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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못하겠네"..너무 많은 회의, 깔끔하게 정리하려면
안녕하세요, HBR Korea 편집장 최한나입니다. ✍ 일주일에 회의, 몇 번이나 하시나요? 저도 일과 중 많은 시간을 회의에 쓰곤 하는데요. 많은 직장인들이 회의가 너무 많아 정작 스스로 집중해서 처리해야 할 업무에 쓸 시간이 부족하다고 토로하곤 합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이런 문제가 더 심해지는 게 일반적이죠. ‘지나친 회의’를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이 문제를 연구한 HBR 아티클을 소개해 드립니다. 📜 - ✔뺄셈 사고방식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뭔가 빼기보다는 자꾸 더하려는 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이 ‘덧셈병’ 때문에 회의가 자꾸 쌓여 가죠.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이미 가득 찬 일정에 계속해서 더 많은 일정을 끼워 넣습니다. 뺄셈 사고방식을 촉진하는 방법 중 하나는 레이디 클로츠 등이 제안한 ‘절반의 법칙(rule of halves)’처럼 무조건 뺄 수 있는 간단한 규칙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모든 회의에서 횟수, 길이, 규모 등을 무조건 50%만큼 줄여보는 식입니다. 크게 의미 없는 회의는 영구적으로 없애고, 남아 있는 회의는 무조건 10분씩 단축하며, 주간 회의를 격주 회의로 바꾸는 등을 적용해볼 수 있을 겁니다. ✔완전히 비운 후 리셋 실험 참가자를 두 집단으로 나눈 후, 첫 번째 집단에 대해서는 48시간 동안 일정을 완전히 없애고 일정표를 다시 작성하도록 했습니다. 두 번째 집단에 대해서는 48시간 동안 정해져 있는 일정을 수행하되 시간을 줄여보는 식으로 바꾸도록 했습니다. 두 집단 모두 시간이 절약됐지만 전체를 비우고 다시 세팅한 첫 번째 집단의 경우 1인당 평균 5시간을 절약한 반면 두 번째 집단은 3시간을 절약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기 위해 멈췄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오래된 습관을 버릴 가능성이 높다고 했죠. 48시간의 백지 시간표를 받아든 첫 번째 집단 사람들은 어떤 회의를 추가하거나 삭제할지를 고민하는 한편 회의에 대해 기존에 갖고 있던 개념을 ‘정화’하기도 했을 겁니다. ✔데이터를 적극 활용 반복되는 모든 회의를 두 가지 관점에서 평가해 봅니다. 1) 해당 회의에 필요한 노력(준비 작업, 실제 회의 시간, 후속 작업 등) 2) 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른 해당 회의의 가치 이런 기준을 통해 회의가 갖고 있는 진짜 가치를 따져보면 어떤 회의를 유지해야 하고 어떤 회의를 지워버려야 할지 명확해질 겁니다. 다만 무작정 회의를 삭제해나가는 방식은 자제해야 합니다. 어떤 목적으로 이 회의를 진행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회의의 가치를 충분히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움직이시면 됩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https://www.hbrkorea.com/article/view/atype/di/category_id/2_1/article_no/798
최한나 | HBR 코리아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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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A는 더 비싼 밥을 먹게 해 줄까?[Part.2]
현업이라는 실습 MBA라는 복습 대리시절 MBA를 공부할 자신과 배포는 없었지만, 대신 현업에 집중하겠다는 자기 합리화를 발동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아니, 오히려 (나에겐) 좋은 선택이었다. MBA스터디를 포기한 지 15년 만에 나는 그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회사의 지원으로 말이다. 15년 동안 산전수전 겪으며 몸과 마음 그리고 머리로 습득한 모든 것들은 돈을 받으며 배운 역량이 되었고, 그 역량을 MBA로 복습할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복습은 또 다른 지식을 낳는다.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떠올려 주거나, 또 다른 경험과 지식이 융복합되어 시너지로 폭발할 수도 있다. 미국 유학 MBA를 진학하는 학생들은 보통 5~6년의 직장 경력을 가지고 있다. 내가 만약 대리 시절 MBA를 운 좋게라도 갔다면 나는 경력에 한 참 못 미쳤을 것이다. 얕은 경험과 지식으로 책 속의 마케팅을 배우며 머리만 채웠다면 어땠을까. 머리에 채워진 지식들로 스스로 만족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이론과 실제가 다른 괴리감에 나는 또 괴로워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후자 쪽이지 않을까 한다. 유명 MBA가 학부생을 바로 받지 않는 이유다. MBA는 학문이라기보단 실전이기 때문이다. 고정값이 아니라 변화하고 진화하는 실제다. MBA는 예습이 아니다. MBA는 복습이어야 한다. 현업에 매진하자고 했던 그 결심을 나는 스스로 높이 산다. MBA를 공부하는 이유도 현업으로의 복귀를 전제로 한다. 실전에서 써먹지 못할 거라면, 또 실전에서 그 가치를 증명받지 못한다면 MBA를 공부할 필요가 없다. 돈과 시간이 남아돌아 졸업장 하나가 절실하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나는 그러한 유형의 사람이 아니다. MBA를 처절하게 실전에서 활용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러한 차원에서 현업이라는 실습을 통해 MBA라는 복습을 한 건, 내게 있어 큰 행운이다. MBA를 공부하며 배운 것들 MBA를 통해 배워야 할 건 그 이름을 통해 유추해낼 수 있다. '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 전반적인 경영관리에 대한 것이다. 포괄적이고 추상적일 수 있지만,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시야로 탈바꿈할 수 있게 된다. 실전과 실무 복습으로는 최고다. MBA를 최고의 복습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는 MBA를 통해 배운 것과도 상통한다. 첫째, (내 일의) 퍼즐이 맞추어진다. 퍼즐 한 조각, 한 조각을 보면 전체 그림을 떠올릴 수 없다. 일전에 지금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벽돌 쌓는 겁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MBA를 공부하고 나니 이제는 "집을 짓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 조직과 회사, 더 나아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야가 생겼다는 것을 말한다. 경제, 경영, 마케팅, 광고, 전략, 조직, 인사, 벤처, 회계 그리고 전반적 관리까지. 