. ​ PD가 없었다면 난 퇴근없이 회사에 말뚝을 박았어야 했으니까.. ​ 그렇게 확보한 지원금은 기본 지원금 200만원 * 6개월 * 2명 = 2400만원 ​ 또, 운이 좋게 복수의 협조기관이 협약되어 1명을 추가로 배정받았다. ​ 결과적으로, 채용 전부터 3600만원상당의 인건비를 세이브한 상태로 팀을 꾸릴 수 있었다. ​ 인원이 늘어감에 따라 업무효율성이 크게 늘었다. 우선 지출이 줄었다. 외부 스튜디오를 대관하더라도 인건비를 덜 수 있었고 ​ 업무가 없는 날에는 개인 영상의뢰를 받아 출장을 나가며 수입을 늘릴 수 있었다. ​ 출장과 스튜디오 현장 보조로 내부인원의 합을 미리 맞춰놔서일까? ​ 급조한 자체 스튜디오에서 외부 기업체 및 개인 대관을 야메로 브랜딩해서 이용객을 유치할 수 있었고 ​ 이사후 첫달부터 적자가 아니라 흑자로 스튜디오가 운영될 수 있었다. ​ If스토리로ㅡ 혼자서 스튜디오를 세팅하고 운영해야하는 처지였다면 어찌저찌 할 수는 있었을것같다. (단, 아무것도 모르는 그 상황에서는 3주정도 밤낮없이 노트북을 붙들고 있지않았을까? 아찔할 뿐이다.) ​ 그래서, 매출에 따른 분배가 없는게 난 팀원에게 너무 미안했다. 해줄수 있던건 내 자비로 명절을 맞아 인원들에게 유과세트를 돌린것정도? (솔직히, 명절선물은 대표가 챙길줄 알았다.) ​ 0원으로 구성한 멤버들 덕분에 나름 내적으로 많이 위로받았다. '이제 혼자는 아니구나'싶어서 ​ 그랬던만큼 디지털일자리사업이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지는걸 보며 인원들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 난 내가 타고있는 배가 순항할줄 알아서 권했는데, 실상은 가라앉는, 침몰중인 배였으니까. ​ 디지털 일자리사업은, 미래청년으로 바뀌었다가 또 한번 바뀌어 제한 조건도 금액도 많이 힘들어 진것으로 알고있다. ​ 그래도, 당신이 팀원을 자부담을 덜어가며 채용하고 싶다면 약간의 손품을 팔아라. 길은 항상 있었으니까. ​ 내가 했던건 당신도 할수있다고 생각한다. ​ 그래도, 어지간하면 스타트업(ㅈ소)에 사원으로 입사하는 불상사는 없었으면 좋겠다. (합류 또는 창업)할거면 대표나 공동대표로 해라. ​ /*사진은 디지털 일자리 지원금 입금받은 내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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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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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하나로 30년 회사경력이 바뀐 썰
회사생활이란 예측할 수 없고, 변덕스러우며, 가끔은 자신이 예상하고 원했던 방향과는 전혀 딴 방향으로 일이 풀리는 사례가 너무 많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나는, 설계실 책상에 앉아서 CAD프로그램과 씨름하며 엔지니어로서 경력을 쌓아가는 꿈을 꾸고 회사에 입사했다. 신입사원 때, 나는 기계장비 설계 및 개발 업무를 부여받고 1년 가까이 일을 배우면서, 좀 더 전문지식의 폭을 넓히고자, 시간이 날 때마다 사내에서 진행되는 각종 세미나, 교육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 했었다. 그날도, 업무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인 오후 5시경, 'CAD시스템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사내 세미나를 개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찌감치 세미나에 참석했다. 업무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시간이라서 그랬는지 참석자는 별로 없어 난 맨 앞자리에 자리잡았고.... 세미나가 시작 되었다. 그런데, 세미나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대부분 참석자들이 나이가 상당히 있는 분들(?)이었고, 이윽고 세미나가 시작한지 10분쯤이 지나서 사장님이 들어오시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그때 세미나가 회사내 중역 및 간부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난 당황한 나머지 그 이후에 발표자가 하는 말을 거의 듣지 못했던것 같다. 그러나, 맨 앞에 자리를 잡은 터라, 세미나 중에 그것도 사장님이 앉아 계시는 가운데 세미나 중간에 혼자서 빠져나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어쩔수 없이 거의 1시간을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했고, 불편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릴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세미나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세미나를 진행하시는 교수님은 다양한 현장의 소리를 듣겠다며, 현장상황에 대한 질문을 하라고 했지만, 거의 70~80명이 넘는 간부 및 중역들 중에서 누구하나 질문이 없었고, 주위를 살펴보던 발표자의 눈이 나와 마주지게 되었다. 난... 눈을 꼭 감고 외쳤다... 제발.... ..............!! 그러나 불행한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고 했는가? "맨 앞줄에 계신 젊은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순간 내 머리속은 거의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었고, 난 당황해서 무슨 질문을 했는지도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마, CAD기술을 통한 생산성 향상... 미래의 공장자동화.. 등에 대해 횡설수설 하게 질문했던 것 같다. 