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이솝우화를 함부로 믿으면 안 되는이유
그 이야기를 들어줄 이도 없다. 각자가 알아서 쉬어야 하고, 알아서 휴일이나 휴가를 챙겨 먹어야 한다.
이솝 우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도덕성을 위해 어느 한쪽으로 쏠려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개미와 베짱이 그 둘 모두가 되어야 한다. 열심히 겨울을 대비하면서도 따뜻한 계절을 만끽해야 하는 것.
그 누구도 이것을 챙겨주지 않기 때문이다.
2. 금도끼 은도끼
'금도끼 은도끼' 또는 '헤르메스와 간사한 나무꾼'이라고도 불리는 이야기는 우리나라 전래 동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금도끼와 은도끼를 자신의 것이라 말하지 않고, 자신의 것이 쇠도끼라고 말한 나무꾼은 그 모든 도끼를 받았다는 이야기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금도끼 은도끼'가 우리나라 고유의 전래 동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고대 그리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화이며,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에 다양한 형태로 전해진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정직'과 '겸손'의 교훈을 이야기한다.
나는 '정직'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다만, '겸손'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직장에선 언제나 '드러낼 때'와 '드러날 때'를 잘 구분해야 한다.
드러낸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성과를 알리는 것이다. 드러난다는 건 내가 그러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알아서 인정해준다는 말이다. 과하게 드러내는 사람들은 잘난 척한다던가, 정치질을 한다던가, 광만 판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반대로 지나치게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가만히 있는 사람은 아무리 일을 잘해도 묻히고 만다.
직장에선 드러내야 할 땐 과감히 드러내야 하고, 때론 드러날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이 금도끼가, 저 은도끼가 네 것이냐고 누군가 물을 때. 무조건 아니라고 하지 말고, 곰곰이 그 질문의 요지를 잘 헤아려야 한다. 직장은 나 하나의 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내가 한 일이, 어떤 일에 나도 모르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고 의도치 않게 처리한 일이 성과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나와 관련된 성과라면. 그러니까 드러내야 할 때라면 과감하게 그것은 내 것이라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구분하는 잣대는 '정직'이 될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에 광을 팔았다가는 성과는 성과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오늘 나는 직장에서 금도끼와 은도끼를 만들어 내는 일에 기여를 하고 있는지.
내 일을 다시 한번 더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3. 여우와 두루미
심술 가득한 여우와 두루미의 음식 대접 이야기.
여우는 두루미를 초대하여 납작한 접시에 수프를 내밀어 잘 먹지 못하게 하고, 반대로 두루미는 여우에게 긴 병에 담긴 수프를 내어 수프를 먹지 못하게 했다. 남에게 상처를 주면 같은 방법으로 상처를 받을 수 있고,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역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
곧이곧대로, 상대방을 골탕 먹이는 게 아니라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을 헤아릴 때 그것을 떠올리는 것이다.
직장엔 저마다의 KPI (Key Performance Index)가 있다.
즉, 각자의 목표다. 이 목표는 조직의 것일 수도 있고 개인의 것일 수도 있다. 직장이라는 곳이 참 재미있으면서도 잔인한 게, 각 조직의 KPI가 다르고 그것들이 상충하며 회사가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같은 월급쟁이들끼리 지지고 볶을 수밖에 없다.
이 KPI에 따라 의도치 않게 나는 '갑'이 되거나 '을'이 되기도 한다.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없다. 돌고 돈다. 때에 따라, 그러니까 내가 아쉬울 때 나는 '을'이 되고 상대방이 아쉬울 땐 내가 '갑'이 된다.
내 KPI로 상대방이 곤경에 처할 경우가 있다.
이러한 때 그것을 빌미로 상대방을 괴롭히거나 압박한다면, 반대의 경우가 되었을 때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여우인 내가 두루미를 초대했다면 두루미가 먹기 좋은 그릇을 내어 놓는 게 맞다. 반대로 두루미인 내가 여우를 초대했다면 상대방의 어려움을 미리 간파하여 배려 가득한 음식과 그릇을 내어 놓는 게 좋다.
설령, 나에게 맞지 않는 그릇을 받는 푸대접을 받더라도.
나는 그에 동요되지 말고, 추후엔 상대방을 배려한 업무 처리를 하는 것이 좋다. 물론, 내 KPI가 먼저다. 무조건 그것을 양보하라는 것이 아니라 합치점을 찾을 수 있는지, 내가 양보하고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살피라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을 배려한 그릇을 내어 놓으면, 상대방도 그러하게 되어 있다.