모든 과목 하나하나가 나에겐 퍼즐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퍼즐과 가지고 있지 않았던 퍼즐. 그 하나하나를 끼워 맞추어가다 보니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단순히 그저 누가 시킨 벽돌 쌓기가 아니라, 스스로 집을 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퍼즐이 맞추어지면 큰 그림이 나타난다. 알지도 못하고 퍼즐부터 맞추는 것과, 그림을 인지하고 그것을 맞추어 가는 것엔 큰 차이가 있다. 둘째, 현업을 복습할 수 있게 된다. MBA의 가장 큰 가치는 여기에서 온다고 믿는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재정의가 된다. 직장인은 대개 자신의 일이 그저 반복되는 무의미한 일이라 생각한다. '반복' 때문이다. 반복은 지혜의 눈을 멀게 한다. 그저 반복되는 것으로 보면 나는 출근하여 엑셀 돌리고, 회의 갔다가, 욕먹고 보고서 쓰는 것 이상을 하지 않는 존재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선, 우리는 '반복'이라는 무한 루프에 빠져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직장인은 마치 벌 받는 시시포스처럼 영원히 굴러 떨어진 돌을 밀어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언젠가 우리는 직장을 더 다니고 싶어도 그러하지 못하는 날이 분명 온다. 즉, 우리는 '무한'이 아닌 '유한'에 갇힌 존재라는 것이다. 굴러 떨어진 돌을 또 밀어 올려야 하는 건 맞지만, 이것이 유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관점이 달라진다. 같은 돌이라도 어떻게 밀어 올려야 할지, 어떻게 하면 내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그것을 밀어 올려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렇다면 반복되는 일은 그저 지겨운 무엇이 아니라, 내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복습'의 의미가 된다. 근육은 반복을 통해 단단해진다. 역량은 반복을 통해 향상된다. 암기는 반복을 전제로 한 능력이다. '반복'을 '복습의 기회'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MBA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복습의 기회'로 만들어 주었다. 셋째, 오너십을 가지게 된다. '주인의식'이란 말은 모든 직장인의 치를 떨게 한다. "주인 의식 가지라면서요. 그럼 주인에 상응하는 월급을 주거나 대우를 해주세요!"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산다. 그런데 여기엔 달갑지 않은 전제가 하나 있다. 회사는 '주인', 나는 '머슴(또는 노예)'라는 로직이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글쓰기와 MBA를 통해 생각이 바뀌었다. 나를 머슴과 노예로 비하하지 않기로 했다. 실제로 그러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월급이 성에 차지 않아서 그렇지 나와 회사는 엄연한 '계약 관계'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 역량이 조직의 역량이고, 조직의 성장이 나의 성장이다. 이 무슨 회사 편과 같은 말이냐고 반박할 사람이 수두룩하겠지만, 단언컨대 나는 '회사 편'이 아니라 철저하게 '내 편'이다. 내가 정의하는 '주인의식'은 '내 주인인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스스로의 책임감'이다. 주인이 누군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월급은 '받는 것'이 아니라 '버는 것'이다. '주인'이라는 주어를 재정의 해야 한다. 다름 아닌 '나'를 위해서. MBA를 통해 그렇게 나는 오너십을 가지게 됐다. MBA는 전반적인 경영을 관리하는 공부이므로, 경영자의 관점에서 내 일을 바라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유한한 직장생활 이후에 '내 일', '내 사업'을 하게 될 때 필요한 역량이다. 나는 지금부터 그러한 관점으로 내 일을 바라본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아니라서 그렇지, 일종의 경영수업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차피, 언젠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경영자가 될 것이니까 말이다. 이 외에도 배운 것은 부지기수다. 그러나, 이 배움의 열매는 내가 현업에 뿌린 씨앗에서 피어올랐다고 나는 자부한다. 뭣도 모르고 MBA를 일찍이 가지 않았다... 못했다...라는 것이 다행일 정도다. 더불어, 나와 다른 업무를 하는 사람이나 또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커다란 자극이 된다. 반대로, 내가 지겹도록 하는 일이 누군가에겐 또 다른 전문 영역이며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다는 걸 새삼 느끼기도 한다. MBA는 '메타인지'라는 선물을 주는 것이다. 이는 내가 글쓰기를 통해서도 받은 선물이다. 글쓰기를 통한 메타인지가 자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MBA를 통해 얻은 메타인지는 실무적이고 전문적인 역량에 적용된다. 그래서, MBA는 더 비싼 밥을 먹게 해 준 걸까? 결론은 '그렇다'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밥도 가치 있게 먹을 줄 알게 되었다. '비싼 밥'의 정의는 무엇일까. 비싸기만 하다고 모두에게 좋은 음식은 아니다. 반대로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있듯, 어느 정도는 그 질을 보증할 값을 매겨야 한다. 내 업무 역량은 더 발전했고, 스스로의 성장도 도모할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현업의 실습과 MBA의 복습을 통해 다시금 현업에서 실력발휘를 하고 있다. 물론, 갈 길이 멀다. 그러함에도 두 번의 해외 주재와, 급여의 상승 그리고 그 이상의 기회들을 마주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MBA는 내게 큰 도약의 기회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 MBA를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면 나는 적극 추천할 것이다. 단, MBA가 복습이 될 수 있는 그때에 도전하라고 할 것이다. 그러하지 않으면 나는 반대로 말리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과거의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그렇게. 나는 약 2년여간의 공부를 마치고 'With Honors'라는 우수 성적으로 MBA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더불어, 이것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걸 나는 직감했다. MBA는 복습이자 또 다른 시작. 그것의 토대를 이루는 건 내가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 이것이 내가 스스로 깨우치고 배운 MBA의 가치다.