그 다음날, 아침에 출근을 하자마자 부서장은 나를 호출해서 도대체 당신은 무슨 생각으로 간부 세미나에 참석했느냐고 다그쳤다... 임원회의에서 거의 스타가 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 난 그저 유구무언... 그런데 그 다음날, 난 갑자기 기술전략연구팀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고, 한참 뒤에야 그것이 사장님 지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은데, 사장님은 그 질문에 대단히 감명을 받으셨고, 새로 구성되는 TFT에 나와 같이 젊은 인력들을 대거 포함시키라는 특별지시를 하셨단다.. 그 이후로 난, 내가 꿈꾸던 .. 컴퓨터 앞에서 CAD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기계를 설계하는 나의 모습이 아닌,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오게 되었고.. 그것이 벌써 30년이 지났다.. 가끔은, 내가 그날의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그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태평양 고래
202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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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스타트업이라 쓰고 'ㅈ소'라 읽는다.#연재중단(?) // "글, 내리세요"
이야기는 편의상 반말 또는 독백체로 진행되니 양해부탁드립니다. 성원에 감사합니다. ■ 1부 '입사'편 : https://app.rmbr.in/hJaXpMqTYrb ■ 2부 '적자탈출'편 : https://app.rmbr.in/KG9hASPMZrb ■ 3부 '공금횡령'편 : https://app.rmbr.in/cyyqsHbb1rb  원문 출처도 안 밝히시고 퍼가는 건 상도가 아니라 배웠습니다 ㄹㄹ웹 회원님들! 출처 남기고 가져가십쇼 - 입사, 적자 탈출, 횡령 시기상으로는 모두 1~2년 전에 일어난 일들이다. 4부는 2022년 07월 27일. 그러니까 어제 일어난 일인데. 내가 쓴 댓글, 대댓글에 어느 순간부터 모든 댓글에 비추가 1개씩 박히더라?(커뮤니티 기준)  직감으로 알았다. '이거, 대표구나?' 비추 실명제가 이런 걸까? '오늘 연락 오겠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후 5시쯤 카톡이 왔다.  >"안녕하세요, 잠깐 통화 가능할까요?" >"보시면 연락 주세요" 19시부터 21시까지의 외부 미팅을 마치고 귀갓길에 대표와 연락을 했다. 내심 기대했다. 혹시라도, 전화 초반부터 고소 이야기가 나오면 크게 잃을 게 없는 나로서는 10부작으로 끝날 이야기를 25부작으로 늘리면 그만이었으니까 >"여보세요?" >"잘 지냈어요?" >"어떻게 지내요?" 신변잡기로 시작된 이야기는 서로 의뭉을 떨며 모르는척하기 바빴고 "왜 연락드린지 알아요?"라는 대표의 이야기로 이야기는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혹시, 저한테 섭섭한 거 있어요?" >"(섭섭한 게 있다면) 차라리 그냥 직접 연락을 주시지 그랬어요" >"(최저임금 수준) 급여를 많이 못 준 건 미안해요" 사실 나는 돈 때문에 섭섭한 적은 없다. 내가 회사에 쏟았던 시간과 열정이 돌이킬 수 없으니까 한이 맺혔을 뿐이지 >"지인한테 이야기를 전달받았어요" >"커뮤니티 규모가 꽤 크던데.." >"특정성이 성립될 수도 있다는 거 아시죠?" 본 연재 이전에, 최초로 썼던 글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잃을 게 없는 사람이다. 고소가 두렵지 않다는 말. 고소를 한다면 사실 적시 명예훼손 정도겠지? 실명을 오픈하고 회사명을 밝힌 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 많이 잃는 건 대표일까? 나일까? 글을 쓴 지 얼마 안 됐을 때 개인 메일로 유튜브 취재 의뢰가 들어왔다. 그래서, 오히려 두근대더라 '이거 뉴스감이네!' 싶었으니까 그래도, 좋게 이야기하고자 노력했다. "대표님, 저는 대표님이 특정되지 않게 최대한 글을 죽여서 쓴 겁니다." "특정성이요? 대표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고소하세요." "근데, 글을 내리진 않을 겁니다" "10부, 아니 5부로 끝날 이야기가 늘어날 뿐입니다." "아시죠? 전 더 잃을 게 없는 거" 귀갓길은 걸어서 30분 정도의 거리였는데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일까 정신을 차리니 집 앞이더라 >"팀장님이 잘해주신 덕분에 사무실도 혼자 잘 유지하고 있어요" >"기여해 준 건 고마운데, 제가 떠밀지는 않았잖아요?" >"본인이 맡아서 처리한 거지" 전화하며 들었던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물론, 대표님이 떠밀진 않았죠. 대표님의 일이었으니까요" "근데, 제가 일을 맡은 건 제가 하고싶어서가 아니라 대표님이 하지 않으셔서 한 겁니다" "제가 대표가 아닌데, 하고 싶었을까요?" 점점 악에 받친 나한테 질렸는지 >"원하는 보상을 말해보세요"라는 대표.. "보상은 필요 없어요. 제가 스스로한테 주는 보상이 글을 써서 남기는 겁니다" >"보상은 제가 줘야 하는 거죠." 순간 벙-찌던 내게 >"그 와중에 글은 또 잘 쓰셨더라고요?" >"과장이 좀 심하잖아요?" 음,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며 1년 반 조금 안되게 근무하며 내가 시간을 갈아 넣으며 이룬 성취가 머리를 스친다. * 공유 오피스에서 지정된 자리 없이 회의실에서만 2시간 근무했던 일. * 디지털 일자리 사업에 선발돼 막내와 디자이너를 직접 채용했던 일. * 퇴근 후, 부동산을 돌며 스튜디오로 쓸만한 사무실을 구하러 다닌 일 * 스튜디오 오픈 첫 달 순익으로 500만 원을 찍었던 일. * 영상 중개 플랫폼에 입점 심사를 받으러 갔던 일. * 영상 제작을 희망하는 클라이언트에게 zoom 미팅/오프라인 대면으로 영업한 일. * N 천만 원대의 프로젝트에 입찰하고 포트폴리오를 인정받아 수주하게 된 일. 