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비즈니스를 새롭게 개척해나가는 독자분들이 많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니즈는 있지만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은 영역들이 많을 것이고, 혁신은 항상 힘들죠. 제가 주로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일해온 탓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고도화된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면 혁신은 ‘기술개발’이라기보다는 ‘관계의 재배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스타트업은 디지털 플랫폼을 앱이나 웹으로 구현하는 방식으로 시장의 기존 관계를 재배열합니다.
많은 시장에서 중간상인이 게이트키핑과 공급망 통제를 통해 공급량, 가격, 품질을 통제해왔는데, 중간상인을 바이패스하고 새로운 디지털 연결망을 통해 공급자와 수요자가 직접 만날 수 있도록 돕고, 플랫폼은 수수료를 받는 것이죠. 여기에는 디지털 혁신, UXUI 혁신, 린스타트업과 같은 비즈니스 방법론 혁신이 들어가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관계의 재배열’이 핵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제는, 관계에는 관성이라는 것이 있다는 점입니다. 모든 인간은 습관화, 자동화된 마음의 운영체제로 살아가고 있죠. QWERTY 키보드가 세계적으로 가장 패권적인 키보드 구조인 이유는, 그냥 습관화되어서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키보드가 더 인체공학적이거나 효율적일수도 있는데, 그냥 가장 먼저 선택되어서 퍼진 모델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의 습관’은 매우 바꾸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쓰고 있는 것이죠.
인간의 습관을 변화시켜 관계를 재배열하고자 하는 혁신가는 이 지점에서 딜레마를 직면합니다. 플라이휠 모델로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말은, 사실 ‘사기를 치겠다’는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규모의 경제를 이뤄서 ‘미친 가치 제안’을 할 수 있으려면 이미 플라이휠을 돌린 후여야 되거든요. 말하자면, 이 플랫폼에 세상의 모든 좋은 콘텐츠가 다 모여있고, 그 덕분에 세상의 모든 사용자가 모여있어서 정말 싼 가격에 제공할 수 있다면 습관 따위야 다 바꿔줄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 어떻게 갈 것이냐는 거죠. ‘여기 다 있어요!’ ‘오세요!’라고 사기를 쳐야 세상 모든 콘텐츠와 사용자가 모일테니까요.
‘모든 비즈니스는 사기다’라는 진리는 제가 책모임을 기획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단 10명이 모이는 책모임인데도 ‘마치 이 책모임에 이미 10명이 오는 것처럼’ 강력하게 가치를 제안해야 했습니다. 왜냐고요? 10명이 모이기 위해서는, 첫번째 고객을 설득해야 하거든요. 두번째 고객도 모셔야 하고요, 세번째 고객에게도 가치를 제안해야 합니다. ‘10명이 다 오기로 되어 있다’고 첫번째 고객에게 사기를 칠 수는 없겠죠. 10명이 오지 않을 수 없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첫번째 고객은 왜 이 모임에 와야 할까요? 아직 10명이 모이지 않았는데 말이죠. 이것이 바로 모든 플랫폼 비즈니스의 딜레마입니다. 플라이휠이 돌기까지는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없고, 10명이 모이지 전에는 한명도 모으기 힘들다는 것. 이 지독한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제가 최근에 들었던 생각을 통해 오늘의 주장을 펼쳐보고자 합니다.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객의 지갑은 이미 열려있다. 당신이 108배를 이미 매일 하고 있다면.’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도시락을 싸는 마음으로]
저에겐 시사 뉴스레터 콘텐츠를 작성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무료였습니다. 대학원과 토론강사 생활 후에 일하기 시작했던 첫 스타트업이었습니다. 한 공유사무실에서 시작했죠. 대학원 때를 다 벗지 못한 때였는데, 이상한 고집을 부렸었습니다. 콘텐츠 하나를 만들어도 책, 논문, 영문기사 등 최대한 좋은 레퍼런스들을 많이 보고 쓰자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5천~1만자짜리 하나 쓰는데 한주를 거의 다 썼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운영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레터를 기억하는 어떤 독자분은 최근 ‘정말 고퀄리티였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분도 뉴스레터 운영자시니, 아마 빈말은 아니었겠죠.