스테르담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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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말고, 완전하세요
💬_________ 구글에 다닐 때 내 스승이었던 프레드 코프먼은 많은 상사가 잘못 알고 있는 '업무적인 태도'와 맞서 싸우기 위해 다음과 같은 주문을 되뇌었다. "완전한 자아로 일터에 나가라." - 팀 스콧, 실리콘밸리의 팀장들 완전한 자아. 완전한 자아는 완벽한 자아가 아니다. 완벽한 팀장에 대한 강박 대신, 멋있는 팀원이 되고 싶다는 욕구 대신, 솔직한 나 자신의 모습 그대로 일터에 나가자. 나는 완벽한 팀장이 아니라서 매 순간 팀원들의 솔직한 피드백을 받는다. 매 순간 조금 더 나아질 기회를 얻고 있다. 다름 아닌 팀원들이 나에게 그 기회를 주고 있다. 기쁘게도. 다행스럽게도. __________ 김민철 님의 책 <내 일로 건너가는 법>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내 삶의 주도권을 일이라는 존재에 빼앗기지 않는 법. 일과 직업을 나의 소중한 일상을 지탱하기 위한 훌륭한 수단으로써 단단하게 가꿔가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저처럼 일과 직장이 내 삶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그 사이의 균형에 대해 고민이 많은 분들이라면 흥미롭게 읽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심스럽게 권해봅니다. 🙂
박광현 | 현대트랜시스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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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1달 전에 1달 안에 끝나지 않을 일을 시키는데
퇴사 의향을 밝힌 것이 2달 전인데 이제 1달 남은 상황인데 1달 안에 끝날지 의문인 업무를 시킵니다 이거 오래걸리는 업무고 인수인계 생각하면 1달안에 못끝낼 수도 있다고 했음에도 일단 해보랍니다. 그러면서 우스개소리로 지나가듯 말하긴 했지만 일 안끝나면 퇴사 못하는거지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할 때까지는 해보겠지만 결국 달을 넘길거같으면 그냥 연락끊고 잠적하고 싶은 생각만 피어오르는데,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요 23-02-04 추가 상상 이상으로 많은 분들이 관심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사실 글 올린 이후에 지금 이야기 나온 이 업무 다음주에 끝나겠냐는 소리듣고 오래걸린다고 분명 말했는데 그게 지금 무슨 소리냐고 한바탕 따진 상황입니다. 인수인계 관련해서 말해주신 분들 많았는데, 사람이 하나 둘 나가서 이미 사장 제외 둘밖에 남지 않은 회사인데, 저 나간뒤에 추가로 뽑을 생각도 없고, 사장제외하고 남은 사람 한명이라 둘이서 인수인계 받을 모양인데 솔직히 절대 불가능하다고 보고있습니다. 원래 들어올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인원이 5명은 됬는데 들어온 당일부터해서 한명 두명 그만두더군요. 사장이 저모양이니 당연한 이야기고 저도 포기했습니다. 말을 해도 안듣고 일터져도 안고치면 포기해야죠. 댓글 달아주신분들 다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하는데까지만 하고 뒷일은 알아서 하라고 할 생각입니다. 아,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게임 서버 관리입니다. 사람이 적어서 클라도 같이 보고있고요. 원래 웹 개발하던건 있었는데 게임회사 욕심을 못버리고 들어갔다가 회사 대충 보고 들어가서 이 고생 하고있고, 솔직히 굉장히 후회중이긴 합니다.
피곤한늘보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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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리멤버 이 기능 없는게 말이 됨? 빨리 이 위젯 개발하셈
위젯에 '사진찍어 명함 추가 ' 기능이 없는게 말이 되나요 명함원툴 앱이 ㅋㅋ 사진이 아니라면 스캐닝방식으로 명함에 사진기 가져다대면 인식해서 업로드하는 방식으로라도 만들어야되는거 아님? 다른앱들은 qr코드 같은걸로 다 하더만 왜 없음 여기는?