스스로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자부심도 가득했고. 그런데 퇴사 후 돌아온 대표의 말은 "제가 떠밀어서 시켰어요?" ㅋㅋ 이 글을 보는 당신이 만약 스타트업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래도 스타트업에 갈 생각이 있나? 물어보고 싶다.  [댓글 QnA] Q. 스타트업? ㅈ소? 명칭에 왜 줏대가 없음? > 스타트업이라 써도 난리, ㅈ소라 써도 난리. 그냥 둘 다 혼용해서 쓰는 중 Q.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입사한 네 잘못 아님? > 맞다, 내 잘못이다. 근데 입사하기 전~입사 3개월 차까지는 회사가 적자인지 몰랐다. Q. 뭐하고 사는 중임? > 재능기부 플랫폼에서 프리랜서로 일감 받아 나름 잘 지내고 있다. Q. 그냥 직접 차리는 게 낫지 않음? > 20대에는 창업하지 않는 게 내 모토임. Q. 강의 플랫폼에 관심이 많은데 연락할 수 있음? > 트래픽 없으면 관심도 갖지 마라.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짐 Q. 앞으로 뭐하고 살 거임? > 스튜디오 운영 경험으로 전자책 쓰고 있다. Q. 노벨 피아에서 소설로 연재 가능? > 불가능, 타자수가 많이 느린 관계로 소설식 3000~5000자 연재는 버거움. Q. 후속 글은 안 올릴 거임? > 개인 경험은 올린다고 통보했으니 '병원 관리비' 등 대표자가 특정될만한 글은 올리지 않을 예정 *. 스타트업 잔혹사 입사 편 (완료) *. "살려야 한다." 홀로 월 -600만 원에서 월+1500만 원까지 회사 순익 올렸던 썰 (완료) * 막내가 공금횡령한 썰(완료) * 대표에게 연락받은 썰(완료) ​ 본 글 반응이 좋다면 앞으로 쓸 예정인 썰들. * 입사한 날은 달라도 퇴사한 날은 통일한 썰 * 드래곤볼 마냥 흩어진 인원 채용한 썰 * 입사 후 1년간 디자이너 15명 면접 본 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ㅈ소 #스타트업 #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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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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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살에 팀장되고 팀원 3명 (회사 강요로) 자른.. 썰🤬
참여해야지 생각만 하다가 다른 글들 보고 용기내서 도전합니다. 편하게 음슴체로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2020년 4월, 같은 회사(A)에서 이직한 선배가 새 회사(B)에서 팀장으로 새롭게 팀을 꾸린다며 이직을 제안함. 사실 이 A 회사가 겉보기에는 더 좋아 보일 수도 있었음. 나름 대기업들의 투자를 받아서 배경 탄탄 + 인지도 + 할 수 있는 일도 많았음. 반면 B 회사는 인원은 더 많았지만 듣보+신생 회사. 문제는 당시 내가 이직 욕구가 강했음. 업무 분야 좁혀서 전문성 더 키우고 싶기도 했고. 한 번 더 점프할 생각으로 연봉 올려서 이직함. 처음엔 좋았음. 기본적으로 1. 업무에 대한 간섭 전혀 없음 2. 업무 외 시간에 전혀 업무 생각하지 않아도 됨(A는 주말에도 다음주에 뭐 할지 생각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음) 3. 주말 근무 없음(A는 주말 당직이 있었음) 4. 밥 시중 안들어도 됨(A는 잦은 밥시중) 5. 스타트업 분위기의 사무실 등등. 그러다 한 3달 가까이 될 무렵부터 이상 징후를 포착함. 같은 층 근무하던 사람들이 3개월 사이 거의 반으로 줄음. 알고 보니 3개월 수습 기간 두거나 1년 계약 후 정규직 전환 조건으로 입사시키고 기간 끝나면 자른 거.. 심지어 당일 통보로..ㅎ (여기서 도망쳤어야 하는데...) 그래도 나는 우선 잘 다니고 있긴 했는데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 날 데려온 선배가 갑자기 퇴사!!! 3년차 정도인 내가 팀장을 맡게 됨..ㅋ 다른 팀은 팀장 없이 가기도 했는데, 팀 업무 특성상 팀장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음 이후로도 정말 수도 없이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문제는 올해 초! 어느 월요일에 본부장+팀장들을 소환. 성과급을 정했나보다 했는데 인원을 거의 50% 줄이는 정리해고를 통보함. 우리 팀 당시 5명인데 3명을 내보내라고... 팀별 인원도 딱 고정해서 절대 변동 없다, 너네가 알아서 정하고 면담해서 금요일까지 내보내라고 통보.. 심지어 그 주는 수요일이 휴일이었음. 화요일에 2명 면담 + 목요일에 1명 면담(화욜 연차였음).. 심지어 목요일 면담한 팀원은 경력 입사 2개월차였음.. 이럴 거면 자기 왜 뽑았냐고 하는데 정말 뭐라 할 말이 없었고 진짜 이 일주일 사이에 몇 번을 울고 살이 3키로는 넘게 빠짐. 이 과정에서 대표+본부장들은 다 그냥 뒤로 숨고 거의 팀장들이 총알받이였음.. 진짜 이 때 면담만 생각하면 아직도 그 숨막히던 공기와 모든 게 다 생생히 떠오르고 PTSD 걸릴 정도.. 후 사람들 잘리는 거 보고 남은 사람들도 다 위기를 느끼기 시작. 그래서 그 후 1달 사이에 한 10명이 퇴사함. 심지어 인사팀 3명이 거의 동시에 퇴사했고, 우리팀도 나와 1명 거의 같은 날 퇴사해서 팀 와해.. 다들 오래 다니진 못하겠다, 다음은 내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결과지 뭐.. 회사가 진짜 멍청했던 거라고 봄. 어쨌든 이직했으니 결론은 해피엔딩이지만, 이직 통보하게 된 이야기도 진짜 재밌음. 이 글 본선 가면 또 썰 풀러 오겠음.
낫띵
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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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이래도 되나요?
