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과의 대화가 어려워지는 이유
말이 잘 통하는 후배가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 후배는 영화에 대한 지식이 더 많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도 그 후배가 추천한 영화는 꼭 챙겨볼 정도다. 내가 영화 하나 추천을 해달라고 하면, 그 후배는 신이 나서 이야기한다. 제품의 줄거리부터, 등장인물의 특성까지. 이 등장인물이 어느 영화에 나왔던 사람이고, 여기에선 어떠한 변신을 했다는 자신의 의견까지 말하고는 영화의 결말까지 들을지 말지에 대한 옵션까지 제시한다. 그렇게 대화는 즐겁게 이어진다.
그런데 요즘은 그 후배와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대화는 무미건조해졌다. 그리고 그 후배는 내 눈을 잘 바라보지 못한다. 열정에 차 감독의 의도까지 파악하여 신이 나게 영화 이야기를 하던 그 눈빛을 나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내가 리더가 되고 난 뒤다.
예전에도 선배로서 업무에 대한 조언은 준 적이 있지만, 같은 팀원의 입장에서 업무와 개인적인 대화의 비중은 아무래도 개인적인 대화에 좀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혹시라도 리더로부터 기분 나쁜 피드백을 받으면 나도 그 후배를 위로했고, 그 후배는 서슴없이 모든 걸 나에게 털어놨었다. 나 또한 리더와 의견 충돌이 있던 날이면 '공동의 적(?)'을 안주 삼아 치킨집으로 향했던 적이 여러 날이었다.
요 전날은, 공개 석상에서 후배에게 질책을 한 적이 있다.
안다, 나도. 공개 석상에서 구성원에게 부정적 피드백을 주는 것은 그리 좋지 않은 것이라고. 여기저기 어느 자기 계발서나 리더십 책에 아주 흔하게 쓰여 있다. 하지만 업무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마음이 싱숭생숭하단 이유로 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팀에게 피해를 주는 후배를 가만 둘 수 없었다. 물론, 공개 석상에서 그러하기 전에 사전에 개인적으로 조언을 주고 면담을 가지고 난 뒤이기도 했다.
예전엔 영화 이야기를 70% 하고 업무 이야기를 30% 했다면, 난 지금 그 후배에게 업무 이야기를 95% 이상 하고 있다. 나에게 그 후배는 더 이상 영화 추천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 팀의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역량을 키우고 동기부여를 하며 같은 방향을 봐달라고 요청하거나 필요한 경우 충고와 질책을 해야 하는 대상이다. 우리는 영화관이나 동호회에서 만난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도 좀 서글프고 외롭다.
난, 그 후배와 영화 이야기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같이 '공동의 적'에 대해 이야기하던 동지애도 여전히 마음 한 편엔 남아 있다. 하지만, 직장이란 곳에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위치가 바뀌면 풍경도 바뀌는 법. 착하고 좋은 선배로 남고 싶지만, 리더가 된 이상 나는 그럴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이야기해도 문제가 있고, 팀 전체에 피해를 주고 있다면 난 그 후배에게 충고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따라오지 못한다면, 안타깝게도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 배분하거나 구성원 교체를 고려해야 한다.
다른 구성원들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난 그들의 안부를 자주 물었지만, 요즘은 업무에 대한 진척을 먼저 묻는다. 아니, 내가 묻기도 전에 구성원들은 나에게 그것을 이야기한다. 서로가 그렇다. 그런데 그게 맞는 거다. 마음은 좀 그래도, 정말로 그게 맞는 거다. 그래야 일이 돌아가고, 회사는 성장을 하며, 우리는 월급을 받고, 비로소 먹고살 수 있는 것이다.
마음 편히 월급을 받는 사람이 이 땅에 얼마나 될까.
월급이란 원래 마음 불편한 것과 노고에 대한 (일정 부분의) 보상인 것이다.
구성원들에게 기꺼이 '공공의 적'이 되어 주는 (불편한) 마음 가짐.
아마도 리더가 단 몇 푼이라도 더 받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 내 마음 좀 더 불편해서 구성원들이 똘똘 뭉친다면, 그래서 우리 팀이 잘 굴러간다면.
그쯤이야 뭐.
점점 어려워지는 팀원들과의 대화는, 이제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하는 리더로서의 소양이다.