돌연변이론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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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원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척(隻) 지다'란 말이 있다. 서로 원한을 품어 미워하거나 대립하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척'이란 한자는 '외짝'을 이른다. '외짝'이라니. '서로 미워하여 등을 지는 사이'와 '외짝'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어원을 가로질러 올라가 보면, '척'이란 글자는 옛 조선 시대의 '피고(被告)'를 이르는 말이다. 피고가 있으면 '원고(原告)'가 있다. 그러니까, '원고'쪽에서 보면 한 쌍의 외짝은 '피고'가 되는 것이다. '피고'가 '외짝'을 뜻하는 한자 '척(隻)'의 의미와 부합하여 만들어낸 결과다. 민사에서 '원고'와 '피고'는 평소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분쟁이나 갈등은 결국, 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말이다. 과연 그렇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저 멀리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내 옆의 동료나 가족이다. '척'이란 말 말고도, 그 뒤에 붙는 '지다'란 말에도 주목을 해야 한다. '지다'의 원뜻은 '어떤 좋지 않은 관계가 되다'란 뜻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짐을 짊어진다는 '지다'의 뜻도 가미한다. 가까웠던 사람과 관계가 어그러지면 그것은 내가 이고 가야 할 삶의 짐이기 때문이다. 관계가 단절되고,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다 보면 삶은 극도로 피로해진다. 그러나 나는 그 관계를 어거지로 이어 붙이지 않는다. 깨진 그릇은 이어 붙일 수도 없을뿐더러, 붙였다 하더라도 그릇으로 사용할 순 없다. 피로는 언젠간 풀린다. 깨진 그릇을 붙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오히려 더 큰 피로다. 대신, 나는 '원고'의 입장에서 벗어나 '판사'가 되어보기로 한다. 척을 진 이유의 모든 것이 상대방에 있었다고 생각했던 나를 탈피하는 것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때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과연 내 행동과 반응도 그리 온당치는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심지어는, 내가 '원고'가 아니라 '피고'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상대에게 나는 '피고'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척을 진 내 원수들에게 할 말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신기하게도 미안함과 고마움이라는, 예전에는 말도 안 되던 감정마저 피어오른다. 그들로 인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상처받았던 마음과 혹독하게도 아팠던 영혼이 나로 하여금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라고 말한 것이다. 더불어, 척을 진 원수들 덕분에 나는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알게 되었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니, 그것은 가지 말아야 할 곳에 내 원수들을 심어놓은 누군가의 큰 그림이 아니었나 싶다. 가지 말란 길로 자꾸 가는 나에게, 그 방향을 어서 틀라는 누군가의 신묘한 장난이라고나 할까. 내 원수들 덕분에 나는 진로를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들 덕분에 더 소중한 사람을 알아보게 되었다. 척을 지거나, 적이 되거나, 내게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실망한 적이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그것은 내게 '정화(淨化)'의 과정이었다. 걸러질 것은 걸러지고, 소중한 사람들만이 남는 것을 목도한 것이다. 내게 남은 사람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애써 구별할 필요가 없어졌다. 살아가면서 척을 지는 일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그러나 척지는 일은 내 의도와 상관없이 일어 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원수들이 양산된다는 말이다. 그게 삶이다. 살아가는 동안 원수가 생기지 않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다간, 자기 자신과 척질지도 모를 일이다. 소란한 마음을 잠재울 때마다 나는 내 원수들에게 마음의 편지를 적어 보내기로 한다. '때문에'란 말보단 '덕분에'란 말을 가득 채워서.
스테르담
23년 0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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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A는 더 비싼 밥을 먹게 해 줄까?[Part.1]
MBA 스터디를 기웃거렸던 추억 대리 시절이었다. 십 수년 전이었고, 생각이 많았던 그때. 기대했던 직장생활이 아니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을 그즈음이었다. '나는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지?'란 생각과 '더 늦기 전에 지금 이 상황을 급격하게 바꾸거나 바로잡아야(?) 한다'라는 조급함이 몰려왔었다. 발을 동동 굴렀다. 터져버릴 것만 같은 현실과의 괴리감이 잠을 못 자게 했다. 주위를 살폈다. 여기저기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고만고만한 월급을 받으며 고만고만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싫었다. 나도 그렇게 고만고만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한 확신은 분명히 나를 고만고만하게 만들어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서서히 끓어오르는 냄비 속 개구리가 나와 다를 바 없다는 현실 자각이 뒤통수를 세게 후려친 것이다. 그 시절, 새로운 상무님이 낙하산(?)과 같이 내려왔다. 내 팀장님보다 어렸던 걸로 기억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MBA를 다녀왔단다. 대기업이지만 잘 나가지 못했던 그 회사에서 염증을 느끼고 대리 때 퇴사를 한 뒤, MBA를 다녀와 컨설팅 회사에서 몸값을 올리고 우리 회사로 임원으로 스카우트된 거였다. 한 줄기 희망이 보였다. 그래, MBA였구나. 이 고만고만한 현실을 바꿔 줄 정답! 구원과도 같은 MBA란 단어에 나는 흠뻑 취해있었다. GMAT이라는 두꺼운 책을 산 뒤, 강남역 근처 MBA 스터디에 가입을 했다. 