저는 성인이 되고 대기업에 취직을 했습니다. 입사하자마자 거의 대부분 저 혼자라 생각을 해야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한 사람의 괴롭힘은 계속됬습니다. 회사에서는 저 사람 원래 그렇다면서 저를 이해시키고 직장내 괴롭힘으로 신고하려하자 무슨짓이냐 어처구니가 없다 하더라고요…. 저는 거기가 꿈이고 진짜 입사해서 너무나 행복했는데 지금은 정신과 입원치료를 받아야할만큼 너무나 힘드네요…. 사람을 치고 자기들도 욕은 하면서 저한테는 욕을 못하게하고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드네요…. 참 이제 사회생활시작했는데 시작하자마자 트라우마생겨 직장을 찾는것 또한 힘드네요… 현재 건강은 안좋아졌고…
드그드그
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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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스타트업이라쓰고 'ㅈ소'라 읽는다.#막내의_공금횡령편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이야기는 편의상 반말 또는 독백체로 진행되니 양해부탁드립니다. ■ 1부 '입사'편 : https://app.rmbr.in/hJaXpMqTYrb ■ 2부 '적자탈출'편 : https://app.rmbr.in/KG9hASPMZrb - 입사 7개월차, 사무실을 옮기고 강의제작비를 줄이며 처음으로 적자를 면했다. 시공비 2000만원 상당의 방음부스를 권리금 없이 인수했고 3색 크로마키 블라인드 및 외부에서 사용하던 86인치 모니터 그리고 필기가 가능한 태블릿PC를 구비했다. 기존 사용하던 외부 스튜디오보다 살짝 하위호환으로 세팅을 마친 셈이다. (그럼에도)강사님들에게는 큰 호평을 받았다. "시설이 너무 좋은데요?"라고 하지만, 지출을 줄였을 뿐 수입이 늘어난것은 아니기에 전전긍긍했다. '난 대표도 아닌데, 왜 내가 이런걸 걱정해야하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뭐라도 해야한다!'라는 강박에 금방 잊곤 했다. 평소처럼 머리를 줘어짜던 찰나 문득, 부모님과 강남에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던 경험이 떠올라 '안쓰는 시간대에는 외부에 대여를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어 콜드메일과 이메일, 전화 노가다로 신생 공간대여플랫폼, 에어비앤비 그리고 강의플랫폼 몇개와 파트너 쉽을 맺게 됐다. 비용은 시간당 10~20만원 선으로 책정했고 영상 편집을 포함해 장소를 제공하는것 치고는 가성비가 좋아 사무실 이사 첫달부터 장기 고객이 생겼다. 문제는, 내가 미팅이나 외부 영업을 할 때 스튜디오를 관리할 사람이 없다는건데 대표자는 본인의 개인 병원이 우선이라 주 1회정도 출근했고 뒤늦게 합류한 디자이너는 집과 회사의 너무 멀었다. (편도 1시간 20분이상) 남은 건 막내뿐이었는데 "혹시, 내가 외부에 있어서 스튜디오 자리를 비우게 되면 관리좀 부탁해도 될까요?" "근로 시간에 대해서는 대표님께 건의해 주35시간만 탄력으로 근무할 수 있게 조정해볼게요" 전세집과 대출을 알아봐줘서일까? 생각보다 흔쾌히 OK를 해준 막내는 한달정도 열심히 스튜디오를 관리했다. 생각보다 너무 열심히 일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주말에도 출근을 하더라 내 일을 덜어주려고 노력하는것 같아 하루는 말없이 나도 주말에 출근했다. 미안했으니까 그리고 도착한 사무실에는 막내는 없고 누군가 촬영을 하고있더라 "누구세요?" 막내를 회사로 불렀다. 전전긍긍하는 막내에게 캐물으니 "사실..."로 시작된 이야기는 충격 뿐이었다. 평일 장기 고객으로 촬영을 하던 고객님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연장촬영을 요청했는데 막내는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고객에게 쇼부(딜)를 쳤다. "계산서 발행없이 현금으로 결제하시면, 주말에 저렴하게 대여해드릴게요" 2주동안 대표자도 팀장인 나도 모르던 촬영이 있었고 총합 120만원 가량의 금액을 고객에게 본인통장으로 수령하는 일이 생겼다. 본인 딴에는 억울하다고 하더라. 야근 근무수당이 제대로 입금된적이 없다고. 물론, 나는 납득할 수는 없었다. 야근 후 다음날에는 항상 대체휴무로 휴일을 제공했으니까. 금액을 회사로 반환하고 일을 묻으려고 했는데 고객의 계산서 발행요청으로 대표자가 일을 알게됐고 결과적으로 '퉁'칠수 있게 노력했다. "막내는 디지털일자리로 뽑았고 능력 이상으로 노력해줬으니 인센티브 개념으로 미리 둔것으로 치자"고 인원이 고작 4명에 불과한 조직에 횡령이 일어날지 몰랐다. 그것도 입사 2개월차 막내가. 이후, 홀로뛰던 영업을 막내와 함께 징벌성으로 같이 돌았다. 근데, 막내는 고작 애교로 보일 상황이 생길 줄은 몰랐다. 8000만원의 영상제작프로젝트 낙찰금을 대표가 비ㅌ코인 마진거래(홀짝)로 전부 날릴지 "제가 사기를 당한것 같아요"라며 분해서 어쩔줄 모르는 모습을 내게 보일지도.. 그래서일까 대표는 막내가 자리에 없을 때 나에게 항상 "뭐 저런 ㅅㄲ가 다있냐?"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내가 봤을 때는 "OO아, 니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x발아"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내려갔다. 'ㅂ신같은 회사' 그럼에도 다녔다. '...왜 그랬을까?' 지금에서야 자아성찰을 한다. - 스타트업 7개월차부터 퇴사 직전까지의 이야기입니다. *. 스타트업 잔혹사 입사편 (완료) *. "살려야 한다." 홀로 월 -600만원에서 월+1500만원까지 회사 순익 올렸던 썰 (완료) * 막내가 공금횡령한 썰(완료) 본 글의 반응이 좋다면 * 대표가 운영하던 병원이 망할뻔할 썰 + 관리비로 2000만원 청구 된 썰 * 대표가 믿었던 '선배'에게 빨대 꽃힌 썰(ing) * 입사한 날은 달라도 퇴사한 날은 통일한 썰 등 감동실화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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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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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의 좌충우돌하던 신입사원 시절의 썰(1)..