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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유랑극단방송
23년 0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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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못하는 사람의 유형
솔직해져 보자. 나는, 당신은 일을 잘하는 사람일까? 앞에서 살펴본 ‘일 잘하는 사람의 유형’ 중 자신에게 해당하는 게 얼마나 되나? 때로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내가 일을 잘하기 위해서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반대를 돌아보는 것, 즉 버려야 하거나 피해야 하는 것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일까?’라는 질문에 대부분은 스스로에게 관대한 점수를 줄 것이다. 잘한다는 말까진 안 하더라도 최소한, ‘에이, 나는 일을 못하지는 않아’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일을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일을 못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상대방이 더 잘 안다.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데 인색한 우리네 문화에서, 만약 일 잘한다는 평판을 얻었다면 그 사람은 일을 정말 잘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평판이 좋지 않다면 억울한 마음은 잠시 누르고 겸허하게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니라고 부정만 하다가는 스스로 침잠할 가능성만 커진다. 다른 사람 말에 너무 휘둘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여 망가뜨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타인의 평가는 어느 정도 객관성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에게 관대한 나 자신의 평가와 객관성을 가진 다른 사람의 평가를 조합하여 나를 돌아보면 된다. 직장에도 좋은 사람은 매우 많다. 형, 누나, 오빠, 언니의 호칭도 불사할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 있다. 그렇게 편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직장생활의 작은 낙이다. 하지만 장소가 ‘직장’이란 데 문제가 있다. 일로 엮인 사람들에게 ‘일’은 기본 전제여야 한다. 아무리 호형호제를 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간밤의 숙취를 이른 아침 같이 푸는 의리로 엮인 사람이라 해도, 함께 일하다가 서로 실망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어쩌면 친할수록 일을 잘하는 게 더 중요할지 모른다. 그 친분을 더욱더 공고히 하려면 말이다. 나는 친한 사람과 일 잘하는 사람은 구분해서 보는 편이다. 공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스승의 존재 여부를 떠나, 누구를 만나도 배울 것이 있으니 내가 깨달아야 한다는 가르침일 것이다.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라는 것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배울 수 있다. 정리된 유형을 보며 자신에게도 혹시 이런 모습이 있진 않은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1) 싸움왕 (vs. 협상왕) 결론부터 말하겠다. 이들은 ‘협상왕’에 반대되는 사람들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즉, 하나를 쟁취하기 위해 싸움도 불사하지만 실제로 얻는 것은 거의 없다. 열 개를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 이하를 얻는다. 목소리가 크고, 다른 사람들의 요청을 모두 ‘공격’으로 간주한다. 회의에 참석하고 나올 때면 씩씩거리며 타부서 누군가의 이름에 온갖 저주를 퍼붓는다. 역지사지란 없다. 그저 내가 당장 불편하고 내가 손해 봤다고 생각하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들이받는 유형이다. 유관부서나, 팀 내 사람까지 갈무리하고 편을 나누어 팀워크를 확실히 망가뜨리는 역할에 능수능란하다. 보통 이러한 사람들은 뒤에 언급할 ‘무지(無知)왕’의 성격도 함께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싸움왕인 A차장은 평소에 부서 업무에 관심이 없다. 어쩌다 팀 대 팀 회의에 들어갔다가 높은 분이 있는 공개석상에서 상대팀의 B과장에게 질문을 받았다. 업무에 관심이 없으니 답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A차장은 회의가 끝나고 자신이 업무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천만에. 자신의 부족함은 생각지 않고 질문한 사람을 공격자로 간주, 다음 회의에서 B과장을 어떻게 짓밟을지 고민한다. 또 다른 유형의 싸움왕도 존재한다.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키스를 책으로 배운’ 유형이다. 목소리가 크거나 전화로 상대팀과 고성을 내며 싸우는 것을 ‘일을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다. 실제로 3년 정도 입사가 늦은 한 후배가 그랬다. 업무 전화의 80%는 고성이 오간다. 같은 층 사무실 거의 모든 사람이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고 놀란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또 시작이구나’라고 생각한다. 씩씩거리며 전화기를 부술 듯 끊은 그 후배는 가끔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저 잘했죠?’라는 눈빛을 보내곤 했다. 편들어 주기가 참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듯, 싸움왕은 멀리 보지 못하고 당장의 이익이나 손해에만 혈안이 되어 전체적인 팀워크를 저해한다. 일의 효율은 물론, 유관 부서와의 사이도 좋지 않기 때문에 개인뿐만 아니라 팀 전체에 손해를 끼칠 가능성이 크다. 그 싸움왕이 파트 리더나 팀장 자리에 앉으면 더 골치 아픈 상황이 발생하는 건 뻔한 일이다. (2) 불통왕 (vs. 소통왕) ‘소통왕’과 반대되는 사람들로, ‘모든 소통에 답이 없는 사람’과 ‘자신의 고집에 싸여 인정할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전자는 일 못하는 사람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성실성’과 ‘빠른 응답’은 일 잘하는 사람의 기본 요소다. 즉, 성실성과 빠른 응답만 해도 반은 먹고 들어갈 수 있다. 모든 소통에 답이 없는 사람은 일에 대한 열정이 없거나, 업무를 잘 모르거나, 게으른 경우가 많다. 나보다 2년 앞선 한 선배는 위 세 가지 외에 하나를 더 갖고 있었다. 그는 효과적인 소통 방법을 몰랐다. 항상 유관부서로부터 클레임이 날아온다. 업무에 대한 클레임을 넘어 담당자 교체를 원하는 치명적인 클레임이다. 일은 해결 못 하더라도 언제까지 지원하겠다는 귀띔만 해줘도 상황이 이 정도로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답도 없는 데다, 대면, 서면, 전화, 이메일, 보고 등의 사용법을 제대로 모르니 치명적인 클레임을 받은 것은 자승자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불통왕의 두 번째 유형은 자신의 고집과 아집에 둘러싸여 당최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 만약, 그 사람의 의견이 맞다면 문제가 없다. 오히려 뚝심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이 늘 옳지는 않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것’과 ‘틀린 것’도 구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유형은 상사든, 동료든 후배든 간에 만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 자신을 돌아볼 때, 내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불통왕의 면모를 보이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불통을 넘어 남을 바꾸려 하는 위험한 시도를 한 건 아닌지에 대한 성찰도 함께. (3) 권력왕 (vs. 리더십왕) 관료주의의 사전적 뜻은 “관료 사회에 만연해 있는 독선적, 형식적, 획일적, 억압적, 비민주적인 행동양식이나 사고방식”이다.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는 ‘관료주의 문화’가 있다. 정치제도, 교육 환경, 군대라는 계급 문화까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아우른 합이 직장의 관료주의에 못 미친다고 생각한다. ‘관료주의’를 설명하는 위의 단어 전부가 우리 직장에서 흔히들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관료주의’를 ‘직장생활’로 바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소름 끼치게 잘 묘사했다는 생각이 든다. 관료주의는 ‘권력’이 득세할 때 생겨난다. 리더가 아닌 권력자 아래서는 위와 같은 것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앞서 우리는 리더란 “영향력을 발휘하여 구성원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권력왕’은 이와 다르다.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구성원이 성과를 내는 게 아니라 자신을 보필하길 원한다. 구성원은 자신의 성과를 빛내고 닦아줄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을 잘못 활용한 예가 있다. 한 후배는 1년 전에 최연소 팀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모든 사람이 그 후배의 고속승진 비결을 궁금해했다. 팀에 그 후배보다 열 살이나 많은 부장 팀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최연소 팀장의 신화가 깨지는 데는 채 1년도 걸리지 않았다. 팀원들을 권력으로 다스리고 불화를 일삼더니, 결국 협력업체와의 금전문제 및 부도덕한 일에 연루되어 권고사직을 받았다. 주어진 ‘권한’을 ‘권력’으로 오용하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 사람의 성품을 알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줘보라”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명언이 생각나는 사례였다. (4) 정치왕 (vs. 