내가 이렇게 실천력이 대단했던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놀라며 스터디를 시작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돌이켜 보니 나는 그저 MBA 스터디를 그저 기웃거린 것에 불과했다. 한 마디로 처참히 MBA 스터디를 그만두었다는 말이다. 뭣도 모르고, 그저 현실이 싫어서. MBA가 더 비싼 밥을 먹게 해 줄 거란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어떻게'에만 혈안이 되어 달려든 결과였다. 두꺼운 책 몇 장에 밑줄 끄적거린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그렇지 뭐...'란 생각과 함께 MBA 스터디에 대한 추억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MBA는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것? 사람은, 아니. 직장인은 자기 합리화를 통해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현실과 이상에서 오는 괴리감과 그 괴리감에서 피어난 인지부조화 현상을 타파하는 데 자기 합리화만큼 쉽고 편한 게 없기 때문이다. 천둥과 같은 아침 알람 소리에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월급과 대출을 떠올리면 기어이 몸은 일으켜진다. 일어나기 싫다는 마음과 출근해야 한다는 인지부조화는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MBA는 나에게 현실과의 괴리가 매우 큰 무언가였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MBA에 합격을 했다면. 나는 그때 하던 일을 관두고 2년 이상의 시간을 해외로 나갔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더 큰 것을 가져다준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나는 빚을 내서라도 다녀왔어야 했다. 그러나 내게 그런 배포는 없었다. 당장 먹고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훌륭한 자기 합리화가 되어 현실을 직시하게 한 것이다.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전략적 부작위(不作爲)'였을까, 아니면 '비겁한 부작위'였을까. 당시엔 후자가 맞았다. 비겁한 부작위. 열심히 공부하지 못하고, 배포 없이 현실에 수긍해야 했던 내 모습은 비겁함 그 자체였다. 나는 MBA를 신 포도로 만들었다. 먹을 것이 못된다고 결론지었다. 말이 2년이지, 거기에 투자할 돈과 시간이 나에게 그 이상으로 되돌아올까란 의구심을 키웠다. 실제로, MBA 졸업자의 희소성이 옅어지는 것도 한 몫했다. 예전엔 MBA가 젊은 임원을 배출해내는 성공의 물꼬였지만, 점점 MBA에 대한 공급이 더 많아지면서 대학원과 같은 성격으로 변모해가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자기 합리화의 함정이었다. 어느 학교, 어느 레벨의 MBA를 가느냐와 졸업할 당시 개개인이 가진 역량은 그 변화의 추세로 단정 지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MBA는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옷. 내가 바라보기엔 너무나 비싼 것. 꾸준함도 비용도 부족한 내가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하지 못해서 못하는 것. 자기 합리화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비겁한 부작위'에서 '전략적 부작위'로. MBA라는 기회. 자기 합리화의 매력은 멈추지 않는다는데에 있다. 나는 어떻게든 나 스스로를 꾸려가야 했다. 안 하는 것이든, 못 하는 것이든. 못난 나든, 꾸준하지 못한 나든. 어르고 달래며 이 세상을 잘 살아내야 하니까 말이다. MBA를 신 포도로 간주한 뒤. 내가 재설정한 자기 합리화는 현업에 충실하자는 것이었다. 답은 현장에 있으니, 현장에서 답을 찾자는 것이었다. 마침, 번아웃 이후 시작한 글쓰기로 내 삶은 변화해 있었다. 내 일과 직장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새롭게 바뀌어 있었다. '본업'에서 '업'을 찾는 법을 알게 되었고, 주인과 머슴 관계가 아닌 '주체적 주인의식'으로 내 일을 바라보니 반복되는 일들도 가치 있게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일생일대의 변화였다. 고만고만했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던 순간. 내 주위 사람과 내게 일어나는 일은 고만고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고만고만한 일은 없다. 다만, 고만고만하게 바라보는 시선만이 있을 뿐. 대부분의 직장인은 고만고만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선을 달리하니, 직장은 배울 것 투성이었다. 본업과 현장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지식과 깨달음이 쏟아져 나왔다. 책에서만 보던 이론을 직접 체험하며 나는 빛나는 보석들을 마구 주머니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다 회사로부터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다. MBA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인재 발굴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이었다. 행운이었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행운을 맞이하기 위해선 일어나 어느 골목으로 걸어가야 한다. 준비된 자에게 행운이 온다는 말은 진리다. MBA고 뭐고, 그 좌절감에 고만고만하게 일하고 고만고만하게 직장생활을 했다면 내게 오지 않을 행운이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현장에서 줍줍 하던 보석들이 그날따라 유난히 더 눈부셔 보였다.
스테르담
23년 0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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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나의 슬럼프를 절대로 알리지 마세요