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나의 좌충우돌 해외출장기 썰을 하나 풀어본다. 때는 입사2년차.. 조금은 회사 생활에 익숙해져서 회사가 돌아가는 상황도 알고, 업무에 대한 책임감과 나름의 자존심을 키워가던 시기.. 당시는 해외출장도 큰 혜택으로 여기던 시절인데, 갑자기 팀장의 개인사정으로, 대신 일본 출장명령이 떨어졌다. 일본의 경쟁사 공장을 방문해서 그들이 적용하는 작업방식과 장비에 대한 정보를 낱낱이 파악해오라는, 거의 미션임파서벌(?)급의 오더를 받고는, 출장 1주일 전부터 부담이 커져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일본어라고는 "곤니찌와" 정도만 하는 수준인데다가 작업 현장에는 가까이 가서도 안되며, 사진도 안되고, 멀찍이서 그것도 차량을 타고 10~20분 잠깐 돌아 볼 수만 있다고 허락받았는데, 어떻게 그들의 생산시스템을 파악하고, 작업공정을 파악해 올수 있을까?..(이건 아마 날 시험하려고?? 하는 생각이....) 생전 처음의 해외여행에 들뜬 기분으로 도착한 일본은 나의 생각보다 훨씬 풍요로웠고(당시 일본경제는 최고의 호황을 구가하고 있었음) 철저히 매뉴얼화 되어 돌아가는 제조업의 기술력과 품질은 놀라웠다. .. 이리저리 해서 경쟁사 공장에 입성해서, 자동차로 공장을 돌고 있는데, 갑자기 멀찍이 소문으로만 듣던 생산장비가 공장안에 슬쩍 보이길래 급하게 차를 세워달라고 부탁하고, 대책없이 무작정 공장으로 들어갔다(신문에 난 조그만 사진으로만 보던 장비였다).. 공장에는 작업자 1명이 이를 작동시키고 있었는데 (당시 우리회사는 해당공정을 작업자 7 ~8명이 수작업으로 작업 중이었음) 무의식적으로 카메라를 가져다대고 사진을 찍었다. 아차, 그런데, 내가 사진찍는 것을 바라보던 작업자가 다가와서 뭐라고 말을 건네었다.. 아마 "넌 누구냐?, 이 장비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이런 말이었을 것이다. 나는 당황해서 일어와 영어, 한국어를 섞어가며 땀을 뻘뻘 흘리며 이런저런 변명도 하고, 사과도 하면서 관련 책임자가 오기를 한시간 반 가량을 기다렸다. 일본어 통역관이 있었지만, 기술적인 내용을 잘 모르는 재일교포 라서 제대로 의사전달이 되지 않았고, 한문장을 이야기하는 데도 몇번씩을 이야기를 반복해야 의미가 통했기 때문에, 우리는 마침내 바디랭기지로 의사소통을 하게 되었다. 20~30분이 지나, 커피를 나눠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의 먼 조상이 한국에서 왔고, 동생이 한국사람과 결혼해서 산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는 급변했다., 나는 본격적으로 작업 공정과 장비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기다리는 한시간 반 동안, 내가 궁금한 대부분에 대한 답을 작업자에게서 얻을 수 있었다. 난, 마침내 그곳을 나올 무렵에는 무언가 해냈다는 뿌듯한 기분을 느낄수 있었다. "전화위복이란 이런거야... ㅋㅋㅋ" 이 이야기는 이후 회사의 전설이 되었다.. 추가로 에피소드 하나 더.. 저녁에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지하철 문이 막 닫히기 시작했고, 온통 머리속에 낮에 있었던 사건만 가득차 있었던 나는, 평소와 같이 후다닥 뛰어가서 지하철에 올라 탔다. 그런데 아차..., 같이 동행하던 가이드는 타지 못했고, 나는 일본어를 거의 몰랐을 뿐만 아니라 호텔이름도 잘 기억 나지 않았다. 지하철은 무심하게 정류장을 떠났지만 난 그때까지도 나 혼자 지하철을 탔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당시에는 일본 지하철에는 영어 표기도 거의 없었고, 영어를 하는 일본인도 극소수 였다) 결국 나는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돌고 돌아서 경찰의 도음을 받아서, 약 6시간이 지난 새벽1시가 넘어서야 호텔에 도착했고, 저녁을 굶은채로 잠자리에 들었다... 세상엔 공짜가 없는 모양이다...
태평양 고래
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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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스타트업이라쓰고 'ㅈ소'라 읽는다. #적자탈출편
한풀이로 썼던 1부, '입사'편! 멤버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으로 '썰 본선'으로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호의적인 반응도, 그렇지 않은 반응도 있었지만 그래도 감사합니다! 이야기는 편의상 반말 또는 독백체로 진행되니 양해부탁드립니다. ■ 1부 '입사'편 : https://app.rmbr.in/hJaXpMqTYrb - 입사 4개월차에 '팀장' 직함을 받았다. 직함이 '사원'에서 '팀장'으로 바뀌었지만 크게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당장 소속원이 대표와 나, 둘(+RUN해버린 개발자) 뿐인 회사에서 "팀장님" 소리를 들어봐야 좋을게 있을까? 동네 구멍가게의 상무, 전무 같은 느낌이라 씁쓸할 뿐이지. 팀장이 되고 처음 했던 일은 회사의 손익 따져본것인데. 수익원, BM은 '강좌를 판매한다'라는 원툴의 구조였고 '어떻게든 굴러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유저를 모으고 강좌로 수익화를 한다. 뜻은 좋지만 수요가 너무 없었다. 시장 점유율은 10%가 채 안되었고. 한달 '매출'이 보통 200~400만원선에 강사와의 정산비율이 이례적으로 플랫폼이 더 낮았다. 상황이 이럼에도 '괜찮겠지?'라도 잠깐이나마 생각했었다. "그래도, (강사님들은)다 제 선배님들인데 편의를 봐드려야죠" 대표님의 말에 나는 '뭔가 믿는게 있으시구나!' 싶었다. 그게 착각이었다는걸 깨닫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표님의 차가 신형 벤츠(7000만원)에서 구형 소나타(400만원)로 바뀌며 몸으로 체감이 됐으니까. '대체 얼마를 벌어야 적자를 면할까?'싶어 계산해본적이 있다. [지출내역] 1. 서버, 호스팅, 관리료 : 월 100만원 2. 