전략왕) ‘전략왕’에 반대되는 유형으로 분류했지만 사실 ‘정치왕’은 ‘전략왕’과 한 끗 차이다. 하지만 그 결과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전략왕은 자신은 물론 팀의 품격을 함께 상승시킨다. 이에 반해 정치왕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안위만을 목적으로 한다. 그 결과가 자신은 물론 팀에 기여하면 정치왕도 겉으로는 전략왕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함께 일하는 사람은 결과가 같더라도 그 사람이 전략왕인지, 정치왕인지 과정을 보면서 파악할 수 있다. ‘일 잘하는 사람의 유형’에서도 언급했지만 직장생활에서 ‘정치’는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치라는 어휘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좋게 포장하면 ‘전략적인 접근이나 계획’으로 표현할 수 있다. 올바르지 않은 정치인들에게 하도 속아서 그렇지 ‘좋은 정치인’도 분명 있다. 전략왕은 큰 그림을 보고 목표와 목적, 그리고 수단을 조율하는 반면 정치왕은 그렇지 않다. 조급한 의사결정과 단기적인 업무 진행은 한계를 드러낸다. 회사나 공동의 목표는 안중에도 없다. ‘드러나는 사람’과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면 정치왕은 당연히 후자 쪽이다. 드러내야 할 때가 분명히 있지만, 정치왕 유형의 사람들은 이를 과하게 추구한다. 그래서 함께 일하면 팀워크에 문제가 생긴다. 이런 사람이 권력을 가지면 독재자가 되기 쉽다.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싸우고, 불통하며, 권력을 휘두를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5) 무지왕 (vs. 스킬왕) 이 ‘무지왕’이 상사로, 동료로 또는 후배로 있다고 생각해보자. 속이 터진다. 일 못하는 사람의 유형 제1순위가 바로 이 ‘무지왕’일 것이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업무 기술도 필요하다. 업무 기술이란 말 그대로 시스템을 잘 다루거나, 보고서를 잘 만들거나, 발표를 잘하거나, 관련 영역 및 업무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추는 것 등을 말한다. 웃픈 사실이지만, 상사나 동료 또는 후배 중에 이런 업무 기술을 전혀 갖추지 않은 사람이 하나쯤 꼭 있다. 무지왕을 만났을 때 속이 터지는 사람들은 ‘스킬왕’이다. 일이 몰릴 대로 몰린다. 무지왕은 게으르거나 무능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이 기술을 익히는 날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내가 처리하는 게 나은 경우가 태반이다. 매일 다루는 시스템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팀에서 돌아가는 공통 이슈나 어젠다에도 관심이 없다. 전체 공지한 메일은 읽지 않고 나중에 뒷북을 치기 일쑤다. 어떻게 경쟁을 뚫고 입사해서 우리 주위에 앉아 있는지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이게 현실이다. 그나마 동료나 후배라면 조언을 하거나 가르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상사가 이 무지왕 유형에 해당하면 정말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사를 두었다면 팀의 존폐 위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상사가 잘돼야 나도 잘될 가능성이 높은 직장생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렇게 유형을 나열하고 돌아보니, 오히려 반성을 많이 하게 된다. 일을 잘한다는 것, 그리고 일을 못한다는 것의 차이는 뭘까? 나는 일을 잘하고 있을까, 못하고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는 같을까? 다르다면 얼마나 다를까? 나의 업무에 몰입하면서 본의 아니게 팀워크에 피해를 주진 않았을까? 때로는 회사를 위하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맞다고 생각한 일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진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 주위에 앉아 있는 상사와 동료, 그리고 후배는 저마다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와 맞지 않다고 해서, 나의 의견에 손들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일 못하는 사람’으로 멋대로 규정하진 않았을까? 각자의 입장을 내세우다가 서로를 ‘불통왕’이라고 손가락질하진 않았을까? 내가 그 부서였다면, 그 팀이었다면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을 게 뻔한데도 말이다. 나를 돌아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이 보는 나에 대해 귀 기울이고, 자기 성찰을 하는 것은 일을 잘하게 되는 것 이상의, 어쩌면 인생을 좀 더 잘 살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중요한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스테르담
23년 0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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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주인이고 나는 노예일까?
"머슴살이를 하더라도 대감집에서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입사 지원서를 검토하다 피식 웃음이 났다. 대기업을 지원하는 학생에게 이보다 더 명확한 동기가 있을까? 입사동기를 묻는 질문이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모르겠다. 그것은 뻔하지 않는가. 먹고살기 위해서. 사회생활을 위해. 물론, 자아실현과 역량의 고취 그리고 CEO의 꿈을 안고 입사를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어찌 되었건 나는 이 질문이 그리 좋은 질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시, 그에 대한 대답으로 돌아가 어느 학생의 재치 있는(?) 표현을 보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웃음은 났지만 속이 그리 개운하진 않았다. 대답 안엔 생각해볼 여지가 많은 의미가 한가득 있었기 때문이다. '머슴'과 '대감'이라는 말에서 눈치챘을 것이다. '대감'은 회사이고, '머슴'은 지원자일 텐데. 그렇다면, 월급을 받고 일하는 우리는 과연 '머슴', 그러니까 회사는 주인이고 우리는 노예일까? 왜 월급쟁이는 노예의 상징이 되었을까? 온라인 검색을 하다 재미있는 이미지를 발견했다. 이 또한 현시대의 상황을 재치 있게 표현해 놓았다. 옛 노예와 현 노예의 차이. (출처: https://tailstar.net/board_issue/13885218) 이미지뿐만 아니라 현 상황을 돌아볼 글도 있다. ----------------------------- 옛날 노예: 해지면 일 안 했다. 지금 노예: 해 지고도 일한다. 옛날 노예: 주인이 결혼시켜주고, 집 주고, 밥 주고. 생계 걱정이 없었다. 지금 노예: 결혼도 못하고, 집도 못 사고, 하루하루가 생계 걱정이다. 옛날 노예: 자기가 노예인 줄 알았다. 지금 노예: 자기가 노예인 줄 모른다. 출처: 트위터 @bearking57 ----------------------------- 위 이미지와 아래 글에서 말하는 '노예'가 누구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바로, '직장인' 그러니까 '월급쟁이'다. 왜 직장인은 노예의 아이콘이 되었을까? 아래의 이유라면 그 이유가 설명될 것이다. 첫째, 내가 원하는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을 한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둘째, 돈을 받는다. (이걸 받지 못하면 생계유지가 안된다.) 셋째, 100% 만족할 수 없는 계약 관계에 있다. ('갑'이 아닌 '을'의 입장으로.) 어느새부턴가, 직장인은 '노예'라는 프레임에 어울리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회사는 주인이고 나는 노예일까? 그러나 나는 이러한 '프레임'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에 위험할까? 스스로의 성장에 해가 된다. 입사 후에 나 또한 이 프레임에 걸려들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이유와 속성은 직장인에겐 아주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재미가 없었다. 꾸역꾸역 출근하는 날들이 더 많아졌고 무기력함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라는 말을 들으면 두드러기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또 그 소리야? 주인처럼 일하라고 말하지만 말고, 그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해주던가 월급을 더 올려주던가. 속에선 천불, 만불이 끓곤 했다. 그러나 그 열불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 열에너지에 데고 다치는 건 결국 나였다. 회사가 주인이고, 나는 노예라는 프레임 안에선 아무것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러다 문득 그 프레임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나'를 위해서. 내 주인은 누구일까? 바로 '나'가 아닐까?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내 삶과 성장을 위해서 일하는 거 아닌가? 월급은 거저 나오는 게 아니다. 내 노동력을 제공하고 '교환'하는 (성에 안차고, 항상 부족하지만...) 치환물이다. 해야 하는 일을 하며 나는 더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게다가, 어디까지나 '회사'와 '나'는 계약 관계가 아닌가. 실제 노예는 계약 관계가 아닌 종속 관계다. 내 업무를 다시 바라보았다.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노예라고 생각했을 때는 안보였던 것들. 스스로가 주인이고, 이 일을 통해 수혜를 받는 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니 그저 넘겼을 법한 실수들도 눈에 밟혔다. 회사가 주인이고 나는 노예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얻는 게 더 많다. 자포자기한 사람이 다리에 힘을 주고 땅을 디뎌 일어나는 것과 같다. 좋은 기억이라면 그것은 추억이고, 기분 나빴다면 그것은 경험이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부분 경험인 경우가 많다. 경험을 쌓는다고 생각한다면, 그 수혜자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면 '주인과 노예'란 프레임은 점점 옅어질 것이다.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란 마음. '많은 걸 경험했고, 돈을 받으며 배웠다'란 마음. 그 둘을 갈라놓는 건 프레임의 차이다. 나는 그 누구의 편도 아니다. 회사를 옹호하거나 미화할 의도는 없다. 다만, 나를 위한 프레임 벗어나기다. 그러하지 않으면 내 성장은 없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의 주인은 '나'다. 스스로가 내 주인을 다른 것으로 두려 할 때, 삶은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주인 의식을 갖고 일하기로 다짐한다. 누가 주인인지를 잊지 않으려 발버둥 치며. --------------------------- 주인의식은 주인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고자 하는 다짐이 아니다. (중략) 내가 나의 주인으로서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고 독하게 챙기는 것. 즉, “내가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이다. [스테르담 직장내공 146p]