그러하지 않은 상대방이 있다면? 상종하지 않을 사람으로 거르면 된다.
철저히 업무적으로만 대하면서.
4. 농부와 독사
이솝우화의 176번째 이야기. 한 농부가 눈 속에서 얼어 죽어가는 독사를 발견하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옷 속에 넣어 품는다. 그러나 독사는 농부를 물어 죽게 한다. 악에 대한 친절은 헛된 일이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개인적인 욕심과 야망에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그래서 선배나 상사에 공개적으로 대들기도 하고, 나 혼자 돋보이자고 정치적으로 행동한 적이 꽤나 많다. 사실, 그때는 내가 그런 사람인지 몰랐다. 그저, 나에게는 내가 맞아 보였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나 충고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이러한 잘못을 깨달았던 계기는 바로 선배들의 친절이었다.
그 선배들은 나를 품었다. 경거망동하는 나를 농부가 독사를 품듯 품은 것이다. 그러자 나는 정신을 차렸고, 내 안에 있는 독이 주위 사람뿐만 아니라 나도 서서히 죽어가게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악에 대한 친절은 헛되지 않다.
그것을 돌려받으려 하거나, 본전 생각을 하면 헛될 수 있다.
직장엔 수많은 독사가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지나 보면 결국 그 독은 스스로를 향해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혹, 독을 품은 후배가 있거나 경거망동하는 팀원이 있다면 친절로 포용해주길. 그래서 스스로 그 독을 발견하고 깨달아 그 인내와 사랑이 계속해서 전해지길.
사실, 모든 직장인은 처음부터 독사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직장 생활이 사람들을 독하게 만드는 것일 뿐.
5. 북풍과 태양
어느 날 거리를 지나가는 나그네의 상의를 벗길 수 있을지를 놓고 북풍과 태양이 힘겨루기 승부를 벌였다.
가장 먼저 북풍이 바람을 힘껏 불면서 상의를 벗기려고 했다. 그렇지만 추위를 싫어했던 나그네가 자신이 입고 있던 상의를 눌렀기 때문에 북풍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지 못했다. 그다음에는 태양이 햇빛을 쨍쨍 내리쬐었다. 그러자 나그네는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이 입고 있던 상의를 벗게 된다. 이렇게 해서 태양이 힘겨루기에서 승리하게 된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빠르게 서두르는 것보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하는 편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메시지는 힘보다는 따뜻하고 다정한 태도로 사람을 움직이면 그 사람은 스스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우선 '속도' 측면에서 생각해보자면.
직장은 우리가 성과를 낼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열등생이 우등생이 될 때까지, 학교처럼 응원을 해주거나 지긋하게 그 과정을 용인하지 않는다. '결과'가 인격인 곳이 직장이다. 만약, 태양이 나그네를 덥게 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면 북풍이라도 동원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주니어 때 내게 조언을 주었던 상사의 말을 속으로 되뇐다. 유럽 시장에 처음 주재원으로 부임했을 때 너무나 어려운 시장 상황에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상사는 위로와 충고를 동시에 주었던 것이다.
그 말은 바로, '너무 서두르지는 말고, 천천히 빨리 개선시켜 봐'였다.
문장 안에 있는 모순과 같이 내 감정도 역설적으로 웃음과 진중함이 뒤섞였던 기억이 난다.
더불어, 상대를 이해시키고 어르고 달래서 이끌어가야 하는 게 우선이지만 리더가 되면 때로는 태양이 아닌 북풍으로 팀원들을 이끌어야 할 때가 분명 있다.
물론, 이러한 때는 그 결과에 온전히 리더가 책임을 져야 한다. 확신이 있다면, 이게 더 맞고 더 좋은 길이라면 태양이 아닌 북풍을 활용할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나는 이솝우화를 부인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이솝의 이야기는 충분히 재치와 교훈을 얻기에 좋은 이야기다.
다만, 그것은 '정답'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권선징악이 담긴 이야기나, 우화에 나오는 '정답'은 현실 세계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왕자와 공주가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을 믿는 사람도 거의 없지 않은가.
직장생활엔 '정답'이 없다.
단지, '오답'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솝우화에 빗대어 직장생활을 한다면 정답은 없고 오답만 있는 직장생활 속에서 마음의 상처만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답'이 없는 직장생활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까?
자신만의 '해답'을 찾거나, 적어도 '오답'은 만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솝우화는 어렸을 적 추억으로 고이 남겨 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