직장인의 직업병, 슬럼프 직장인에게 슬럼프는 지긋지긋하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좀 더 하다 보면 알게 된다. 별로 였던 사람도 꽤 귀여운 구석이 있는 것처럼, 슬럼프도 꽤 친근한 구석이 있다는 걸. 심리학에서 말하는, 만남을 거듭할수록 호감을 갖게 된다는 '단순 노출 효과'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엔 슬럼프가 삼 년 단위로 온다고 하지만, 요즘은 세 달, 삼 주, 하루에 세 번 심지어는 세 시간마다 오기도 하니까. 직장인의 삶은 그렇게 고달프면서도 다이나믹한 것이다. 그러니, 이쯤 되면 슬럼프는 직장인의 직업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슬럼프는 감기다 친근해서 그런지 슬럼프를 바라보는 시각이 좀 바뀐다. 밑도 끝도 없는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는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지만, 지난날의 슬럼프를 되돌아보면 분명 무언가 의미가 있었다. 어느 방향인지 모르고 뛰어가던 나를 잠시 멈춰 세운 것도 슬럼프였다. 심한 몸살감기는 면역력을 약하다는 신호이자, 몸을 챙기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감기는 누구나 쉽게 걸리고, 나와 너가 동시에, 또는 나와 너 중 하나만 걸릴 수도 있다. 한바탕 푹 자고 일어나거나, 열병에 아파 땀을 뻘뻘 흘리며 아픈 뒤에 자신을 더 챙겨야겠다는 다짐을 갖게 하는 게 어쩐지, 감기와 슬럼프가 서로를 닮았단 생각이다. 내 열정에 취해 다른 사람이 아픈지도 모르고, 반대로 내가 아프면 세상 모든 열정이 사라지는 것처럼. 내가 괜찮으면 다른 사람의 슬럼프가 보이지 않고, 내가 슬럼프면 남의 열정이 과해 보이는 것이다. 나의 슬럼프, 절대 알리지 말 것! 슬럼프는 직장인에게 감기와 같이 오고 지나갈 수 있는 것이지만,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절대, 내가 슬럼프라는 것을 말하지 말 것!" 직장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내 슬럼프에 관심이 없고, 있다면 내 슬럼프를 즐기거나 수군대는 사람들뿐이다. 내가 슬럼프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공감하고 위로해줄 것 같지만, 깊은 내면에서 진심으로 그렇게 대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슬럼프라고 해서 나에게 와야 할 일이 오지 않는 경우는 없다. 업무상 발생하는 부족함의 일거수일투족은 슬럼프와 연관이 된다. "이 과장 슬럼프래. 그래서 그런가, 영 시원치가 않아. 보고서가 엉망이야, 엉망." 더불어, 그 소문은 발 없는 천리마와도 같다. "김 대리 잘 지내? 요즘 슬럼프라며?" 나를 경쟁자로 여기는 사람에겐 아주 좋은 떡밥이자, 예사롭지 않은 사람들의 인사는 다시 피어오르는 내 열정을 꺾어 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누가 감기에 걸렸다고 하면, 농담이든 진담이든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요즘 같은 시국엔 더 그럴 것이다. 즉, 일로 만난 사이에서 뼛속까지 깊은 공감과 위로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내가 아프면 나의 아픔을 알아줄 거란 생각은 직장 밖에서나 하는 것이다. 안 그럴 것 같지만, 직장엔 나의 아픔을 악용하는 사람이 분명 있다. 슬럼프가 왔을 땐, 그러니 나 홀로 조용히 슬럼프를 맞이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슬럼프가 오면 소중한 손님처럼, 누구도 볼 수 없는 조용한 방으로 불러 슬럼프가 떠날 때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이번엔 왜 왔는지, 어떤 말을 하고 싶어서 왔는지, 내가 잊고 지나온 것들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떠해야 하는지. 절대, 언제 갈 거냐고 종용하며 채근하지 않는다. 그러면 슬럼프는, 머지않아 나에게 여러 가지 보따리를 풀어놓고 생각보다 빨리, 홀연히 사라진다. 인사도 없이 가는 게 섭섭할 만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적에게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한 건, 아군의 사기를 위해서였다. 나의 슬럼프를 누구에게라도 절대로 알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스테르담
23년 0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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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출근 후 드는 생각
안녕하세요. 저는 30대 후반에 전직장을 퇴사하고 2달정도 이직 준비를 했습니다. 열심히 준비하면서 다행히 좋은 결과를 받았고 처음 가보는 타지역에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결정한 일이지만, 사랑하는 모든 것들과 떨어져 혼자 원룸에 누워있으니 마음이 외롭고 허전하네요. 20대때는 새로운 곳에서 일하는것이 즐겁고 설렜는데 좋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첫출근 하자마자 내가 뭐를 위해 이토록 살고 있나, 일하러 가기 싫다,, 자꾸만 참 바보같은 생각이 드네요.
달토끼린
23년 0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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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을 위한 기도
기도하게 하소서. 오늘도 천둥과 같은 알람 소리에 놀라 일어난 직장을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 기도하게 하소서. 자존감은 냉동고에 넣고 비장함과 비루함을 동시에 품고 직장으로 향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 기도하게 하소서. 롤러코스터와 같이 요동했던 하루가 그들에게 있어 무의미하지만은 않도록 무어라도 깨닫게 하소서. 내 비록 그들과 다르지 않은 직장인이나. 어느 날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를 알아차린 이 뜻을 전하게 하소서. 직장인이라는 불행 프레임에 갇힌 그들을 자유롭게 하소서. 월급을 받는 존재가 위대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떠나가게 하소서. 월급은 '받는 것'이라 생각하는 그들에게, 그들이 당당하게 '벌고 있는 것'이란 깨달음을 주소서. 회사는 주인이고 나는 노예라는 생각을 멈추게 하소서. '주인의식'이란 말에 소스라치는 그들에게, 누가 진정한 '주인'인지를 깨닫게 하소서. 그러하므로, 스스로가 제 '주인'임을 알아차리게 하소서. 비굴함은 오늘도 나를 지켜내는 강력한 무기임을 알게 하소서. 그러함으로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 따스히 어루만지게 하소서. 월급이 따박따박한 게 아니라. 저 스스로가 따박따박하다는 걸 알게 하소서. 월급이 끊기지 않았다면. 생각보다 더 부지런하게, 더 지독하게 출근하고 퇴근했음을 알게 하소서. '통근'의 '근'자가 '부지런할 근'이라는 걸 알게 하소서. 스스로가 생각보다 더 대단한 존재라는 실마리를 붙잡게 하소서. 기어이 출근했고, 묵묵히 욕을 들어 먹었으므로. 회사의 잣대로 스스로를 평가하지 않게 하소서. '나'를 잘 대접하게 하소서. '나'를 잘 접대하게 하소서. '나'를 잘 의전하게 하소서. '나'를 사랑하는 법을 다시금 깨우치게 하소서. 울게 하소서. 월급쟁이라는 틀 안에 스스로를 욱여 놓아 자신을 막 다루고 있는 그들을 위해 울게 하소서. 웃게 하소서. 사랑하는 사람과 스스로를 위해 오늘도 묵묵히 무거운 하루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그들을 웃게 하소서. 그렇게. 끝내 웃게 하소서. 내내 웃게 하소서. 언젠가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를 벗어던질 때. 좋았던 것은 추억으로, 그렇지 아니한 것은 경험으로 남길 수 있도록. 생각보다 더 대단한 자신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기도하게 하소서. 울게 하소서. 마침내 웃게 하소서.