스테르담
23년 0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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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급이 다른 사람이 덤빌 땐 무조건 피할 것
주재원을 마치고 본사로 복귀했을 때였다. 나는 몇 뼘은 더 성장해 있었다. 내가 맡은 사업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짊어졌어야 했던 그때는 고달픈 피로감으로 숨을 쉬지도 못할 정도였으나, 그것은 분명 본사에서 주어지는 일을 하는 것 이상의 희열이자 쾌감이었다. 진정한 주인 의식을 체득할 수 있었고, 주도적으로 일을 하는 것의 보람을 몸소 느꼈으니 성장하지 않을 수가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열정이 다시 돋아난 나는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업무에 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긴박감과 다이나믹한 무언가가 빠져있어 그런가 싶었다. 그러다 나는 잊고 있던 무언가의 스멀스멀한 기운을 느꼈다. 아니, 다시 그것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바로 '정치'와 경쟁 그리고 '갈등'이었다. 해외 주재 기간엔 현장에선 경쟁사와 소비자만을 바라보며 일했다. 어떻게 하면 내 브랜드를 더 친숙하게 만들고, 내 제품이 소비자의 삶을 바꿀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러하기 위해 나는 현지 문화에 뛰어들었다. 사람을, 문화를 그리고 그들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그 공부는 내 첫 책이라는 결실을 맺을 정도였다. 내 머릿속엔 온통 현지 시장에서의 경쟁과 성과로 가득 차 있었고, 나는 그것이 내 열정의 원동력이라고 지금도 믿는다. 그러나 본사는 달랐다. 같은 팀에 유독 나를 견제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달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아직 주재원의 경험을 하지 못한 그는 눈에 띌 정도로 나를 경계했다. 내 의견에 반대하거나, 비꼬우거나, 협조를 하지 않는 방법을 쓰곤 했다. 이것은 일 하는데에 있어서 매우 성가신 무엇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휩쓸리지 않아야겠단 생각을 했다. 더불어, 아직 꺼지지 않은 현장에서 불 붙인 그 열정을 지켜가고자고 다짐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나 조차도 본사의 흐름에 동요되었다. 어느 날 나는 나를 견제하는 그에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와 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내 머리를 채우고 있던 성과와 브랜드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고 어느새 그 공간은 '사내 정치'와 '동료와의 경쟁'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주체적으로 일하며 불 붙였던 열정의 불길도 꺼지고 있음은 당연했다. 주위 평가가 달라졌다. 상사들은 나를 좋지 않게 보기 시작했다. 나를 견제하던 그 사람과 똑같은 레벨로 취급받기 시작한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진흙탕 속에서 나에게 싸움을 걸어온 것이다. 그 싸움에 휘말리는 순간, 나는 그 진흙을 묻힐 수밖에 없다. 누가 먼저 싸움을 걸었는지, 갈등을 유발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흠뻑 덮어쓴 진흙이, 이미 나는 '이전투구(진흙탕에서 싸우는 개 - 작가 주-)'에 휘말렸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슬럼프가 몰려왔다. 뜨거웠던 열정과 높았던 의지만큼이나, 이전투구로 인한 내 이미지 손실은 컸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그것을 회복했다. 내 이미지와 브랜드 그리고 평판. 그것보다 더 중요한 내 열정과 자존감을. 그러함으로, 나는 몇 뼘은 더. 아니, 몇 배는 더 성장해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내가 휘말렸던 이전투구의 깨달음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체급이 다른 사람이 덤빌 땐 무조건 피하라!' 만약, 성인에게 초등학생이 시비를 걸고 달려들었다고 하자. 우리가 성인이다. 선택은 두 가지다. 첫째, 함께 싸우거나. 둘째, 피하거나. 첫 번째 방법으로 싸워서 이긴다면 우리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어른이 초등학생과 겨뤄 그를 짓눌렀다고 손가락질받을 것이다.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는지, 어느 만큼 싸가지 없이 그 아이가 달려들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만약 앞서 이야기한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나는 무조건 피할 것이다.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인데, 피하는 방법에도 두 가지가 있다. 무시하는 것과 경청하는 것이다. 전자는 좋은 방법은 아니다. 무시하면 할수록 갈등은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내가 만약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한다. 나에 대한 그의 시기와 질투의 원인을 조금씩 들어주었거나 반대를 위한 반대를 서로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는 제풀에 꺾여 나와의 갈등을 멈췄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러했을 것이라 믿는다. 나는 진흙을 뒤집어쓰고 분탕질에 휘말린 걸 후회하지 않는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경험이었으니까. 그러나, 앞으로는 다시 그것을 똑같이 경험하고 싶진 않다. 시행착오는 한 번으로 족하다. 이젠 그것을 발판으로 더 성장해야 할 때다. 싸우지 않고 승리하거나, 경험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면 그 방법을 더 선호해야 한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연차가 쌓일수록 더 그러하다. 체급이 다른 사람이 덤빌 땐 무조건 피하자. 경청을 하며 슬기롭게 피하자. 제 풀에 꺾이도록 대인배의 면모를 보여주자. 그것이 가능한 건, 내 성장으로 인함이다. 많이 배우고, 많이 경험하고 또 많이 생각하고 깨달아 남들보다 더 많이 성장해야 한다. 길거리 웅덩이만큼의 체급을 가진 사람들을, 강과 바다가 동요하고 상대할 필요는 없다. 웅덩이. 강. 바다.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체급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고, 스스로 단련해 가는 것이다.
스테르담
23년 0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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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TALK] 이보다 더 짧을 순 없다, 숏폼 콘텐츠
✅ 유튜브에서 숏폼 콘텐츠의 수익화를 시작했습니다. 즉, 숏폼 콘텐츠를 제작한 크리에이터들에게 수익배분을 시작했다는 의미인데요. 최근 들어 숏폼 콘텐츠들의 인기가 급증했고 틱톡 뿐만이 아니라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서도 각각 쇼츠와 릴스라는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숏폼 콘텐츠들의 생산이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네이버와 카카오 또한 숏폼 콘텐츠 서비스를 강화할 계획에 있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 일전에 썼던 글에서 "쇼츠 드라마"의 인기에 대해 언급했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여러 포맷의 숏폼 콘텐츠 중 "쇼츠 드라마"와 "드라마 쇼츠"에 대해 좀 더 살펴보려고 합니다. (* 정확히 정의된 용어는 아니지만, “쇼츠 드라마"는 드라마 형식에 맞춰 1분 내외로 완결되는 콘텐츠를 의미하기 위해 사용했고 "드라마 쇼츠"는 기존 드라마의 하이라이트 부분만을 편집하여 숏폼의 형태로 만든 콘텐츠를 의미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쇼츠 드라마"는 최근 많은 제작사에서도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장르입니다. 22년 대한민국 광고대상에서 수상까지 거머쥔 쇼츠 드라마 <편의점 고인물>은 최근 <편의점 뚝딱이>라는 후속 시리즈를 내며 또 한번 인기를 끌었습니다. 쿠팡에서는 <다 이렇게 살잖아>, 탑텐몰에서는 <셋셋남녀 : 패션 무지렁이들의 전성시대>, CGV에서는 <뷔.아이.피셜>이라는 쇼츠 드라마를 선보였구요. BC카드에서도 <힙지로딕댱인>이라는 콘텐츠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 쇼츠 드라마의 특징으로는 브랜디드 성격이 강한 콘텐츠들이 많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바라볼 때, 쇼츠 드라마의 장점은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죠. 