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싱크대에서 수박 싹 틔운 남편, 제가 키워보려고요
안녕하세요. 얼마 전 남편이 싱크대에 버린 수박씨에서 싹이 났다며 분노의 글을 올렸던 사람입니다.
생각보다 정말 많은 분들이 제 글에 공감해주시고, 같이 화내주시고, 또 현실적인 조언들을 해주셔서 놀랐고 정말 감사했어요. 혼자 끙끙 앓다가 속마음을 털어놓으니 한결 후련해지더라고요.
주신 댓글들을 하나하나 다 읽어봤어요. 공감순 베스트 댓글은 어쩜 그렇게 제 마음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셨는지... 정말 좋아요 오백개 누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외에 정말 많은 분들이... '하나하나 가르치고 알려줘야 한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다'는 말씀을 해주셨더라고요. 솔직히 처음에는 '내가 왜? 다 큰 성인을? 내가 엄마도 아닌데?' 하는 반발심이 들었어요. 결혼이 육아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제가 화병으로 먼저 쓰러지겠다 싶더라고요. 그래, 밑져야 본전이다. 이 결혼생활을 지키려면 내가 변해야지 저 인간은 절대 스스로 안 바뀐다. 큰맘 먹고 남편 개조 프로젝트에 돌입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추천해주신 대로 일단 제 손을 해방시켜 줄 문명의 이기부터 장만했습니다. 바로 식기세척기와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를 주문했어요. 이제 남편이 '내가 하려고 했는데~'라는 변명을 할 기회조차 원천 봉쇄하려고요. 설거지는 식세기님이, 음식물 쓰레기는 처리기님이 해결해 주실 겁니다. 남편이 할 일은 그냥 넣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댓글에서 조언해주신 것처럼 아주 작은 일부터 시키고 성공했을 때 확실한 보상을 주는 남편 조련을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기가 오늘 고양이 화장실 치우면, 저녁은 최애 메뉴인 제육볶음에 계란찜이다!' 같은 아주 단순하고 명확한 미션을 주는 거죠. 유치하지만 어쩌겠어요. 말이 안 통하는걸요.
너무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셔서, 댓글을 남편에게 보여줘볼까도 생각했는데 그건 최후의 보루로 남기고, 나중에 충격요법으로 써먹어 볼 생각입니다.
아, 그리고
여러분, 저 그 수박씨에서 돋은 싹 버리지 않았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박 새싹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싱크대에서 고이 구출해서 일단 깨끗한 물에 옮겨놨어요. 조만간 예쁜 화분 사다가 정식으로 심어줄 생각입니다.
남편과 수박, 둘 중 누가 더 잘 크나 한 번 보려고요.
과연 무심하고 말 안 통하는 제 남편이 수박보다 먼저 철이 들 수 있을까요? 아니면 수박이 무럭무럭 자라서 먼저 열매를 맺을까요? 사실 아무리 그래도 거름도 안 주는데 수박보단 남편이 잘 크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가 있긴 한데 수박이 더 잘 자라면 놀릴 생각에 신이 나기도 하고요 ^^...
앞으로 남편과 수박의 성장 과정, 종종 보고하러 오겠습니다.
부디... 제 남편이 수박을 이기길 응원해주세요...^^
첨부 사진은 남편이 싱크대 개수구에서 틔워낸(?) 수박싹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