스테르담
23년 0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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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 이메일 유첨을 빼고 보내는 (심리학적)이유
유첨 파일이 빠진 이메일 모든 게 완벽했습니다. 그 날따라 이메일 문구 하나하나가 술술 써졌습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주옥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 정도면 상사로부터 내가 원하는 걸 어렵지 않게 얻어낼 수 있고 함께 수신자에 있는 사람들로부터는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아 내심 뿌듯했습니다. 평소 하지 않던 메일 다시 읽기를 통해, 전체 문구와 맞춤법 또한 확인했습니다. 이제, 보내기 버튼만 누르면 되는 겁니다. 보내기 버튼을 클릭하고 아주 잠시 마우스에서 손을 떼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어떤 문제가 있을지에 대한 말 그대로 'Last checkup'이었습니다. 마침내 마우스에서 손을 뗀 순간. 모든 게 완벽하다고 자부했던 마음이, 메일이 보내지는 1초보다도 짧은 그 찰나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중요한 유첨 문서를 잊은 겁니다. 결국, 저는 같은 이메일을 다시 한번 더 보내야 했습니다. 왜 보내는 순간에서야 보이는가? 사실, 이러한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요즘은 메일 회수 기능이 있어서 예전보다는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좀 더 있지만 이미 수신한 사람이 있다면 완전범죄(?)를 만들 순 없습니다. 더불어, 어찌 되었건 실수를 했다는 불편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게 됩니다. 보다 속상한 건,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겁니다. 직장생활에서 이메일은 필수고, 연차수 이상으로 수많은 이메일을 보냈을 텐데 말이죠. 저는 생각했습니다. 왜 이런 일은 왜 일어나는 걸까?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의 끝에서 저는 '도파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도파민은 중추 신경계에서 발견되는 호르몬 또는 신경전달 물질입니다. 이 호르몬은 사람의 행동과 인식, 자발적인 움직임, 동기 부여, 처벌과 보상, 수면 기분 그리고 학습 등에 깊이 관여하는 물질입니다. 특히, '중독'과 '동기' 그리고 '보상'이 그 핵심 키워드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도파민은 일종의 흥분성 전달물질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합니다.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도파민이 적게 분비되면 우울증에 빠지고, 과도하면 조증이 발생합니다. 그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해, 약물이나 술에 의존하는 '중독' 현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에서는 '도파민 단식'이 열풍입니다. 페이스북에서 부사장을 지낸 차마트 팔리하피티도는 페이스북을 비롯한 여러 SNS가 '단기 피드백 순환고리'를 이용해 돈을 벌어들이고 있고, 이 방식은 사회 작동 방식을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타인의 관심과 칭찬이라는 '반응'과 그 반응을 얻으려는 욕망과 기대라는 '동기' 그리고 도파민 생성이라는 '쾌감'의 순환 고리에 사람들이 빠져버린다는 것입니다. 사실, 실리콘 밸리는 테크 기업의 고향이고, 그 기업들이 SNS와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어 도파민을 무한 생산해내고 있음을 돌아볼 때, 차마트 팔리하피티도의 비판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섬뜩한 말로 다가옵니다. 자, 그렇다면 도파민과 이메일을 보낼 때 유첨 파일을 빼먹는 것과는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요? 우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도파민에 취해 유첨을 하지 않았다는 걸 몰랐던 겁니다. 보내는 순간이 되어서야 제정신을 차리고 그것을 깨닫게 된 것이죠. 도파민의 분비 = 보상회로 작동 쉽게 설명하자면, 저는 메일을 보내고 난 뒤에 받을 인정과 칭찬을 미리 맛본 것입니다. 메일을 보내기도 전에 저는 도파민을 분비하여 스스로에게 '보상'을 전한 겁니다. 보상을 받은 저는 그만 긴장하던 마음을 놓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직장에선 이러한 일이 하나 둘이 아니라 셀 수 없이 일어납니다. 이메일뿐만 아니라, 보고서 작성, 구두 보고, 중요도가 높든 낮든 간에 반복되는 일 등. 하고 싶은 일이든 하고 싶지 않은 일이든, 우리는 그 일을 마쳤을 때 오는 '후련함'과 '성취감', 결과가 좋았을 때의 '인정' 등을 기대하며 일을 대하게 됩니다. 즉, '보상'이라는 '도파민'과 '도파민'이라는 '보상'을 얻기 위해서 말이죠. 돌이켜보면 내게 주어진 일을 빨리 처리하고 '후련함'이라는 보상을 얻기 위해 몰두했던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보고서에서 나타나는 맞춤법 실수나, 이메일을 보낼 때 유첨을 빼먹는 것 그리고 직장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실수들을 종합해볼 때 더 그렇습니다. 어서 빨리 처리하여 마음의 리스트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욕구와 그것을 끝내고 받을 보상에 말 그대로 심취해있던 것입니다. '보상'은 잘 활용하면 동기부여를 해주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마음이 들떠있다면 나는 과연 어떤 보상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이유입니다. 사람은 도파민을 얻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도파민이라는 번화가는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그 번화가에는 물질적인 것과 쾌락적인 것이 즐비하여 좋게는 그것에 의해 동기부여를 받기도 하고, 나쁘게는 중독에 빠지기도 합니다. 직장에서 우리가 얻는 도파민은 바로 '인정'입니다. 인정을 받아야 우리는 승진하고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추구하는 마음이 적당하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지나쳐 말 그대로 도파민의 노예가 되면 그 마음이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물불 안 가리고 정치질을 하거나, 남의 성취를 가로채는 등의 일이 직장에서 수도 없이 일어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회적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직장에서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는 일은 하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이메일을 보내며 혹시라도 유첨을 빼먹진 않았나를 확인하는 마음으로. 내가 받을 보상에, 도파민에 취해있진 않은지를 점검하는 자세로 말이죠. 동기부여를 위한 도파민은 언제나 환영하되, 혹시라도 그것이 나를 휘두르고 있진 않은지를 우리 함께 돌아봤으면 합니다. 모든 직장인의 건전한 도파민 생성을 응원합니다. 진심으로.