첫 번째로는 1분 내외의 짧은 RT이고 스토리텔링이 있기 때문에 쉽고 가볍게 즐길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가성비를 꼽을 수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할 때 RT가 길어질수록 제작비가 비례해서 늘어나는데 쇼츠 드라마는 짧기 때문에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적죠. 세 번째로는 상대적으로 조회수를 높게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인데요. RT가 짧다 보니 끝까지 볼 확률도 높아지고(다 봐도 1분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다시 반복해서 보기에도 부담이 없죠. ‼️ 드라마 쇼츠"도 최근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어 신드롬급 인기를 일으킨 <더 글로리>의 경우, 명대사 제조기라고 불리는 김은숙 작가와 연출의 대가 안길호 감독이 만나 장면 하나 하나마다 화제를 모았습니다. 찰진 대사, 그리고 숨겨진 여러 연출적 장치가 다양한 해석을 낳으며 반복 시청을 유도하고 있기도 하죠. <더 글로리>의 경우에는 드라마 쇼츠가 훌륭한 마중물이 되어 본편의 화제성을 더 키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여기에서 드라마 쇼츠의 홍보마케팅적 역할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는, 본편 관람을 유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눈길을 끄는 드라마 쇼츠를 보고, 흥미를 느낄 경우에 본편으로 넘어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죠. 두 번째로는 정보 제공의 역할입니다. 다양한 콘텐츠가 넘쳐나 모든 콘텐츠를 볼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이슈가 되는 콘텐츠의 화제에 편승 가능하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이는 또 본편으로 유입될 가능성을 높입니다. 세 번째로는 효율적인 만족감 제공입니다. 재미있는 부분만 반복해서 볼 수 있고, 자투리 시간에 볼 수 있어 바쁜 현대인들에게 짧은 시간에 만족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 숏폼 콘텐츠는 이제 대세로 자리잡았고, 여러 제작사 및 크리에이터들도 더욱 활발하게 콘텐츠를 제작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앞으로 숏폼 콘텐츠 시장이 얼마나 더 확대될지 지속적으로 주목해 봐야 하겠습니다. https://www.fnnews.com/news/202302011822382947
류진아 | 대중문화교류위원회지원단
23년 0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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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스앤노블 : 무너져가던 미국 최대 서점, 로컬 전략으로 부활하다
한국의 대형서점들은 책보단 문구점화 되어가고 있고 책도 주요 매대는 부동산처럼 광고로 파는 자리가 상당한데 반스앤노블은 대형서점 위치에서 독립서점의 전략으로 반전을 이끌어내고 있는데요 비즈니스하는 분들이 참고로 보시면 좋을 것 같아 공유합니다. --- ● 아마존은 1995년부터 도서 사업에 뛰어들었지. 싼 가격, 다양한 재고, 편리한 주문으로 반스앤노블의 영역을 하나둘 빼앗아 갔어. 이때 반스앤노블이 택한 전략은 ‘잡화’였어. 책 만으로 안 되자 우산과 이어폰, 레코드판, 텀블러, 장난감 등을 팔기 시작했어. 2016년엔 해본 적 없는 레스토랑 사업까지 진출했어. 심지어 아마존과 붙어보려고 전자책 기기도 만들었지. 결과는? 대실패. 서점 내부는 책과 잡화가 엉켜 원하는 걸 찾기 힘들 정도였고, 사람들은 잡화에 관심도 없었어. ● 결국 반스앤노블은 경영난에 빠졌어. 2012년부터 7년 연속 매출은 내리막길. 그동안 CEO는 네 번이나 바뀌었어. 결국 2018년 인수·합병 대상이 됐지. 헤지펀드 엘리엇 어드바이저스Elliott Advisors가 6억3800만달러(약 7850억원)에 반스 앤 노블을 인수했어 ---- ● 제임스 던트 : 서점 회생전문가의 등판 던트는 서점 회생 전문가나 다름 없어. 원래 뉴욕에서 투자은행 JP모건을 다닌 그는 스물여섯이 되던 1990년, 돌연 회사를 그만둬. 이유는 아내가 된 여자친구 때문. “당신과 금융은 안 어울린다”는 조언에 업종을 바꿨어. 그리고 여행책 서점 던트북스Daunt Books를 열었지. ● 워터스톤즈 : 가격보다 책이 보이게 하라 던트의 성과는 2011년 영국의 대형서점 워터스톤즈로 이어져. 당시 워터스톤즈도 온라인 서점에 밀려 파산 직전이었어. 러시아의 억만장자 알렉산더 마무트Alexander Mamut가 워터스톤즈를 인수한 뒤, 그에게 전무 자리를 맡겨. 그가 택한 전략은 크게 네 가지였어. 1. 책 두 권을 사면 한 권을 공짜로 주는 ‘3 for 2’ 정책 폐지. 2. 출판사 판촉 정책 중단. 3. 관리자 수는 절반으로, 현장 직원의 30%도 구조조정. 4. 각 매장은 독립서점처럼 운영. -- ● 발견 : 먼지 쌓인 체인점, 행운의 공간으로 바꿔라 던트가 본 2019년의 반스앤노블. 8년 전 죽어가던 워터스톤즈와 비슷했다고 해. 카펫은 먼지투성이에 에스컬레이터는 고장 나 있었대. 카페는 고속도로 주유소에서 볼 법한 곳이었고. 책꽂이는 금이 가 있었고, 책도 기준 없이 꽂혀 있었지. 던트는 반스앤노블을 ‘즐거움과 뜻밖의 행운serendipity이 가득한 서점’으로 정의했어. 메모가 쌓인 서점을 거닐다가 책을 보물처럼 발견하는 곳. 가격과 속도로 앞선 아마존과 겨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본 거야. 이전의 반스앤노블과도 달랐어. -- ● 본질 : 배터리를 사러 서점에 가지 않는다 던트는 계속 서점의 본질에 집중해. 본질이 뭐겠어? 책이지. 그는 회사의 위기를 이렇게 진단했어. “반스앤노블은 서점과 관련 없는 것들을 많이 팔고 있었어요. 아무도 ‘듀라셀 배터리가 필요해. 서점에 가야겠어’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_2022년 뉴욕타임스에서 던트는 어린이·청소년 책을 판매하는 공간을 키웠어. 가족들이 모여 같이 책 읽을 공간을 만들었고. 또 해리포터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모임 초대장을 뒀고, 소설 속 인물처럼 마법사 옷을 입은 직원이 인사를 나누게 했어. --- ● 로컬 : 뉴욕 본사 책상의 큐레이션을 믿지 않는다 던트는 아예 매장 큐레이션 권한을 각 매장 관리자에게 줬어. 뉴욕 본사의 탑다운top-down 큐레이션을 버린 거야. 지역에 사는 직원만큼 현지 고객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봤어. 실제로 뉴욕에서 책 구매를 전담하던 시기에는 신간 반품률은 무려 50%였지. 또 던트북스 때부터 만든 원칙, 매장 직원을 시급제가 아닌 급여제 중심으로 고용해. 그래서 직원들이 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했어. <전문을 무료로 볼 수 있는 링크는 아래 첨부합니다.> 반스앤노블 : 무너져가던 미국 최대 서점, 로컬 전략으로 부활하다 https://www.longblack.co/note/566?ticket=NT760b047bf986cfa5e2d29763a0578d4b42b40e2b&utm_source=remember&utm_medium=affiliate&utm_campaign=post&utm_content=230131
김종원 | 타임앤코
23년 0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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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이직
1. 소감 교수님 추천으로 조기취업한 회사에서 4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첫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회사에 정이 들었고 많은 감정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시절부터 함께했던 회사라 그런지 가족에서 독립하는 기분이 드네요. 2.각오 다행히도 재직중 취득한 석사학위를 인정받아 대리 1년차로 가게되었습니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 계열사로의 이직인 만큼 기존의 업무에서 배운 경험만 가지고 업무 프로세스는 모두 새롭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 요청 선배님들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중소기업에서 중견, 대기업으로 이직하신 선배님들은 어떤점이 가장 힘드셨나요.(생활,업무 등)
망망망
23년 0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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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내기) 기분 좋아지는 요일 목요일 vs 금요일
여러분은 금욜, 목욜 중 머가 더 좋으세요? 저는 당연히(?) 금욜은 돼야 좋은데요. 저희 팀 동료는 “목욜부터 행복해진다. 내일이 금욜이라서“라고 하더라고요;;;;;; 신박한 거 같기도 하고 궤변 같기도 하고.. (투표로 커피 내기 하기로 했습니다.)
momoya
23년 0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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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 이월
이제 2월 7일되면 1년이 됩니다 지난 22년동안 남은 연차가 10개인데 올해 지나고 나서 사용 안해서 다 소진됬다고 하시네요 원래 1년 안된 연차면 이월되야 법적으로 맞는지를 모르겟어서 반박을 못했습니다 어떤게 맞을까요 제가 안쓰고 싶어서 안쓴게 아니라 못쓴건데 억울해서요
바람처럼꾸미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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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야 할지 몰라 애매하다면.
애매하다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으면. 잘하는 일을 찾아. 뭘 잘하는지 모르겠으면. 해야 하는 일을 해. 해야 하는 일이 버거우면. 그대로 버텨. 버티다 보면 무엇이 하기 싫은지 알게 될 것이고.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고. 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면 잘하게 되는 게 있을 거고. 잘하는 일이 늘어나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겠지. 그러니까 뭘 해야 할지 몰라 애매하다면. 그 애매함을 받아들이고 즐겨. 나는 평범하고 애매하다고. 그대로 앉아 있을 시간이 별로 없어. 애매함은 시작이야. 잊지 마. 애매함은 시작이라고.