그 중 제가 썼던 뉴스레터는 아마 별로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썼으니까요. 그런데 일은 능력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때 저는 이상한 집착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글이라도 잘써야 한다, 아니 글을 잘 쓸게 아니면 자료라도 많이 봐야 한다.’ 지리산 여행가서 숙소 들어가기 전에 피시방가서 다음날 뉴스레터 발행 전에 한번 더 편집을 봤던 적이 있습니다. 자료 보다가 머리가 아파서 공원을 뱅뱅 돌던 시간들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뉴스레터 그거 뭐라고 국내 최고 저자의 책을 보고 인터뷰 비슷하게 문의드렸던 적도 있고요.
사진으로 제가 그때 작성했던 뉴스레터 중 하나의 레퍼런스 목록을 공유합니다. 아침에 5분 읽는 뉴스레터 그거 뭐라고 인용 레퍼런스까지 달아야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었습니다. 뭘 인용했는지 알려야 하고, 일부 독자는 레퍼런스 들어가서 읽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반쯤 돌아있었던 같습니다. 같이 일하기 싫을 정도로.
제 자랑이 아닙니다. 제 글은 그때도 별로였고, 지금도 뭐 딱히.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고, 그냥 매일 할 뿐입니다. 다른 것은 전혀 없어요. 글쓰기로 자아실현하겠다는 목표를 버렸거든요. 글쓰기는 내 비루한 자아를 인정받기 위해 하는게 아니라, 고객을 위해 하는 겁니다.
독자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독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성장했었고, 수천명의 구독자도 느는 것을 보며 뿌듯했었습니다. 타입폼으로 메시지도 꾸준히 들어왔었습니다. 제가 기억나는 몇분의 구독자가 있습니다. 60대, 교육수준도 매우 높으신 분 같은데 거의 매번 뉴스레터를 꼼꼼히 읽고 주제를 제안해주시고 평을 해주시던 독자분이 계셨습니다. 직접 칼럼을 쓰실 수준의 지식을 갖춘 분인 것 같은데, 응원해주시는 것을 보면서 ‘아 뉴스레터는 학위나 지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쓰는 것이구나’라는 진리를 깨달았었죠. 다른 구독자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뉴스레터를 처음 구독했고, 정말 이렇게 정리해주는 곳 없다며 감동의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고객은 아니고 구독자였지만, 그 때 저는 비즈니스의 진리를 몸으로 경험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제품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도시락을 싸는 마음으로 만들어야 한다. 진심을 도시락에 담으면, 기술이나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상대가 반응하게 되어있다.’
[나를 감동시킨 서비스는, 나에게 절을 하고 있었다.]
제가 수년동안 써온 한 서비스가 있습니다. 꽤 오래 썼는데 사실 이 브랜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적은 거의 없습니다. 내 일상의 주인공이 아닌 제품을 파는 회사이기 때문이죠. 바로 와이즐리라고 하는, 면도관련 제품을 D2C로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면도기를 팔다가 최근에는 스킨케어 쪽으로 넘어가 로션, 샴푸, 헤드 부스터까지 파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감동을 받았던 포인트는, 오래 전에 읽은 인터뷰에서 였습니다. 와이즐리는 기본적으로 플라이휠을 돌려서 고객을 감동시키고, 마케팅이 아닌 리퍼럴을 통해 성장하면서 얻은 수익을 제품의 가격과 품질에 재투자해 최저가로 판다는 전략을 가진 곳인데요, 인터뷰에서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고객 일상의 주인공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의를 끌지 않더라도 그들의 문제 해결을 돕는 서비스가 되고 싶다.’