플레이어 사용료 : 월 200만원 3. 사무실 임대료 : 월 150만원(주거+사무로 대표님 주거를 겸했음) 4. 인건비 : 월 250만원 5. 강의제작료 : 월 300만원~시간당 15만원 /*한달에 강사님 5명~6명. 강의는 평균 4시간 정도 제작했다. */ 6. 잡비 : 월 20만원 따라서, 매월 지출이 820만원이 사실상 '고정 비용'이었다. 강사님과의 정산비율이 7:3으로 가정하면 매출이 1000만원일 때, 순익이 300만원이니 월 매출로만 2750만원이어야 적자를 간신히 면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한 적자 사유는 아래와 같다. 1. (수요가 없어)강좌가 많이 팔리지 않음. 2. 강좌가 판매되더라도 순익이 낮음. 3. 강좌 제작비를 온전히 회사가 부담. 근무를 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는건 계약서에 "제작비용을 강사에 청구한다"라는 항목이 있었지만 단 한번도 강사에게 제작비를 받지 못했다. "선배님들이니까.."라는 대표님의 말에 그저 암담할 따름. '이 사람은 사업이하고 싶은게 아니라 봉사를 하고싶은건가?' 흑자전환을 위해서는 당연하겠지만 지출을 줄이거나, 수익을 늘리는것. 둘 중 하나 또는 둘 다 하면 되는데 우선, 지출을 줄이기 사무실을 알아보았다. 강좌 제작비용이라도 줄이면 좋겠다 싶었다. 2달 정도를 퇴근 후 매일 2시간씩 마곡동 가산동 구로디지털단지 등을 돌며 사무실. 가능하면 스튜디오를 겸비한 매물을 찾아다녔다. 하늘이 도왔을까? 포기하고 싶을 때 즈음 라디오 팟캐스트 사무실로 사용하던 곳이 매물로 나왔다고 중개사분에게 연락을 받았다. "빨리오세요!"라고. 도착한 사무실은 방음부스와 교육에 필요한 크로마키 등 시설물 일체가 있었고 권리금은 없던 상황. 대표님께 "여기로 가야 합니다!" 입사 후 처음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2주 정도 대표님이 고민하는 과정에서 한번만 믿고 맡겨달라고 요청했고 결국, 방음시설이 구비된 11평 스튜디오로 이사를 했다. 당장 시설이 마련되니 매월 300~400가까이 지출되던 강의제작료가 줄었고 시기적절하게 청년디지털일자리 사업에 통과해 PD와 디자이너를 사실상 '0'원으로 팀을 구성할 수 있었다. 스튜디오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개인 또는 기업에게 렌트를 했고, 이사 후 3개월. 입사후 7개월차 시점에서 처음으로 적자를 면하더니 기존 촬영물을 포트폴리오 삼아 외부 영업을 통해 영상제작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었다. 입사 8개월차부터 14개월차까지 매월 흑자를 기록했다. 적게는 500만원. 많게는 3000만원. 더해 PD님과 숨고, 크몽등 시간이 날 때 마다 출장을 돌아 회사 계좌의 잔고는 점점 올라가는 와중 '그 사건'이 일어났다. 대표자가 (사설)비ㅌ코인 마진거래로 잔고 거의 전부를 날려버린것 "팀장님, 제가 사기를 당한것 같아요.." "이번달 급여는 조금 밀릴것 같습니다.." 'x발, 그만해요.. 제발.' "뭐라도 하겠지, 회산데 ㅋㅋ" "노오력하면 보답받는다!" 라는 댓글에 난 더 이상 공감할 수 없다. - 스타트업 4개월차부터 퇴사 직전까지의 이야기입니다. *. 스타트업 잔혹사 입사편 (완료) *. "살려야 한다." 홀로 월 -600만원에서 월+1500만원까지 회사 순익 올렸던 썰 (완료) 본 글의 반응이 좋다면 * 막내가 공금횡령한 썰 * 대표가 운영하던 병원이 망할뻔할 썰 + 관리비로 2000만원 청구 된 썰 * 대표가 믿었던 '선배'에게 빨대 꽃힌 썰(ing) * 입사한 날은 달라도 퇴사한 날은 통일한 썰 등 감동실화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글이 길었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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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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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하고 성희롱 3회 관찰한 썰 푼다
안녕하세요! 30명 이하 규모 기업에서 1년 반 근무하면서 성희롱만 3번 본 썰입니다. 이직을 많이한 편이고, 다양한 직군에 근무 해보았지만 현회사만큼 다이나믹한 곳이 없어서 썰게에 올려봅니다. 이 글 제목에 흥미를 가지고 클릭해주신 분들이 '오 이런것도 성희롱이 되는구나' 아시게 되어 주의 하시는 계기가 되셨으면 합니다. 결론이 궁금하실 분을 위한 요약: 가장 최근에 발생한 1건을 제외하곤 피해자 모두 이직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좋좋소에 근무하는 대리입니다. 이야.. 이 인트로듀스는 다 작성하고 마지막으로 수정중인데, 현 회사에 입사하게 된지 벌써 1년반이 넘었네요...😂 1. 입사 두달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제 상사(입사3개월)가 타부서 직원(입사 3.5개월)에게 - 다리가 쭉 빠졌다 -바디 셰입이 이쁘다 이런 얘길 나눠서 했습니다. 그쪽 상사에게도 보고가 올라갔겠죠? 얼마 지나지 않아 타부서 상사 대노해서 제 상사와 한판 붙었습니다. 당시 경리 직원은 충격을 받은건지 처음으로 급여가 밀리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금이야 웃는 이모지를 붙이지만 당시에는... ceo는 정신 못차리고 제 상사를 감싸면서 겉으로는 인사위에 회부했고, coo는 타부서 상사를 감쌌습니다. 제 상사를 감싼건 제 상사가 직접 얘기해줘서 알게되었습니다 ㅋㅋ 사석에서 술을 마시자고 했다더라구여. 상사는 그 길로 아끼던 두명 데리고 본인이 준비하던 회사로 옮겼습니다. 간간히 들리는 소식으로는 잘 풀리시는것 같아요. 남아있던 선임, 주임은 하나는 퇴사 하나는 저네요. 그리고 피해자분은 조금 텀을 두고 이직하셨어요. 지금은 연락이 끊겼습니다. 2. 사실 제 상사(가해자 1호)는 육아휴직 대체였습니다. 아니 지금까지 읽은게 뭔데 그럼?! 싶겠지만 저도 설명하면서 얼떨떨한데, 육휴자가 복귀의사를 표명한 타이밍이 가해자 1호에게 퇴사(이직) 자극을 줬습니다. 가해자 2호는 육휴자입니다. 복귀해서 돌아온 사무실에 두명 덜렁 있고 둘다 본인과 합을 맞춰본 직원이 아닌 경력/신입이니 일주일 외부 미팅하고 하루 벙 쪄있다가 일을 하더라구요. 