스테르담
23년 0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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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회사에서 친구가 적은 것도 문제인가요?
스테르담 직장인 심리카페 의뢰 내용을 정리하여 연재합니다. Q. 회사에서 친구가 적은 것도 문제인가요? 회사에 유난히 대인 관계가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둘러싼 모든 사람은 마치 친구 같아 보입니다. 상대적으로 회사에 친구가 적은 저는 알지 못하는 열등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회사에서 친구를 많이 만드는 게 좋은 걸까요? A. 생각보다 이러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직장에서 친구가 필요할까요? 많으면 좋은 걸까요? 이때마다 저는 노래 가사 하나를 떠올립니다. '사랑과 우정 사이'란 곡 안에 있는 가사인데요. 그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나는 사랑이지만, 상대방은 우정으로 생각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한 노래라 마음이 좀 아프긴 합니다만 저는 이것을 직장생활에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활용하고 있냐고요? 바로 가사를 아래와 같이 바꿔보는 겁니다. '친구보다 먼, 타인보다는 가까운...' 도로 위 내 주위 차를 선택할 수 없듯이,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또한 그렇습니다. 그중에는 좋은 사람 또는 나와 잘 맞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같은 공간에 서로 함께 하기조차 싫거나 나랑 상극인 사람이 있습니다. 보다 나은 직장생활을 위해선 아무래도 전자의 사람들이 많은 게 좋겠죠. 그러나, 그렇다고 그러한 사람들과 무조건 친구가 되어야 할까요? <직장 내공>이란 책에서 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직장은 일하기 위한 곳이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곳이 아니다. (중략) 직장에서 서로에 대한 마음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딱 중간 정도가 좋다. 그게 좋다. 서로를 위해'. 조금은 정이 없어 보이고, 차가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하기에 회사에서 친구가 적은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친구가 너무 많으면 그게 더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도로 위 어떤 차들은 저에게 양보도 해주고 아주 친절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곳에서 만난 차들은 어차피 모두 다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을 뿐입니다. 서로를 배려하고, 함께 신나게 일하되. 굳이 친구를 만들거나 누군가의 친구가 되기를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묵묵히 각자의 목적과 방향을 추구하며, 서로에게 피해 주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회사에서는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스테르담
23년 0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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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툰] 갈대같은 기획자의 마음
<IT기획자로 산다는 것> 어떤 날은 의욕이 하나도 없고😩, 어떤 날은 의욕이 넘쳐 흘러요🤭 심할 때는 시시각각 컨디션이 변화하는 것 같아요 ㅋㅋㅋ기획자의 멘탈케어를 부탁드립니다🥺 #기획자#직장툰#일상툰
카카 | 기획자로 산다는 것
23년 0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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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아..
사랑하는 딸아 지난 달부터 너의 표정이 무척이나 어둡더구나 명절 연휴에도 마음껏 웃지 못하고 계속 한숨만 쉬는 모습도 보이고, 작년 연말에 그렇게 바쁘다며 야근했을 때도 지쳐보이지 않았는데 요즘은 집에는 일찍 오지만 더 지쳐 보이고 말수가 부쩍 줄어들었구나. 이 둔한 아빠는 어제서야 엄마에게 네가 힘들 이유를 들었단다. 작년 봄 너를 부던히도 힘들게 했던 회사 선배가 다시 복귀했다는 이야기 사람 미워할 줄 모르던 너를 치를 떨게 만들고 증오라는 말을 하게 하던 그 녀석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아빠도 마음이 철렁 내려 앉았단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웃으면서 우리 딸을 뒤에서 욕하고 평가도 나쁘게 만들었던 그 녀석 여름에 지방으로 전배되었다는 말에 우리 모두 건배를 하며 즐거워했는데 다시 돌아왔다니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괴로울까 이름조차 꺼내기 싫었던 그 사람을 사무실에서 다시 마주쳐야 한다는 그 현실이 너에게 얼마나 지옥 같을까. 회사에 가서 얼마 안되었을 때 네게 아빠에게 그랬지 회사 생활을 해보니 아빠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고.. 이 둔한 애비는 너의 그 고통이 짐작조차 되지 않는구나. 아빠는 너의 건강이 너무 염려되어서, 너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하는 내가 한심스러워서 어젯밤에도 몇번이고 네 방문 앞을 서성였단다. 딸아 너무 힘들면 그 일을 그만두어도 된단다. 네가 그 일에 얼마나 큰 애정이 있는지 너무 잘 알지만, 너의 커리어에 그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니 다른 일을 찾아보자구나 그렇지만 성인인 네가 결정하는 것이니 무엇을 하던지 아빠는 너를 지지하고 사랑할꺼야 힘내렴. 그리고 네가 힘 닿는 곳까지 싸워보렴 잠시 물러서는 것은 있을지 몰라도 패배하는 것은 없을꺼야. 네가 잠시 물러설 때 엄마와 아빠가 너와 함께 있을테니까. 그게 우리 가족의 힘이니까.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빠의 마음으로 쓴 글 입니다. 괜한 어그로 죄송해요.
흰머리개발자
억대연봉
23년 0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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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계약서랑 입사한 회사명이 다를때
안녕하세요 동생이 중소기업에 취업을 했는데 처음 면접때 듣고간 회사명과 근로계약서 회사명이 다르더라구요. 이 회사 다녀도 괜찮은거맞나요.. 월급은 중소치고 많이준다고 적혀있는데 제가 알기로 이런식으로 회사 쪼개서 수당안주고 부려먹는거아닌가요ㅠㅜ 이 회사를 계속 다니라고 하는게 맞는지 고견부탁드립니다
열열이
23년 0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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