스테르담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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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마법의 주문
"어떻게 그렇게 직장 생활을 오래 하실 수가 있어요?" 이 질문을 받으면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이 질문을 받을 정도로 직장 생활을 오래 했을까란 '자문(自問)'. 둘째, (어느 정도는 했다고 치고) 도대체 정말 어떻게 버텼을까란 '의문(疑問)' 때문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직장생활을 한 것은 맞다. 그래도 그것보단 상대적인 것이 한 몫한다는게 더 맞겠다. 이 질문은 대부분 강연을 통해 만난 취업준비생 후배들이나, 경력이 몇 년 되지 않은 멘티 또는 후배들로부터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질문을 받으면 나도 덜컥 뒤를 돌아본다. 십 수년을 나는, 직장인으로 살아온 것이다. 직장생활의 어려움들을 어떻게 이겨 냈을까?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리는 억울함, 분노, 망신, 자존심에 대한 상처들이 있는데. 미워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같은 공간에 있기도 싫은 사람이 지금도 분명 있는데. 미래에 대한 불안과, 나는 옳은 길로 가고 있는가란 의구심이 때론 불같이 일어나는데. 물론, 보람과 기쁨, 환희의 순간도 있다. 그것은 잠시 뿐. 더군다나 그것이 내일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직장생활이 그리 호락호락 하지가 않다. '일희일비'하지 말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어찌 되었건, 질문을 받았으니 대답은 해야겠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딱히 떠오르는 비법은 없었다. 그래서 요즘 떠오르는 생각들을 부여잡아 정리를 해보니 '맥'이 잡힌다. 그것들은 지난 시간 하나 둘 쌓아온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들이었다. 애초에 나에겐, 십수 년을 버틸 힘이 있진 않았다. 아마도, 하루하루를 버티며 직장인으로서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깨달음과 기회를 얻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요즘 내가 마음에 요동이 칠 때면 무의식적으로 되뇌는 말들을 정리해봤다. 아마도, 이것은 힘든 직장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마법의 주문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나에게는. 1. "그럴 수도 있지" 요즘 들어선 이 말에 큰 의지를 한다. 억울한 일도, 기가 찬 일도, 황당한 일도. 이 말 한마디를 떠올리면, 심호흡을 할 여유가 생긴다. 참 신기하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그럴 수도 있는 일'이 많이 생긴다. 누군가 말을 삐딱하게 해도, 상사가 갑자기 길길이 날뛰어도, 나는 똑바로 한 일이 누군가의 실수로 인해 어그러졌을 때도. 내 입장에선 정말 기분 나쁜 일이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거나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조망(眺望)해보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이건 내게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일이야'라는 건 없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일이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스스로를 더 불행하고 힘들게 한다. "그럴 수도 있지"란 마법의 주문이 필요한 이유다. 2. "하면 되지, 뭐!" '할 수 있다!'란 생각과 다짐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좀 더 실용적인 주문이 있다. '하면 되지, 뭐!'다. 이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상사나 다른 부서로부터 더 큰일이 떨어진다. 혼란이 생긴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 지도 판단이 서지 않고, 이 일을 갑자기 잘 해낼 수 있을까란 걱정이 앞선다. 결론적으로, 그 둘 중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손을 놔버린 스스로를 발견한다. 시간은 흐르고 조급한 마음이 앞설 때, 무어라도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주문이 바로 '하면 되지!'다. '할 수 있다'란 조금은 과장된 거짓된(?) 다짐보다는, 결과는 신경 쓰지 않고 일단 시작이라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어떤 어려운 일이 나를 도사리고 있을 때, 한 번 속으로 크게 외쳐보자. "하면 되지, 뭐!". 그리고 시작하면 된다. 그냥. 3. "안되면 말고" '체념'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지 못했을 때의 체념은 '죄책감'이나 '자괴감'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안되면 말고'는 최선을 다 한 후에 갖는 또 다른 '체념'이다. '기다릴 줄 아는, 또는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일단, 최선을 다한다.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아니, 후회해도 좋다. '하면 되지!'라는 주문과 함께 시작한 일. 그 결과는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제대로 했는데, 일이 어그러질 수도 있고. 내가 미처 완벽하게 하지 못한 일도, 어찌어찌해서 잘 마무리될 수도 있다. 결과에 대해 '자기반성'과 '책임'을 지되, 그것에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다. '안되면 말고!'의 정신이 필요하다! 4. "저 사람은 저 사람의 일을 하는 것일 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면 뒤통수를 때리는 대사가 나온다. 난, 아직도 이 대사를 마음에 품고 사람 때문에 힘들 때면 머리로 기억하려 애쓴다. 주인공 앤디가 푸념을 늘어놓기 위해 찾은 직장선배 나이젤에게서 들은 말. "그녀(미란다, 앤디의 상사)는 그녀의 일을 하는 것뿐이야!" 나에게 뭐라고만 하는 상사를 떠올려보자. 저러고 싶을까? 자기는 얼마나 잘났기에? 답답하면 자기가 하던가! 오만가지 감정과 불만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자리에 있으면 어떨까? 그 자리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실제로 그곳에 있게되면 나 또한 그와 같은 지시와 요청을 하게 된다. 직장에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란 말이 있다. 맞다. 사실이다. 정말 그렇다. '저 사람은 저 사람의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되뇌면, '메시지'와 '감정'이 구분되기 시작한다. 나에게 하는 공격 같지만, 그것은 '리더'로서 해야 하는 말인 경우가 많다. 감정만 상하다 보면 상처만 남는다. 저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다시 가늠해보면, 거기엔 분명 '메시지'가 있다. 그리고 그 '메시지'에 집중하면 나는 좀 더 성장할 수 있다. 나도, 내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자각'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5. "이 또한 지나가리라 (좋은 일도 포함하여)" 우리는 이 말을 안 좋은 일에만 쓰는 경향이 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읊조리면 위로가 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일만 지나가길 바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힘든 일이 지나갈 때 나의 감정, 노력, 기억과 시간이 함께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러한 감정과 경험도 모두 소중하다. 좋지 않은 일이나 힘든 일은, 미래의 나에게 주는 (쓴) 약이다. 지나가는 과정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조망해야 한다. 좋은 일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좋은 일'도 지나가기 마련이다. 오늘의 성과가 내일의 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내일이다. 오늘의 성과에 취해, 내일을 바라보지 못하면 안 된다. 그러니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복기하고, 이 순간을 잘 보내고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지나가는 모든 것의 중심엔, 내가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난 앞으로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직장인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그 과정 중엔, 또 다른 '주문'이 생길 것이 확실하다. 오늘을 버텨야 내일이 오는 직장인의 삶은, 힘들고 고되지만 깨달음의 깨알 재미가 있다. 우리는 대개, 나를 돌아볼 여유가 없고, 남을 탓하며, 직장을 원망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이제는 그 관점을 바꿔야 한다. 나를 돌아보고, 남을 이해하고, 직장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다. 위에 열거한 직장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마법의 주문'들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매일매일 그것들을 읊조리며 또 다른 의미를 찾아가는 나는, 그 여정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P.S 그러고 보니, '어떻게 그렇게 직장생활을 오래 했냐'는 질문에 '어떻게 버텨왔을까'를 늘어놓았으니 어쩐지 스스로가 짠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이 땅의 모든 직장인과, 예비 직장인들의 하루하루가 조금은 덜 고되고 도움이 되는 의미로 꽉 찼으면 좋겠다. 직장 생활이란 게 '즐기기'보단 '버티기'가 더 많이 필요하니까!
스테르담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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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퇴사'보다 '영리한 퇴사'로 내 마음 지키기
'조용한 퇴사'의 소란함 요즘,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소란합니다. '조용한 퇴사'는 미국 20대 엔지니어 자이드 펠린의 틱톡 영상을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펠린은 "(조용한 퇴사는) 주어진 일 이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만두는 것"이라며,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하는 일의 결과물로 정의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어느 분들은 그 생각에 흔쾌히 동의하실 테고, 또 어떤 분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후자 쪽입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이 작가는 우리 편이 아닌 회사 편이야..."라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 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생각이 든다면 더 이상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겠죠. 단 한 가지. 저는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저는 바로 '내 편'입니다. 고개를 갸우뚱 한 건 저를 위한 생각에서 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 편이 되어야 합니다. '조용한 퇴사'를 선택하시는 분들도 스스로의 편에 서서 결정하신 걸 테니까요. 그러나, 무언가가 소란할 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대세가 될지, 아니면 찻잔 속 태풍이 될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중점적으로 체크해야 합니다. 주중이 불행한데, 주말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직장을 흔히 전쟁터와 비유합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혼란은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전쟁입니다. 그러나 직장과 전쟁터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퇴근'과 '주말'입니다. 총알이 날아오고, 포탄이 떨어지는 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두 가지. 그러하기에 직장인은 한 숨을 돌릴 수 있습니다. 펠린이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가 우리 일의 결과물로 정의되거나 좌우되면 안 되지만, '삶'과 '일'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면 우리네 삶은 더 고단해집니다. 더불어, 나를 위한 성장은 멈추게 됩니다. 