남은 팀원들 으쌰으쌰하고 밥먹이고 퇴사 못하게 막고 술마시고 그러다 신입의 어깨를 만졌다고 합니다 ㅡㅡ 신입이도 짬이 있어서 바로 뭐하는 거냐고 들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퇴사.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거겠지요 비슷한 규모로 이직해서 잘 다닌다고 합니다. 이때 저도 퇴사했어야했습니다. 짧은 기간동안 연달아 성희롱과 성추행이 발생하고 부서장은 다독이질 못하니 다른 직원들도 와르르 퇴사했거든요. 회사도 충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와르르 3. 세번째 가해자는 사외이사입니다. 사외이사라 사내 소식은 모르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연이은 기강문란 상황에서 몇개월만에 다시 터진 사고여서 좀 엄하게 대처중입니다. 사외이사를 재택으로 돌려 피해직원과 분리하고, 구체적인 상황은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가해 사실에 집중해 해임 검토 등 현재진행형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리도 저도 이번에야말로 퇴사를 꿈 꾸고 있습니다. 그동안 봐온 사례를 보면 피해자가 잘못한건 아닌 것 같아요. 회사의 교육 부재와 미비한 대처, 뭐라도 된마냥 구는 가해자들이 잘못한것 같습니다. 남아있는 가해자 2호가 3번 사건에 대해 "(피해자가) 회사에서 영향력이 없어서 가해자는 남고 피해자는 퇴사하는 거"라고 결과를 예측하는 이야기를 하는게 역겹기도 합니다. 덤덤한척 얘기하지만 썩어있는 한국 회사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순간에 충실하자
2022.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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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에서 자동화팀을 기획하고 소사장 이야기 듣던 시절
현재는 IT 물류회사에 다니지만 이전 회사는 건설회사 였습니다. 나름 현장에서 시공관리도 해보고 해외 설계관리도 해서 건설 업무를 다양하게 하고자 노력했었죠. 그런데 거기서는 신사업을 기획하게 되면 여기저기 불려다녔어요. 시공만 하던 제가 풍력발전에 대한 개발업무를 하지 않나, 우드펠릿을 알아보러 다녀야하지 않나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신사업에 투입되었습시다. 나중에는 물류자동화를 테마로 한 신규사업팀에 투입되었습니다. 당시에 계열사가 세계 최고 수준의 E-commerce 물류센터를 준비중이었기에 나름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과 다르게 경험이 전무한 계열사 신사업팀은 그 업무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외부에서 수주를 하기 위한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팀의 기획방향을 잡기 위해 아는 지인들에게 구걸도 하고 정보를 얻어서 팀의 역량은 조금씩 갖추어 갔습니다. 기획의 성과는 역시 사업이 수주로 이어져서 계약이 이루어질 때입니다. 드디어 저온 자동화 ASRS 물류센터를 수주하고 계약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설계, 공사를 수행하라고 하네요. 졸지에 영업, 설계, 공사, Maintenance 를 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 경험하는 것은 역시나 힘들었지만 다행히 마무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본사로 복귀하니 다시 영업으로 하게 되구 그 프로젝트를 수주하면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 현장에 나가구 중소기업도 하지 않는 프로세스가 반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 선배들은 소사장이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모든 프로젝트는 20% 정도의 실행 이익률을 냈지만 수주규모 자체가 100억 미만이다 보니 건설사의 특성상 주목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거기서 수주해서 설계도 하구 실행도 짜구 공사두 하구 또 연결수주 하는게 소사장 같았데요. 그런 물류자동화나 공장자동화가 저를 물류회사로 이직하게 했지만 건설회사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업분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곤 합니다. 근데 옛날 생각하니까 갑자기 갑갑해지네요. ㅜㅜ
박일 | coupang
2022.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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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연봉 2배가 된 썰~
내가 얼떨결에 2년만에 연봉 2배 받게된 썰을 한번 풀어볼께~ 아무래도 썰을 풀 때는 반말이 조금 더 잘 어울리는 듯해서 말이 좀 짧은건 이해 부탁할께. 요즘은 대기업 공채가 거의 없어지고 있는 추세라고 하던데 맞아? 제가 신입사원으로 입사할 때만해도 대기업 공채라고하면 어깨에 뽕이 들어가고 그랬어. 그룹 전체의 신입사원들을 그룹연구원에 1달씩 집어 넣어놓고~ 파란 피가 흐르니(삼성), 주황 피가 흐르니(한화) 이러던 시절... 웃기지 피 색깔이 저렇게 되면 외계인 아냐~?ㅋ 아무튼 저무튼 난 운이 좋았던 건지 나빴던건지 국내 재계순위 10위권 내에 있는 모 그룹사 공채로 입사를 하게되었어... 물론 10여년 전 일이긴 하지만 대기업 계열사라면서 신입사원 초봉 3500만원...그게 대부분 다 그런 줄 알았기에 열심히 일했지~ 야근을 새벽 2시까지하고 회사 근처 찜질방에서자고 또 회사가서 야근하고... 대리 진급하고 연봉은 4500만원 그렇게 근 10년을 불평없이 다녔고, 아마 그 이벤트가 없었으면 거기를 평생 직장으로 여기고 다녔을거야... 