‘주의’라는 단어가 들어가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모든 비즈니스 전략에 반대가 되는 전략이 아닐까요. 대다수의 플랫폼은 이제 ‘콘텐츠’로 사용자의 주의를 끌어 체류시간과 리텐션을 잡아야 제품을 팔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콘텐츠-커뮤니티-커머스(CCC) 모델로 플랫폼화에 성공한 굵직한 사례가 많기 대문이죠. 사용자의 주의를 끄는데는 ‘콘텐츠가 왕’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우리 제품이 사용자 일상의 주인공이 아닌 것을 알고, 이를 겸허하게 인정하는 비즈니스라뇨. 이건 거의 종교적인 존경심이 들게 하는 말입니다. 조금 세게 얘기해보면, 이 서비스는 고객이 지갑을 열기도 전에 매일 108배를 하고 있는 서비스가 아닌가 싶어요. 어떻게하면 더 많은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서, 그 수익으로 가격을 더 내려서,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우주로 날아가는 플라이휠 모델이 아닐까요. 이타심이 이타심을 불러온다고 하는 것.
[고객은 지갑을 열고 돈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 당신이 절을 하고 있다면.]
지나치게 이상적인 이야기이고, 너무 제 개인 주관에 의한 관점이 맞습니다. 멋진 말잔치가 비즈니스 역량이나 전략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팀의 마음을 불태우고, 고객의 응원과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일관적인, 거의 수도승에 가까운 태도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마치 매일 108배, 아니 300배, 1000배를 하는 마음으로, 고객이 들어오기도 전에 계속 절을 하며 고민하고 있는 것이죠. 어떻게 하면 이들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까. 실제로 <장사의 신>의 저자 우노 다카시는 ‘어떻게 하면 손님을 더 기쁘게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계속했고, 이를 통해 정말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하게 되었고, 손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익혀나갔다고 합니다.
‘고객은 지갑을 열고 돈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는 주장을 이런 맥락에서 제기한 것입니다. 이제 고객은 꼭 먹고 싶은 식당에서 줄을 서고, 원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사기 위해 밤샘이나 오픈런도 마다하지 않으며, 초기 서비스에 애정을 가지고 피드백, 응원, 지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비즈니스는 이제 제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팔기 위해 온몸과 마음을 내던지는 과정과 이야기 자체를 판다는 ‘프로세스 이코노미’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컨설턴트 야마구치 슈는 비즈니스는 이제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Business as art’라는 키워드를 제시한 적 있습니다. 말하자면, 비즈니스는 행위예술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속은 없고 겉만 있는 연기가 아니라, 정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타심을 가져야만 고객의 진짜 문제에 공감할 수 있게 되고, 문제 해결이 우리를 좀 고통스럽게 하더라도 실제로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니까요.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이런 마음가짐에 대해 불교를 인용하며 ‘순수한 마음’을 강조합니다. 물건을 만들어서 파는 비즈니스에 무슨 108배, 행위예술, 순수한 마음인지 싶을 수 있지만, 실제 비즈니스를 성공시킨 이들이 일관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무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즈니스를 준비하는 자라면, 뭔가 가치를 제안하고자 한다면, 레드카펫을 깔고 와인을 준비한 채 108배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뭘 더 줄 수 있을까? 지금 있는 서비스보다 뭘 더 잘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아닌 무료 뉴스레터를 만들기 위해 세상 비효율적으로 시간써가며 아마 머리도 좀 빠졌을 경험을 해보고, 그 레터를 받고 높은 온도의 독자 피드백을 받고나니, 언급한 이들의 말을 믿고 싶어졌습니다.
그런 의미입니다.
고객은 이미 지갑을 열고 돈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 당신이 매일 108배를 하고 있다면.
고객의 지갑은 이미 열려있다. 당신이 매일 108배를 하고 있다면.
2023.02.02 | 조회수 1,708
이재현
DMK GLOBAL Co.,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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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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