월급 받는 것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직장인의 삶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무엇이 이득이 되는 지를 가늠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주어진 일' 이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내가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될 텐데,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불어, 주변에 피해를 끼칠 수도 있게 됩니다. 통제권을 갖고 싶다면, 사장이 되거나 일을 그만 두면 됩니다. 내 업무 영역이나 역량에 선을 긋는 순간, 힘들어지는 건 나 자신입니다. 선을 넘어오는 것들에 대한 불편함으로 노이로제가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낸 한 주의 끝. 주말을 맞이하면 마음이 편할까요? 주중이 불행하면, 주말에도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주중에 무언가 보람을 느꼈다면. 보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덜 불행했다면. 주말엔 좀 더 편하게 쉴 수 있을 겁니다. 아니, 그래야 합니다. 우리가 잊고 있는 사실인데, 놀랍게도 '주말'은 '주중'의 일을 잘 해내기 위해 재충전하는 시간이니까요. 월급쟁이라면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는 않으면서 월급은 받으려고 하니 괴리감은 커지고, 스스로를 불행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있는 겁니다. '조용한 퇴사' 보다, '영리한 퇴사' 다시 한번 더 말씀드리지만, 저는 회사 편이 아니라 '내' 편입니다. 고백하자면, '조용한 퇴사'를 해보지 않은 게 아닙니다. 20년 이상의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굴곡을 만나게 되고 그 사이에서 때로는 열정적으로 때로는 소극적인 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특히, 슬럼프나 번아웃이 오면 자연스럽게 '조용한 퇴사'의 수순을 밟게 됩니다. 그 당시, 몸은 편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여유 시간이 좀 더 생기긴 했지만, 그 시간을 보람차게 보내지도 못했습니다.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모든 게 허사입니다. 역설적으로, 이 시간을 어서 이겨내고 더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용한 퇴사'보다는 '영리한 퇴사'를 더 추천드립니다. 그렇다면, '영리한 퇴사'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걸까요? 저는, '영리한 퇴사'란 '언젠간 떠날 회사에서 주어지는 일보다 더 많은 걸 얻어가는 것'이라 정의합니다. 그렇다면 그 유형과 방법에 대해 함께 알아보도록 할까요? 첫째, '퇴근'을 매일의 '퇴사 연습'으로 놀라운 사실 하나 더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직장 생활은 유한하다'라는 것입니다. 이게 왜 놀라운 사실일까요? 우리는 마치 직장생활을 영원히 할 것처럼 아파하고 괴로워합니다. 굴러 올린 돌이 떨어져 다시 그것을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저주처럼 말이죠. '반복'의 늪에 빠지면 우리는 그것이 마냥 지겹고, 또 영원히 지속될 것이란 착각에 빠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회사를 떠나야 합니다. 직장생활을 더 하고 싶어도 못 하는 때가 옵니다. 평생 월급쟁이의 삶을 투덜거리다, 더 이상 직장인이 아닌 삶을 살게 되면 어떨까요? 막막하지 않은가요? 수 십 년의 직장생활 후 남은 게 불평과 행복하지 않은 삶 쪼가리라면 얼마나 허무할까요? 저는 어느새부턴가 매일의 '퇴근'을 '퇴사 연습'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관점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퇴사하면 나는 뭐가 될까. 어떤 존재가 될까. 회사 명함이,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가 벗겨지면 내 본질은 무엇일까를 묻고 또 물었습니다. 글을 쓰게 된 것도 질문을 던진 그즈음이었습니다. 나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질문을 던지니, 또 다른 길과 기회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더 의미 있고 소중한 경험은. 다른 길과 기회를 엿보니,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소중함과 의미를 새로이 찾게 되었다는 겁니다. 더불어, 직장생활은 저에게 많은 글감과 영감은 물론 성장의 기회를 안겨다 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직장에서 얻은 인사이트 덕분입니다. 유한성을 깨닫고 나면, 모든 게 새로워 보입니다. 매일을 퇴사한다는 마음은 또 다른 많은 기회를 줌과 동시에, 지금 내 본업에 충실할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합니다. 둘째, 자존심이 상하거나 상처를 입으면 즉시 마음속 퇴사를 할 것 "그걸 지금 보고라고 하는 거야? 초등학생도 그거 보단 잘하겠다!" 폭언이 많이 줄어들긴 했습니다만, 지금도 이러한 말을 하는 상사들이 꽤 많습니다. 순한 표현을 써서 그렇지, 이보다 심한 말과 자괴감을 들게 하는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도 여전합니다. 예전에 저는 이러한 말의 비수를 그대로 제 마음에 갖다 꽂았습니다. '그래, 내가 잘못했네. 내 부족함이야...' 또는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되지?'란 생각을 했었습니다. 무례한 말을 한 상사를 마음속으로 수없이 욕하기도 했지만, 자존감과 자존심이 바닥 치는 걸 막을 순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리한 퇴사'를 실천한 이후부터는 저는 덜 상처받고 덜 다치고 있습니다. 폭언이나 무례한 마음을 들으면, 저는 마음속으로 즉시 퇴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속 퇴사'가 무엇일까요? 제 자신을 '회사 밖 존재'로 생각하는 겁니다. 우리는 직장이라는 바운더리 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야가 좁아집니다. 남극에 파견된 연구원과 군인들, 잠수함을 타고 오랜 시간을 해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우주 공간에서 우주인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할 때 심리와 행동이 격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고립 효과(Isolated Effect)'입니다. 직장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감정은 격해지고, 상처는 더 커지는 이유입니다. 상사에게 욕을 먹었거나, 상대방으로부터 비수와 같은 말을 들었을 때. 스스로를 직장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재빨리 옮겨놔야 합니다. 마음속에서, 나를 회사 밖 존재로 규정하는 겁니다. 직장에서의 내 모자람이, 내 존재 자체의 모자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업무에서의 실수와 부족함이, 내 삶의 전부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내 존재 자체를 깎아내리는 일은 지양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리하여, 마음속 퇴사를 재빨리 하는 것은. 직장인으로 나 자신을 국한하는 것이 아닌, 나를 지키기 위한 '영리한 퇴사'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셋째, 월급 이상의 것을 볼 것 (나갈 때 더 챙겨 나갈 수 있도록) 월급은 언제나 빠듯합니다. 얼마를 벌든 간에, 항상 얼마만큼의 부족함이 있습니다. 이쯤 되면, 이것은 월급의 미덕인지, 미스터리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그래서 직장인은 월급에 절대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불평과 불만도 그것에 기인합니다. 일확천금과 같은 액수를 월급으로 받는다면 직장인에게 '불평'이나 '조용한 퇴사'와 같은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역설적으로, 월급 이상의 것을 봐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남는 장사를 위함입니다. 내 심리적 만족을 위함입니다. 마음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월급 이상의 것을 얻어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의미 찾기'와 '의미 만들기'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십 수년 차에 저는 번아웃을 겪었습니다. '조용한 퇴사'를 누구보다 더 조용하게 실천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모든 게 무의미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긴 시간을 열심히 내달려 왔는데,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니 마음이 너무 허했습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의미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찾지 못하면 만들었습니다. 그것들을 글로 남겼습니다. '나'는 물론, 나와 같이 힘들어할 후배들에게 남길 요량으로 말이죠. 글과 의미가 모였고, 출판사에서 제안을 받아 <직장 내공>이라는 저서가 되었습니다. 저는 월급 이상의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수 받은 선물이었습니다. 그 선물의 기반은 묵묵히, 또 열심히 일해 온 저의 시간과 경험이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하루하루 하고 계신 '반복'은 무의미한 게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직장생활은 유한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반복'은 무의미한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그 어떤 '과정'이며 '근육'을 단련하는 행위라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란 시 구절이 있습니다. 이를 적용하여 말하면, '내가 그 어떤 것들에 의미를 부여했을 때, 그것들은 나에게로 와 꽃(선물, 가치)'가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언젠가, 어차피 나가야 한다면. 뭐라도 하나 더 챙겨 나가야 하는 게, '영리한 퇴사'가 아닐까요? 솔직해져 봅시다. 나는 '조용한 퇴사'를 외치면서. 상대방이 '조용한 퇴사'를 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말을 할까요? 열정이 없다,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니냐,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라고 말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학생의 본업은 '공부'고. 직장인의 본업은 '일'입니다. 언젠가 공부를 열심히 하여, 상위 성적을 늘 차지하는 학생에게 왜 이토록 열심히 공부하냐는 인터뷰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의 대답을 보며, 저는 전율을 느꼈는데요. 그 대답은 바로,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공부가 내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본업을 제대로 하지 않는 존재에게 '행복'이란 확률은 얼마만큼일까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선을 그어 놓는 직장인에게 과연 '의미'란 있을 수 있을까요? 지금 주어진 일도 제대로 해내지 않는데, 미래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요? '영리한 퇴사'는 얼마든지 각자의 방법을 찾아내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위의 예시는 철저히 제 개인적인 방법입니다. 분명한 건, 저는 이 것을 통해 본업에 충실하고 또 새로운 페르소나와 기회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더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은 이전보다는 좀 더 주체적으로 제 삶을 살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선택은 자유입니다. '조용한 퇴사'를 할지. '영리한 퇴사'를 할지. 우리는 언젠간, 퇴사를 해야 하는 존재이니까요.
스테르담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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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 사이에 두달 텀 두는 것 괜찮나요?
안녕하세요. 제가 이직을 하게 되는데 뭔가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 한달 동안 1일도 근무를 안하면 해당 달은 비근무로 처리되서 뭔가 안좋다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요. 이직 시 두달 텀을 두고 퇴사하고 입사해도 연말정산이나 다른 안좋은 점이 있을까요? 미리 감사합니다 !
김참치참치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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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의 지갑은 이미 열려있다. 당신이 매일 108배를 하고 있다면.