어느날 갑자기 그룹에서 해당 계열사를 사모펀드에 매각한다고, 사모펀드로 넘어갈지 회사를 그만둘지 정하라고 하더라고~ 그냥 그렇게 먼가 팽당하는거 같아서 따라가긴 싫더라고 그래서 이직 시장에 나왔지~ 얼떨결에 새로운 직장에 합격했는데, 우와 대리급 연봉이 6000만원이라고~ 대리말년차로 들어왔어. 그리고 1년 후에 과장진급하면서 연봉이 7000만원이되었는데 성과평가도 고평가를 받았더니 8000만원이 최종 연봉이 되었고 4500에서 2년만에 8000만원으로 거의 두배가 된거지~ 결국 시장에 나와봐야~ 나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받게 되었달까~? 가끔 주변 형들이나 여기 커뮤니티 형들보면 시장에서 평가 받아보기도 전에 스스로를 저평가하는 형들이 있더라고~ 회사가 매각 안되었다면 난 올해도 4500받으면서 야근을 하고 있었을거야~!!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깐~ 그래서 뭘 말하고 싶냐고~ 뭐 그냥 그렇다고 ㅋㅋ 내 자랑이라고 ㅋㅋ 농담이고~ 지레짐작해서 포기하지말고 지금 받는 연봉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거나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이직 시도를 해보라고 이야기 하고 싶어서~ 그래야 시장 가격을 알지
빠린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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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퇴직회사의 체불금 받아내기. 17년 전, 근무했던 곳에서 체불금이 있었습니다. 저 뿐 만 아니라 30여명이 월급의 일부와 퇴직자들은 퇴직금 전부까지 하여 대기업에 차량을 납품하기 직전까지의 임금은 지급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노동부 민원 부터 시작 했습니다. 민원 넣으면 바로 받을 줄 알았어요. 만나기 싫은 사람을 굳이 대면 시키는 근로감독관. 받아야 하는 돈을 합의 보라며 네고를 하는 근로감독관. 그래도 안주는 사업주. (그런데도 55AMG를 뽑아 몰고 다니던) 근로감독관은 노동자 만을 위한 것이 아닌, 사업체의 유지도 중요하다고 하데요. 법률구조공단에 갔습니다. 민형사 동시에 진행 했습니다. 노동부 진정서의 사실확인서를 바탕으로 안내를 받아서 국선변호인 이라는 법률상 대리인을 선임 받습니다. 노동주 처음 갔을 때 보다 더 많은 서류과 과정 및 단계를 거치고 또 거쳐서, 이제나 될까, 저제나 될까 받아야 하는 돈은 수천만원 인데 벌금은 300만원 집행 하더군요. 3년 걸렸습니다. 민사소송은 이자가 원금을 넘어갔지요. 그런데 제 통장에는 한푼도 들어 오지 않았고 3년동안 법원 쫒아다니는데 만 그놈이 낸 3백만원을 훌쩍 넘게 썼습니다. 은행별로 전부 털었는데 순위에서 밀리고 또 밀리고 밀려서 기약이 없었죠. 그 사이 저 혼자 설계한 차는 월 수백대가 납품 되면서 회사는 년 3백억원 규모로 성장을 합니다. (현재는 연 2천억 규모) 그래도 안 줍니다. 고민의 고민을 하다가 집으로 갑니다. 출근 전 들여서 초인종 누르고 “사장님 돈 주세요” 퇴근하고 귀가하며 들려서 문을 두드리며 “사장님 돈 주세요” 그렇게 한달을 매일 찾아 갔는데 안줍니다. 그래서 정말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사장 아들에게 문자를 했습니다. “니 아빠가 내 돈을 안준다. 잘 말씀드려서 니가 물려 받을 회사이니 잘 받을 수 있게 체불금을 당장 지급하라고 설득 해줬으면 좋겠다” 구구절절 보냈더니, 띠링~ “내일 회사로 와라” 다음날 회사에 갔더니, 체불한 대표는 없고 회사를 인수 받은 대표가 원금의 이자 없이 세금 다 떼고 현금으로 주면서 각서를 쓰라네요.(명의 넘기고 겸직 중 이었음) 내용은 “체불된 이들에게 받았다고 하지 않기” 끝까지 지독하더군요. 저도 처음부터 대표 자식에게 까지 이런 아픔을 옮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사장님. 제가 3개월 후에 결혼을 합니다. 반대하는 결혼 이라서 집에서 알아서 하랍니다. 체불금 주시면 월세 보증금은 됩니다. 제발 부탁이니 입금 해주십시오” 했는데 답변은, “미안허이, 내가 돈이 없어. 이미 벌금 냈으니 법적으로 나는 책임이 없다네” 라고 왔거든요. 당시에는 어디 가다가 낯짝 만 비쳐라. 면상에 못받은 돈 만큼 잊지 못 할 흔적을 남겨 주리라 하면서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하지만 미워하는 마음은 전달되지 않고 내 마음에 비수로 꽂혀서 나 만 더 어둡게 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세금 뗀 원금을 보면서 “이자는요? 정신적 피해보상은요?”가 목젖에 멍우리를 남기고 돌아 나왔습니다. 다 잊고 살던 어느날. 분당 오리역 하나로마트. 그사이 제 오른손에는 아들이 안겨있었고 밝게 웃으며 어항의 물고기를 함께보며 있었는데 백발의 노인이 물끄러미 쳐다보기에 “왜 그러지?” 하는 중 둘째를 임신 한 아내가 가자고 해서 계산을 마치고 나오며 “아! 사장이구나” 돈을 수천억 벌었다고 하던데 몰골은 상노인이 되어서 마트 수족관의 열대어 구경이나 하고 있던 겁니다. 저와 15살 정도 차이 였으니 백발이 될 정도는 아니었는데 남 이용해서 착복 할 잔머리를 얼마나 굴렸으면 그리 됐는지 안타까웠습니다. (그가 바라던 삶 이었을지도?) 반면,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아빠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들과 임신 한 아내와 함께 장을 보는 모습은 어쩌면 제가 할 수 있는 진정한 복수 였습니다. 그리고 그 대표 부부가 꿈이라며 바라던 카본모노코크 차체를 만들며 사업을 합니다. 저는 이 일을 겪은 후, 제 사업체는 물론이고 남의 사업체에도 임금 지급이 우려된다고 하면 우선적으로 해결을 해줍니다. 트라우마가 되었죠. 국세가 연체되면 죽을 때 까지 추징 하듯 임금 체불은 대표가 파산을 했어도 세금으로라도 최우선으로 지급해야 합니다. 아직도 선량한 직원들을 이용하며 체불을 일삼는 악덕 사업주가 많다고 합니다. 관련법을 조속시 개정하여 죽을 때 까지 흔적이 남아서 다시는 사업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움직이는모든것
은 따봉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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