안녕하세요. 비즈니스를 새롭게 개척해나가는 독자분들이 많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니즈는 있지만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은 영역들이 많을 것이고, 혁신은 항상 힘들죠. 제가 주로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일해온 탓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고도화된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면 혁신은 ‘기술개발’이라기보다는 ‘관계의 재배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스타트업은 디지털 플랫폼을 앱이나 웹으로 구현하는 방식으로 시장의 기존 관계를 재배열합니다. 많은 시장에서 중간상인이 게이트키핑과 공급망 통제를 통해 공급량, 가격, 품질을 통제해왔는데, 중간상인을 바이패스하고 새로운 디지털 연결망을 통해 공급자와 수요자가 직접 만날 수 있도록 돕고, 플랫폼은 수수료를 받는 것이죠. 여기에는 디지털 혁신, UXUI 혁신, 린스타트업과 같은 비즈니스 방법론 혁신이 들어가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관계의 재배열’이 핵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제는, 관계에는 관성이라는 것이 있다는 점입니다. 모든 인간은 습관화, 자동화된 마음의 운영체제로 살아가고 있죠. QWERTY 키보드가 세계적으로 가장 패권적인 키보드 구조인 이유는, 그냥 습관화되어서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키보드가 더 인체공학적이거나 효율적일수도 있는데, 그냥 가장 먼저 선택되어서 퍼진 모델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의 습관’은 매우 바꾸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쓰고 있는 것이죠. 인간의 습관을 변화시켜 관계를 재배열하고자 하는 혁신가는 이 지점에서 딜레마를 직면합니다. 플라이휠 모델로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말은, 사실 ‘사기를 치겠다’는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규모의 경제를 이뤄서 ‘미친 가치 제안’을 할 수 있으려면 이미 플라이휠을 돌린 후여야 되거든요. 말하자면, 이 플랫폼에 세상의 모든 좋은 콘텐츠가 다 모여있고, 그 덕분에 세상의 모든 사용자가 모여있어서 정말 싼 가격에 제공할 수 있다면 습관 따위야 다 바꿔줄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 어떻게 갈 것이냐는 거죠. ‘여기 다 있어요!’ ‘오세요!’라고 사기를 쳐야 세상 모든 콘텐츠와 사용자가 모일테니까요. ‘모든 비즈니스는 사기다’라는 진리는 제가 책모임을 기획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단 10명이 모이는 책모임인데도 ‘마치 이 책모임에 이미 10명이 오는 것처럼’ 강력하게 가치를 제안해야 했습니다. 왜냐고요? 10명이 모이기 위해서는, 첫번째 고객을 설득해야 하거든요. 두번째 고객도 모셔야 하고요, 세번째 고객에게도 가치를 제안해야 합니다. ‘10명이 다 오기로 되어 있다’고 첫번째 고객에게 사기를 칠 수는 없겠죠. 10명이 오지 않을 수 없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첫번째 고객은 왜 이 모임에 와야 할까요? 아직 10명이 모이지 않았는데 말이죠. 이것이 바로 모든 플랫폼 비즈니스의 딜레마입니다. 플라이휠이 돌기까지는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없고, 10명이 모이지 전에는 한명도 모으기 힘들다는 것. 이 지독한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제가 최근에 들었던 생각을 통해 오늘의 주장을 펼쳐보고자 합니다.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객의 지갑은 이미 열려있다. 당신이 108배를 이미 매일 하고 있다면.’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도시락을 싸는 마음으로] 저에겐 시사 뉴스레터 콘텐츠를 작성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무료였습니다. 대학원과 토론강사 생활 후에 일하기 시작했던 첫 스타트업이었습니다. 한 공유사무실에서 시작했죠. 대학원 때를 다 벗지 못한 때였는데, 이상한 고집을 부렸었습니다. 콘텐츠 하나를 만들어도 책, 논문, 영문기사 등 최대한 좋은 레퍼런스들을 많이 보고 쓰자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5천~1만자짜리 하나 쓰는데 한주를 거의 다 썼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운영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레터를 기억하는 어떤 독자분은 최근 ‘정말 고퀄리티였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분도 뉴스레터 운영자시니, 아마 빈말은 아니었겠죠. 그 중 제가 썼던 뉴스레터는 아마 별로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썼으니까요. 그런데 일은 능력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때 저는 이상한 집착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글이라도 잘써야 한다, 아니 글을 잘 쓸게 아니면 자료라도 많이 봐야 한다.’ 지리산 여행가서 숙소 들어가기 전에 피시방가서 다음날 뉴스레터 발행 전에 한번 더 편집을 봤던 적이 있습니다. 자료 보다가 머리가 아파서 공원을 뱅뱅 돌던 시간들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뉴스레터 그거 뭐라고 국내 최고 저자의 책을 보고 인터뷰 비슷하게 문의드렸던 적도 있고요. 사진으로 제가 그때 작성했던 뉴스레터 중 하나의 레퍼런스 목록을 공유합니다. 아침에 5분 읽는 뉴스레터 그거 뭐라고 인용 레퍼런스까지 달아야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었습니다. 뭘 인용했는지 알려야 하고, 일부 독자는 레퍼런스 들어가서 읽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반쯤 돌아있었던 같습니다. 같이 일하기 싫을 정도로. 제 자랑이 아닙니다. 제 글은 그때도 별로였고, 지금도 뭐 딱히.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고, 그냥 매일 할 뿐입니다. 다른 것은 전혀 없어요. 글쓰기로 자아실현하겠다는 목표를 버렸거든요. 글쓰기는 내 비루한 자아를 인정받기 위해 하는게 아니라, 고객을 위해 하는 겁니다. 독자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독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성장했었고, 수천명의 구독자도 느는 것을 보며 뿌듯했었습니다. 타입폼으로 메시지도 꾸준히 들어왔었습니다. 제가 기억나는 몇분의 구독자가 있습니다. 60대, 교육수준도 매우 높으신 분 같은데 거의 매번 뉴스레터를 꼼꼼히 읽고 주제를 제안해주시고 평을 해주시던 독자분이 계셨습니다. 직접 칼럼을 쓰실 수준의 지식을 갖춘 분인 것 같은데, 응원해주시는 것을 보면서 ‘아 뉴스레터는 학위나 지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쓰는 것이구나’라는 진리를 깨달았었죠. 다른 구독자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뉴스레터를 처음 구독했고, 정말 이렇게 정리해주는 곳 없다며 감동의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고객은 아니고 구독자였지만, 그 때 저는 비즈니스의 진리를 몸으로 경험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제품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도시락을 싸는 마음으로 만들어야 한다. 진심을 도시락에 담으면, 기술이나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상대가 반응하게 되어있다.’ [나를 감동시킨 서비스는, 나에게 절을 하고 있었다.] 제가 수년동안 써온 한 서비스가 있습니다. 꽤 오래 썼는데 사실 이 브랜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적은 거의 없습니다. 내 일상의 주인공이 아닌 제품을 파는 회사이기 때문이죠. 바로 와이즐리라고 하는, 면도관련 제품을 D2C로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면도기를 팔다가 최근에는 스킨케어 쪽으로 넘어가 로션, 샴푸, 헤드 부스터까지 파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감동을 받았던 포인트는, 오래 전에 읽은 인터뷰에서 였습니다. 와이즐리는 기본적으로 플라이휠을 돌려서 고객을 감동시키고, 마케팅이 아닌 리퍼럴을 통해 성장하면서 얻은 수익을 제품의 가격과 품질에 재투자해 최저가로 판다는 전략을 가진 곳인데요, 인터뷰에서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고객 일상의 주인공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의를 끌지 않더라도 그들의 문제 해결을 돕는 서비스가 되고 싶다.’ ‘주의’라는 단어가 들어가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모든 비즈니스 전략에 반대가 되는 전략이 아닐까요. 대다수의 플랫폼은 이제 ‘콘텐츠’로 사용자의 주의를 끌어 체류시간과 리텐션을 잡아야 제품을 팔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콘텐츠-커뮤니티-커머스(CCC) 모델로 플랫폼화에 성공한 굵직한 사례가 많기 대문이죠. 사용자의 주의를 끄는데는 ‘콘텐츠가 왕’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우리 제품이 사용자 일상의 주인공이 아닌 것을 알고, 이를 겸허하게 인정하는 비즈니스라뇨. 이건 거의 종교적인 존경심이 들게 하는 말입니다. 조금 세게 얘기해보면, 이 서비스는 고객이 지갑을 열기도 전에 매일 108배를 하고 있는 서비스가 아닌가 싶어요. 어떻게하면 더 많은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서, 그 수익으로 가격을 더 내려서,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우주로 날아가는 플라이휠 모델이 아닐까요. 이타심이 이타심을 불러온다고 하는 것. [고객은 지갑을 열고 돈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 당신이 절을 하고 있다면.] 지나치게 이상적인 이야기이고, 너무 제 개인 주관에 의한 관점이 맞습니다. 멋진 말잔치가 비즈니스 역량이나 전략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팀의 마음을 불태우고, 고객의 응원과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일관적인, 거의 수도승에 가까운 태도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마치 매일 108배, 아니 300배, 1000배를 하는 마음으로, 고객이 들어오기도 전에 계속 절을 하며 고민하고 있는 것이죠. 어떻게 하면 이들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까. 실제로 <장사의 신>의 저자 우노 다카시는 ‘어떻게 하면 손님을 더 기쁘게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계속했고, 이를 통해 정말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하게 되었고, 손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익혀나갔다고 합니다. ‘고객은 지갑을 열고 돈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는 주장을 이런 맥락에서 제기한 것입니다. 이제 고객은 꼭 먹고 싶은 식당에서 줄을 서고, 원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사기 위해 밤샘이나 오픈런도 마다하지 않으며, 초기 서비스에 애정을 가지고 피드백, 응원, 지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비즈니스는 이제 제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팔기 위해 온몸과 마음을 내던지는 과정과 이야기 자체를 판다는 ‘프로세스 이코노미’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컨설턴트 야마구치 슈는 비즈니스는 이제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Business as art’라는 키워드를 제시한 적 있습니다. 말하자면, 비즈니스는 행위예술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속은 없고 겉만 있는 연기가 아니라, 정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타심을 가져야만 고객의 진짜 문제에 공감할 수 있게 되고, 문제 해결이 우리를 좀 고통스럽게 하더라도 실제로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니까요.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이런 마음가짐에 대해 불교를 인용하며 ‘순수한 마음’을 강조합니다. 물건을 만들어서 파는 비즈니스에 무슨 108배, 행위예술, 순수한 마음인지 싶을 수 있지만, 실제 비즈니스를 성공시킨 이들이 일관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무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즈니스를 준비하는 자라면, 뭔가 가치를 제안하고자 한다면, 레드카펫을 깔고 와인을 준비한 채 108배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뭘 더 줄 수 있을까? 지금 있는 서비스보다 뭘 더 잘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아닌 무료 뉴스레터를 만들기 위해 세상 비효율적으로 시간써가며 아마 머리도 좀 빠졌을 경험을 해보고, 그 레터를 받고 높은 온도의 독자 피드백을 받고나니, 언급한 이들의 말을 믿고 싶어졌습니다. 그런 의미입니다. 고객은 이미 지갑을 열고 돈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 당신이 매일 108배를 하고 있다면.
이재현 | DMK GLOBAL Co., Ltd.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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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사람이 있는데도 회사가 굴러가는 이유
'월급 루팡' '프리라이더' '월급 루팡'은 국립국어원이 2011년 7월 1일부터 2012년 6월 30일까지 한 해 동안 일간지와 인터넷 등 139개 매체에서 사용한 신조어를 정리한 <2012년 신어 기초 자료> 보고서에 실렸다. '월급'과 도둑의 대명사인 프랑스 괴도 소설 주인공 '루팡(Lupin)'을 결합한 단어다. 하는 일 없이 월급만 축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이들은 주로 '하는 업무가 없는 데도 바쁜 척 하기', '업무 시간에 다른 일하기', '자신의 업무를 다른 직원에 전가하기'등의 행태를 보인다. '프리라이더'는 원래는 요금을 내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나, 사회생활에 있어선 조별과제나 프로젝트에 아무런 노력이나 참여를 하지 않고 결과만 취하려는 사람을 말한다. 이 또한 어학사전에 단어를 넣으면 뜻이 풀이된다. 고로, 한글과 영어가 혼합된 이 말은 모두 어학 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말이다. 사전에 어느 단어가 등재되었다는 것은 곧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나, 그것이 신조어라면. 본래 사전은 있는 단어의 뜻을 찾는 게 주 용도인데, 현대 사회에 이르러 사회가 복잡화되다 보니 신조어는 양산되고 모두가 알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사전에 등재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체 어떻게 회사에 들어왔을까? 그러한 사람을 볼 때 우리네 기분은 그리 썩 좋지가 않다. 어렵게 입사한 회사이고, 고도의 업무를 해야 하는 직장인데. 대체 어떻게 저 사람이 내 옆에 있을까란 의문이 들면 마음이 편치 않게 되는 것이다. 마치 주변 모두가 하향 평준화되는 느낌. 저 사람이 들어올 정도라면, 내가 어렵게 들어온 그 의미와 가치는 훼손되고 그나마 있던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곤두박질치는 순간이다. 그러게. 대체 이 사람들은 어떻게 회사에 들어오게 된 걸까? 그리고 어떻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걸까? '월급 루팡'과 '프리라이더'를 통합하여 '그들'이라고 명명해보자. 그들은 '선천성'과 '후천성'으로 나뉜다. '선천성'은 원래 기질이 그러한 사람들이다. '후천성'은 직장생활을 해가며 그렇게 변화하는 사람이다. 물론, 복합형도 있다. 원래 그러한 사람이, 그러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중요한 건, 그들이 어떻게 내 옆에 있느냐 인데 '후천성'은 그나마 이해가 된다. 들어올 땐 멀쩡한 사람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선천적으로 게으르고 일을 전가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들의 기질을 숨겼을 것이 틀림없다. 원래 서류나 면접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최선과 최상을 말한다. 그러하니 사실 변별력이 그리 높지 않다는 건, 이미 우리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또는 '게으른 천재'일 가능성도 있다. 게으르려면 똑똑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자신의 부담은 최소화하고 효율을 높이려는 그들의 기질이, 어려운 관문을 뚫고 들어온 것으로 해석된다. 나는 '그들'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나? 그런데 재밌고도 섬뜩한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면. 우리도 사실 누군가에겐 '저 사람'이고, '그들'이라는 사실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으며 아무것도 안 하고 일을 전가하는 김 부장이나, 교묘하게 광만 팔고 결과만을 빼먹는 이대리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돌이켜야 한다. 그러하면 남들도 이해가 된다. 우리는 언제나 일을 열심히 그리고 잘할 수가 없다. 사람이 어떻게 그러할 수 있겠나. 컨디션은 등락을 반복하고, 그 과정에 우리는 슬럼프와 번아웃을 겪는다. 직장인의 슬럼프는 3년, 3개월, 3주, 3일 그리고 3시간. 심지어는 3분마다 온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 상황이니까. 그만큼 직장 생활은 다이나믹하고 안쓰럽다. 이 상황에서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타인도 마찬가지다. 일 잘하던 사람이 못할 수도 있고, 때로는 개인사로 힘들어 일을 제때 쳐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용서받거나 정당화될 일은 아니다. 직장은 모두가 계약 존재이고, 사람이라기보다는 '인적 자원(Human Resource)'이므로 우리가 리모컨 버튼을 누르면 TV가 켜지듯이 출근하면 우리는 '업무 전원'을 켜 각자의 몫을 (무조건) 해내야 하는 게 맞다. 여기서 떠올려야 하는 단어는 바로 '관용'이다. '관용'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그저 눈감아 주는 게 아니다. 그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인데, 중요한 지점은 바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내 성장의 기초가 된다. 받아들이면 보이는 것들이 많다. 그저 욕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초석이 되고 그러함으로 남을 이해하는 것. 그것에서 오는 성장의 폭은 이전엔 겪어보지 못한 자이언트 스텝이다. 저런 사람이 있는데도 회사가 굴러가는 이유 '그들'을 보며 회사가 굴러가는 게 신기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그들'이란 점에서, 회사는 어떻게든 굴러간다는 게 이미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회사는 굴러가는 것일까? 정답은 바로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시스템'이란 무엇일까? 컴퓨터로 치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분될 수 있다. '하드웨어'는 건물, 사무실, 책상 그리고 컴퓨터 및 현물 자산 등을 말하고, '소프트웨어'는 사람, 조직, KPI, 브랜드, 시스템, 역량 등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회사는 이미 잘 짜인 '시스템'인 것이다.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붕괴되거나, 몇몇 사람으로 뭉그러지지 않는다. 우리 몸 또한 잘 짜인 시스템이다. 몸 어느 곳이 다쳐도 이내 우리는 회복하고 일상을 이어간다. 그러나 몸 어느 한 곳의 아픔을 방치하면 심각한 장애가 올 수도 있고, 심하면 목숨까지 위태롭게 된다. 조직도 이와 마찬가지. 당장 시스템이 붕괴되진 않겠지만, 너도 나도 '그들'이 된다면 조직은 병들고 조직의 합인 회사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더, '관용'이란 말을 떠올리면 좋겠다. 남을 그저 봐주는 게 아니라, 내가 '그들'일 수도 있음을 깨달으며 그들의 상황을 헤아리고 '나는 저러하지 말아야지' 또는 '혹시라도 내가 그러고 있는 건 아닌지'라는 메타인지의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더불어, 그러한 사람이 많이 보인다고 내가 있는 곳을 하향 평준화해서 보기보단 그저 내 할 일을 자신 있고 감사하게 해내는 게 훨씬 의미가 있다. 그러하므로 '그들' 중 한 명은 줄어들게 될 것이고, 나와 회사는 동반 성장하게 될 것이니.
스테르담
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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